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그들의 역할이 아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눈사람
배경희
한겨울 사과 속에 잠자는 눈이 내린다
하얀 오리를 만드는 아이들의 오후에
한 사내 점점 흐려지는 눈사람을 기다린다
그동안 세상에는 아이가 사라지고
플라스틱 포화, 이기주의, 비본질의 이파리를
도시는 여름의 무성함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슬한 세계에서 우리는 늑대 여우였다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안 낳았으니
지구가 사라질 때까지 지구를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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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그 절반은 슬픈 일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서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다만,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과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것 혹은 분명히 존재했는데 그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얀 오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본질’을 제쳐두고 아이들은 즐겁고 해맑게 창조의 ‘오후’를 누린다. 하지만 ‘한 사내’는 ‘점점 흐려지는 눈사람을 기다린다’로 시인이 표현했듯이 풋사과가 익어 어른이 되면 사라지는 ‘눈사람’을 무심히 기다리기도 한다. 그것이 생인 줄 알고....,
“인구 절벽”이 숨통을 서서히 조이고 “개구리 증후군”이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끓는 물 속에 개구리를 넣으면 뜨겁다는 것을 알고 뛰쳐나가지만, 차가운 물에 넣고 천천히 데우면 결국에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모르고 죽는다는 말이다. 안일한 생각에 빠졌다가 파국을 맞는 것이다.
아이들이 사라지며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서 국가 소멸로 치닫고 있음을 모르는 개구리 또 그들이 사는 지구 위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썩는데 최소 500년 이상 걸린다고 하는데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인 셈이다. ‘이기주의’ 또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며 지구를 위태롭게 한다. 그로 인해 도시는 ‘비본질의 이파리’로 무성해 가는 여름에 할 말을 잃었나 보다.
심정지 환자를 발견하여 심폐소생술을 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119에 신고해달라”, “자동제세동기 갖다 달라”는 등 역할을 맡기면 그 사람들이 그 일을 제대로 한다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선한 ‘늑대와 여우’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악한 ‘늑대와 여우’로 살고 있는지 ‘아슬한 세계’에 사는 우리의 역할이 중한 시기다.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안 낳았으니’라는 시인의 인과因果를 보는 역설에서 짐작하듯 ‘지구를 삼키’는 ‘플라스틱, 이기주의, 비본질’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림은 그들의 역할이 아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