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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라비나 원문보기 글쓴이: 조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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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뮬레 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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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이었지만 강풍에 가루눈이 날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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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무인 대피소. 에귀 디 미디가 저 아래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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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후, 몽블랑 정상에 도착하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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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서쪽 하늘의 모습. 왼편 저멀리 몽블랑의 그림자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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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발로 산장 아래의 빙설사면을 오르는 산악스키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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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무인 대피소 내부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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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방 쪽에서 본 몽블랑 전경과 루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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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스키 산행기 4월말 어느 한 날이었다.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던 참에 전화벨이 울린다. 종종 함께 산행하던 줄리앙이다. 자고 일어나보니 얼마 전에 다친 무릎이 좋지 않다며 약속한 등반을 미뤄야겠다고 한다. 할 수 없다. 날씨도 좋고 시간도 나기에 혼자 어디로든 가고 싶다. 바로 그거야. 지난달 산악스키로 몽 뷔에를 오르고서 정상에서 저 멀리 건너다 보이는 몽블랑에 언젠가는 스키로 오르내리고 싶었던 참인데, 기회가 빨리 찾아온 것이다. 이미 꾸려진 벽등반 장비를 제자리에 두고 산악스키 장비로 대치한다. 그래도 짐은 한 보따리다. 산악스키 일체와 아이젠, 피켈, 방한복, 카메라 두 대, 그리고 이틀분 식량이다. 문제는 식량. 긴 보송 빙하를 거슬러 오르기 위해선 많은 물이 필요할 거야, 아니 산에서 하룻밤 지내기 위해선 따뜻한 차라도 끓여 마셔야 할 텐데 버너와 코헬이 필요할 거야. 아니면 둘 다? 잠시 망설이다가 물만 두 통 떠가기로 한다. 하룻밤 찬물 마신다고 해서 잘못될 턱이 있을까 싶다. 아무리 서둘러 짐을 챙긴대도 오전 9시가 넘었다. 하여 산행 출발지인 플랑 데 레귀(Plan de l’Aiguille, 2310m) 케이블카역에 내려 스키에 스킨을 다니 10시다. 어차피 오랜만에 산 위에서 자기로 했으니 바쁠 것은 없다. 어디서 잘 것인지는 오르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보송 빙하 중단부의 그랑 뮬레(Grand Mulet, 3051m) 산장이나 몽블랑 정상 아래의 발로(Vallot, 4362m) 무인대피소가 오늘밤 나의 잠자리인 것만은 확실하다. 스키를 신고 완사면을 거슬러 오른다. 에귀디미디 북벽 아래의 설사면을 따라 보송 빙하 쪽으로 이동한다. 신설이 내린 지 오래되어 눈사태의 위험은 없다. 하지만 이제 알파인 지대에도 봄기운이 완연하여 습설로 생긴 몇몇 큰 눈덩이들이 여기저기 굴러 내려 있다. 한 시간 즈음 가자 보송 빙하에 진입하기 위해 설사면을 비스듬히 내려간다. 스키에 스킨을 부착한 채 그대로 내려간다. 