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1박자만이라도 쉬고…
아청 박혜정
나는 화는 잘 내지 않지만 성격은 급한 편이다. 또한 질문도 많은 편이고 궁금하면 잘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해결이 될 방법을 찾아본다. 요즘도 영어를 배우는데, 배우는 가운데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질문을 한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바로 해결해 주시고 다행이도 같은 반 학생(?)들은 덕분에 재미있고 많이 배운다고 좋아한다.
하지만 급한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며칠만 기다리면 해결이 되거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 놓을 수도 있는 데 성격이 급하다보니 다 해 버리고 만다. 하다못해 집에서도 성격 느긋한 남편이 일을 바로바로 처리하지 않아서 성격 급한 내가 기다리기 힘들어 직접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남편들이 밖의 일로 지쳐서인지 대부분은 부인이 요구하는 대로 바로바로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부인들이 천하장사가 되는 것 같다. 소파와 가구도 이리저리 낑낑거리며 끌면서라도 직접 움직이고 못 하나 박는 것도 한국처럼 누구를 부르는 것이 쉽지 않아 기다리다 답답해서 직접 하게 된다.
또,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을 싫어한다. 그럼 내일은 또 내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일이 밀리게 되면 힘이 들어 마음먹은 일은 오늘 꼭 하려고 한다. 주위에서 보면 대부분 단체를 이끄시는 분들은 성격이 급한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일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단체를 이끌다 보니 일을 바로 바로 처리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이 늦어져서 제 시간에 행사를 할 수가 없다. 이것은 급한 성격 때문이라기보다 급한 성격 덕에 일 처리를 빨리 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나 보다 더 급한 성격을 가진 분을 보면 너무 급하게는 말고 1박자정도는 쉬어야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도 전 보다는 1박자 늦게 행동하려고 노력 한다. 그럼 몸과 마음이 편하다.
급한 성격에다 오늘 할 일을 꼭 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성격으로, 오늘 사고 싶은 물건이 아는 장소에 없으면 여러 곳을 다녀서라도, 또 조금 비싸더라도 며칠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야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바로 사러 다니지 않고 며칠은 참아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며칠 뒤에 약속장소가 물건을 사러가는 장소 근처이면 일부러 물건을 사러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해 보면 볼이 볼록하게 터질 듯 숨을 참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아서 숨을 내 쉬듯, 약속이 있는 날까지 기다리기 힘들고 시간이 될 때는 나가서 사오고야 만다. 그래도 이제는 한 박자 쉬는 연습으로 며칠이라도 참아보려고 한다.
바로 해결해야 하는 급한 성격이 꼭 손해가 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한 가지 예로 고등학교 다닐 때에 방과 후에 도서관에 남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물문제를 도저히 몰라 ‘이것을 어떻게 바로 해결하지?’ 라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생물 선생님이 당직이신지 숙직이신지 교무실에 계셨다. 문제를 여쭈어 보니 큰 괘도만한 종이에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다. 그런데 대학 시험을 볼 때 그 문제가 예비고사 1번 문제로 나와서 자신 있게 답을 쓰다 보니 그 뒤의 문제까지도 떨지 않고 잘 풀 수 있었다.
1박자만 참고 말을 하면 큰 소리가 나지 않고 쉽게 풀릴 수도 있는데 욱하는 성격은 1박자를 못 참고 나오다 보니 싸움도 되고 소리도 커진다. 이는 부부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무 일도 아닌데 욱하면서 목소리가 커지면 좀 더 큰 일로 사태가 번지고 상대방의 기분도 상하게 되어 냉전기간이 오래 갈 수도 있게 된다. 부인의 심기를 건드리면 평생 불편 할 텐데…. 우리 와이프들은 다른 것은 기억 못해도 남편이 서운하게 한 것은 시대별로 시간 별로 순서도 안 틀리게 줄줄이 읊을 수 있다. 이건 일반 기억력과는 뇌의 다른 작용인지 뭔지….
얼마 전에 “슈룹”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슈렉도 아니고, 이런 이상한 단어는 뭐지?’ 처음에는 제목이 이상한 외국어 같은데 내용은 조선시대 궁궐에서의 왕자들 교육에 대한 이야기이었다. 거기에 품위 있는 중전만 보다가 아이들 때문에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중전도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슈룹이라는 뜻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우산’의 옛말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었다. 영어 제목은 “THE QUEEN'S UMBRELLA", 자신의 아이들을 지켜주려고 우산이 되어주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궁궐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왕자들의 교육과 요즘의 극성스러운 어머니 같은 왕자들의 어머니 이야기라 참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교육에 대한 것에서 왕자를 세자로 만들려는 잘못된 모성이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 중에서도 아마 11회쯤 인가…. 각자 자기 왕자를 세자로 만들기 위해 갖가지 술수를 쓴다. 서로 경합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려고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재물과 권세를 동원한다. 그것을 알아차린 중전은 대부분의 드라마처럼 그 증거를 가지고 통쾌하게 일벌백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박자 깊은 심호흡으로 오히려 그 증거를 없애고 심사를 맡은 성균관 유생들의 비리를 포용한다. 그랬더니 유생들이 그동안 받았던 뇌물, 약속이 적힌 종이 등을 솔선해서 다 태우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공정한 심사를 하게 된다.
1박자는 얼마만한 길이인지는 빠르기에 따라 다르다. 그것은 작곡가가 정해준다. 음악에서 빠르기를 나타내는 용어인 알레그로, 비바체, 라르고에 따라 다 다르다. 1초가 될 수도 있고 더 짧거나 더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나름대로 자기에게 맞는 빠르기로 1박자를 쉬면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해 보자. 그래서 새해에는 일단 화가 나도 1박자를 쉬고, 생각해서 이야기하고, 바로 즉시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따뜻함으로 감싸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2023년부터는 밴쿠버가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