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쳐 발생한 문학의 한 형식으로 4음보 율격의 장편연속체로 된 시가이다. '가사'(歌詞)라고도 표기했으나
지금은 '가사'(歌辭)로 표기한다.
가사의 기원에 관한 설
가사의 발생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말 발생설과 조선초 발생설이 있다. 고려말 발생설의 근거는 고려말 나옹화상(懶翁和尙:1320~76)이 지었다는 〈서왕가 西往歌〉인데, 국문이 없을 때 창작되어 후대의 문헌에 실린 것이므로 나옹의 작품인지 의심스럽다. 조선초 발생설의 근거는 정극인(鄭克仁:1401~81)의 만년작인 〈상춘곡 賞春曲〉이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후대의 문헌에 정착되었으므로 정극인의 작품인지 의심스럽다. 두 설이 모두 의심스럽기는 하나, 많은 가사작품이 승려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불경의 부록으로 나와 전파되었으며, 〈상춘곡〉보다 앞선 가사의 존재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점 등에서 고려말 발생설이 좀더 설득력을 갖는다.
① 고려 속요 또는, 경기체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설
② 4음보의 연속체 교술 민요가 기록문학으로 정착되면서 이루어졌다는 설
③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 등의 악장에 보이는 시형이 그 기원이라는 설
가사의 특징
① 서정성 : 내면적인 심리나 정서, 자연을 보고 느끼는 감동 등을 노래함
② 서사성 : 기행 가사와 같이 이야기 구조를 가진 가사가 많았다.
③ 교술성 :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이 많아 가사를 교술 시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가사의 장르 구분
조윤제는 가사를 시가와 문필의 중간형태로 함
이능우는 기본성격은 수필이지만 형식은 율문이라 함.
장덕순은 주관적·서정적 작품군과 객관적·서사적 작품군으로 나누어 각각을 서정 장르와 서사 장르에 따로 귀속시켜야 한다고 했음.
조동일은 교술(敎述) 장르를 따로 설정하여 율문의 교술문학으로 규정
김홍규는 서정적·서사적·이념적·교훈적 작품이 공존하는 장르를 하나의 범주에 귀속시키기보다는, 개방성을 인정하는 시각에서 혼합장르로 파악함.
고려 말에 발생하고 조선 초기 사대부계층에 의해 확고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잡아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지속적으로 전해 내려온 문학의 한 갈래이다. 4음 4보격을 기준 율격으로 할 뿐, 행(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연속체 율문(律文)형식을 갖고 있다.
가사의 형식
한 음보는 대개 3·4음절이며, 행수는 제한이 없다. 사대부가사와 같은 정통가사는 마지막 행이 시조의 종장처럼 3·5·4·3으로 되어 있다.
① 3.4 또는 4.4조의 4음보 연속체(10구체 향가 낙구와 시조의 종장 첫구 그리고 정격 가사 종구에 영탄적 특징이 남아 있어 '향가 - 시조 - 가사'에 전통적 형식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 평민 가사는 '종구'가 없는 '변격 가사'임)
② 정격가사의 경우 마지막 행은 시조의 종장과 일치(3.5.4.3의 음수율)
③ 운문과 산문의 중간 형태. 흔히 운문의 형식에 산문의 내용을 실었다고 말함.
가사의 향유층
주요 작가층은 사대부계층이며, 장르 자체가 지닌 폭넓은 개방성 덕분에 양반가(兩班家)의 부녀자, 승려, 중·서민(中·庶民) 등 기술(記述) 능력을 갖춘 모든 계층이 참여했던 관습적 문학양식이다.
가사의 내용
'가사'는 역사적 전개에 따라 내용이 많이 다르다. 가사의 역사는 시조와 마찬가지로 임진·병자 양난을 거친 17세기 중기를 전후로 하여, 조선 전기와 후기 그리고 일제시대의 가사로 나누어볼 수 있다.
조선 전기 가사의 주 담당층은 송순·정철·박인로 등으로 대표되는 양반 사대부 계층이다. 그들은 생활의 체험과 흥취 및 신념을 노래했는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 강호(江湖)가사'이다. 이 작품들에는 혼탁한 세상의 고단함과 갈등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자연에 묻혀 심성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유학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작품은 자연(우주적 질서)과 자아의 조화로운 합일을 추구하는 높은 정조를 띠게 되었는데, 이러한 서정적 정조는 이 시기 가사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선 후기 가사는 담당층이 다양해지면서 작품의 경향도 다양해졌다. 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 등 여러 방면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 및 평민 작자층의 성장에 힘입은 문제의식의 확대·심화, 즉
① 당대의 모순과 학정으로 인한 민중의 고통,
② 추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의 풍자를 통한 전환기적 세태의 희화화,
③ 남녀간의 애정을 중심으로 한 욕구의 좌절 및 성취와, 그 주제를 구현하거나 표출하는 방식의 다변화 등은 특히 중요한 변모이다. 사대부의 가사는 서정적인 기풍이 퇴조했으며, 기행가사·유배가사류 등에서 생기있게 나타나고 있듯이 구체적인 현실을 담아내려는 경향이 보인다.
