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편지 02. 작은새 03. 저별과 달을 04. 사랑의 진실 05. 그리움 찾아 06. 초저녁 별 07. 장미 08. 돌에 핀 꽃 09. 혼자서 10. 잊으리라
Onions 어니언스
어니언스를 가리켜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이라고 한다면 무례한, 혹은 무리한 비유일까. 팝/가요적인 호소력을 강하게 띤 포크 음악으로 커다란 대중적 인기를 누린 남성 듀오라는 면에서 이 둘은 각기 자기 나라의 음악사에서 비슷하게 자리매김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영향은 어니언스가 후속 음반에서 "Sound of Silence"을 커버하지 않았더라도 알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물론 그런 영향을 받은 남성 듀오로는 트윈 폴리오와 쉐그린이 어니언스를 앞선다는 점, 그리고 어니언스가 실은 혼성 트리오로 시작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다소 정밀함이 결여된 비유이긴 하지만.
그렇게 운을 떼고 보니, 한국의 포크 및 대중음악계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영향은 다른 어떤 미국 포크 음악인들보다도 컸던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 까닭은 한국에서 유독 남성 포크/팝 듀오가 번성했다는 데 있는데, 앞서 말한 세 듀오 이외에도 동시대의 투 코리언스, 금과 은(투 에이스), 4월과 5월, 하사와 병장, 좀 더 나아가자면 따로또같이, 해바라기(이주호, 유익종), 유심초, 수와 진 등등 숫자로만 따져도 무시 못할 정도다. 미국에서 남성 듀오의 전통이 컨트리로부터 시작해서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를 거쳐 사이먼 앤 가펑클에 이른 뒤 차츰 퇴조해가는 모습을 보인 데 비하면 괄목할 만한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고운 하모니를 선보이는 남성 듀오가 오늘날 미국에 등장한다면 동성애 커플이 아니냐는 구설수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되리라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어니언스를 다시 들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이들이 1970년대 후반 이래로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등장한 '아마추어 대학생 사운드'를 많은 부분 예시한다는 점인데, "사랑의 진실"에서 현악과 기타에 이어 '파파파파, 파파파파'하는 스캣이 드럼에 실려 들어가는 전주부가 전형적으로 그렇다. 그룹 사운드를 제외한 참가곡 대부분이 MBC 오케스트라에 의해 편곡 및 연주된 대학 가요제의 포맷을 고려한다면, '경음악' 악단장으로 잔뼈가 굵은 안건마가 손댄 어니언스의 음악이 대학가요제 사운드의 효시처럼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편곡도 편곡이지만 민요적인 선율과 감성을 포크에 도입함으로써 외래 음악인 포크를 문자 그대로 민속(folk) 음악에 접근시킨 김정호의 작곡은, "작은 새"와 "외기러기"의 히트로 대중적 호소력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이후 아마추어 대학생 가수들의 적극적인 민요 수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정작 어니언스 본인들, 즉 이수영과 임창제는 별로 한 일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김정호의 곡들이 버젓이 임창제의 이름을 달고 나온 게 뒤늦게 폭로된 '사건' 또한 그런 인상을 더 강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어니언스가 가짜 싱어-송라이터 듀오였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대표하는 불후의 히트곡 "편지"는 임창제의 작품이고, 이수영이 만든 "초저녁 별"과 "며느리" 같은 곡은 김정호-안건마 사운드가 지배하는 앨범의 전반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제주 지방 민요를 현대화한 "며느리"는 일상의 정서를 담은 가사가 I-IV-I-V의 주요 3 화음을 오가는 단순소박한 패턴을 반복하는 통기타 스트로크와 결합해서 일종의 '새로운 토속성'을 만들어낸다. 노래하기에 관해서라면, 약간 가냘픈 듯한 목소리로 떨기(vibration)나 '꺾기' 등 대중 가요식 창법에 능한 임창제와, 노래의 풍에 따라 때론 구수하게, 때론 감미롭게 들리는 배음(倍音)의 소유자인 이수영의 균형과 조화는 왜 어니언스가 그토록 대중에게 사랑받았던가를 설명해주는 주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특히 청소년층의 열광은 미남형인 이수영에게만 집중적으로 쏟아져, 임창제는 그 와중에 얼마간 소외된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인기의 여세를 몰아 영화에까지 출연한 이수영은 이후 청소년 아이돌 가수들이 잇달아 영화계로 진출해 청춘/멜로물을 만드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고, 어니언스의 균형이 깨질까봐 두려워한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인해 원래 대본에는 없던 역을 만들어서 임창제를 같이 출연시켰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하지만 임창제는 음악적 재능 외에도 능수능란한 재담으로 공연과 방송출연을 통해 나름대로의 입지를 쌓았고, 이수영이 대중음악계를 떠난 뒤에도 남아서 주변적으로나마 활동을 지속해왔는데, 이러한 이들의 행적 또한 송골매의 구창모-배철수 짝에 의해 다시금 반복된 선례가 된 셈이다.
