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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여행기 9
(노성잡기 2) 1. 센트 루이스 워싱턴 대학의 동양학 도서관
이 미국의 중부도시에는 워싱턴 대학이라는 대학도 있고, 센트 루이스라는 대학도 있는데, 앞의 것은 유명한 시인 T.S.엘리옽의 백부인 목사가 1830년대에 세웠다는 사립대학이고, 뒤의 것은 우리나라의 서강대학을 세운 재단과 같은 천주교 재단에서 세운 학교라고 한다. 뒤의 학교에 대하여서는 자세한 것을 알 수는 없으나, 앞의 학교에 대하여서는 그 구내의 도서관에 가끔 가 보아서 어느 정도 그 윤곽은 알고 있다.
미국에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이름과 관련하여 만든 대학이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아마 가장 규모가 큰 대학으로는 워싱턴 주의 씨아틀에 있는 워싱턴(주립)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일 것이다. ‘82년에 내가 미국 땅을 처음 밟으면서 찾아 가서 본 대학이다. 너무나 큰 주차장에 놀랐고, 변기 위에 깔아놓는 종이까지 있는 것을 보고 놀랐고, 대학 같은 과의 1년 여학생 후배인 최윤환 사서가 근무하고 있는 그 대학의 동양학 도서관의 장서와 시설을 보고 놀랐던 곳이다.(이 도서관에는 한중일 일반 책 이외에도, 몽고 만주 티벹의 자료들을 특별히 집중하여 모으고, 한국 책 중에서도 한국의 시집과 경상도의 자료들을 특별히 모은다고 하였다) 그 밖에 이승만 박사가 학부를 다녔다는 죠지 워싱턴 대학이라는 학교도 있다. 별 명성은 없는 학교인 것 같다.
이와 같은 워싱턴 대학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이 센트 루이스에 있는 이 학교의 이름의 공식 명칭은 Washinton University in St. Louis라고 하며, 이곳 사람들은 줄여서 웠슈Washu라고 부른다.
이 웠슈는 이 곳 사람들은 매우 대단하게 아는 대학으로서, 사회사업과는 전 미국에서 1위, 의과대학과 병원은 전 미국에서 5위 이내, 인문과 동양학 분야는 미국에서 11,12위 정도이고, 매년 세계 100대 명문 대학을 선정할 때 보면 70위 정도에 드는 대학이다. (한국의 서울대학이 최근에 100대 명문 안에 겨우 턱걸이하였다가 해마다 점수가 올라가고 있지만, 다른 한국의 명문들은 아직도 100대 명문에 드는 곳이 별로 없음을 감안하면 이 학교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7천명 정도이고, 학교 건물도 3, 4 층 정도의 나지막한 집들뿐이라서 아담하기는 하나 웅장하지는 않다. 그러나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 수준은 미국의 동부에 있는 명문 사립대학들과 똑 같이 비싸고, 학교의 재단 적립금도 매우 많다고 한다. 100여 국가 이상의 유학생이 모인다는데, 그중에서 최근에 중국유학생이 이 7백명, 한국 유학생이 5백명 정도로 단연 재일 많고, 일본 유학생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 학교에는 중앙도서관 이외에도 14개의 분야별 도서관이 별도로 분립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인 동양학 도서관East Asian Library에 관하여 좀 소개할까 한다. 미국은 원래 돈이 많은 나라이고, 또 대학도 돈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대학의 도서관 시설이나 장서량도 단연코 세계에서 우뚝한 곳이 많다. 서양 책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동양 책도 만만치 않게 많이 수장하고 있다. 필자가 직접 가서 1년씩 이용하여본 하버드 옌칭 도서관은 10년전에 벌서 150만 권(중국 책 55만권)이 넘는 문헌을 갖추었고, 스탠포드 대학의 후버연구소 동양학 도서관에도 30년 전에 중국책 일본 책만 30만권 이상을 갖추고 있었다. 5개월 동안 이용하여본 카나다의 브리티쉬 콜럼비아 대학U.B.C.의 동양학도서관에도 한국책, 일본책, 중국책을 합하여 55만 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좋은 도서관에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이 웠슈의 동양학 도서관에는 지금 장서가 15만 권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 중국 책이 65%라고 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일본 책이며, 한국 책은 최근에 한국학 전공과정이 신설되면서 구입하기 시작하여 몇 권 되 않는다고 한다. 중국 책이 15만 권 중에 65%라고 한다면, 97,500권 쯤이 중국 책이란 말이다. 7,8년 전에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의 중국 책이 얼마나 되는지 좀 알아보았더니 42.000 권 정도라고 하였다. 국내에서는 대학도서관 중에서는 영남대 도서관이 한문책(한국의 선장본, 10여만 권)이나 중국 책이 많은 도서관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이 도서관의 중국 책 만은 그 2 배가 넘는다.
