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베 서안의 메디네트 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의 장제전
라호라크티 신의 비호 아래 적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철퇴를 날리는 람세스 3세. 전형적인 필살기 자세가 돋보인다.
역시 메디네트 하부의 제 1탑문 부조, 아문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세를 전멸하는 람세스 3세
람세스 3세의 장제전 두번째 뜰의 기둥, 풍요와 생식력의 신 아문-민을 비롯한 여러 신들을 섬기는 람세스 3세
날개 달린 태양이왕의 이름이 적힌 타원형의 카르투슈를 보호하고 있다.
람세스 3세가 정복한 5민족 왼쪽부터 사수족, 누비아족, 시리아족, 베두인족, 히타이트족
람세스 3세의 아들 아멘히르케페세프 분묘(QV55) 벽화, 람세스 3세가 이시스 여신의 손을 맞잡고 있다.
고대 이집트 12. 마지막 중흥기(中興期) 20왕조 2대 람세스 3세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한 달 전이던가?! 우연히 이집트학 교수님을 소개받았다. 이집트에 관해서라면 활화산 같은 열정을 품고 계신 분이었다. 나는 놀랐다. 고고학자라고 하니까 플린더즈 피트리(1853~1942, 영국인 고고학자,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나카다 시대 토기의 연대측정법-일명 SD법- , 4왕조 쿠푸의 피라미드 측정법, 미라제조법 등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처럼 덥수룩한 흰 수염의 노신사이려니 했는데,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젊디 젊은 교수님을 만나게 될 줄이야!! 이어서 나는 또 다시 놀라게 되는데, 아마도 이 두 번째 놀람은 그 분의 강의를 듣는 한 지속되리라고 본다. 빼어난 지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그 고매한 인격, 겸손!
그래, 나는 요즘 겸손을 배우고 있다. 가장된 겸손이 아닌 진짜 겸손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신들께서는 이 땅에 조화로운 평화를 원하셨다. 신들께서는 그의 아들 세크나크트를 택하시고, 파라오로서의 권능을 허락하시어 위대한 권좌를 이어받게 하셨다. 세크나크트는 이집트의 진정한 파라오다.”
-대(大)해리스 파피루스(Great Harris Papyrus) 중에서-
“나는 결코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하지 않았다. 나의 왕위 계승은 정당하단 말이다.”
-메디네트 하브에 위치한 람세스 3세의 장제전 탑문 비문 중에서-
19왕조 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 메렌프타하 이후 2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4명의 파라오가 교체되면서 정국(政局)은 혼란에 빠진다. 그 와중에 람세스 2세의 먼 친척으로 보이는 세크나크트가 20왕조를 열었지만, 그는 민심을 얻지 못한 채 재위 2년 만에 죽게 된다. 따라서 그의 아들 람세스 3세는 보위에 오르자마자 신(新)왕조에 대한 백성의 불신을 잠재우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왕위 정당성 해명과 왕권 신장, 이것이 그의 취임 이후 당면한 급선무였다.
이러한 대내적 문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플 지경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렌프타하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외세가 다시금 침입하기 시작했다. 치세 5년, 11년엔 리비아족이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를 노리며 쳐들어왔고, 치세 8년엔 해양민족의 침략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람세스 3세는 이 모든 외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승(全勝)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장제전 비문에 이렇게 남겼다.
“짐은 왕자들, 수비대 대장들 그리고 전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하이(팔라스타인 서부)의 전선을 정비했노라. 짐은 나일강 어귀를 기동선과 전함 등으로 성벽 쌓듯 방어했노라.”
이참에 람세스 3세의 무용담이 자세히 기록된 그의 장제전에 대해서 소개할까 한다. 테베(현재 룩소르) 서안, 메디네트 하부에 있는 장제전의 정확한 이름은 “우세르 마아트라 메리아문”, 즉 람세스 3세의 100만년 대저택이란 뜻이다. 시리아식 요새를 본뜬 이 신전은 2개의 탑문과 2개의 주랑 마당, 주랑현관 하나, 대기둥 홀, 그리고 작은 사당과 창고들이 빼곡한 전실로 구성되어 있다. 신전 제 1 탑문 정면에는 아문신과 라호라크티(태양신 라와 호루스신을 합체한 신, 신왕국 후반기 아문라와 더불어 최고의 신으로 추앙받았다.)의 비호아래 적들을 쳐부수는 람세스 3세의 늠름한(?) 모습이 보이는데, 그 구도가 람세스 2세의 카데슈 전투“씬”과 매우 비슷하다. 아니 거의 표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긴 그 맘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람세스 3세의 평생 멘토는 다름 아닌 람세스 2세였으니까........오죽하면 이름까지 따라했겠는가?! 그들 간에 어떠한 혈연관계도 없는데도 말이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이 제자는 스승을 능가했다. 람세스 2세는 조상들이 세운 건축물에서 그들의 이름을 긁어내고 자신의 이름을 새겨 선대의 공적을 가로챘는데, 이 영특한 제자는 스승님의 그 교활함을 본받고 응용하여, 자신의 이름을 더더욱 깊게 새기도록 지시했다. 그래야 후대 왕들의 도둑질로부터 자신의 업적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몇몇 틈새는 어찌나 깊게 팠던지, 손을 집어넣으면 팔꿈치까지 들어갈 정도라 한다.
