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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미국과 전세계가 치솟는 유가와 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한 탓이다. 인권정책의 후퇴라는 비난까지 들어가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를 만났지만 원유 증산 합의를 포함해 미국이 원하는 뚜렷한 외교적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혈맹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밀착돼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양국 관계도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은 1933년 국교를 맺은 이후 미국과 사우디의 오랜 밀월 관계와 갈등의 역사를 살펴보고 향후 양국 관계의 전개 방향을 전망했다. 미국-사우디의 밀월, 안보와 경제의 맞교환 미국과 사우디의 밀월 관계는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얄타회담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1945년 2월 수에즈 운하에 정박한 미해군 USS Quincy호에서 이븐 사우드(Ibn Saud) 국왕을 만나 사우디에 안보 우산을 제공하는 대가로 미국이 원하는 저렴한 가격에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약속받았다. 당시만 해도 사우디는 부족 국가를 통합해 탄생한 신생 왕조였고, 1930년대부터 진출한 미국 업체에 주도로 석유가 생산되기 시작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기반이 취약했다. 서구 열강들이 증가하는 석유 수요를 채우기 위해 중동 지역을 향해 앞다퉈 세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사우디는 왕권의 안정을 도모하고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Mecca)와 메디나(Medina)를 수호하는 것이 중대한 과제였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급격히 팽창한 석유 수요를 국내 생산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국내에선 차량 수요가 폭증했을 뿐만 아니라 전후 산업 복원을 위해 전세계적으로 석유 수요가 크게 늘면서 신생 산유국인 사우디와의 협력이 절실했다. 다만 미국과 사우디 왕조의 걸림돌은 이스라엘의 건국 문제였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는 것을 결사 반대했다. 그러나 국제정세가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사우디는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 영국, 사우디 3자간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결국 1951년 사우디가 요구한 '상호방위원조협정'이 체결되면서 미국산 무기의 대량 도입과 함께 미군 훈련사절단이 사우디에 주둔했다. 이렇게 서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리더인 미국과 이슬람 원리주의 전제왕조인 사우디의 밀월관계가 시작됐다. 오일쇼크로 '흔들린 우정', '페트로 달러'로 업그레이드 미국은 사우디로부터 싼값에 들여오는 석유를 기반으로 전후 엄청난 산업 발전을 이룩했고, 사우디 왕조는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안정적인 석유 수출을 통해 막대한 국부를 쌓을 수 있었다. 1970년대 중동전쟁으로 미국은 이스라엘, 사우디는 아랍 편에 서게 되면서 양국 관계는 큰 위기를 맞았다. 특히 1973년 4차 중동전쟁을 앞두고 아랍권은 앞선 세 차례 전쟁의 패인이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있다고 판단하고 석유수출금지 조치를 단행하겠다며 미국을 위협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미국의 우방이었던 사우디는 아랍권 산유국들과 함께 대미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사우디를 비롯해 석유자원의 무기화에 눈을 뜬 아랍권 산유국들은 차례로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했고, 1973년 10월 욤키푸르 전쟁과 함께 매달 5%씩 원유 감산에 돌입했다. 그러자 당시 배럴당 2.9달러였던 유가가 무려 한달만에 12달러까지 급등했다. 그 결과 미국과 세계 경제는 오일쇼크로 유례없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경험해야 했다.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서방의 메이저 석유 기업들을 제치고 석유 공급과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면서 강력한 오일 패권을 쥐게 된다. 초유의 위기 상황 속에서 1974년 6월 사우디로 날아간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파이잘 국왕과 담판을 벌인 끝에 '군사-경제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은 원유 결제 통화를 달러로 제한한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사우디는 미국으로부터 군 현대화 작업은 물론 전투기 60대 등 대규모 군수 물자를 수입할 수 있게 된다. 이후 미국은 OPEC 회원국들과 동일한 협정을 맺어 '페트로 달러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고, 사우디는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미국의 우방으로 거듭났다. 1차 오일쇼크로 한때 위기에 빠졌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이전보다 강력하게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9·11 테러 이후 양국 관계 균열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겪고 난 후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엄청나게 밀착됐다. 