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 끝날에 성행할 고도의 영적 미혹과 기사
마태복음 24장 24절 · 참고: 요한복음 10장 27-29절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1. 정교한 가짜의 시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 24:24)
여러분, 얼마 전에 제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유명 택배 회사 이름으로 "주소가 잘못되었으니 아래 링크를 눌러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마침 기다리던 물건이 있었던 터라 저도 모르게 손이 갈 뻔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교하게 위장된 사기 문자였습니다.
요즘은 사람 얼굴과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서 진짜처럼 만들어내는 영상 기술도 있다고 하지요.
전문가들도 눈으로만 봐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마지막 때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참고로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전,
실제로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했던 그 시대적 배경 위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원리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영적 미혹은 뿔 달린 괴물의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종교적이고,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그럴듯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서 "미혹하다"는 헬라어로 '플라나오(πλανάω)'인데,
이 말은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들다', '바른 궤도에서 슬쩍 이탈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대놓고 부수는 게 아니라,
예수님 중심의 삶에서 딱 한 걸음만 옆으로 비껴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미혹입니다.
여기에 동반되는 '표적(σημεῖον, 세메이온)'과 '기사(τέρας, 테라스)'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적, 당장 해결되는 성공, 즉각적인 응답처럼 보이는 것들입니다.
말세의 영적 미혹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모습으로, 복음의 바른 궤도에서 우리를 슬쩍 이탈하게 만듭니다.
요약: 미혹은 허술하지 않습니다. 가장 그럴듯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2. 나도 예외가 아니라는 정직한 인정
오늘 본문에서 가장 두려운 단어는 무엇일까요?
"택하신 자들도"라는 부분입니다.
헬라어로 '에클렉토스(ἐκλεκτός)',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여 구별해 놓으신 자들,
곧 오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 오래 다닌 사람은 이단에 안 빠진다", "믿음 좋은 사람은 미혹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택하신 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미혹의 길로 슬쩍 발을 들이는 때는 언제일까요?
대개 마음이 지치고 불안할 때입니다.
기도가 뜸해지고 하나님과의 사이가 서먹해질 때,
"왜 내 삶에는 응답이 없을까" 하는 목마름이 찾아올 때입니다.
그때 어디선가 이런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만 붙들고 있지 말고, 이 방법을 써봐. 더 빠른 길이 있어."
우리는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입니다.
지금 이 아픔만 빨리 끝내준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덥석 붙잡고 싶은 것이 우리의 연약한 실상입니다.
요약: 영적 미혹은 신앙의 연륜과 상관없이, 우리의 불안과 조급함을 타고 찾아옵니다.
3. 그럼에도 붙드시는 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8-29)
그렇다면 우리는 늘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본문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겠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미혹이 얼마나 정교하고 강력한지를 강조하는 표현이지,
그 자체로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문법적으로 증명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의 견고한 소망은 이 한 구절의 뉘앙스가 아니라, 성경 전체가 한목소리로 증언하는 곳에 서 있습니다.
바로 같은 마태복음 24장 22절, 예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미혹의 시대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위해 친히 개입하고 조정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요한복음 10장은 더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를 붙드시는 손은 예수님의 손이며, 동시에 만유보다 크신 아버지의 손입니다.
두 겹으로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흔들려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도망친 사람이었습니다(창 12장, 창 20장).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찾아가 보호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신앙의 견고함은 우리의 실력이나 분별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길을 잃고 헤매며, 교묘한 유혹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손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미혹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릴 때조차, 그 손은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힘도 결국 그분에게서 옵니다.
우리의 연약함보다 그분의 은혜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요약: 우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분별력이 아니라,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4. 오늘, 내 손의 미혹을 내려놓는 삶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
이제 이 정교한 미혹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식으로 끝나지 않도록,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걸음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나는 귀가 얇아지고 자기중심적으로 흔들리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합니다.
"내 힘으로는 이 미혹의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주님 앞에 손을 듭니다.
오늘 하루, 자극적인 영상이나 검증되지 않은 영적 메시지를 잠시 내려놓고, 성경 한 장을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요즘 많은 분이 인터넷과 SNS에서 들려오는 자극적인 메시지,
"이렇게 하면 복 받는다"는 식의 말들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오늘 그것을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그리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출처가 불분명한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잠시 끄고,
변함없는 말씀 앞에 발을 디뎌보십시오.
크고 요란한 결단이 아니어도 됩니다.
성경 한 장, 조용한 기도 오 분이면 충분합니다.
요약: 큰 결단이 아니라, 오늘 말씀 앞에 머무는 작은 습관이 미혹을 이기는 시작입니다.
5. 목자의 음성을 아는 관계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3)
가짜 지폐를 감별하는 이들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들은 가짜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고, 오직 진짜 지폐를 수없이 만지고 들여다본다는 것입니다.
진짜에 완전히 익숙해지면, 가짜가 손끝에 닿는 순간 바로 느낌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한 출처까지는 저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신앙의 원리를 설명하기에는 참 적절한 이야기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미혹을 이기는 길은 이단 교리를 연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짜이신 하나님, 나의 목자 되신 예수님과 매일 깊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데 있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낯선 음성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종교적 행위나 대단한 체험이 아닙니다.
나를 택하시고, 나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을 아는 관계, 그것이 전부입니다.
오늘도 흔들리고 넘어지는 우리이지만, 그 손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이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 속에서,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첫사랑,
그 친밀한 관계가 이 자리에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정교한 가짜 복음은 당신의 정욕을 채워주며 다가오니, 오직 십자가의 진리로 당신의 영혼을 파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