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글 : 김 민 숙
김치찌개를 끓인다. 오늘처럼 겨울비 내리며 으슬으슬 추운 날은 더운밥과 함께 먹는 돼지고기에 두부 몇 점 들어간 김치찌개가 제일이다. 곱은 손 비비며 들어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찌개가 끓어오르면 가스 불을 줄이고 일삼아 숟가락으로 거품을 걷어낸다.
사람이나 국물이나 맑아 보이면 당연히 순도도 높겠거니 여겼는데 그제 텔레비전에서 고발한 내용을 보니 겉보기에 맑다고 무조건 깨끗하다고 믿는 것도 인간의 분별심일 뿐임을 알겠다. 거품이 잔뜩 끼어 지저분해진 수족관에 거품 제거제를 몇 차례 뿌렸더니 마치 마술처럼 거품이 걷히고 물이 맑아졌다. 거품은 단숨에 녹아서 보이지 않는 다른 물질로 치환되어 물이 청정하게 보였지만, 녹아내린 것이 거품뿐일까. 먹는 사람의 건강을 녹이고, 파는 사람의 양심을 녹이고, 마침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가 거품과 함께 녹아내린다.
매일 세 끼씩이나 상을 차리면서도 때마다 무얼 먹을까가 주부의 화두다. 김치를 넣거나 된장을 풀거나 들깨가루라도 넣어서 걸쭉해진 국물을 좋아하는 내 입맛 때문에 우리 집 밥상은 아직도 6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토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탓하면서도 불순물이 응집한다는 거품을 일일이 걷어내는 엄마의 정성은 인정하는 편이다. 거품이란 것이 제대로 걷어내기만 하면 좋은 여과 장치가 아닌가. 화학약품이라는 극약처방으로 단번에 녹여내지 않더라도 거품이란 본래 허상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빠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거품 제거제라는 양심 불량 처방으로 단숨에 거품이 사라진다는 것은 빠른 속도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거품 경제가 그렇고 부동산 거품도 그렇다.
요즘 우리 동네 사람들은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지역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었다고 내일 무엇이 변할 것처럼 들뜨고, 운하가 개통되면 물류의 중심지가 되어 지역이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설왕설래다. 이런저런 사업을 차기 정부에 요청키로 했다면서 연일 언론들이 거든다. 내일 당장 손에 무엇이 잡힐 듯, 제대로 자라지 않은 날개를 퍼덕일 때 나는 희망에도 거품이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 고개를 가로 젓기에는 나부터 희망의 편에 서고 싶고, 거품 제거제를 생각하면 더디게나마 숟가락으로 거품을 걷어내는 미련을 보이고 싶다. 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고 이천오백 년 전에도 부처님이 설하신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거품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본래 사람살이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다 거품인데, 큰 거품 속의 작은 거품을 걷어내고 말고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괜스레 혼자 마음 분분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