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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시산제 및 63차 간산 안내 (2022년 4월 30일 도봉구 무수골)
우리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에서 실시하는 2022년 시산제 행사 및 제 63차 정기 간산은 “한양의 태조산인 도봉산 남동쪽 자락인 무수골” 에서 거행할 예정입니다.
이곳 도봉산 아래 “무수골” 은 조선 4대 세종대왕의 아홉째 아들인 영해군(寧海君 1435- 1477)의 묘소와 관련된 지명으로, 묘역은 이곳 야산 기슭에 터를 정하고 있습니다. ‘
세종대왕은 조선 최고의 명군이면서 부인 6명에 18남 4녀를 두어 아마도 가장 많은 아들을 둔 역대 임금으로 알려지며, 그중 영해군은 후궁인 신빈김씨의 소생입니다. 이곳 묘역은 서울시 유형 문화재 제 106호로 지정돼 있으며, 시산제후 연산군의 묘역도 답사할 예정입니다.
1. 시산제 및 간산 일시
- 2022년 4월 30일(토요일) 09시 30분
▶ 지하철 1, 2호선이 닿는 신설동역에서 하차하여 5번 출구로 나오시면 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2. 회비: 50,000원 (교통비, 기타비용 등)
3. 시산제 및 간산 행선지
서울 신설동역 5번 출구 출발(09:30)→ 시산제 장소(도봉구 도봉동 산 81-1번지 무수골) → 풍수 답사(영해군 묘역 일대) → 시산제 행사 → 연산군 묘소(도봉구 방학동 산 77) → 해산(신설동역 5번 출구)
※ 다른 장소에서 합류를 희망하실 분은 정철화 부회장(010-3475-2357)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4. 답사지 안내
1) 시산제 장소 (도봉산 남동쪽 자락 무수골 도봉구 도봉동 산 81-1)
우리 학회 시산제가 치러질 도봉산(道峰山)은 한양의 태조산(太祖山)으로 세계적인 명품도시 서울을 일군 특별한 영기(靈氣)가 서린 명산(名山)입니다.
이 산을 일으킨 내룡(來龍)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추가령(楸哥嶺), 식개산(1,158m)에서 한북정맥(漢北正脈)으로 분지(分枝)하여 남서진(南西進)하다가, 평강의 백암산(1,110m)→ 김화 적근산(1,073m)→ 대성산(1,175m)→ 포천 백운산(904m)→ 운악산(935.5m)→ 죽엽산(600.6m)→ 양주의 불국산(470m)→ 호명산(423m)→ 한강봉 등을 솟구치고 진행하다가 방향을 남쪽으로 변환하여 의정부의 사패산(549m)을 치올리고, 행도(行度)하여 도봉산(740m)을 일군다.
도봉산 자락이 품고 있는 <회룡사 중수기> 에 보면 "왕성 동 40리에 높이 일어, 가파르고 밋밋하여 흡사 소라 고동처럼 상투를 틀어 올린 듯하고 구름 밖에 우뚝하여 마치 사슴뿔을 높이 걸어놓은 것 같으니 그것이 도봉산이다" 고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산을 지키면서 산과 관련된 모든 일을 관장하는 신을 산신령(山神靈)이라 하였다. 모든 자연물에는 정령(精靈)이 있는데 그 정령에 의해 생성(生成)이 가능하다고 믿은 원시신앙의 애니미즘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나라 산신의 신체상(神體象)은 대개 신선(神仙) 옆에 호랑이(虎像)가 동반하는 모습이다. 산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산신제, 산제(山祭)라 하며, 요즈음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성껏 제수를 마련하여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것을, 시산제라 한다. 우리 민족이 산신제를 지낸 연원은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된 것으로 나타 난다. 《구당서(舊唐書)》에 백제는 "먼저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산곡신에게도 미쳤다(先祠神祗及山谷之神)" 는 기록과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 경덕왕(景德王)때 오악 삼산신(五岳三山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는 기록이 있다.
