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복
금선주 김나영
제가 큰스님을 처음 만나 뵙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10살의 나이였습
니다. 철없고, 장난치면서 놀 시절부터 방학때면 항상 어김없이 온 가족이
함께 태안사에 내려가 맑고 깨끗하신 스님들과 함께 지내고, 큰스님도 뵈면
서 보낸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것이 벌써 어언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는 새로운 가족 도반들을 만나 어린 조카까지, 모두 함께 큰스님 법문을 들
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의 저이지만, 저의 새로운 도반과, 4
살짜리 조카까지 모두 함께 절에 가고,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모습을 볼 때
면 참으로 감사한 도반들 이며, 좋은 인연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지난 시간 부모님들과 함께 부처님과 큰스님의 법문 말씀을 지키려고 노
력하며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가족 도반들과 함께 미흡하나마 부처님 가르
침을 따라하려고 노력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저에게는 감사
한 일입니다. 가끔 TV 보면,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 의견대립으로 싸우거나,
혹은 다른 이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면 사람들이 "전생에 무슨 원
수를 져서.." 라거나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라는 말을 하는 것
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불법의 원리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저에게는 다시
한번 인연의 중요함을 느끼게 해주는 말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 같지만,
매달 한번 성륜사 정기법회가 있는 날은 많은 보살님들과 거사님들이 함께
버스로 성륜사에 내려갑니다. 저희 가족도반들도 그 날은 같이 버스를 타고
성륜사에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주위를 둘
러보면 도로 위의 수많은 버스에 탄 많은 이들이 남녀 노소 모두 일어나 함
께 춤추며 노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탄 버스에서
는 몇몇 보살님들께서 그 날 들은 큰스님 법문에 대해 말씀을 주고받거나,
혹은 큰스님 육성이 담기신 테이프를 듣고 있는데 말이지요...
만약 저 역시 공부할 수 있는 인연들을 만나지 못했거나, 큰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인연의 복이 되지 못했다면, 그냥 그렇게 춤추고 술 마시던 다
른 이들처럼 그렇게 한평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저는 부
처님 법을 만나게 되었고, 그 법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며 반드시 따라
야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이
생에 같이 만나 공부하게 되었으니, 이 작은 공덕으로 다음 생에도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는 일없이 또 부처님과 큰스님 법을 만나 계속 공부할 수 있
게 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램입니다. 하지만 이번 생에 큰복으로 부처님
과 큰스님 법을 곁에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제 멋대
로 한다면 부처님법과의 인연은 이 생으로 끝이 나겠지요.
어렸을 적 읽었던 경전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제 기억에 가장 남는 경전이
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주리반다카 라고 하는 스
님이 계셨습니다. 어려서부터 건망증이 심하고 모든 이에게 바보라고 놀림
을 받던 주리반다카는 형의 도움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경
전의 한 구절도, 가장 기본적인 계율하나 마저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주
리반다카를 부처님의 다른 여러 제자들 역시 바보라고 놀리며 싫어합니다.
그런 그에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빗자루 한 자루를 주시며 다른 것은 하
지 말고 오직 "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자" 라는 말만 외우며, 정사 안을 청
소하라고 시키십니다. 주리반다카 스님은 그날부터 일체의 다른 생각은 하
지 않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부처님이 시키신 대로만 ꡐ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자ꡑ 라는 말을 외우며 정사 안을 청소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리반다카 스님은 문득 깨달았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께서 말씀하신 "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자" 라는 말은 곧 우리 마음의 분노
와 욕망 등의 더러움을 없애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주리반다카 스님이 단 한 구절의 말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부
처님의 말씀에 한 치 이의도 없이, 의심도 없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청소만
하라고 시키신 부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도, 다른 제자들처럼 공부할 수 없
는 자신을 원망하지도 않고 오직 그 말씀만 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보며 큰스님의 모습과, 부끄러운 제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늘 "나무아미타불"의 광명을 생각하고, 그 본원을 믿으며 염불하라고
말씀해주시는 큰스님... 한치의 의심도 없이 아미타불의 광명을 믿으면 바
로 우리가 곧 부처임을 깨달을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큰스님의 확신에
차신 설법아래, 10여년이 넘도록 그 말씀을 들어온 내 자신의 모습은 어떤
가. 나 역시 주리반다카 스님처럼, 큰스님의 말씀에 한 치 어긋남이 없이 그
말씀대로만 따라서 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하는가, 라고 말입니다. 아마
그 이유는 어리석은 제 자신의 아상과 무명이 많아서 일 것입니다. 높은 가
르침을 듣고도, 그 말씀대로 따라야 함을 알면서도 내 자신의 좁은 생각과,
어리석은 마음에 가려, 그 가르침에 어긋난 행동들을 매일 하는 것입니다.
법문 말씀을 들을 때면, 그대로 따라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실생활에 부딪
히면, 제 좁은 생각으로 큰스님의 말씀을 해석해버리거나, 스스로의 그릇된
행동들을 정당화시키기 일수이니까요.
그렇기에 늘 큰스님 앞에 서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그 동안 그 말
씀에 어긋나게 행동했던 일들이 왜 그렇게 모두 떠오르는지요... 하지만 다
행히 저는 그 부끄러움 속에서도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나마 제가 그렇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창피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내 행동은
모두 옳고, 잘못됨은 하나 모르는 것이 저 같은 중생의 미혹함이지만, 우리
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 행동이 그릇됨을 말해주시는 큰스님의 법문
이 있고, 도반들의 질책이 있습니다. 그 힘으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알고, 잘
못을 고치겠다는 마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이렇게 우리 중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큰스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돌보시지 않고 항상 법문 하시고 가르침을 주십니다. 한평생
중생들을 위해, 자신의 몸이 불편하시더라도 깨우침을 전해 주시려는 큰스
님. 오늘도 "우리 불자님들, 정말 사무치게 공부하십시오" 라고,설법하여
주시는 큰스님을 뵈며, 저와 저의 도반들은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성불하
는 그 날까지, 부처가 되는 그 날까지 모두 함께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2002년 가을 염불과 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