미국은 사우디에 막대한 무기 판매, 국채 등 투자자본 유치로 대규모 오일달러를 회수했고 달러 중심의 글로벌 통화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사우디는 그 대가로 이슬람 원리주의를 고수하는 봉건 왕조와 독재 체제를 미국의 묵인과 보호 하에 유지했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로 양국 관계는 균열이 발생했다. 미국인들은 테러범 다수가 사우디 국적이며 테러자금이 이슬람 단체로부터 유입된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사우디를 포함해 반이슬람 분위기가 확산됐다. 미국 정부는 이슬람 테러단체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계좌 감독을 강화했고 사우디 왕실 등에 대한 1조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우디에서도 반미 감정이 고조됐다. 걸프전쟁 이후 미군이 사우디에 장기 주둔하는 것에 대해 젊은층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확산돼 사우디 정권에 불안정 요인이 됐다. 미국도 아랍에서 메카와 메디나를 수호하는 성지로 여겨지는 사우디 영토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이 반미 테러활동의 빌미를 제공한다고 판단해 결국 2003년 사우디 주둔군 대부분을 철수시킨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이해관계 2010년을 전후로 '아랍의 봄' 혁명이 중동에서 확산되자 오일쇼크에 대한 우려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를 육박했다. 금융위기 이후 고유가 시대가 도래하자 미국에선 셰일층에서 오일과 가스를 뽑아내는 이른바 '셰일붐'이 일어났다. 기존 원유 생산에 셰일 오일과 가스 생산이 더해지면서 미국은 2018년 일일 원유 총생산량이 1100만 배럴로 러시아와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미국에서 셰일붐이 일어나자 사우디와 중동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중요성은 차츰 약화됐다. 게다가 오바마 행정부는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표방하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덜해진 중동지역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은 중동에서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적대시했던 이란의 도움이 없이는 평화를 정착시키기 어렵다고 판단, 대이란 핵협상을 시도한다. 오랜 협상 끝에 2015년 마침내 향후 10년 간 이란 핵무기 개발을 동결하고 미국이 대이란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을 합의한다. 미국과 이란의 핵협정이 체결되자 사우디는 이란 핵능력을 존치시키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내심 불만을 품었다. 시아파의 맹주이자 이슬람 혁명을 주도하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풀어주고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사우디 왕실에 큰 위협이었다. 실제로 이란은 이라크의 시아파와 민병대,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 레바본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지원하는 등 사우디의 최대 안보 위협 세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흔들리는 양국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JCPOA에서 전격 탈퇴하고 취임 후 첫 국빈방문국으로 사우디를 선택했다. 그리고 2017년에만 1100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 수출에 합의했다. 2018년에는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차기 국왕인 빈 살만 왕세자가 지목됐지만 트럼프는 국내외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왕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이를 묵인했다. 트럼프는 2020년 9월 이스라엘과 UAE 및 바레인이 관계정상화에 합의하는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주도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걸프 지역 왕조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군사 동맹을 맺음으로써 중동에서 미국의 공백을 메우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빈 살만과 사우디 왕실은 와하비즘으로 똘똘 뭉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미국이 구상했던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협력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반목'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러시아 경제 제재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심화되면서 글로벌 경제는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위기에 급속히 빨려들어갔다. 러시아의 석유 수출이 금지되고 천연가스 금수 조치까지 확대되면서 국제유가는 지난 6월초 배럴당 120달러까지 급등했다.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폭등하자 미국은 자이언트 스텝의 금리인상과 더불어 대규모 비축유까지 방출하며 고유가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으로 결국 사우디가 이끄는 중동 산유국들의 증산이 절실한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냉각 상태였다. 미국 민주당은 공공연히 행해지는 사우디 왕실의 인권 침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데다 바이든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빈 살만의 까슈끄지 암살 문제를 맹렬히 비난하며 국제사회에서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키도 했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직후 국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다. 