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있어서 운율은 시의 참맛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이 차츰 약화되면서 시를 읽는 맛이 사라지고 재미를 느끼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이러한 재미 없음은 현대시가 가지는 가장 취약한 약점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지는 유희적 속성은 노래를 즐기는데서 유감 없이 발휘된다. 학생들은 시를 멀리하고 대중가요에 또는 힙합이나 랩을 더 좋아한다. 학생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 시를 선택하지 않고 노래를 좋아하는 걸 나무랠 수도 없다. 좋은 걸 어떡하란 말이냐? 다만 오늘의 시가 재미없다는 것이 오히려 비난 받아야할 지 모른다.
시의 재미는 읽는데 있다. 소리내어 시를 읽으면서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다면, 시가 오늘날 처럼 외면 받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현대시는 음악성보다는 이미지로서의 내용성에 보다 크게 의지하고 있다. 어찌보면 시의 운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쇄문화가 덜 발달했던 시대에는 기억에 편리하기 위해서는 소리로 전달할 때의 어감이나 리듬이 크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쇄문화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소리로 전달되기 보다는 눈으로 보고 읽는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더우기 답답한 문자기호로 단순하게 쓰여지던 시대에서 컴퓨터 화면에 비치는 다양한 모양의 글자체로 다양하게 가시화 되는 전자시대가 성큼 다가서면서 시집을 찾는 이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어쩌면 음성파일을 통한 낭송된 시를 선호하게 될지도 모른다.
음악과 사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문자의 동영상 속에 음성으로 들려주는 전자시집이 보편화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시의 이미지는 배경 사진으로, 시는 전문가의 음성으로, 시의 운율적 리듬은 음악이 대신하게 되고 문자는 보조수단으로 컴퓨터 화면 속에 흘러갈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시가 오늘과 같은 모습을 고집한다면 시의 화석화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컴퓨터와 시디롬이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하더라도, 그것은 독자가 시를 읽고 이해하는 수단의 변화이거나, 시를 쓰는 이들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문장화 시키는 정도의 변화이지 시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시가 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히 시다워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시의 운율 문제다. 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마음을 흔드는 음악적 감성이 사라진다면 시는 그저 분량이 적은 산문에 지나지 않게 된다.
①생사로
②예 이샤매 저히고
③나 가 다 말ㅅ도
④몯다 닏고 가 닛고.
⑤어느 이른 매
⑥이에 저에 떠딜 닙다이
⑦? 가재 나고
⑧가논 곧 모 온뎌.
⑨아으 미타 애 맛보올 내
⑩도 닷가 기드리고다.
우리가 잘 아는 10구체 신라 향가이다. 신라 향가 중 시에서 풍기는 음악적 부드러움과 시상의 완벽함, 인생론적인 삶의 깊이가 고루 갖춰져 있어 읽는 이나 듣는 이나 다함께 즐거울 수 있는 작품이다.
②행에서 '예'를 '여기에'로, '이샤매'를 '있으므로', '저히고'를 '두려워하고' 나 '저어하고'로 바꾸어 읽어보자. ①행에서 3음절로 간결했던 시작이 갑자기 길어지면서 호흡이 가빠짐을 느끼게 된다. 음절수가 적은 행에서 갑자기 긴 음절수의 행으로 이어질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시의 음악성이 자연스럽지 못함을 보여준다. '저히고'를 빼고 읽어보면 더욱 음악성이 부드러워지면서 자연스럽게 ③행으로 이어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저히고'는 의미상 중요한 구절이기에 삭제할 수 없는 일이다. 아쉽지만 만족할 수밖에 없다.
①,②행에 이어 ③,④행은 단숨에 읽힌다. 유사음으로서의 자음과 모음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특히 분철표기가 아닌 연철표기로 번역한 양주동 박사의 향가 번역은 그야말로 국보적이다. 연철표기가 가지는 음악적 부드러움이 현대국어에서도 적극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한번 쯤 가질만한 대목이다.
④행까지 읽고 나면 자연스레 잠시 휴지가 온다. 의미단락임과 동시에 낭독상으로도 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잠시 후에 ⑤행으로 이행되면서 단숨에 ⑧행까지 나아간다. ⑤,⑥행과 ⑦,⑧행의 비유적 댓구가 여기까지 읽고 음미하도록 한다. 그리고 잠시 ⑨행의 첫구 '아으'에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진실을 알고난 뒤의 안도라고나 할까? ⑩행에 오면 의미의 완결이 이루어진다.
4. 마인드 맵을 활용하여 쓰기
마인드 맵이란 촉발된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순서에 따라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그림지도를 그리고, 이의 상관관계를 통해 심리를 측정하는 기법이다. 즉 마음 속에 일어나는 구체적 이미지와 추상적 이미지를 상하, 밀착,발전,확대의 관계로 파악하면서 인접 이미지로부터 점차 먼 관계의 이미지로 구상해보는 마음의 지도 작성법이다.
시창작에서 마인드 맵의 활용은 연상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며 심층적으로 확대된 심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해볼 만하다.
다음은 문예백일장에서 동일 제목이 주어졌을 때의 반응을 백일장 작품을 통해 추정해 본 것이다.
A학생:
선착장
명절만 되면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뵈러
전라남도 작은 섬에 가곤 했다.
버스를 타고, 또 갈아타고
긴 여정 끝에 닿는 선착장
선착장은 나에게는
꿈같은 세상.
길가에 펼쳐진 장난감 집들.
나의 고집에는
부모님도 당해내실 수 없으셨나보다.
배 안에 오르는 내 어린 손에는
로봇이 멋쩍게 웃음짓고
그걸 보는 나도 그저 허허허.
오늘도 바다냄새를 맡으니
먼 기억 속 동심이
잔잔히 물결친다.