단군조선을 비롯하여 가야(伽倻), 신라, 고구려 등의 개국 신화는 한결같이 하늘에 사는 천자(天子)가 높은 산에서 강림(降臨)하면서 산신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천신 → 산정강림 → 산신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신관(神觀)을 보여 준 것으로, 특히 고려 시대에는 송산신사(松山神祠), 동신사(東神祠)를 비롯하여 각지에 산신당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동산(東山: 駝駱山)의 산신을 호국지신(護國之神)에 봉하는 등, 명산(名山)의 산신령을 호국지신으로 봉하였고, 주(州)․ 군(郡)에도 진산(鎭山)을 지정하여 산제를 지내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풍습은 전국으로 퍼져 동네마다 산신당을 마련하여 해마다 산신제를 지냈으며 지금도 동제(洞祭)의 일부로 남아, 산신을 모시는 유풍이 전해지고 있다.
2) 세종대왕 아들 영해군 이당(李瑭,1435~1477) 음택
이곳 도봉동 ’무수골‘ 이란 마을 이름은 1477년 세종대왕의 아들인 영해군의 묘소가 조성되면서 유래된 것으로 전한다. 처음에는 수철동으로 불리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무수동, 무수골로 바꿔 불렀으며 무수골은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는 골짜기' 란 뜻으로 무수동(無愁洞)으로도 불린다.
영해군은 세종의 세 번째 후궁(後宮)인 신빈김씨(愼嬪金氏,?~1464)가 낳은 6남 2녀 중 5남이다.
묘역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면 바로 묘역이 나타나고 잠겨놓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위쪽에 영해군 묘소가 단묘(單墓) 형태로 조성되어 있으며, 그 아래는 장인(丈人)인 증(贈) 좌찬성(贈左贊成) 신윤동(申允童), 영해군의 배위(配位)인 임천군부인(林川郡夫人) 평산신씨(平山申氏), 영춘군의 아들 강녕군(江寧君) 이기(李祺)의 묘가 차례대로 터를 정했으며, 맨 아래 우측에는 노비인 금동(쇠똥 이란 이두식 향찰 표기)의 무덤이 있는데 비석에는 “고(故) 충노(忠奴) 금동(金同)” 이라 새겨져 있다.
금동은 영해군의 손자인 강녕군 이기의 노비였는데 연산군 때 영춘군과 이기가 모함을 받아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주인을 대신하여 없는 죄를 자백하고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한다. 이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이를 가상히 여긴 중종이 그의 무덤과 묘비를 세워주고 그의 후손을 평민으로 면천(免賤)해 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노비의 무덤이 흔치 않은데 이곳 무덤은 희귀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곳 묘역은 당초 경사지를 다듬어 조성되어 풍수적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묘역 양변(兩邊)을 끼고 물길이 연결되다 전순(氈脣) 앞에서 합수(合水)한 물이 직출(直出)하는 형상을 이루면서 전유요풍(前有凹風)이 당판(堂坂)으로 들락거리는 모습이 되어 풍수의 행지(行止)를 망각하고 조성된 묘역이라 할 수 있다.
지가서 담자록(啖蔗錄)에서 용맥(龍脈)의 행(行)이란 뱀처럼 구불거려 머무르지 않는 정(情)이 있어야 하고, 용(龍)이 멈추는 지(止)란 반드시 존중(尊重: 높이어 중하게 여김)하여 움직이지 않는 세(勢)를 이루어야 한다 하였다.
그리고 그 몸인 형(形)이 멈춘다면 결작(結作)할 수 있지만 그 몸이 움직이는 모습이라면 이루어짐은 없다 하였다. 산(山)이 곧게 달리거나, 물이 곧게 흘러나가면 족히 볼 것이 없으며, 산이 크게 굽거나, 물이 크게 굽어 나(특정 터)를 감싸 안은 모습이라면 여기서 혈(穴)을 구할 수 있다 하였다.