지금은 사라진 동양방송 TBC의 간판 쇼 프로그램 [쇼쇼쇼]를 통해 1972년 데뷔한 이래, 어니언스는 막 꽃피기 시작한 청년 문화가 TV, 라디오, 영화 등의 대중 매체로 유입되는 데 첨병 노릇을 단단히 한 듯하다. 비록 1집의 성공이 2집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임창제가 대마초 파동에 연루됨으로 말미암아 어니언스의 폭발적 인기도 단명하고 말았지만, 아직껏 노래방의 애창곡으로 꼽히는 '편지'를 빼놓는다 하더라도 이들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유산은 대학가요제를 비롯하여 대중 매체에 의해 어느 정도 정형화된 이후의 대학생-청년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01. 편지 02. 작은새 03. 저별과 달을 04. 사랑의 진실 05. 그리움 찾아 06. 초저녁 별 07. 장미 08. 돌에 핀 꽃 09. 혼자서 10. 잊으리라
Onions 어니언스
어니언스를 가리켜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이라고 한다면 무례한, 혹은 무리한 비유일까. 팝/가요적인 호소력을 강하게 띤 포크 음악으로 커다란 대중적 인기를 누린 남성 듀오라는 면에서 이 둘은 각기 자기 나라의 음악사에서 비슷하게 자리매김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영향은 어니언스가 후속 음반에서 "Sound of Silence"을 커버하지 않았더라도 알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물론 그런 영향을 받은 남성 듀오로는 트윈 폴리오와 쉐그린이 어니언스를 앞선다는 점, 그리고 어니언스가 실은 혼성 트리오로 시작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다소 정밀함이 결여된 비유이긴 하지만.
그렇게 운을 떼고 보니, 한국의 포크 및 대중음악계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영향은 다른 어떤 미국 포크 음악인들보다도 컸던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 까닭은 한국에서 유독 남성 포크/팝 듀오가 번성했다는 데 있는데, 앞서 말한 세 듀오 이외에도 동시대의 투 코리언스, 금과 은(투 에이스), 4월과 5월, 하사와 병장, 좀 더 나아가자면 따로또같이, 해바라기(이주호, 유익종), 유심초, 수와 진 등등 숫자로만 따져도 무시 못할 정도다. 미국에서 남성 듀오의 전통이 컨트리로부터 시작해서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를 거쳐 사이먼 앤 가펑클에 이른 뒤 차츰 퇴조해가는 모습을 보인 데 비하면 괄목할 만한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고운 하모니를 선보이는 남성 듀오가 오늘날 미국에 등장한다면 동성애 커플이 아니냐는 구설수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되리라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어니언스를 다시 들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이들이 1970년대 후반 이래로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등장한 '아마추어 대학생 사운드'를 많은 부분 예시한다는 점인데, "사랑의 진실"에서 현악과 기타에 이어 '파파파파, 파파파파'하는 스캣이 드럼에 실려 들어가는 전주부가 전형적으로 그렇다. 그룹 사운드를 제외한 참가곡 대부분이 MBC 오케스트라에 의해 편곡 및 연주된 대학 가요제의 포맷을 고려한다면, '경음악' 악단장으로 잔뼈가 굵은 안건마가 손댄 어니언스의 음악이 대학가요제 사운드의 효시처럼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편곡도 편곡이지만 민요적인 선율과 감성을 포크에 도입함으로써 외래 음악인 포크를 문자 그대로 민속(folk) 음악에 접근시킨 김정호의 작곡은, "작은 새"와 "외기러기"의 히트로 대중적 호소력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이후 아마추어 대학생 가수들의 적극적인 민요 수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정작 어니언스 본인들, 즉 이수영과 임창제는 별로 한 일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김정호의 곡들이 버젓이 임창제의 이름을 달고 나온 게 뒤늦게 폭로된 '사건' 또한 그런 인상을 더 강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어니언스가 가짜 싱어-송라이터 듀오였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대표하는 불후의 히트곡 "편지"는 임창제의 작품이고, 이수영이 만든 "초저녁 별"과 "며느리" 같은 곡은 김정호-안건마 사운드가 지배하는 앨범의 전반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제주 지방 민요를 현대화한 "며느리"는 일상의 정서를 담은 가사가 I-IV-I-V의 주요 3 화음을 오가는 단순소박한 패턴을 반복하는 통기타 스트로크와 결합해서 일종의 '새로운 토속성'을 만들어낸다. 노래하기에 관해서라면, 약간 가냘픈 듯한 목소리로 떨기(vibration)나 '꺾기' 등 대중 가요식 창법에 능한 임창제와, 노래의 풍에 따라 때론 구수하게, 때론 감미롭게 들리는 배음(倍音)의 소유자인 이수영의 균형과 조화는 왜 어니언스가 그토록 대중에게 사랑받았던가를 설명해주는 주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특히 청소년층의 열광은 미남형인 이수영에게만 집중적으로 쏟아져, 임창제는 그 와중에 얼마간 소외된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인기의 여세를 몰아 영화에까지 출연한 이수영은 이후 청소년 아이돌 가수들이 잇달아 영화계로 진출해 청춘/멜로물을 만드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고, 어니언스의 균형이 깨질까봐 두려워한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인해 원래 대본에는 없던 역을 만들어서 임창제를 같이 출연시켰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하지만 임창제는 음악적 재능 외에도 능수능란한 재담으로 공연과 방송출연을 통해 나름대로의 입지를 쌓았고, 이수영이 대중음악계를 떠난 뒤에도 남아서 주변적으로나마 활동을 지속해왔는데, 이러한 이들의 행적 또한 송골매의 구창모-배철수 짝에 의해 다시금 반복된 선례가 된 셈이다.
지금은 사라진 동양방송 TBC의 간판 쇼 프로그램 [쇼쇼쇼]를 통해 1972년 데뷔한 이래, 어니언스는 막 꽃피기 시작한 청년 문화가 TV, 라디오, 영화 등의 대중 매체로 유입되는 데 첨병 노릇을 단단히 한 듯하다. 비록 1집의 성공이 2집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임창제가 대마초 파동에 연루됨으로 말미암아 어니언스의 폭발적 인기도 단명하고 말았지만, 아직껏 노래방의 애창곡으로 꼽히는 '편지'를 빼놓는다 하더라도 이들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유산은 대학가요제를 비롯하여 대중 매체에 의해 어느 정도 정형화된 이후의 대학생-청년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