수십년간 미국에 자국의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해 왔던 사우디 왕실에 안보 불안을 자극했다. 미국은 또 사우디가 예멘 내전을 장기화하고 있다며 일부 무기 판매를 중단하고, 후티 반군을 테러 명단에서 제외했다. 바이든 정부의 조치에 사우디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사우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투표에 기권했고, 최근에는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과 정상 외교를 복원하면서 미국을 자극했다. 무엇보다 사우디는 미국의 원유 증산 요구를 거부했다. 빈 살만은 바이든의 전화는 받지 않고 오히려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에서 러시아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우디는 미국과 반목하는 중국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나섰다. 스톡홀름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 2016년~2021년 중국의 대사우디 무기 수출 규모는 2.1억달러에 이른다. 미국의 140억 달러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사우디는 중국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의 핵심 협력국인 동시에 중동 지역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2020년 양국의 무역규모는 약 670억달러에 달한다. 사우디가 최대 원유수입국인 중국과 원유 거래에 대한 위안화 결제 허용을 검토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원유 거래의 위안화 결제가 이뤄질 경우 이는 페트로 달러 시스템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다. "美, 중동에서 힘의 공백 허용치 않을 것" 안보와 경제를 교환하며 유지됐던 미국과 사우디의 밀월 관계는 과거에 비해 약화된 모습이 역력하다. 여러 국내외적 비판 속에 이뤄진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은 향후 펼쳐질 험난한 양국 관계의 예고편처럼 보인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라 다가올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거나 2년 후 대선에서 공화당으로 정권교체가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선호해 중동에서 미국의 안보 부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민주당의 색채는 봉건적이고 이슬람 원리주의를 고수하는 사우디 왕실과 늘 갈등과 마찰을 빚었다. 반면 공화당은 전략적으로 석유 공급을 중요시하며 중동정책의 핵심 파트너로 사우디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무기 판매를 비롯한 군사안보 협력을 강화해 왔다. 미국 정부가 전통적으로 사우디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공화당으로 교체된다면 양국 관계는 현재보다 개선될 여지가 커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유가 안정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오는 11월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할 경우 사우디와 적극적인 협력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중동 문제 권위자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의 사우디 정책이 다중적인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사우디와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또 사우디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란핵합의 복원도 추진해야 한다. 메이저 석유 업체와 산유국 이익에 반하는 석유 증산과 유가 안정도 도모해야 한다. 인 교수는 사우디 왕실과 소원해진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가 이런 복합한 딜레마를 해결해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인 교수는 그러나 "현재 중국·러시아와 관계개선에 나서는 사우디가 미국을 완전히 등질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번 사우디 순방에서 비록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중동에서 미국의 힘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도 향후 바이든 정부의 중동정책 변화를 시사한다"고 말했다. 2022.7.24 |
*역사 돌아보기 : 미국과 손잡았던 친미 사우드 왕조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식국명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다. 이는 사우드 왕조(가문)가 통치하는 아랍 왕국이라는 뜻이다. 본래 사우드 가문은 아라비아반도 사막에 거주하는 유력 부족 중 하나였다. 이랬던 사우드 가문은 아라비아반도를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서구열강에 흔들린 틈을 타 아라비아반도를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변 지도
이 과정에서 사우드 가문은 ‘이슬람 근본주의 전파’ 사상을 중심에 둔 와하비 세력과 결합했다. 사우드 가문은 무력과 종교의 힘으로 아라비아반도 곳곳 오아시스 근처에 흩어져 살던 여러 부족들을 자신의 아래로 편입해갔다. 특히 사우드 가문은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차지하는 등 아라비아반도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 이로써 사우드 가문은 이슬람교, 그중에서도 수니파를 수호하는 사우드 왕조로 거듭났다.
