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화랑도 이전에 풍류도 있었다.
1.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화랑도
'화랑도는 원시 사회의 청소년 집단에서 기원하였다.
이 조직은 귀족 자제 중에서 선발된 화랑을 지도자로 삼고, 귀족은 물론 평민까지 망라한 많은 낭도가 그를 따랐다.
여러 계층이 같은 조직 속에서 일체감을 가지고 활동함으로써 계층 간의 대립과 갈등을 조절, 완화하는 구실도 하였다.
신라 청소년은 화랑도 활동을 통하여 전통적 사회 규범을 배웠다.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제천 의식을 행하고, 사냥과 전쟁에 관하여 교육을 받음으로써 협동과 단결 정신을 기르고 심신을 연마하였다.
화랑도는 진흥왕 때 국가 차원에서 그 활동을 장려하여 조직이 확대되었으며, 원광은 청소년에게 세속 5 계를 가르쳐 마음가짐과 행동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고등학교 국사, 국사편찬위원회, 교육과학기술부, 두산동아, 2010, p198)
2. 삼국사기에 나오는 화랑도
화랑도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에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신라에 깊고 오묘한 풍류도가 전해 내려왔다.
풍류도에 포함된 종교의 근본 내용은 신사라는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풍류도는 유교, 도교, 불교의 가르침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집으로 들어가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공자의 유교 가르침이 풍류도에 있다.
자연 그대로 상태에서 말없이 실천하는 노자의 도교가 풍류도에 있다.
악한 일을 만들지 않고 착한 일만을 행하는 석가모니의 불교 내용이 풍류도에 있다.
당나라 영호징은 신라국기라는 책에 화랑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신라의 귀족 자녀 중에 잘 생긴 미남을 뽑아 화장하고 멋진 옷을 입혀 화랑이란 인기 스타를 만들었다.
신라의 국민이 화랑을 높이 받들어 섬겼다.'
(김부식 저, 최호 역, 삼국사기, 홍신문화사, 2007, p84, 위의 글은 이해하기 쉽도록 의역한 것입니다.)
3. 화랑도 이전에 풍류도 있었다.
신라에는 화랑도 이전에 풍류도가 있었습니다.
최치원은 뛰어난 천재로 국제적인 안목과 박식한 지식이 있었고, 삼한과 삼국시대의 역사를 통달하여 한국의 고대와 중세역사를 푸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치원이 없었다면 삼국사기에 난랑비 서문(화랑도와 풍류도의 기록)이 없습니다.
화랑도는 AD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후, AD 576년 진흥왕 37년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직을 확대 개편한
것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열전에 나오는 사다함은 조직 개편 전의 화랑입니다.
화랑도의 기원에 여러가지 설이 있을 수 있고, 풍류도에도 다양한 해석, 또한 풍류도라는 여러가지 무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 '화랑'을 검색하여 화랑도의 기원(2018.12.4.)을 보면 삼한시대에 '소도 제단의 무사들이 풍류도를 시작하였고, 신라시대의
진흥왕 때 화랑도로 조직 개편되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이 학설을 참고하여 풍류도를 국사교과서 심화학습 방법(게쉬히테)으로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256 페이지에 최치원이 나옵니다.
'통일 이후 신라와 당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당에 건너가 공부한 유학생이 많아졌다.
그 중에서 최치원은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후 귀국하여 개혁안 10여 조를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 뛰어난 문장과 저술을 남겼다.'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18.6.19- 9.30. '금호강과 길'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금호강 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위세품 청동기와 제사장이 사용하던 청동기 249점이 전시 되었습니다.
대구 평리동유적지에서 청동마차(일부)가 출토 되었습니다.
청동마차를 탄 진시황제와 같은 위세가 삼한의 소도를 다스린 제사장에게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화랑도는 원시 사회의 청소년 집단에서 기원하였다'는 기원설을 국립대구박물관의 삼한시대 소도에서 사용하였던 유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 소도와 풍류도(종교)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40페이지에 삼한의 소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다.