이 웠슈의 동양학 도서관 장서의 특징은 명나라 때 편찬된 책의 영인본과 관련 연구서가 딴 분야의 책에 비하여 월등하게 많다는 점이다. 아마 이 대학의 동아시아학과의 주임교수인 헤겔Hegel 교수의 전공이 이 시대의 소설이라서 그렇게 된 것 같이 생각된다. 이 점 말고는, 위에서 말한 큰 도서관들의 장서들 보다 별로 그렇게 눈에 뜨이게 두드러진 점은 없었다.
다만 도서관 운영에 있어 한 두 가지 놀라운 점이 보였다. 한 가지는 여름이라서 책에서 냄새가 많이 나서 처음 이 도서관에 들어서면, 좀 매케하다. 그래서 그런지 출퇴관자들을 검색하는 앞 문 말고도, 아무 검색장치도 없는 열람실의 뒷문까지도 다 열어 두었다. 그 뒷문으로 아무 책이나 들고 나가도 아무 것도 걸릴 것이 없는데도 그냥 열어두고, 직원들도 하나 가까이 와서 앉아 있지도 않다. 별도의 감시 장치가 있는지, 여기가 이만치 모두 믿는 곳이라는 말인지는 몰라도 참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 하나는 열람실 서가에 여러 가지 사전과 참고자료를 사방 벽을 따라가며 즐비하게 꽂아두었는데, 그 가운데 대만에서 영인해낸 백부총서百部叢書 전질이 꽂혀 있는 것이었다. 이 총서는 중국이 고전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총서 100가지를 종합하여 둔 것인데, 사고전서와 같이 방대하며, 비록 영인본이기는 하지만 원본과 똑 같은 선장본線裝本이라서 매우 옛맛이 나며 고급스럽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는 고려대학과 영남대학에만 비치하고 있는데, 영남대학에서는 구입한 것이지만, 고려대학에서는 30여년 전에 이 총서 한 부를 기증한 대만의 어떤 분에게 명예 박사학위까지 드렸다고 들었다.
영대 같은 경우에는 이 총서를 고서실 서고에 신주 모시듯 하고, 특별히 고서실 직원에게 신청을 해야만 겨우 한 두 권을 대출하여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학부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까지도 아무 증명이 없이도 들어올 수 있는 이러한 방에, 더구나 뒷문까지 무방비로 열어 놓은 곳에, 그대로 마음대로 뽑아서 볼 수 있도록 하다니? 참 별천지인 것 같다.
몇 년 전 대륙의 어느 초일류 명문대학이라고 자랑하는 학교에 갔더니, 이러한 책의 대만, 홍콩 영인본 조차도 특장실特藏室이라는데 넣어두고서, 신청서를 낸 뒤에야 꺼내어 보도록 까다롭게 하였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아무나 이런 책을 마음대로 뽑아보도록 하니 정말 동양학을 공부하는데도 이 미국이라는 곳은 별천지로 느껴진다.
여름 방학이라 딴 열람객은 거의 없는 이 도서관 열람실에 가끔 2,3명 씩 짝을 지어들어 와서 책을 보면서도 소곤거리기도 하는 한국의 남녀 유학생들을 보니, 비록 한국에 비하여 몇 배나 비싼 많은 등록금을 내고서 다니기는 하지만, 문화적인 혜택은 한껏 누리는 것 같아 보인다.