흔히 언론을 통해 사우디는 건국 이후부터 줄곧 친미 국가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우디의 역사를 돌아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사우디가 건국 이후 어떤 행보를 걸어왔는지 역사를 되짚어보자.
한때 사우디는 서구 외세에 국가의 명운을 기댔다.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당시 패권 국가였던 영국의 지원을 받아 국제 사회에서 정식 국가로 승인됐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영국의 패권이 저물면서 새롭게 패권 국가로 떠오른 미국의 개입이 강해졌다. 미국은 1933년 사우디와 수교를 맺었고 1943년에는 석유탐사 대표단을 보냈다. 석유탐사단을 이끌던 에버렛 리 드골리어는 세계 석유 공급의 중심축이 미국·카리브해에서 중동·페르시아만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매튜 R. 사이먼스, 송계신 번역,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의 비밀』, 2007.)
미국은 사우디가 석유를 제공하고 중동 지역에서 자신의 편을 드는 대가로 사우드 왕조에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우드 왕조 역시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 등 반미 세력의 전복 공작에 나선 CIA(미국 중앙정보국)에 수조 원에 이르는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기도 했다. (정재민,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서먹해진 이유」, 시사IN, 2016.2.19.)
이렇듯 사우디가 눈에 띄는 친미 행보를 보여왔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행보만 본다면 사우디가 마냥 친미 국가로 비춰질 만하다. 그러나 사우디가 자신의 운명을 미국에 맹목적으로 내맡긴 것은 아니었다. 사우디는 미국에 기대는 한편 ‘미국 없는 사우디’를 모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찰스 프리먼은 “미국·사우디아라비아 관계는 가치가 아니라 손익계산에 근거한 것”이라며 “가치 측면으로 본다면 양국은 애초에 상호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라고 지적한다. (정재민,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서먹해진 이유」, 시사IN, 2016.2.19.)
미국의 손아귀에서 국익을 지키려 한 사우디의 행보를 보여주는 뚜렷한 사례가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아람코의 국영화다.
사우디는 아람코의 국영화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체로 석유 시설, 생산에 나서려는 행보를 걸어왔다. 1933년 미국 4대 정유회사인 엑슨, 모빌, 스탠다드오일 오브 캘리포니아(SOCAL·소칼), 텍사코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투자해 사우디에 석유 생산·채굴 회사 아람코를 세웠다. 당시 아람코의 공식 명칭은 사우디·미국 석유회사(Arabian-American Oil Company)였다. 언뜻 명칭만으로는 아람코가 사우디와 미국의 합작회사처럼 보이지만 1948년까지 아람코의 지분은 모조리 미국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사우디의 ‘석유 주권’이 미국에 통째로 넘어가 있었음을 뜻한다.
사우디가 아람코의 국영화 조치를 단행한 배경으로는 1967년 이스라엘이 사우디의 우방인 이집트와 시리아를 기습 침공한 이른바 ‘6일 전쟁’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수에즈운하 동쪽 연안,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하자 미국은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을 들었다. 그러자 1973년 파이잘 사우디 국왕은 엑슨, 모빌, 소칼, 텍사코 등 아람코 대표단을 왕궁에 불러 “이런 식으로 간다면 당신네들은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다. 미국의 참다운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 미국인들에게 전해주길 바란다”라면서 아람코의 국유화 조치를 시사했다. (김현민, 「석유전쟁⑧…사우디 국왕의 경고 무시한 미국」, 아틀라스, 2020.9.27.)
이후 사우디는 1980년에 아람코의 모든 지분을 거둬들여 국영기업으로 전환했다. 아람코의 공식 명칭도 사우디 아람코(Saudi Arabian Oil Company)로 바뀌었다. 미국의 흔적을 싹 지운 셈이다.
