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랑탕 마을에서)
라마호텔(2,340m)의 프랜들리 롯지를 떠나 오늘은 랑탕 마을(3,500m)에서 여장을 풀었다.
오르는 도중 표고 3천 미터가 넘자 약간의 호흡곤란이 느껴질 듯 하더니 큰 한숨을 몇 번 반복하자 다행히 괜찮다. '비스따리, 비스따리!'...... 천천히, 충분한 여유를 갖고 오르면 고산병은 오지 않는다. 성질 급한 한국인, 그 중에서도 체력에 자신만만한 젊은이가 고산병에 잘 걸리는 이유다.
라마호텔을 아침 8시 20분에 출발하여 랑탕 마을에 오후 3시 40분에 도착하기까지 7시간가량 펼쳐진 랑탕 게곡의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경이롭다. 우리가 걷는 계곡 저편은 검푸른 침엽수가 아랫도리를 덮고 있는 아득한 봉우리, 이쪽은 관목과 초원으로 뒤덮인 경사면, 그 아래로는 랑탕콜라의 푸른 우윳빛. 창조주가 천국에 자연을 펼쳐 놓는다면 아마 이러한 광경이 될게다.
포터 치린의 말에 의하면 관목 숲인 철쭉(네팔어로는 '순빠띠')이 핑크빛으로 물들고 푸른 잔디가 초원을 이루는 5월과 6월엔 이곳은 꽃 천지가 된다고 한다. 이런 풍경에 꽃 천지라면 거대한 장관이 아닐까?......
우리는 오면서 말했다. 오는 도중의 랜드 슬라이드 롯지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아득한 계곡의 왕국과도 비슷하고, 고라 터벨라(Ghora Tabera, 3,020m)의 밀림은 영화 '킹콩'에 나오는 정글 같다고......
곰나촉(Gomnachok, 2,670m), 고라 터벨라, 탕샤프(Thangsyapu, 3,120m), 참키(Chamki, 3,110m)를 거쳐 오면서 행복하고 황홀했다.
신은 왜 이토록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이런 절경을 모아 두었을까? 힘들여 걷고, 땀 흘리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그런 걸까?
멀리 랑탕리룽과 랑시사 리(Langshisa Ri, 6,427m)의 봉우리가 하얗게 빛나고 있다.
랑탕마을은 이 계곡안의 경사분지에 있는데 어림짐작으로 50-60호 정도가 되어 보이고 마을 뒤의 까마득한 절벽아래 파이프가 연결된 작은 건물은 폭포를 이용한 수력발전소라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여분의 디지틀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했다. 전기 콘센트는 우리의 220볼트 플러그와 거의 일치한다. 플러그 구멍이 우리네 것보다 약간 간격이 좁긴 하지만 좀 힘을 주면 쉽게 꽂혀 멀티 플러그가 필요할 것 같진 않다. 다만 마을에 공급되는 전기는 7시에서 10시까지 저녁시간에만 제한적으로 공급되어, 충분한 충전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롯지 방에 호사스럽게도 전등이 들어와 있다. 동네의 집들은 각기 떨어져 산개해 있고, 말들이 집 사이의 풀밭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이곳 샹그릴라 롯지의 '파상따망'이라는 친구는 친척집인 라마호텔의 롯지에서 우리에게 식사를 만들어 주더니, 아침에 우리와 같이 출발하여 이곳까지 하루 종일 동행했는데, 알고 보니 아래쪽엔 더 이상의 손님이 오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아마 샤브로벤시에 전화해서 버스로 도착한 트래커들이 있는지 정기적으로 체크해 보는 것 같았다) 우리를 따라 원래 자신의 부모님이 경영하는 이곳 롯지로 온 것 같다. 우리는 그의 부모님 롯지에 그의 의도대로 투숙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걸으며 나는 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해 '파상따망'이라는 그의 이름을 '피망따망'이라고 자꾸만 불렀다.
쌀을 한 짐 등에 짊어진 노인(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이 나를 앞지르며 '나마스떼' 인사를 하기에 '나마스떼' 했더니 대뜸,
"네 이름이 뭐여?" 한다. 이름을 '쭝'이라고 얘기 했더니
"뒤에 오는 여자와 남자는 일행이냐?"
"그렇다."
"여자는 누구며, 남자는?"
"여자는 내 마누라고, 남자는 우리 짐꾼 네팔리다."
"네 마누라 이름은 뭐냐?"
"......"
"네 마누라 이름!"
"......'미네'다."
"음!......쭌과 미네라...... 근데 넌 몇 살 먹었냐?"
"오십 여섯 살 먹었다, 너는?" 일부러 우리식 나이를 말했다.
그는 흠칫 놀라며,
"...... 오십 다섯이다. 네 보다 한 살 덜 먹었다. 그렇지만 뭐 쎄임 쎔." 한다.