2. 센트 루이스에서 만난 중국 사람들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미 세계화된지 오래인 곳이고 보니, 왠만한 도시에도 온갖 나라의 식당들이 다 있다. 내가 2년 전에 와서 한 달반 동안 있을 때와 이번에 다시 와서 두 달 쯤 있으면서 가본 각종 식당으로는, 중국 식당에 가장 자주 가보거나 시켜 먹어 보았고, 그 다음은 한국식당, 일본식당, 인도식당 같은 곳도 몇 번씩 가보았다. 이태리식 피자도 몇 번 주문 배달받아서 먹었다. 그 밖에 양식당에도 당연히 몇 번 갔으나, 돈만 비싸지 별 재미는 없었다. 그리스 식당, 아프리카 식당, 희말리아 식당이라고 간판이 붙은 네팔 남자와 한국 여인 부부가 하는 식당에도 이번에 2번이나 가 보았다.
나는 본래 식성이 좋아서 아무 음식이나 가리는 것이 별로 없어 젊을 때에는 아무 것이나 다 잘 먹었고, 특히 외국에 나오면 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 그 현지의 요리를 아무 것이나 먹으려고 힘썼다. 아무 것이나 다 잘 먹다가 보니, 어느 음식이 특별히 더 맛있었다는 기억이 특별히 남는 것도 별로 없다. 그냥 아무 것이나 싼 것을 사서 한 끼를 때우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여기 와서는 딸이 직장에 근무하고 있으니 살림은 별로이고, 또 우리가 모처럼 외국에 나왔다고 해서 인지 평균 이틀에 한번 정도는 외식을 하러 다니는 것 같다. 집에서 걸어가도 3,40분이면 이를만한 거리에, 아직 차이나 타운China Town이라고 하기에는 좀 엉성하나, 수많은 중국집들이 길 양쪽에 띄음 띄음 포진해 있다. 그 중에는 큰 극장을 개조해서 예식장으로도 사용할 수 아주 큰 대형 음식점이 있는가 하면, 영어도 못하고 현금만 받는, 이 곳의 기준으로 보자면, 구멍가게 수준인 조그마한 중국집도 있다.
나는 조주요리潮州菜를 한다는 집의 주인이 대륙에 있을 적에는 어느 호텔의 유명한 요리장이었는데, 여기 와서 영어도 모르면서 음식점을 하고 있다고 해서, 도대체 이러한 중국 사람들이 여기 와서 어떻게 정착하며 살고 있는가 호기심이 일어 한번 찾아가 보았다. 그 유명한 쿡커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보지도 못하였고, 그 부인네가 나와서 주문을 받았다. 중국어로 “당신네가 유명한 요리사라는데, 가장 권할만한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하였더니 무슨 생선 온 마리를 틔긴 것이 맛이 있다고 해서 20 불을 주고 그것 하나 시키고, 5불 정도하는 나물과 두부 반찬 2가지를 시켜서 우리 내외와 딸 셋이서 먹었다. 과연 그 생선 요리는 맛이 있었다. 베쓰라는 한국에도 들어와서 토종 물고기를 다 잡아먹은 고기라고 한다.
곁자리에서 저녁을 사먹던 중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어떤 뚱뚱하고 호인형인 동양계의 중년 아주머니 한 사람이 곁에 있는 중국계 아가씨를 보고서, 영어로 어디 가서 알바를 하면 돈을 얼마나 받는다는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 아주머니가 나간 뒤에 우리를 제외하고는 딴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 아가씨가 그냥 또 다른 젊은 청년과 함께 그 식당 입구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니, 그 아가씨와 그 청년이 모두 이 식당의 아들 딸과 같이 보였다. 아마 여기 앉아 있으면서 식당에 일이 바쁘면 도와주는 것 같았다. 혹시 아직 별도로 집도 없고 이 식당에서 자고 먹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본사람이 중국인들을 “바퀴 벌레”에 비유하기도 한다고 한다. 좀 표현이 우호적이지 못하고, 또 아름답지도 않지만, 중국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두고 한 말인데, 생각하여 보면 적절하게 나타낸 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 가도 뿌리를 박고 잘 적응하면서 산다. 나는 중국어를 하다가 보니, 어디 가나 중국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얼마나 사는지, 앞으로 이 사람들이 온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관심이 많다. 아마 자식들의 공부를 위하여 지금 막 나왔다는 이 조주요리 집도 틀림없이 여기서 큰 성공을 할 것이며, 앞으로 이 집 아들딸들도 큰돈을 벌 것이다.