중국,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 멱살 흔드는 사우디
앞서 살펴봤듯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사우디가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맹목적인 상하 관계는 아니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수모를 준 무함마드 왕세자의 행보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를 주목한 학자들은 “(사우디는) 역내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방기(放棄·방치하다, 내버린다는 뜻)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율성을 확대하기도 해왔다”라고 지적했다. (김경국·김은비, 「미국의 동맹정책 변화에 따른 미국·사우디아라비아 관계 변화 : 동맹신뢰성 변화를 중심으로」, 국제지역연구 24권 4호, 2020.10.)
서구발 언론 상당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석유 증산으로 미국 내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러 사우디에 갔다는 식으로 분석한다. 오는 11월로 다가온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사우디를 찾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좁은 분석으로는 중동 지역에서 패권이 가파르게 저물어가는 미국의 진면모를 제대로 볼 수 없는 법이다.
7월 18일 한설 육군 예비역 준장(사학 박사)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국이) 이란 핵협상을 중지하면 석유를 증산할 수 있다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약속을 믿었지만 나중에 사우디가 약속을 어겼을 수도 있다”라면서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미국은 사우디로부터 패권 국가로서의 기본적인 대우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돌아보면 사우디를 직접 찾은 바이든 대통령이 석유 증산을 거부당하기까지 미국으로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사우디는 바이든 정권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범으로 지목하며 사우디에 첨단무기 수출을 거부하고, 사우디의 앙숙이자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에 적대적인 반응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의 석유 증산을 요청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전화를 거부했다. 그런가 하면 사우디 국영방송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하는 풍자 방송을 내보냈다. (노정연, 「미국에 등 돌리는 중동 ‘혈맹’ 사우디···“전화로 풀었을 일 이젠 대통령이 와도 안돼”」, 경향신문, 2022.4.20.)
또 지난 2021년 7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야반도주한 사실도 사우디에 큰 충격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내부에서는 ‘미국은 결코 자신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을 법하다. 실제로 사우디는 그동안 석유 대금을 미국 달러로 결제해오던 기존의 관행을 무너뜨리는 행보에 나섰다.
지난 3월 사우디는 중국 정부와 달러 대신 중국 위안화로 석유 대금을 결제하는 논의를 시작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우디는 이르면 내년 중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 통화 체계 구축’을 강조한 중국, 러시아가 소속된 브릭스에 가입하려는 고민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러한 사우디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오펙을 이끄는 사우디가 석유 대금을 달러로만 결제하기로 하면서 지금까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유지돼왔음을 주목한다. 석유 대금을 달러로 결제하지 않으려는 사우디의 움직임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뒤흔든다는 것이 전문가 다수의 견해다.
책 『중동은 왜 싸우는가』를 펴낸 박정욱 MBC 피디는 지난 2020년 2월 29일 유튜브 채널 「삼프로TV_경제의 신과 함께」에서 “미국의 강한 경제력은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것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라며 “미국은 사우디에게 안보를 제공해주고 사우디는 석유를 달러로만 결제하기로 약속했다. 기축통화인 달러가 몇 번의 위기가 있었음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지난 3월 워싱턴에 있는 국제안보분석연구소 소속 갤 루프트 이코노미스트(경제분석가)는 사우디가 석유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논의했다는 소식과 관련해 “미 달러로 거래되는 글로벌(국제) 원자재 시장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지탱해주는 일종의 근간”이라며 “사우디의 이탈로 하나의 벽돌이 빠지면 벽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라고 염려했다.
이미 사우디가 미국의 석유 증산 요구를 딱 잘라 거절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에 대서특필됐다. 그런데 미국에는 이보다 훨씬 더 큰 모욕과 시련이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사우디의 석유 증산 거부 소식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우디 방문을 통해 이란을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중동판 나토’를 만들려던 미국의 구상도 사실상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과 종교가 다른 이스라엘까지 하나로 아우르는 ‘중동판 나토’를 검토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7월 14일 중동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이스라엘을 찾고, 뒤이어 걸프협력회의가 열리는 사우디에 방문해 이러한 구상을 본격화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은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의 시큰둥한 태도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로써 중동판 나토를 통해 이란,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며 군사적 우위를 놓지 않으려던 미국의 구상도 안개에 휩싸인 상황이다.
