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7월 메이지 천황이 죽자 다이쇼 천황의 시대가 되었고
정치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났다.
1902년 계속되어있던 번벌세력,관료,정당이 타협하여
가쓰라 다로와 사이온지 긴모치가 교대로 정권을 구성하는
이른바 게이엔 시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육군의 군비확장 주장을 거부한 탓에
제2차 사이온지 내각이 모두 사직하자
천황측근이던 내대신 가쓰라가 다시 수상으로 취임하였다.
그런데 가쓰라가 비입헌적인 입장을 취하였기 때문에
입헌정우회의 오자키 유키오와 입헌국민당의 이누카이 쓰요시등이
'족벌타파','헌정옹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가쓰라내각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가쓰라는 천황의 조칙과 신당의 결성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지만
이 비판의 움직임은 정당뿐만 아니라
실업가,신문기자,변호사등 입헌정치에 자각한 일반대중에 의해
제1차호헌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운동의 결과 가쓰라는 재임기간 불과 50여일만에 퇴진하였다.
천황을 중심으로하는 중앙집권 국가를 확립하기 위해
번벌정치가 허용되어온 메이지 시대에서 이제는 드디어
정치와 생활의 향상을 국민 스스로가 지향하는 다이쇼 시대가 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