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청소년 불자로서의 자세
길게만 느껴졌던 여름방학도 이제 며칠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며칠 남지 않은 방학을 즐기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산으로 들로 피서를 떠나고 있는 이때,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구도자적 자세로 ‘경주불교중·고등학생회연합회 하계수련대회’에 참가한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며 조그만 감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감동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모습 속에서 온갖 타락과 쾌락의 안일한 삶을 거부하고 진리를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난 싯달타 태자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입니다.
수련대회는 일정기간 동안 사찰이나 수련도장을 찾아 수행함으로써 일반적인 법회나 일상생활 속에서 얻기 힘든 신앙적 체험을 체득하고 신앙심을 배양하여 올바른 불교인의 자세와 생활 태도를 기르는데, 그 의의와 목적이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 수련대회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생활을 통하여 올바로 극복하고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하여 건전한 청소년으로서, 또 바람직한 불자로서의 자세를 함양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겠습니다.
인생의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삶의 목표가 뚜렷해야 되듯이 신앙인[종교인]은 먼저 자기 자신이 신앙을 갖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성이 있어야 하며,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불교를 믿는 신앙인의 자세는 진실한 삶이 무엇인가를 밝혀 보려는 피 끓는 구도자적 자세이어야 하고,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자기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불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야 말로 참다운 진리이며,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을 증득할 수 있는 가르침이며, 온 인류가 미망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회의가 일어나거나 퇴굴심(退屈心)에 빠질 때에는 항상 부처님은 왜 출가를 하셨으며,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는 어떤 삶을 살으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사건임이 틀림없지만, 그 가르침을 우리가 생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만고불번(萬古不變)의 진리를 우리가 생활화하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와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많은 사람들은-비단 오늘에 있어서 뿐만아니라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불교란 이 사회와 무관한 종교, 이 사회를 초월하는 종교, 이 사회를 초월한 그 어떤 영역으로 지향하는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교와 사회는 하나의 영역이요 ,하나의 영역에 대한 지향이요, 그에 대한 실천이라고 한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러면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그릇되게 알고 있고 심지어 독실한 불교신자까지도 가끔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있어야만 불교인이 왜 역사와 사회에 애정과 관심으로 동참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를 ‘붓다의 가르침’이라 한다면, 붓다는 물론 2600년 전의 고오타마 싯다르타 그분입니다. 그분은 누구나 알다시피 출가의 길을, 수도의 길을, 그리고 성도 후엔 중생구제(衆生救濟)의 길을 걸었던 분입니다. 그분이 특출한 생애를 살게 되었던 계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분은 중생의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자신의 일과 같이 민감하게 생각하였으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기 위해 고행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도를 깨닫고 보니 자신의 문제와 남의 문제가 결국 하나임을 아시고 중생구제(衆生救濟)에 나섰던 것입니다. 삶의 문제는 실로 불교의 첫출발이었고, 그 귀결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불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며, 그것은 곧 지나친 욕심을 제거할 때 가능합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통을 여의고 행복을 찾는 것)이 불교의 이상인 동시에 인류가 유사 이래로 가지고 있던 꿈이며 숙원인 것입니다.
인류의 꿈이며 숙원을 해결하는 방법은 부처님께서 제시해 놓으셨으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배우고 수행하여 자아를 완성하고 이웃에게 나만의 편안이 아닌 온 인류를 편안하게 하여, 이 세계를 극락정토(極樂淨土)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를 극락정토로 만들기 위하여 팔십 평생, 돌아가시는 날까지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동가숙 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시며, 때로는 나무 밑에서 주무시고, 맨발로 걸으시며 법을 전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초전법륜(初傳法輪) 후 승단의 대중이 60여 명이 되었을 때, 대중들에게 이렇게 전도부촉(傳道付囑)을 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法)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자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惡)에 떨어지고 말리라. 법을 들으면 깨달을 것이 아닌가.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하여 우루벨라의 세나니가 마로 가리라.” (초전법륜경)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얼마나 전법을 원하셨던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부루나 존자는 이교도(異敎徒)들에게 맞아 죽으면서까지 법을 전하셨으며, 달마대사는 인도에서 수륙만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중국에 와서 불법을 전하셨으며, 중국의 현장 법사, 신라의 혜초 스님은 죽음을 무릅쓰고 인도까지 가서 불법을 배워 와서 전파하였으며, 신라의 이차돈 성사는 목숨을 바쳐 불법을 공인케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불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불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정말 부처님 뵙기가 송구스럽습니다. 일찍이 만해 한용운 선사는 「불교유신론」에서 “불교 세력의 부진은 포교하지 않는데 있고, 오늘 황량한 모습을 빚은 허물은 옛사람에게 있지만, 후일 우리 불교가 부흥하는 때가 온다면 그 자랑은 지금 사람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그 종교의 교리가 진리라 하더라도 전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며, 사람이 종교를 빛내는 것이지 종교가 사람을 빛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포교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장래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갈 청년불자 여러분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큽니다.
비록 3박 4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수련을 통하여 부처님의 정법을 바로 이해하고 청소년 불자로서의 바른 삶의 자세를 정립할 수 있는 알찬 시간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이만 축사에 갈음합니다.
(1987. 8. 경주지역 불교중⋅고등학생연합회 수련대회 축사/감산 수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