1991년에는 사전 편찬을 위해 아예 연구소를 세웠다.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그때도 “10~15년이면 마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당시 전 세계에서 전산화 바람이 불었다. 불교 관련 방대한 데이터가 쏟아졌다. 그때부터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팔리어로 된 불교 사전의 표제어를 한글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거기에 또 4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불교사전 작업을 함께 할 손발이 없었다. 자격을 갖춘 연구원을 찾기도 어려웠다. 지관 스님은 대학을 다니는 학부생을 데려다가 직접 키웠다. 대학원 진학을 후원하고 석박사 학위를 딴 뒤 전문성을 갖추도록 했다. 그들에게 지관 스님이 물었다. “우리는 아무도 안 좋아하고, 쉽게 인정받지도 못할 일을 할 거다. 그래도 같이 할래?”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문은 물론이고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티베트어에도 밝은 연구원들이 비로소 생겼다.
지관 스님은 평소 늘 보따리를 하나 들고 다녔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할 때도 그랬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차담을 나누다가도, 손님이 돌아가자마자 보따리를 책상 위에 풀기 일쑤였다. 그 안에는 불교 사전 작업을 하던 원고지가 담겨 있었다. 고옥 스님은 “잠시라도 짬이 나면 원고 작업을 하셨다. 언제든, 어디서든 쉽게 펼쳤다가 다시 담을 수 있게 원고를 보따리에 넣고 다니셨다”고 말했다.
‘가산불교대사림’ 편찬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안의 연구원 25명, 원외에서 20명이 함께 했다. 총 사업비는 385억원이다. 예산은 늘 부족했다.
‘가산불교대사림’에 수록된 표제어는 11만9487항이다. 일본 ‘망월불교대사전’(7136항)은 물론이고 대만 ‘불광대사전’(2만2800항)보다 훨씬 큰 규모다. 사전편찬 작업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지관 스님은 “훗날 한국 불교의 유산이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지금은 한국 불교의 크나큰 자랑거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