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24,46ㄴ-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11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12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13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15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16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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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동북부의 레시페-올린다는 가장 가난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서 가난한 이웃과 평생을 함께 하셨던 돔 헬더 카마라 (Helder F. Camara) 추기경님은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신 분입니다. 어느 날 추기경님이 어느 작은 성당에 도착하니 신자들은 추기경님을 만나자 마자 땅에 엎드려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추기경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모두들 분주한 틈을 타 도둑들이 들어와 주님의 몸이신 성체는 마당에 내 팽개치고 성합을 훔쳐갔기 때문입니다. 도둑들은 성합이 금으로 만든 비싼 것이라 생각하고 훔쳤겠지만 어찌 보면 성령을 탐낸 것이 아닐까요?
추기경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토록 슬퍼하고 있습니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 부모와 집을 잃은 어린이들, 그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많이 짓밟히고 계시며, 지금도 모욕과 학대와 죽임을 당하고 계신지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왜 그들을 위해서는 슬퍼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몸이며 주님의 몸(성체)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왜 알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성합을 훔쳐간 도둑을 탓한 것이 아니라 성합을 잃어버리고 성체가 더럽혀져 성체성사를 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자신들을 나무라셨기 때문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성체 성사를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진정한 성사의 의미를 망각하고 있는 것을 일깨워 주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즉, 성사를 행하는 곳은 성당 안에서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두 가지 측면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의 기적’은 미사전례와 같습니다.
미사가 크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나누어진다면 오늘 복음에 묘사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먼저 설교를 하신 후 빵을 주셨습니다. 배고픈 군중에게 축복된 빵을 주기 전에 주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상에서 행해지는 미사입니다. 미사는 성당이나 제단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둘째, 다섯 개의 빵으로 오천 명이 먹을 빵을 만드시어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은 예수님께서 엠마오 마을의 제자들에게 빵을 주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빵을 드시고, 축복하신 후, 제자들에게 떼어 주신 것과 동일한 세 단계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사는 하나의 전례의식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실천이고, 그 실천은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 깊게 뿌리를 내림으로써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춰주고 이익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만일 미사에서 예수님이 영혼을 위한 양식을 주셨다면, 일상에서는 몸을 위한 양식을 주신 것입니다.
미사가 형제를 위한 만찬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사막에서 성대한 만찬을 여시고 50명이 한 식탁에 앉게 하여 그들이 빵을 나누어 먹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마음도 나누게 하셨습니다. 미사 중에,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포도주와 빵의 모습으로 봉헌하셨다면, 삶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바치셨습니다. 미사 중에, 나눔을 위해 빵의 모습으로 쪼개지셨다면, 삶에서는 모욕을 당하고 돌을 맞고 못에 박혀 죽음을 맞이하는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당 안에서뿐만 아니라 당신의 삶 속에서도 언제나 미사를 올리셨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미사예물로 바치셨을 뿐만 아니라 끝내는 당신 자신까지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사를 행하신 것뿐 아니라 당신 자신이 바로 성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애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셨으며 지금도 매일의 성체를 통하여 당신 몸을 나누어 주시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미사의 고귀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시기와 미움이 있다면 그 미사가 과연 형제를 위한 만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가난과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나 혼자만이 미사에 참석할 수 있겠습니까? 생활 속에서 이웃과 형제를 위하여 나 자신을 내주지 않는다면 미사에서의 봉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나를 기억하고 이 일을 행하라”고 하신 뜻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의 미사는 물론 생활하는 모든 곳에서 미사를 바치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즉 생활 속에서 형제를 위한 나눔을 알고, 고통을 함께 하고, 굴욕을 참을 줄 알며, 사랑으로 서로 하나되어 사는 것을 앎으로써 형제를 위해 자신까지도 내어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행하는 미사 역시 교회 안에서 행하는 미사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또한 일상에서 행하는 미사가 부족하다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은 거짓으로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 저희가 드리는 성체성사가 삶에서 실천이 되도록 하여주소서. 예수님께서는 미사 중에서는 빵의 모습으로, 그리고 나약한 어린 형제, 가난한 형제들이 있는 우리 일상의 그 모든 곳에 함께 계심을 알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그 형제들을 위하여 기꺼이 나 자신을 나누며 나 자신이 바로 성사가 되도록 하여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2. 성체성사는 영적 생활에 어떤 은총을 주는 것입니까?
3. 교회 안에서는 물론 생활 속에서도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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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