잘못하다간 넘어지기 십상이지만 스키를 벗어 스킨을 땠다가 다시 부착하는 번거로움이 싫다. 이제부터 보송 빙하다. 드넓은 빙하의 빙탑 아래쪽 설사면에서 네 명의 스키어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그 중 가이드 한명이 눈사태 탐침기를 시범 보이고 있다.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등 안전에 철저한 모습이다. 그들 또한 곧바로 출발하기에 천천히 뒤따른다. 맨 뒤에 가던 가이드가 웃으며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필자가 샤모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는 그는 한국인이 여기까지 왔냐며 놀라운 표정을 짓고서 자기는 독일에서 왔다고 한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어찌 독일인인들 오르고 싶지 않겠냐 싶다. 빙탑 사이와 크레바스 위를 조심스럽게 지나는 구간들이 이어졌다. 이어 급경사의 설사면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상단부의 작은 바위능선에 그랑 뮬레 산장이 위치해 있다. 1998년 여름이후 처음이다. 여름철엔 보송 빙하에 크레바스가 많아 상대적으로 몽블랑의 다른 루트에 비해 이용하는 편이 적기 때문이다. 독일인 넷은 오늘은 여기까지 산행이라며 그들과 헤어진다. 이제부터 혼자다. 어차피 혼자 나선 산행이 아니던가. 그랑 뮬레 산장에서 잘 경우에 대비해 산악회 회원증(UIAA 가맹단체인 경우 반액 할인 혜택이 있음)도 가져왔건만 겨우 오후 1시가 조금 지났기에 그랑 뮬레 산장에서 그것도 혼자서 마냥 시간만 보낼 수야 없다. 비단 산행에서 뿐 아니라 일상 행에서도 혼자 잘 지내기 위한 방편 중 하나가 바로 무엇이든 하는 것, 즉 움직이는 것이다. 계속해서 설사면을 오른다. 이전 산악스키어들의 자국이 있어 크레바스에 빠질 위험은 없다. 하지만 그랑 뮬레 산장 위 1km 지점의 세락 지대 아래로 나 있던, 빙하 오른편으로 지나간 스키 자국들이 약 100미터 정도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다. 집채만한 적어도 대형 텐트 크기의 얼음덩이들이 폭 100미터, 길이 수백 미터 범위로 널브러져 있다. 설사면에 난 스키자국으로 보아 하루 이틀 상간에 무너진 게 분명해 보인다. 별다른 사고 소식은 접하지 못했기에 무너진 세락에 의한 사고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3700미터 고지의 그 다음 세락 지대가 문제다. 몇 년 전에 다섯 명의 프랑스 산악군인들이 사망한 지대다. 처음 얼마간은 되도록 빨리 이 세락 지대를 벗어나려 전속력으로 움직여 보지만 이내 운에 맡기기로 하고 한숨 돌리며 쉰다. 분명 기온이 가장 높은 오후 3시기에 어느 때보다 세락이 무너질 위험이 크다. 하지만 지진에 의한 진동이나 쌓인 눈의 하중에 의한 팽창 등, 우리네 삶의 운명처럼 세락의 붕괴에도 수많은 요인들이 얽히고 설켜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세락 지대에서 벗어났나 싶더니 설사면 위에서 계속해서 강풍이 불어 가루눈이 휘날린다. 급하게 짐을 챙긴다고 안면 가리개를 가져 오지 않은 게 후회 된다. 바람이 셀 때는 고개를 돌려 빙하 아래를 본다. 빙하 아래 샤모니 계곡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그랑 뮬레 산장까지 구름에 가려 있다. 그랑 뮬레 산장에 머물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보다 높이 오른 이의 즐거움이 느껴진다. 가팔진 설사면을 올라서서야 휘날리는 눈가루로부터 해방된다. 보송 빙하 왼편으로 몽블랑 뒤 따귈과 몽모디의 서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그 쪽으로 해서 몽블랑에 오르는 이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몽블랑을 오르는 주요 세 노멀 등반 루트들 중 지금 오르는 이 보송 빙하 코스는 여름철에는 크레바스가 심하게 벌어져 기피하는 반면 봄철 산악스키어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코스믹 산장이나 구떼 산장을 경유하는 코스는 상대적으로 여름철의 워킹 산악인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제 4000미터 고지의 넓은 설원에 이른다. 몽블랑의 북면과 몽모디의 서면으로 둘러싸인 이 그랑 플라토(Grand Plateau)는 꼴 뒤 돔(Col du Dome)으로 이어진다. 머리 위, 낭떠러지 위에 발로 무인대피소가 빤히 보이지만 꼴 뒤 돔으로 우회하여 올라가야 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가루눈으로 인해 이전에 지나간 스키어들의 자국은 찾을 수 없다. 스키가 설사면에 빠진다. 그저 가장 빠른 쪽으로 오르길 반복한다. 드디어 드넓은 꼴에 이르니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맞아준다. 좀더 전진하여 발로 무인대피소와 천체 관측소 아래의 빙사면까지 접근한다. 