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도솔산 선운사
정운일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명승지로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선운산을 도솔산이라 하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의미이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가에 암벽을 따라 힘차게 올라가는 늘 푸른 송악(천연기념물)이 한껏 멋을 내고 우리를 반긴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크기를
감안하면 적어도 수백 년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산기슭의 까치집과 어울려 한층 멋을 더해준다.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선운사는 빼어난 자연 경관과 소중한 불교 문화재를 다수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선운사는 조계종
24교구의 본사로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한창 번성하던 시절에는 89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백제 위덕왕 24년(577)때 검단(黔丹, 檢旦) 스님이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본래 선운사 터는 용이 살던 연못으로 검단
스님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못을 메워나가던 중 마을에 눈병이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나았다. 이를 신통히
여긴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이내 메워졌다. 검단 스님은 이 자리에 절을 지어 선운(禪雲)이라고 하였다. 이는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갉고 닦아 선(禪)의 경지에 이른다는 의미다.
다른 설화에 따르면 죽포도(竹浦島)에 돌배가 떠와서 사람들이
끌어올리려 했으나 자꾸 바다 쪽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소문을 들은 검단선사가 바닷가로 나가니 돌배가 저절로 선사 앞으로 닦아왔다. 배 안에는
삼존불상과 탱화, 나한상, 옥돌부처와 금 옷 입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품속에서 ‘이 배는 인도에서 왔으며 배 안의 부처님을 인연 있는
곳에 모시면 길이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글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아 검단 스님이 불교로 이들을 교화시키며
바닷가로 옮겨 살게 하면서 소금 굽는 방법을 가르쳐서 생계를 유지하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 · 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공양하면서 보은염(報恩鹽)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을 검단선사의 이름을 따서 검단리 라고 하였다. 실제로 해방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
염전 사람들은 선운사에 소금을 공양했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 전나무 숲속에 승탑과 부도가 보인다. 이 곳에는 추사 김정희선생이
쓴 백파 선사의 승탑 비가 있다. 이 비에는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 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 라고 새겨져 있는데, 울림이
강하고 변화가 있는 추사체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글씨는 추사 말년의 최고 명작으로 평가되는 금석문이다. 추사는 이 글을 쓰고 그 다음 해인
1855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진품 비는 선운사 박물관으로 옮기고 원래의 자리에는 똑같은 모습의 비를 만들어 세워두었다. 추사의 존재감을
한 줄의 글씨로 느껴진다.
절의 구역을 알리는 일주문에 들어섰다. 선운산 선운사라고 하지 않고 도솔산 선운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선운산보다는 도솔산이라고 해야 불교의 의미가 살아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편액은 일중 김충현 선생이 썼다고 한다.
개천
옆길을 따라 몇 걸음 걸어가면 도량의 입구인 천왕문이 나온다. 큰 절이면 개천을 사이에 두고 절집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개천을 건너면 불국토로
들어가는 것이다. 개천을 중심으로 뒤쪽은 사바세계이고 건너편은 불국토인 것이다.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려면 개천을 건너가야 한다.
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국토와 부처님을 수호하는 사천왕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문에는 사천왕상이야 있지만, 이 곳에는 특이한
마구니상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사천왕의 발밑에 깔린 마구니(生靈 생령)는 양반을 상징했다. 이처럼 양반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고 당시 백성들은 분노를 푸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무섭고 두려워야 할 마구니가 친근해 보이는 것은 해학정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천왕의 무릎에 깔려 있는 여인은 심청의 계모 뺑덕어멈이라고 한다. 심술궂고 못된 여인의 상징이 되어 뭇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지만, 꽉 다문 입과 얌살스런 짝눈이 뺑덕어멈을 익살스럽게 나타내고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만세루(강당)가 보인다. 정면
9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은 1613년(광해군 5)에 지어졌다고 한다. 설법을 위해 대웅전을 향해 개방된 강당구조이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고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불규칙한 형태의 부재를 사용하여 다소 세련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 목재가 넉넉하지 못해 다른 건물에
쓰고 남은 목재를 사용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의 건축답게 섬세하고 장식적인 구성과 빗살
여닫이문이 화려하다. 미술사적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뛰어난 건축기술과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건물의 내부는 통간으로서 불벽(佛壁)을 한 줄로
세우고 그 앞에 불단을 만들었다. 불단 위에는 1633년에 흙으로 빚은 소조비로자나불 삼존상(보물 1752호)을 봉안하였다. 안쪽 우물천장은
구름· 학 ·연꽃 등으로 장식하고, 중앙 불단 좌우에 유난히 용의 그림이 많은 것은 선운사 창건 설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석은 막돌로 허튼 쌓기를 한 얕은 기단 위에 놓고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네 귀에 세운 모서리기둥(隅柱, 우주)은
귀솟음이고, 창방과 평방이 곡선을 이루어 안정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정면의 모든 칸에는 빗살 창호를 달고, 후면은 중앙 칸에만 창호를 달고
양 측면의 협칸에는 교창(交窓)을 달았다.