미국에 등 돌린 사우디…파장은 어디까지 미칠까?
오늘날 사우디는 미국에 등을 돌리고 중국, 러시아와 힘을 합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파장은 앞으로 어디까지 미치게 될까?
이대로면 머잖아 미국이 중국, 러시아와 손을 잡은 사우디에 밀려 ‘국제 왕따’를 당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될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사우디가 중국, 러시아와 힘을 합쳐 미국의 편을 들어온 국가에 석유 판매를 거부하는 ‘역제재’를 펼친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게 되면 미국의 편을 든 나라는 매우 막심한 경제·민생 피해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플라스틱, 합성섬유, 아스팔트, 가공식품 등의 주원료인 석유를 대체할 마땅한 자원이 없다는 점에서 충격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아람코가 우리나라에 석유를 공급하는 기업 S-오일의 대주주라는 점을 봐도 우려가 가시질 않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7월 16일(현지시각)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중동을 떠나지 않겠다”라면서 “중국이나 러시아 또는 이란이 이 공백을 채우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동의 정세는 결코 바이든 대통령의 바람대로는 되지 않을 듯하다.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이슬람문화연구소장)는 7월 2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미국에 엇서는 사우디의 행보가 국제사회에 미친 파장을 다음과 같이 짚었다.
이 교수는 “(미국이)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글로벌(국제) 가격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며 “사우디가 석유를 증산해줘서 가격을 안정시켜줘야 하는데 전쟁 초기에 러시아 편에 붙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처음부터 꼬였다”라고 지적했다.
또 이 교수는 “20세기 와서 모든 (중동) 분쟁의 핵심에는 미국이 무분별하게 국제법을 위반하고 때로는 안보리 규약을 지키지 않은 데 있다”라며 “이라크 침공,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개입 (등) 모든 분쟁의 핵에는 미국이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사우디의 석유 증산 거부를 계기로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이 끝났고, 점차 중동 지역이 안정을 찾게 되리라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현재 한국에는 시대가 바뀐 줄도 모르고 대미추종과 사대·매국에 혈안이 된 윤석열 정권이 온갖 악재에 휩싸인 상황이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앞으로 밀어닥칠 파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바이든 “석유감산 사우디, 대가 치를 것”
미국 요청에도 OPEC+ 감산 발표
사우디에 무기 판매 중단하고
회원국 불법담합 고소법안 논의
WSJ “주둔 병력 철수 목소리”
카슈끄지사건 이후 또다시 긴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감산을 주도한 중동의 최대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해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우디와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미 의회가 무기 판매를 포함한 사우디와 안보 협력관계 중단을 검토하는 가운데 OPEC 회원국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미국 법정에 세울 방안 등도 논의될 예정이다. 사우디가 미국의 요청에도 감산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미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노선을 명확히 한 데 대한 조치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이후 또다시 미·사우디 간 긴장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OPEC+의 석유 감산 결정을 언급하며 “내가 무엇을 고려하고,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의 감산 조치에 대해 전면적인 대응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사우디와의 양자 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OPEC+는 지난 5일 내달부터 원유생산을 하루 200만 배럴씩 감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위해 먼저 의회와 공조할 방침이다. 특히 여당인 민주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하고, 사우디와 OPEC 회원국들을 불법 가격 담합 혐의로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 마련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OPEC 회원국들은 미 반독점법 내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사실상 담합 행위를 벌여도 소송을 당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우디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을 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이는 사우디가 사실상 미국과 다른 노선을 걷겠다고 표방하자 강경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WSJ에 따르면 미 정부 관리들은 OPEC+ 감산 결정 수일 전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들에 전화를 걸어 결정을 한 달 더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측은 “감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편을 들겠다는 명백한 선택으로 간주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우디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국내 정치용 조치라는 이유다.
20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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