더 이상 스키가 필요 없어 설사면에 단단히 꽂아두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오른다. 발로 무인대피소에 이르니 시간은 오후 6시 반이다. 우선 안으로 들어간다. 알미늄 난간은 작년보다 더 낡아 중앙의 반 이상이 구멍 나 있다. 모두들 아이젠을 신고 오르내린 탓이다. 실내는 알미늄 난간보다 더 형편이 없다. 쓸만한 매트는 하나뿐이며 여기저기에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스키가 있기에 그랑 뮬레 산장이나 아니면 샤모니까지도 내려갈 수 있지만 여기까지 올라와 몽블랑에 오르지 않고 그냥 내려갈 수야 없지 않겠나. 시계를 보니 저녁 7시가 다 되어 간다. 해가 지기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남아 있다. 그냥 자고 내일 아침에 정상으로 가느냐, 지금 곧바로 오르냐는 저울질에서 이왕 나선 걸음 계속해서 가기로 한다. 정상까지 약 500미터의 표고차가 나지만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거라 여긴다. 정확한 일몰시간을 알지 못하지만 산정에서의 일몰은 계곡에서보다야 길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여유 있게 발걸음을 옮긴다. 또한 이제껏 십여 차례 몽블랑 정상에 올랐건만 모두 아침나절에 올랐기에 이렇게 저녁나절에 올라보는 것도 흥미로울 거란 생각이 한몫 했다. 샤모니 계곡에 펼쳐져 있던 구름들이 한낮에 비해 많이 낮아져 있다. 몽블랑 산군 서쪽의 구름바다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늦은 오후에 몽블랑을 오르면서 이런 멋진 기회를 갖기가 어디 쉽겠나. 아침부터 계속해서 오르고 있어 발걸음이 무거워져 있다. 하지만 보다 멋진 일몰을 기대하니 피로감이 느껴질 겨를이 없다. 설능에 올라서니 바람이 뺨을 때린다. 프랑스와 이태리의 국경선인 이 설능에서 샤모니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왼쪽 뺨을 얼얼하게 한다. 또 한번 안면 가리개를 가져 오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2년 전에 에귀디미디 설릉을 오르면서 오른쪽 뺨이 동상에 걸렸기에 오른편에서 바람이 불어오지 않아 다행이라 여긴다. 하지만 내려올 때도 바람의 방향이 바뀌지 않으면?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한다. 세상사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생각할 필요야 없지 않을까. 설능 상의 가파른 설벽도 오르고 칼날 리지도 지난다. 아무리 발걸음을 빨리 움직여도 인간의 능력으로선 서산의 지는 해를 붙들어 놓을 수 없음을 절감한다. 정상 아래 약 15분 거리에서 해가 지려 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카메라를 집어 들고 샤터를 누른다. 붉은 태양은 서서히 지평선 아래로 침몰하고 만다. 몽블랑 정상에서 멋진 일몰을 맞이할까 하던 꿈이 빗나가고 말았지만 계속해서 위로 오른다. 본격적인 등반시즌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적어 더욱 불안하기 짝이 없는 마지막 칼날 설능을 오르니 드디어 정상이다. 텅 빈 공간만이 있다. 이미 사방이 어둑해져 있다. 하지만 기분이 좋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오르는 즐거움이 있지 않는가. 해진 후의 박명 속에서도 여기저기 큰 산들의 윤곽이 드러나 있다. 샤모니 계곡에는 구름이 반 즈음 걷혀 시내의 조명등이 빛나고 있다. 배낭에서 헤드랜턴을 꺼내 혹시나 싶어 샤모니 쪽으로 신호를 보내보지만 누구 하나 응답할 리 없다. 아침까지만 해도 저 불빛들 속에서 함께 어울렸음이 새삼스럽다. 한편 몽블랑 남쪽 이태리 최대의 산악도시 꾸르마이어에서도 불빛을 내고 있다. 그러나 사방이 발 아래에 있음을 즐길 여유가 많지 않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익숙할지언정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는 길이 하산길이 아니던가. 더구나 칼날 설능의 좌측은 이태리쪽으로 수천미터 낭떠러지며 오른편도 최소한 500미터는 넘는 얼음 절벽이 아니던가. 다행히 흰 눈이 많은 산정이라 칠흑처럼 어둡지 않다. 시신경을 집중시키면 랜턴이 없어도 될 정도다. 따라 배낭에 넣어둔 랜턴을 굳이 이용하지 않는다. 평소 밤눈이 어둡다는 소리는 듣지 않던 터라 이렇게 늦은 시간에 몽블랑의 설능을 내려간다 하여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랜턴이 적막에 쌓인 알프스의 해진 후의 모습을 즐기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이 아름다움을 혼자 즐긴다는 게 아쉽긴 하다. 삼각대 등 카메라 장비를 챙겨오지 않은 게 잘못이긴 하지만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흔하다면 아마 그만큼 산을 오르는 이들의 수도 적어지지 않을까.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오를 때의 발자국을 찾으며 내려간다. 