선운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이다. 언제
심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운사가 창건된 이후에 심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눈 내리는 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 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동백 숲은 선운사 입구 오른쪽 비탈에서부터 절 뒤쪽까지
약 30m 폭으로 5천여 평에 5백∼6백년 된 동백나무 3천여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보면 푸른 숲으로 보이나 가까이 다가서면 푸른 잎
사이로 온통 선홍빛 동백 천지다. 선운사 동백은 3월말에서부터 4월말 사이에 꽃을 피운다. 절정을 이룰 4월 하순경이 되면 동백꽃과 함께 벚꽃,
진달래꽃이 한데 어우러져 꽃들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동백꽃은 필 때보다 질 때가 더 서럽고 아름다운 꽃이다. 꽃이 질 때는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봉오리 채 떨어져 허무하기도 하다.
선운사 소조(塑造)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1752호)은 대형의 소조상임에도 조각적
·종교적 완성도가 높은 우수한 작품이다. 어깨는 넓고, 긴 허리, 넓고 낮은 무릎으로 장대하고 웅장한 형태미를 보여준다. 이러한 형태를 갖춘
대형 소조 불상들은 17세기 전반에 각 지역의 대표적 사찰에서 조성된다. 조성 주체와 조성 과정, 불상의 존명(尊名)을 밝히고 있어 이 시대
불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매우 귀중한 불상이다.
대웅전 앞마당에 고려시대에 조성된 6층석탑이 있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옛 백제탑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탑신은 2층 몸돌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3층 지붕돌 역시 폭이
좁아져 비례감이 떨어진다. 조금 얇아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꾸며졌고, 처마는 양 끝에서 가볍게 들려 있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에는 온전한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279호)은 도솔암의 금동지장보살상과 함께 보기 드문
지장보살좌상의 하나이다. 대좌와 광배는 남아 있지 않지만 15세기 무렵 보살상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어 당시 지장 신앙의 한 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선운사 영산전 목조삼존불상(유형문화재 28호)은 향나무로 조성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석가여래를 주불, 미륵과 갈라
보살을 협시로 하였다. 석가여래의 머리는 촘촘한 나발인데 육계의 윤곽이 분명치 않다.네모난 얼굴은 직선적인 눈과 콧날 등에서 마치 칼로 빗은
듯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획일적인 얼굴 모습, 딱딱한 표정, 신체의 굴곡이 무시된 네모형의 몸, 직선적인 선으로 마무리된
편평한 옷 주름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소 딱딱한 느낌을 주고는 있으나 목조불로서는 희귀한 우수작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도솔산(선운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선운사는 빼어난 자연 경관과 선운사 소조(塑造)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1752호)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279호) 고려시대에 조성된 6층석탑, 향나무로 조성된 영산전 목조삼존불상 등 소중한 불교 문화재를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때 검단(黔丹, 檢旦) 스님이 건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추사 김정희선생이 쓴 백파 선사의 승탑 비가 있고 송악과 동백꽃이 유명하다.
선운산에는 풍천장어. 작설차. 복분자술 등의
특산물이 있다. 풍천장어의 풍천은 지명이 아니라 바닷물과 강물이 어우러지는 곳을 이르는 말인데, 특히 고창 선운리 일대 인천강 하류 지점에
강물과 바닷물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잡히는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고창의 장어구이와 복분자술 한잔으로 최고의 별미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