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시방(十方)
방(龐) 거사가 송하였다.1)
시방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제각기 무위(無爲)를 배운다.
이것이 선불장(選佛場)1)이니,
마음이 공하여 급제(及第)하고 돌아간다.
1) 게송은 방 거사가 처음 석두(石頭)에게 가서 ‘만 가지 법과 짝이 되지 않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여, 여래선(如來禪)의 도리를 깨쳤는데, 나중에 마조(馬祖)에게 가서 이미 깨친 경지로서 ‘만 가지 법과 짝이 되지 않는이는 누구입니까?’ 했더니, 마조가 대답하기를 ‘그대가 한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시고 와야 일러 주리라. 함으로써 조사전(祖師禪)의 도리를 깨닫고 이 게송을 지어 바쳤다.
2) 부처를 고르는 선발장이라는 뜻이다.
심문분(心聞賁)이 송했다.
바람ㆍ달ㆍ산ㆍ개울 모두가 한 집이니
누가 와서 말을 하여 용과 뱀을 가리랴.
이태백이 대궐[便殿]에 오른 적이 없는데
붓끝에서 어젯밤 꽃이 저절로 솟았네.
천동각(天童覺)이 상당(上堂)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이미 무더위였다면 어떻게 배우겠는가? 만일 마음이 공했다면 또 어떻게 급제를 하겠는가? 알겠는가? 혹 그렇지 못하다면 천동이 다시 주[分疎]를 내리리라. 큰 바다를 마셔서 말리고, 수미산을 밀어 쓰러뜨린다. 확연히 크고 신령스럽게 통한 이가 누구인고? 향기롭고 수려한 숲은 전단의 가지로다. 으르렁거리면서 굴에서 뛰어나온 사자 새끼여, 삼천세계가 손가락을 한 번 튀길 동안에 나타난다. 8만 문이 열려 두 눈썹을 활용하니, 아는가, 모르는가? 위하는가, 위하지 않는가? 도가 시방 허공에 가득하니 마음이 억겁을 초월하고, 그림자가 만 가닥 흐름에 비치니, 기(氣)가 둘[二儀 :陰陽]로 갈라졌다.”
영원청(靈源淸)이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이런 이야기는 흡사 스스로가 물러날 생각을 내고는 자기로써 남을 견주는 것 같다. 비록 그러하나 교화하는 문턱에서는 이것이 참 방편이니, 왜냐 하면 이미 옥당(玉堂)에 앉은 선비는 과거에 오를 필요가 없고 아직 금방(金牓)3)에 오르지 못한 이는 반드시 과거를 봐야 한다. 대중들이 오늘 아침에 선발장에 함께 모였으니 제각기 본래의 제목을 풀이하여 반드시 마음이 공해 급제하려 한다면 본분의 시험관[試官]을 만나야 할 것이다. 만일 본분의 시험관을 만났다면 말해 보라. 무엇으로 징험하겠는가? 당장의 한 말씀이 변화에 통하니, 번쩍 하는 우레 속에서 용과 고기를 가려낸다.
원오근(圓悟勤)이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대장부가 결단 있는 의지와 비장한 용기를 가지고서 화성(化城)3)을 차서 부수고, 당장에 알아듣고서 밖으로는 일체 경계가 있음을 보지 않고 안으로는 자기가 있음을 보지 않으며, 위로는 모든 성인이 있음을 보지 않고 아래로는 범부가 있음을 보지 않는다. 맑아 씻은 듯하고 벌거벗은 듯하여 한 생각도 내지 않고, 통 밑에 쑥 빠진다면 이 어지 마음이 공한 것이 아니리요, 이 경지에 이르러서 방망이나 할이 용납되겠는가. 현묘한 이치가 용납되겠는가, 나와 너의 시비가 용납되겠는가? 당장에 이글거리는 화로 위에 한 송이의 눈과 같으리니, 이 어찌 선불장에서 두각(頭角)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자세히 살펴보건대 아직도 계급이 있도다. 그러면 계급에 막혀 있지 않는 한 구절을 어떻게 일러야 하겠는가? 알겠는가? 천 성인이 머무르지 않으니 자취가 없고 만사람 모인 곳에 드높은 표방을 빼앗았도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산에 살자면 대중의 화합만이 존귀하고
안팎이 훤히 밝으려면 가지런해야 되느니라.
다리 부러진 냄비로도 다행히 근심 없으니
서로 불러 손을 내밀어 맞잡고 이끌도다.
3) 제 1급 장원합격을 말한다.
4) 『법화경』 「화성유품」에서 나온 비유이니 요술로 만들어 낸 성. 즉 2승(乘)들을 격려하기 위한 방편이다.
송원(松源)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고는 할을 한 번 하고 말하였다.