한편 청오경(靑烏經)에 산이 달아나고, 물이 곧게 흘러나가면 종인(從人: 하인)이 되어 남의 집에서 부쳐 먹는다 하였으며, 당나라때 국사 양균송(楊筠松)이 말하기를 "용이 나가는 것인지, 멈춘 것인지 행지(行止)만 안다면 천하를 횡행(橫行)할 수 있다." 하였는데, 즉, 진행하는 내룡이 멈추었는지, 움직이는지 등을 정확히 짚어 낼 수 있다면 천하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곳 영해군의 묘소는 나경의 8층 건좌손향(乾坐巽向)을 놓고 우선수(右旋水) 을진파(乙辰破)를 이루면서 88향법의 자생향(自生向)으로 길향(吉向)이다.
3) 영해군의 장남 영춘군 이인(李仁, 1465~1507)의 음택
영해군의 장남인 이인은 1474년(성종 5) 영춘군(永春君)에 봉해졌으며, 사옹원제조(司饔院提調)를 지냈다. 연산군 때 아들 이기(李祺)의 사건에 연좌되어 부자, 형제가 모두 유배당했으며, 이인은 남해로 정배(定配)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 복직되어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으로 책록됨에 따라 중종이 1509년 신도비(神道碑)를 세워주었다.
영해군의 묘역 백호방(白虎方) 중턱 상단에 터를 정한 묘소는 부인과 쌍묘(雙墓)로 조성되었으며, 봉분은 뒤가 예각인 오각형의 호석(護石)을 둘러 조선 초기의 분묘(墳墓) 형태를 보이는데 전순(氈脣) 우측에 신도비(神道碑)가 있는 것이 특별하다. 기단이 높고 신도비 머리 부분에 새겨진 이수(螭首)가 아름다우며, 비문(碑文)의 내용에 현재 사용하는 구명(區名)인 “노원(蘆原)” 과 “도봉(道峰)” 이란 지명(地名)이 등장하고 있어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곳 묘소는 주산(主山)인 도봉산에서 남동방으로 낙맥(落脈)한 내룡(來龍)이 기복굴곡(起伏屈曲)으로 행도(行度)하는데 그 세력이 생왕(生旺)하고 터를 일구기 직전 초라하나마 장막을 치고 묘역을 조성하였다. 가깝게 보이는 전방의 조안산(朝案山)은 터를 향해 팔을 벌리고 응기(應氣)하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옆에 조성된 그의 부친 영해군의 묘역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행지(行止)가 분명한 형세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4) 왕좌에서 폐위된 연산군 묘소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77)
연산군 묘는 당초에는 양주군 해등촌(海等村)에 조성되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봉구 방학동으로 변경되어 1991년 사적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제 10대 왕인 연산군은 패륜(悖倫) 및 실정(失政)이 극심하여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폐위되고 1506년(중종 1) 연산군으로 강봉(降封)되어 같은 해 9월 강화군 교동(喬桐)에 유배되었다.
그해 11월 유배지에서 죽어 강화에 장사지냈으나 1512년 12월 폐비 신씨(愼氏)의 간곡한 진언으로 그 이듬해 이곳으로 천장(遷葬)되었다.
거창군부인신씨(居昌郡夫人愼氏)는 영의정 승선(承善)의 딸로 1488년(성종 19) 2월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1494년 왕비로 진봉(進封)되었다.
1506년 연산군과 함께 폐출되어 부인(夫人)으로 강봉되었으며 1537년에 죽어 연산군 묘소 옆에 쌍분(雙墳)으로 조성되었다.
연산군 묘역 아래는 제 3대 '태종' 의 후궁(後宮)으로 알려진 의정궁주조씨(義貞宮主趙氏)의 묘가 있으며, 그 아래는 연산군의 딸인 휘순공주(徽順公主)와 사위인 능양위(綾陽尉) 구문경(具文璟)의 묘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이곳 연산군의 묘역은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광해군의 묘소보다는 용맥의 행도나 주변 사격의 모습 조안산 등 풍수적 여건은 양호하다 할 수 있다. 살아서는 그 패륜이 절정에 달한 패륜아였지만 신씨 부인의 덕으로 평온한 기운이 느껴지는 터에서 영면하고 있다.
5) 서울시 기념물 33호 신목(은행나무)
연산군 묘역 맞은편에 있는 도봉구에서 특별관리하는 서울시 기념물 33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가지가 너무 육중하여 주변에 철봉 같은 걸로 지탱해 놓은 상태다.