미국의 앞날이 어떻게 변할지, 그 변화의 요인 중의 하나가 지금 벌써 미국에 와서 있는 중국계 사람들이 사회 각층의 상층부에 너무나 많이 진출해 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장차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가 큰 변수라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중국 사람들이 여기서 지금 모두 환영만 받는 것은 아니다. 중국식당들 근처에는 큰 식품점도 몇 개 있는데, 주로 해물만 판다는 데를 가서 보았더니, 계산대로 나오는 쪽에 개 고기, 뱀 고기, 말 고기, 다람쥐 고기 등등 괴상한 고기를 넣어 둔 통들이 즐비하게 보였다. 집에 돌아와서 사위에게 그 말을 하였더니, 기겁을 하고서 앞으로 그 식품점에 가서 사오는 것이면 아무 것도 먹지 않겠다고 한다.
끈질긴 것은 좋지만 어디가든지 좀 깨끗하고, 남의 눈치도 좀 살폈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 있는 집과 가까운 곳에 반센 노블Barnsens & Noble이라는 대형 체인 서점이 하나 있는데, 그 서점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아무나 편하게 앉아서 책을 읽도록 아주 규모가 큰 커피점 연쇄점까지 그 안에 차려져 있다. 우리 딸 내외는 그 커피점의 분위가가 좋다고 하면서 자주 거기에 가서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고서 도서관이나 연구실처럼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어떤 중국 아주머니 하나가 나타나서, 한쪽 손에는 아무 책이나 한 권 뽑아들고 앉아서 한쪽 손으로는 핸드폰 하나를 들고, 소파에서 매일 큰 소리로 전화를 해대는 통에 다시 갈 수가 없다고 불평을 하였다. 전화하는 내용은 아마 부동산 소개인 것 같다고 하였다.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이 여자 같은 경우에는 자기 집에서 에어콘 켜는 것이 아까워 여기 와서 전화를 하는 것일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본토에 살던, 미국에 와서 살던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건조기를 돌리는 것이 아까워, 세탁물을 여기서는 방안에서, 대륙에서는 바깥 아무데나 널어 말리는 것을 자주 보았다. 아마 이 경우도 비슷한 발상으로 보인다. 그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그렇게 계속 떠들면 말이라도 한 마디 하려고 한번 가 보았더니, 그날은 마침 나오지를 않았다고 한다. 딸아이의 말을 들으면 키도 크고, 생기기도 훤하게 생겨 거물과 같다고 하였다. 그런 거물을 만나보지 못하였으니 아쉽다.
여기 온지 몇일 되지 않아서, 금요일 오후에 집 곁에 있는 공원에 갔더니, 흑인 청소년들만 어울리어 농구를 하고 있는데, 한 중년의 동양인 남자가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였다.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니, 복건성福建省에서 무슨 회사에 다니다가, 그 회사의 에콰돌 지점에 가서 4년 동안 일하였는데, 본사가 잘 안되어 지금은 여기 와서 식당에서 임시로 쿡커 노릇을 하면서 산다고 한다. 인상이 퉁퉁하게 생겼는데, 복건성 사투리를 모어로 삼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북경 말을 하지만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대만에 유학도 하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국에 가면 할 일이 있을지 매우 열심히 물어 보았다. 자기가 일하는 중국집 주인이 대만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한 번 그 식당으로 오라고도 하였다.
그 다음 월요일 점심 때 그 식당에 갔더니, 마침 6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여자주인이 있었는데, 대만대학 심리학과를 나와서 남편과 같이 유학 와서 전자분야 공부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가까운 이웃 주에 큰 공장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 식당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한꺼번에 700명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가 있다고 한다. 나도 대만대학의 석사이니, 틈이 있으면 조용히 앉아서 기수를 따지고 “꺼꺼哥哥”, “메이메이妹妹”라고 할 수 있는 처지이나, 그 뒤에 다시 가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첫댓글 선생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연재하시던 북미여행기도 조만간 막을 내리게 되겠군요. 아쉽지만 곧 선생님의 육성으로 여행기를 듣게 되겠지요? 9월이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