어느 순간 설사면에 피켈을 든 그림자가 어려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초승달이 배시시 웃고 있다. 해가 질 무렵인 정상에서는 초승달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이렇게 어둠이 짙어지고서야 그의 존재가 사뭇 나약한 한 인간의 발걸음에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네 삶에서 멀리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는 많은 님들의 바로 그 웃음이 초승달의 웃음이 아닐까. 한발 두발 아이젠을 확실하게 딛는다. 군데군데의 얼음사면에서는 무릎에 진동이 가해질 정도다. 이윽고 발로 무인대피소다. 헤드랜턴을 찾아 켜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몸이 차가워져 있기에 우선 아이젠과 프라스틱 이중화의 외피를 벗은 다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담요들을 끌어 덮는다. 최대한 몸을 데우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목이 마르지만 찬물을 마시면 더 추워질 것 같아 고민이다. 할 수없이 단 것을 먹고 찬물을 한두 모금 한다. 그래도 추워져 단 것을 입에 넣고 끌어 덮은 담요 속의 몸을 비틀어 보지만 몸이 더워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기로 한다. 담요를 여섯 일곱장은 덮었는데도 추위가 엄습해 온다. 눈밭에서의 비박에 비하면 이게 어디냐 싶지만 이제까지의 모든 눈밭에서의 비박에서는 늘 동료들과 함께 따뜻한 음료를 끓여 마실 수 있었기에 오히려 그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가 없다. 삼십분 마다, 아니 한 시간 간격이었던가 때때로 일어나 시간을 보고 허기진 배를 위해 단 것 하나를 먹고 담요 속에 넣어둔 물통을 찾아 한 모금 입안에 넣어 데운 다음 삼킨다. 한편 두개의 수통 중 밖에 놓아둔 하나는 이미 꽁꽁 얼어 있었다. 물이 많이 먹힐 거란 생각에 1리터와 1.5리터 물통을 하나씩 가져왔건만 그랑 뮬레 산장까지 오를 동안의 더위에 좀 마셨을 뿐이어서 결국 하산시에 1.5리터 들이 프라스틱 통의 과반의 물은 발로 무인대피소에 남겨뒀다. 마침내 새로운 날이 열리고 그랑 뮬레 산장에서 새벽 두시에 출발한 산악 스키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침 7시다. 산장에 들어와 잠시 쉬는 다섯 명의 일행들도 독일에서 왔다고 한다. 그들 중 둘은 나이 육십이 다된 이들이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저렇게 활동적인 모습이 보기 좋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그들에게 행운을 빌며 산장 아래의 빙사면을 내려가니 어제 그랑 뮬레 산장까지 함께 오르던 독일인 넷이 알아보고 인사한다. 기분 좋게 답례를 하고 스키를 신고 빙하 위를 타고 내린다. 아직 해가 닿지 않은 보송 빙하를 혼자 타고 내리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랑 뮬레에서 발로까지 다섯 시간 걸어 오른 거리를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엊저녁부터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출출하지만 샤모니까지 곧장 가기로 하고 계속해서 활강, 플랑 데 레귀에 이르니 오전 9시가 조금 못되었다. 케이블카에서 방금 내린 몇몇 산악스키어들이 보송 빙하로 향하고 있다. 그들 모두에게도 내가 몽블랑에서 얻을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얻고서 무사히 돌아오길 빌어본다.
산행 길잡이 유럽의 많은 산악스키어들이 몽블랑에서 산악스키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몽블랑이 알프스 최고봉이기 때문일 것이다. 몽블랑 스키산행의 시기는 3월에서 6월이다. 대부분 보송 빙하를 이용하고 있다. 봄철 눈이 많이 쌓인 보송 빙하는 상대적으로 크레바스가 덜 벌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도전적인 산악스키어들은 코스믹 산장을 이용하여 북서능을 경유할 수도 있으며 구떼 산장까지 횡단 등반할 수도 있다. 보송 빙하를 경유하는 스키산행의 기점은 그랑 뮬레 산장이다. 프랑스 산악회 소유로 3월에서 9월까지 산장지기가 있으며 그 외 시즌에는 윈터 룸을 개방한다. 봄철 산악스키 시즌에는 전화(04 50 53 16 98) 예약이 필수며, 저녁과 아침을 포함한 이용료는 45유로다. 한편 발로 무인대피소에서 잘 수도 있지만 시설이 보잘 것 없으며 고소적응이 되지 않은 이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몽블랑 스키 산행에서는 그랑 뮬레 산장을 이용하여도 단숨에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체력과 모든 종류의 설질에서 스키 활강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