이 은행나무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난 것으로 전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죽기 전에도 이 은행나무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번 이 나무가 베일 위기를 맞았지만,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현재까지 이 나무는 무탈하게 장수하고 있다.
나무 높이 25m, 둘레는 10,7m로 1968년 나무 형태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급을 상향 조정하여 기존의 보호수 지정을 해지하고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당시의 조사 결과 이 나무의 수령은 550살로 추정되었다, 이 나무는 경복궁 증축 당시 징목 대상이었으나 마을주민들이 흥선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제외된 나무라 하여 대감나무로도 불리는데 이곳 방학동 주민들이 매년 정월대보름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6)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의 동생 한치례 음택
연산군 묘 답사 후 방학동 산 64번지에서 영면하는 한치례[1441~1499] 묘를 답사할 예정이다.
한치례(韓致禮)는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한확(韓確)의 셋째 아들이고, 조선 제 9대 왕인 성종(成宗)의 어머니 인수대비(仁粹大妃)의 동생이다.
그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1466년(세조 12) 훈련원 도정이 되고, 이어 병조참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동지중추부사· 병조참판· 판중추부사·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이곳 묘역의 묘표(墓標)의 비신(碑身) 앞면에는 ‘영돈녕부사 서릉부원군 증시장간 안공지묘(領敦寧府事西陵府院君 贈諡莊簡安公之墓)’ 라 새겼고, 뒷면 상단에 ‘정경부인 안씨 묘갈(貞敬夫人安氏墓碣)’ 이라 새기고, 그 아래 음기(陰記)를 기록하였다. 어세겸(魚世謙)이 짓고, 임사홍(任士洪)이 썼으며 입석 연대는 ‘홍치 기원지 오 년 오월 일 장손 세창 입석(弘治紀元之五年五月日長孫世昌立石)’ 의 명문으로 1492년임을 알 수 있다.
1499년(연산 5년) 2월 8일 한치례 졸기(卒記)를 보면 “서릉부원군(西陵府院君) 한치례(韓致禮)가 졸(卒)하였다. 한치례는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의 동생으로 사람됨이 탐린사태(貪吝奢泰)하여 남이 좋은 전장(田莊: 개인이 소유한 농지)과 노복(奴僕: 사내 종)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온갖 계략을 써서 기어이 취득하였다.” 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생전에 욕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 묘소는 도봉산 줄기에서 낙맥한 내룡(來龍)이 기복굴곡(起伏屈曲)과 위이(逶迤)등을 하며 좌선룡(左旋龍)으로 들어와 널찍한 당판을 일구었지만 아쉬운 점은 응축(凝縮)된 기운이 갈무리가 안 되고 앞으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5. 지참물
산행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복장과 가방, 나경패철, 필기도구, 우천 시 우산. 간식 등
6. 신청 방법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반드시 이름과 연락처를 이곳 카페 답사안내 공지사항 아래, 신청 등록란에 리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간산은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2022년 시산제를 겸한 간산이오니 회원들께서는 2022년 4월 25일까지 꼭 리필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7. 연락처
연구회 회장 채영석 (010-6282-9721)
연구회 부회장 정철화 (010-3745-2357)
연구회 사무국장 문영래 (010-9853-1357)
첫댓글 저는 시산제 준비 물품 싣고, 무수골 현장으로 직행하겠습니다(자차 이용)
홍*호 위원님 참석합니다.
유*상 교수님 참석합니다.
김*중 교수님 참석합니다.
김*중 교수님 지인 홍순*님 참석합니다.
예*린 사장님 참석합니다.
하*주 위원님 참석합니다.
박*현 회장님 참석합니다.
서*경 위원님 참석합니다.
이*철 위원님 참석합니다.
정*화 부회장님 참석합니다.
채 영석회장님, 문 영래총무님 여러모로로 노고가 많습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해천 유 도상
윤진성 부산 지부장님 신설동역
손정호 선생 신설동역
학회 풍수 수강생 10명 신설동역
현재까지 참석인원 24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