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야할 친구가 있고 만나고 싶은은 친구가 있다면 그건 성공한 삶이 아니겠는가?"
해서 우린 몇년만에 다시 만났고 그만큼 우린 더 행복해졌다.
조금은 어리버리한 내 실수 때문에 한달전 모임이 파산 되기도 했었지만
김호,곽정환.신학렬.김영구 이렇게 네 할배는 (비록 세천이 꽁치가 행불되었지만)
진해 다음으로 생도시절부터 추억이 켜켜이 쌓인 부산역에서 뭉치게 되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 말자 자갈치로 직행 소금,양념 꼼장어를구었다.
영구의 폭탄은 전혀 그 화력이 줄지 않은 채 나머지는 근근이 맥주한잔을 겨우놓고
홀짝거리는 모슴은 허연 머리털 색만큼이나 변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싶었다.
양염장에 밥까지 뽁아먹은 우리는 발길을 돌려 남포동밤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웬만큼 소화가 되었으땐 이번엔 씨앗호떡으로 마무리를하고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결국 길거리 팥빙수까지 동원된후 우린 다시 호텔로 돌아 왔다.아니 거기까지 가서 어느누구도 완월동 이야기를 하는 인간이 하나도 없슴은 인간이 성숙했거나 총기 불량이거나 둘중의 하나 이리라.
마트에서 사온 2L 맥주와 소주는 온전히 막내 영구의 몫이었지만
밤2시 까지 이어진 추억담,영웅담,뒷다마는 끝날줄 모른채 40년 전 봄뻬이 나이트클럽,마닐라 마사지숍을 맴돌다 다음날을 기대하며 각자 침대 속으로 겨우 취침 모드를 취하게 되었다.
아침 8시 기상은 내게 정말 힘든 약속이었지만 간단히 호텔에서 아침을 때우고 학렬이의 아우디 몸을 싣고 태종대로 향했다
거기 태종대에도 고속정시대의 곡예운항, 멀리보이는 남형제도를 통과해 출동을 끝내고 진해로 입항 준비를 하던 그때의 설레임을 다시 느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