그리고 신성 지역으로 소도가 있었는데, 이 곳에서 천군은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다.
천군이 주관하는 소도는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죄인이라도 도망을 하여 이 곳에 숨으면 잡아가지 못하였다.
이러한 제사장의 존재에서 고대 신앙의 변화와 제정의 분리를 엿볼 수 있다.'
소도는 도피성으로, 엄격한 도피성이 있었던 나라는 세계 역사상 삼한과 이스라엘 뿐입니다.
소도의 천군은 유태인 레위지파 제사장 이었습니다.
소도에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가 왔었습니다.
blog.naver.com/story4006
도마가 한국에 전한 기독교의 이름은 풍교였습니다.
크리스천의 성도를 풍류도라 하였습니다.
풍류도(바람 풍風, 흐를 류流, 무리 도徒)와 고대 그리스어의 단어 프뉴마(바람, 성령)는 첫 두 글자의 발음이 비슷하고 뜻이 같습니다.
풍류도는 거듭난 사람(성령으로 태어남, 요3:1-21)을 의미합니다.
압독국의 소도(현재 장소, 대구공항의 터)에서 풍류도가 시작되어 신라에 제천의식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5. 달성과 풍류도(무술)
삼한에는 군장(족장, 정치 지도자)과 천군(제사장, 종교 지도자)이 다스리는 지역이 각각 달랐습니다.
삼한의 압독국 천군(제사장)이 다스린 소도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지역입니다.
압독국 군장(정치인)이 다스린 지역은 동구 외의 지역이었고, 풍류도의 훈련장은 대구 중구의 달성 이었습니다.
무술의 풍류도는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달성에 있었던 풍류도는 전쟁에 대비하는 무술 이었고, 상대를 위세로 제압하는 변신술 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변검(얼굴 바꾸기 연극)이 복원된 것처럼 달성의 변신술도 복원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김수로왕이 석탈해와 왕위를 놓고 다투었는데, 변신술로 이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라의 석탈해가) 경남 김해시 가락국의 대궐로 들어와서 김수로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가락국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김수로왕은 대답 하였다.
'하늘이 나에게 명령하여 가락국의 왕위에 즉위 하였습니다.
나는 이 나라를 복지국가로 만들어 백성들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하늘의 명령을 어기고 그대에게 왕위를 양보 하겠습니까?
우리 나라 백성을 당신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석탈해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술법으로 서로 겨루어 봅시다.'
김수로왕은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잠깐 사이에 석탈해가 매가 되었을 때 김수로왕은 독수리가 되었다.
또 석탈해가 참새로 변하였을 때 김수로왕은 새매로 변하였다.
변신술은 순식간에 있었던 광경이다.
석탈해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김수로왕 또한 그러하였다.
석탈해는 드디어 김수로왕 앞에 엎드려 항복하며 말하였다.
'내가 변신술로 다투면서 매가 되었을 때 김수로왕께서는 독수리가 되고, 내가 참새가 되었을 때엔 새매가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김수로왕께서 죽이기를 싫어하는 성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김수로왕과 가락국의 왕위를 다투는 것을 포기합니다.'
석탈해는 김수로왕에게 인사하고 나갔다.
석탈해 일행은 배를 타고 김해만을 벗어나 중국 배가 많이 와서 머무르는 국제항구 가덕도를 향하여 가려고 하였다.
김수로왕은 석탈해가 가덕도에 머물면서 난리를 꾸밀까 두려워하여 긴급히 수군을 실은 배 5백 척으로 뒤를 쫓았다.
석탈해는 배의 방향을 바꿔 신라 계림의 영토로 도망하였고, 김수로왕의 수군은 모두 돌아왔다.
이 글이 기록된 역사책은 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의 내용과 다른 점이 많다.
(일연 지음, 이가원 번역, 삼국유사 신강, 태학사, 1991, p180~181, 위의 글은 알기 쉽게 의역한 것입니다.)
6. 달성토성은 변신 중에 있다.