초면인 남의 이름과, 한술 더 떠서 마누라 이름까지 묻다니...... 웃기는 네팔리...... 그렇지만 뭐 어떠랴. 그의 눈은 선했다.
나중에 우리를 앞질러 쉬고 있는 그의 곁을 지나며 '헤이, 친구!'했더니 반색을 하며 '헤이, 친구!'한다. 히말라야 랑탕 마을에 나는 나이가 쎄임 쎔인 친구가 하나 생겼다.
샹그릴라 롯지의 태양열 이용 샤워실은 변기와 같이 있는데 물이 질퍽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밖으로 물을 빼는 하수구 역활의 파이프가 직경 1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데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는 물리법칙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시공 탓에 도무지 밖으로 빠져나가질 않는다. 이를 대비해(!) 벽에 걸어놓은 전용 꼬챙이로 몇 번 구멍을 쑤시자 조금씩 빠져 나간다.
네팔리들이 만든 롯지에는 손님들의 편의시설 같은 것은 없다. 네모진 방에 창문, 그리고 나무 침대 두개(침대에는 스펀지에 시트를 덮은 매트리스와 베게)가 시설의 전부다. 물론 난방시설 같은 건 없다. 옷을 걸어 둘 용도의 못 하나 박혀 있지 않고, 속옷이나 손수건 한 장 세탁해서 널어 둘 빨랫줄도 물론 없다. 빨래는 바깥 공동 빨랫대를 사용해야 한다. 오직 나무 침상 두개와 베게 두 개, 그것이 전부다. 못이 왜 하나도 없을까? 실연이나 실직을 비관해 이왕이면 이 아름다운 곳에 와서 목이라도 메는 이가 비일비재한 까닭일까?
아무튼 산행기간 동안 내내 못 하나 없는 롯지 때문에 뜻밖에 엄청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는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던 까닭에 운동화 끈을 여러개 연결한 빨랫줄을 가지고 다녔기에 그나마 불편을 최소화 하긴 했다.
롯지에서 만나는 트래커들은 유럽인들이 더러 있고, 북미인 들도 있으나 그들은 주로 네팔리들과 대화를 나눈다.
아마도 동양인(주로 한국과 일본인)은 영어가 한심하니 네팔리들과 대화하는 것이 덜 답답해서일 거라고 짐작한다. 영어 좀 못한다고 창피할거야 없지만 우리 어릴적 영어교육방식이 아쉽다.
이런 산중의 네팔리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영어는 왠만큼 한다. 영국의 지배를 받은 인도의 영향과 이런 인도의 경제적 속국에 가까운 네팔로서는 영어가 자연스럽다. 또 이들의 영어교육은 우리의 입시위주 교육방식과는 다른, 생존을 위한 습득에 가까워 보여 나이가 많은 노년층을 제외하고는 왠만한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다. 다만 발음이 억세어서 예를 들면 '토일릿'을 '똘렛'이라고 발음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표고 3,500미터 높이의 저녁은 춥다. 파커를 꺼내 입었다.
오늘 지나온 리버 사이드 롯지와 우드랜드 롯지는 그야말로 낙원 속 같았다. 여기 롯지 하나 짓고 그냥 눌러 살까? 뭐 카트만두에 갈 필요도 거의 없을 것 같고, 짐꾼 하나, 나이 든 할배 도우미 하나 이렇게 살면 좋을 듯 하다. 평생 살아오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곳은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의 부엌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정겹다. 화덕을 보면, 돌을 쌓고 진흙을 발랐는데, 아궁이가 부인네들이 의자에 앉아 장작을 지필 수 있는 높이로 되어 있다. 한국의 전통 시골 아궁이 보다 훨씬 인체공학적이고 개성 있는 아름다움이다. 우리네 부인네들이 쭈그리고 앉아 군불을 지피다가 무릎에 두 손을 짚고 '끙!'하며 일어서는 그런 부엌이 아니다. 물론 우리네 처럼 온돌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잘 정돈된 선반의 쟁반과 그릇들은 그들의 깔끔한 성품을 잘 보여준다.
랑탕마을에는 거의 다 티베트계 사람들이다. 복장만 비슷하다면 우리네 시골 어느 동네에 묵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하도 생김새가 비슷해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하지만, 우리 보다 약간 얼굴색이 검은 것이 다르다면 다른 모습이다.
생각보다 그리 추운 것 같진 않다. 그렇지만 양말을 신은 채 침낭 안에 들어가 자야 할 것 같다.
내일은 컁진곰파(Kyanjin Gompa, 3,730m) 행이다.
(계속)
첫댓글 사진속의 길들이 어제 일 처럼 생가나는군요...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가고 싶은 곳입니다.ㅎㅎ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