“오히려 이런 것이 있구나. 나 천복(天福)의 문하에 시방이 함께 모였으니, 모든 일이 예사 때와 같은지라. 추우면 화로에 둘러앉아 불을 쬐고 더우면 제각기 서늘한 곳 찾으니 옛말에 항아리 속의 세월이 장구하단 말 믿어지는구나.”
할을 한 번 하였다.
밀암걸(密庵傑)이 “시방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한 말을 들어 말하였다.
“은산과 무쇠벽이로다.”
“제각기 무위를 배운다”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해와 달이 밝게 비치는구나.”
“이것이 선불장이다”라고 한 말을 들어 말하였다.
“용과 뱀이 뒤섞였도다.”
“마음이 공하여 급제하고 돌아간다”고 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산다.”
주장자를 번쩍 들어 옆으로 뉘여 쥐고는 말하였다.
“방 거사가 여기에 앉았는데 그대들은 보았는가?”
그리고는 주장자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3생 60겁이로다.”
說話
“시방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十方共聚]……”라고 한 것은 거사가 “다만 모든 있는 것을 비우기를 원할 뿐이요, 절대로 모든 없는 것을 채우지 말라”고 하였는데 역시 이 뜻이다.
대혜(大慧)가 이르기를 “만일 자기와 자기의 마음을 집착하여 구경의 뜻이라 한다면 반드시 다른 물건과 다른 사람이 있어 대적해 온다”고 했으니. 그러기에 거사가 송하기를 “비록 무위라 하지만 철저히 무위이어야 하고, 비록 마음이 공하다지만 철저히 마음이 공해야 한다”하였으니, 곧 자기와 자기 마음일 뿐이요, 다른 물건이나 다른 사람이 대적해 올 것이 없다는 뜻이다.
심문(心聞)의 송에서 첫 구절은 “시방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마음이 공하여 급제하고……”라는 내용이요, 둘째 구절은 가릴 수가 없다는 뜻이며, 뒤의 두 구절은 이백(李白)이 꿈에 붓끝에서 꽃이 피는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백의(白衣)오서 한림(翰林)에 올랐으니, 방공이 마음이 비어 급제에 올랐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백이 젊었을 때 꿈을 꾸니 평소 쓰던 붓끝에서 꽃이 나왔다. 그러부터 저절로 천재(天才)로서의 재주가 뛰어나서 소문이 천하에 펴졌다. 뒤에 황제가 이백으로 하여금 조서[詔]를 쓰게 하였는데, 날씨가 추워서 붓이 얼었기에 열여덟 사람으로 하여금 붓을 잡고 받들게 하니, 이로부터 백의로서 한림의 지위를 얻었다고 한다.
천동(天童)의 상당에서 “마셔서 말리고[飮乾], 수미산을[須彌]……”이라 함은 지혜의 산, 지혜으 바다도 모두 밀어 쓰러뜨린다는 뜻이요, 그 뒤는 마음이 공하여 급제해서 철저히 의심이 없고 다시는 뒷일이 없음을 밝혔다.
영원(靈源)의 거화에서 “스스로가……내고는[自生]”에서부터 “남을 견주는 것 같다[方人]”까지는 다만 마음이 공한 부분을 지적해 낸 것이요, 그 뒤의 대의는 천동의 상당과 같다. :당장의 한 말씀이[直下一言]……“라고 함은 그의 활용을 말한 것이다.
원오(圓悟)으 거화에서 “대장부가[大丈夫]……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頭戴角]”라고 함은 마음이 공하여 급제하는 뜻을 밝힌 것이요, “천성인이 머무르지 않으니[千聖不留]……드높은 표방을[高標]……”이라 함은 항상 위에 다시 하나가 더 있다는 뜻이요, “산에 살자면[住山]……이끌도다[提携]”라 함은 남을 위하는 수단을 밝힌 것이니 앞의 천동과 영원은 먼저는 억누르고 뒤에는 드날렸지만, 지금은 먼저는 드날리고 뒤에는 억눌러 자기의 뜻을 나타냈다.
송원(松源)의 상당에서 “항아리 속의 세월이 장구하다[壺中日月長]”함은 역시 별다른 세계를 말한다. 앞의 한 할은 방공(龐公)을 무찌른 것이요, 뒤의 한 할은 자기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모든 일이[一切卽]……서늘한 곳 찾으니[乘凉]”라 함은 무생(無生)이 곧 생멸이라는 뜻이다.
밀암(密庵)의 거화는 네 구절에 모두 착어를 붙여 방공의 뜻을 번복한 것이요, “방 거사가 여기에 앉았는데[龐公在這裏]……”함은 당당하게 버젓이 이루어진 경지이며, “3생 60겁(三生六十劫)”이라 함은 이렇게 이해해도 또 옳지 못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