어린이 장난감에 변신 로봇이 있습니다.
아쿠아리움의 수중공연에도 변신술이 적용 되었습니다.
인어가 물속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으로 변신하는데, 수중 공연자가 순식간에 옷을 갈아 입는 모습에 관객은 감탄과 박수를 보냅니다.
수중 공연자가 인어 복장에서 청색 투피스로, 그리고 노란색 원피스로 변신합니다.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역에 있는 신세계백화점의 아쿠아리움 메인수조 안에서 '인어와 함께 춤'이라는 수중 공연을 합니다.
수중 공연자들은 싱크로나이즈 국가 대표의 경력자로 뛰어난 수영 실력을 가졌고, 발레니나와 같은 아름다운 춤의 동작, 싱크로나이즈 선수처럼
놀라운 수영 묘기, 손에서 헝겊이 사라지는 마술 쇼를 보여 줍니다.
수조 안에는 상어, 가오리, 전갱이 등 물고기가 있어서 공연이 예술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입니다.
대구 달성은 현재 동물원이 있는 공원의 모습입니다.
달성은 동물원이 이전하고 있고, 본래의 모습으로 변신 중입니다.
달성의 본래 모습은 조개껍질이 산재한 언덕 이었습니다.
달성의 첫번째 층 조개무지는 바다 실크로드의 동쪽 땅 끝을 상징합니다.
바다 실크로드는 향신료의 무역로였는데 이탈리아의 로마,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인도의 코친, 중국의 동지나해, 한국의 김해, 그리고 그 끝은
낙동강의 대구였습니다.
대구는 향신료 무역로의 종점이었고, 삼한시대에 중동의 유향이 수입 되었습니다.
바다 실크로드가 지구의 마라톤 코스라면 대구는 골인지점으로 비유 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 경기의 마지막에는 골인지점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처럼, 지구 모든 사람의 시선이 대구 달성에 집중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7. 골목투어와 삼색길 관광
근대로의 여행인 골목투어와 고대로의 여행인 삼색길 관광이 대구 관광의 짝꿍입니다.
대구광역시 중구청에서 주관하는 근대로의 여행인 골목투어는 전재규 대구세계문화엑스포 조직위원장 (대신대학교 명예총장)이 시작 하였습니다.
1999년 선교사 주택 3채를 박물관(청라언덕)으로 만들었고, 대구도시철도 3호선에 청라언덕 역이름이 있습니다.
또한 국가에서 3천만 원을 지원 받아서 3.1운동길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골목투어의 시작 이었습니다.
삼색길 관광은 조국현 대구세계문화엑스포 이사장이 1988년 대구에서 세미나를 열고, 가이드를 하면서 시작 되었습니다.
삼색길의 3색은 하늘 색, 땅의 색, 바다 색입니다.
삼색길의 3길은 하늘 길, 땅의 길, 바다 길입니다.
'삼색길'은 특허청에 상표등록 되어 있습니다.
고대로의 여행인 삼색길 관광과 근대로의 여행인 골목투어는 보편적인 관광의 조건(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이 최고 수준입니다
관광의 차별화 전략으로 사용되는 특별한 점은 1세기 달성의 기억을 되살려 대구의 미래를 여는 것입니다.
달성의 첫번째 층은 제철소를 보호하기 위하여 조개무지와 목책을 사용하여 1세기에 만든 울타리였습니다.
제철소 이름은 쇠를 달군다는 뜻이 담긴 '달구불'(달구화) 이었습니다.
경남 합천군 야로면(야로, 적화)에서 캐낸 철광석을 배를 이용하여 낙동강과 금호강으로 운반 하였습니다.
달성에서 생산된 철제품 일부는 달성에 가까이 있었던 달성 고분군과 비산동, 내당동 고분에 4-6세기에 묻혔다가 출토 되었고, 국립대구박물관
고대문화실에서 유물을 관람 할 수 있습니다.
2019. 3. 6.
글쓴이: 스토리텔링 작가 임원주
(저서: 허왕후 스토리텔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