B학생:
선착장
슬픈 뱃고동 소리를 기억하며
오늘도 시작되는 선착장.
마치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
가지 못하는 날개 다친 연인같은
이 선착장에.
푸른 물결만이 갖은 붉은 햇살 가르며
저멀리 님 실은 배가
수평선 위로 떠올를 때,
기다림이 기쁨되어
활기를 되찾아 분주한 선착장.
서로 만나 좋아하는 모습이
내 마음 텅빈 곳을
아련히 감싸주네…….
두 학생의 마인드 맵을 보면 선착장이란 최초의 이미지에서 서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A학생은 전라남도의 작은 섬에 살고 계신 할머니를 떠올리고, B학생은 연인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A학생의 시를 통해 본 마인드 맵
선착장----가족---할머니
---전라남도 작은 섬---버스 (긴 여정)
꿈같은 세상---장난감같은 집
나의 고집---부모님이 당해내지 못함
배---어린 손---로봇
오늘 ---바다냄새---동심
B학생의 시를 통해 본 마인드 맵
선착장 ----슬픈 뱃고동소리---오늘의 시작
누군가를 기다림---가지 못함---날개 다친 연인
푸른 물결---붉은 햇살
님실은 배---수평선
기다림--기쁨---활기---분주함
----서로 만남--좋아함
--- 내마음--텅빈 곳---감싸 줌
A학생이 모두 6연의 시를 쓰면서 '할머니-여정-로봇-동심으로 회귀'의 구도로 도입과 여정, 그리고 감상이란 수필적 심상에 한정된 반면, B학생은 '뱃고동-날개 다친(홀로 서있는)연인-기다림-만남의 기쁨-자신의 감정'의 구도로 자신의 눈에 보이는 연인의 만남을 쓰고 있다.
두 학생 모두가 시의 끝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과거의 기억을 유추해 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러한 현상은 '시가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그리고 두 편 모두 '선착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스펙트럼이 없다. 따라서 시어가 빈곤해지고, 시상의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선착장은 배가 들어오고 나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인생이며 삶이란 추상적 이미지로 확대될 수도 있다. 또한 만남과 헤어짐도 같은 흐름 속에 위치한다. 선착장이 가지고 있는 외부적 상황은 거칠음이다. 다듬어지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아갈 거친 인생들, 녹슬은 쇠붙이와 비린내, 소란함 등도 선착장의 이미지이다.
선착장은 나루터와 다른 이미지 즉 남성적이면서 황량하고 거친 이미지를 가진다. 이러한 거친 삶의 모습은 이용악 시인의 <항구>에서, 선착장의 인생론적 의미는 김용호 시인의 <항구>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용악의 거친 인상과는 달리 김용호 시인의 <항구>는 추상적 인상과 행복과 불행의 교차점으로 항구(선착장)을 바라보고 있다.
태양이 돌아온 기념으로
집집마다
카렌다아를 한 장씩 뜯는 시간이면
검누른 소리 항구의 하늘을 빈틈없이 흘렀다
머언 해로(海路)를 이겨낸 기선이
항구와의 인연을 사수하려는 검은 기선이
뒤를 이어 입항했었고
상륙하는 얼굴들은
바늘 끝으로 쏙 찔렀자
솟아나올 한 방울 붉은 피도 없을 것 같은
얼굴 얼굴 희머얼건 얼굴뿐
부두의 인부꾼들은
흙을 씹고 자라난 듯 꺼머틱틱했고
시금트레한 눈초리는
푸른 하늘을 쳐다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서 나는 너무나 어린
어린 노동자였고―
물 위로 도롬도롬 헤어 다니던 마음
흩어졌다도 다시 작대기처럼 꼿꼿해지던 마음
나는 날마다 바다의 꿈을 꾸었다
나를 믿고자 했었다
여러 해 지난 오늘 마음은 항구로 돌아간다
부두로 돌아간다 그날의 나진(羅津)이여
이용악 <항구> (분수령, 삼문사, 1937)
부우―ㅇ―
항적(航笛)이 하늘 우에서 울면
헐어진 구름도 모여 운다
……항구(港口)의 표정은 슬프다
환등(幻燈)처럼 비쳐 움직이지 않는 얼굴
갈대밭에 심은 물새의 불행(不幸)이
내게도 있다
끄―ㅁ 벅―
별이 하나씩 선창 우에 늘어서면
등대도 그리운 듯 외짝눈을 끔벅인다
……항구(港口)의 마음은 고웁다
물결처럼 밀려와 내 마음을 미는 얼굴
짝지여 물을 쫓는 물새의 행복(幸福)이
내게도 있다
김용호 <항구> (향연(饗宴) 1941)
이들 두 시인의 시를 구조화 시켜보면 하나의 이미지에서 연속적으로 확산되는 이미지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파편화 된 이미지가 아니라 서로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확대되거나 아니면 대조되면서 그물처럼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연결성은 김용호의 <항구>보다 이용악의 <항구>가 보다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용악의 시를 통해 본 마인드 맵
항구---태양이 돌아옴--카렌다아 뜯기
검누른 소리---항구의 하늘
머언 해로를 이겨낸 기선--인연 사수--검은 기선--입항--상륙하는 얼굴--희머얼건한 얼굴
시쓰기에 있어서 촉발된 시상(詩想)을 부여잡고 그 순간의 감정과 발견을 드러낼 수 있는 시어의 사용과 확산된 이미지의 조직은 시의 성공을 가름한다. A학생의 경우처럼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봇을 가지고 배를 탔다는 사실은 이 시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동심'을 끌어내기 위한 의도라고 본다해도 선착장의 의미와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4,5연은 빼버리는 것이 오히려 시를 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