제 2 탑문을 통과하면 분위기는 급변한다. 주랑 현관이 보이는 가운데, 두 번째 마당의 벽은 아문-민(풍요와 생식력의 신)과 네크로폴리스(사자(死者)의 도시)의 신 소카르(멤피스 지하묘지를 다스리는 장례의 신으로 매의 머리를 가졌다.)에 대한 숭배 장면으로 도배되어 있다.
장제전 북쪽 배면(背面)에는 첫 리비아 원정이(재위 5년) 새겨져 있고, 중간쯤에는 해양민족의 침공에(재위 8년) 대한 부조가 있으며, 신전의 첫 번째 안마당에는 두 번째 리비아 정벌이(재위 11년) 묘사되어 있다. 이렇듯 치세 전반부는 잇따른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초반에 확실한 안보와 수차례 원정에서 획득한 전리품(여인들, 아이들, 가축 등등) 덕분에 이후에는 비교적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이 사당을 당신께 바치기 위해 지었노라. 당신의 도시 와세트(테베)에, 신들께서 굽어보시는 당신이 만든 앞마당에! 이는 하늘이 태양을 품고 있는 한, 오래토록 빛날 아문신의 땅 안에 람세스 3세, 즉 짐이 지은 신전이니라. 바로 내가 지었노라! 황금빛이 찬란한 문을 달고, 사암으로 다진 신전을! 나는 신전의 제단에 내 손으로 가져온 제물들을 쌓노라!”
-카르나크 신전 첫 번째 마당에 위치한 커다란 범선 사당의 비문 중에서-
람세스 2세의 판박이답게 람세스 3세 또한 대단한 건축광이었다. 메디네트 하부에 있는 장제전 외에도, 그는 룩소르의 아문신전을 증축하고 복원하는 한편, 카르나크 첫 번째 마당에 대규모의 범선 사당을 세웠다. 이 건축물은 현재 람세스 3세 신전으로 불리는데, 한때 이 곳 지성소에는 테베의 삼위일체, 소위 테베 트리아드라고 불리는 아문, 무트(아문의 아내) 그리고 콘수(아문과 무트의 아들, 달 신)의 신성한 배가 놓여 있었다.
람세스 3세 말년, 정세(情勢)는 다시금 불안해진다. 재위 29년, 데이르 엘 메디나의 왕묘 건설 노동자들에 의한 역사상 최초의 노동쟁의가 일어났으며(고대 이집트 10 참고) 이어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살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암살 기도는 미수에 그쳤는데, 그 주동자는 놀랍게도 그의 아내 티이였다. 티이는 남편을 제거하고 마마보이인 어린 아들을 왕으로 앉혀 수렴청정을 해 볼 심산이었다. 당시의 상황이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데, 이 파피루스가 바로 현재 이탈리아 토리노의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 유명한 “토리노의 파피루스”이다. 파피루스는 전한다. 결국 음모는 조기에 발각되었고 왕자 판타우레트는 자살을 강요받았으며, 티이와 그 공모자들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그러나 이들의 실제 사망 여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람세스 3세가 죽었다는 것이다. 재위 31년 기원전 1156년경의 일이다.
람세스 3세는 왕들의 계곡 11호 왕릉에 묻혔다.(KV11) 원래대로라면 이 무덤엔 그의 아버지 세크나크트가 묻힐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사도중 선대왕 아멘메세(19왕조 5대 파라오)의 분묘를 건드리는 바람에 한동안 작업은 중지되었고, 이후 무덤의 축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무덤공사는 속개되었다. 무덤의 두 번째 전실과 두 번째 행랑에는 다채로운 색의 향연이 펼쳐져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다. 또한 장례 비문의 일종인 “대지의 서(Book of the Earth)”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 11 참고)
람세스 3세의 아들 중 최소 5명은 왕비들의 계곡에 잠들어 있다. 파레헤르웨넴에프 왕자(QV42), 세트헤르케페셰프 왕자(QV43), 람세스 왕자(QV53), 아멘헤르케페세프 왕자(QV55), 그리고 케무아세트 왕자(QV44)인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또 한 사람의 케무아세트, 그러니까 19왕조 3대 람세스 2세의 4번째 아들이자 걸출한 재상이었던 케무아세트 왕자와 혼동하지 말기를 당부 드린다. 이 외의 아들들은 왕들의 계곡 3호분(KV3)과 13호분(KV13)에 묻혀 있다.
람세스 3세, 그는 신왕국 최후의 위대한 파라오였고, 통치 기간 내내 이집트 옛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이미 쇠락 할 대로 쇠락해 있었고, 결국 람세스 3세의 죽음 이후 이집트는 빠르게 몰락한다.
고대 이집트 다음 편엔 20왕조 람세스 4세~람세스 11세까지 다루겠다. 아마도 신왕국 마지막회가 될 듯하다.
첫댓글 이제야 봤네요 ㅠ
이집트 최대영토를 이룬
람세스2세의 재위도
영원하지 못하고
강물이 흐르듯,
때론 빠르게,
느리게,느리게
역사는 이어지겠죠~^^
덕분에 강의 추가해서 좋아요.
서로 연결돼서 시너지효과까지~^^
저도 맵시자님과 같이 역사 강의 듣게 되어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