일제시대의 가사는 사회적 격변기의 요구로 인해 다양함이 후퇴하고, 형태의 변화와 함께 교술적인 면이 강화되었다. 흔히 개화가사라고 하는 이들 가사는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길이가 매우 짧아졌으며, 분련형식으로 인한 후렴구가 많이 사용되었다. 〈독립신문〉에 주로 실린 애국가류가 〈대한매일신보〉의 우국가사류보다 좀더 창가적 특징을 띠고 있다. 애국가류는 비교적 짧은 형태로 미래에 대한 낙관 아래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를 예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우국가류는 애국가류의 낙관적 개화주의의 도취나 흥분된 분위기보다는 냉혹한 국제질서의 적자생존 원리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현실고발과 풍자적 공격성 이 강화되면서 분량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 시가의 한 양식.
〔개 요〕
고려 말에 발생하고 조선 초기 사대부계층에 의해 확고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잡아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지속적으로 전해 내려온 문학의 한 갈래이다. 4음 4보격을 기준 율격으로 할 뿐, 행(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연속체 율문(律文)형식을 갖고 있다. 주요 작가층은 사대부계층이며, 장르 자체가 지닌 폭넓은 개방성 덕분에 양반가(兩班家)의 부녀자, 승려, 중·서민(中·庶民) 등 기술(記述) 능력을 갖춘 모든 계층이 참여했던 관습적 문학양식이다.
내용 또한 까다로운 제한요건이 없어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명칭은 ‘가사(歌詞)·가사(歌辭)·가嗜’ 등이 관습적으로 통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문학장르 명칭으로 ‘가사(歌辭)’라고 일반적으로 부른다.
〔장르적 성격〕
가사의 장르적 성격에 관한 논의는 가사 자체의 성격 파악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며, 전체 국문학의 질서체계라는 거시적 구도 아래 해명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움이 따른다. 그 동안 축적된 성과를 검토하면 크게 두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질서와 규범의 체계로서의 장르론이며, 다른 하나는 개별 양식들의 속성 파악에 중점을 두는 다원적 질서로서의 양식론이다. 도남(陶南) 조윤제(趙潤濟)는 처음에 가사를 ‘운율적 생활의 일부’라는 ‘시가(詩歌)’ 개념으로 다루었으나 후에 그 전의 태도를 자기 비판하면서 ‘시가는 운문이지만 운문은 시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가사는 형식상 시가이지만 내용상 문필’이기 때문에 시가와 문필 중 어디에도 귀속될 수 없다며 ‘시가, 가사, 문필’이라는 3분 체계를 세운다.
그 뒤 다시 ‘문필’이라는 개념의 모호성을 탈피하여 ‘시가, 가사, 소설, 희곡’이라는 4대 부문을 제시하는데, 이는 서구의 고전 문학의 3분체계인 서정, 서사, 희곡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국문학의 특수성도 함께 고려한 것이다. 연구 초기에 조윤제가 국문학의 체계를 세우는 과정에서 2분법, 3분법, 4분법으로 수정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가사’ 장르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 가사의 장르론은 곧바로 전체 국문학 체계와 직결된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이어서 조동일(趙東一)은 이론으로 체계화된 획기적인 장르 이론을 세운다. 그는 ‘장르론의 원리는 장르 상호간의 관계론에 그치지 않고 각 장르 내부의 논리로 심화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분류론과 범주론 차원에 머물고 있던 장르적 인식을 극복하는 포괄된 장르 이론을 정립한다.
그리하여 ‘가사’는 서구의 전통적 장르 구분법인 3분법으로 정리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특수한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하면서 가사의 장르문제를 공시적·대비적·통시적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한 후, ‘가사’는 ‘있었던 일을 확장적 문체로, 일회적으로, 평면적으로 서술해 알려 주어서 주장한다.’는 ‘교술’ 장르류에 속한다고 했다. 여기서 ‘교(敎)’란 알려 주어서 주장한다는 뜻이요, ‘술(術)’은 어떤 사실이나 경험을 서술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교술은 ‘비전환 표현’이며, 자아와 세계의 대립 양상에 따른 거시적 4분체계에서는 그것이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조동일의 이론은 ‘가사’ 장르는 물론 여러 방면에 걸친 문학 이해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조윤제와 조동일의 장르론이 규범성에 중점을 두어 질서로서의 문학의 체계를 세우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이러한 방법론 자체가 지니는 ‘지나친 규범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문학의 역동성을 중시하는 ‘다원적 양식론’이 논의되기에 이른다.
가사문학 논의에서 내적 형식으로서 문학의 본질을 가리킨 ‘양식’ 개념의 도입은 장덕순(張德順)에 의해 시작된다. 그는 형태라는 용어와 대비하여‘양식’이란 용어를‘인간 정신이 문화적 생활을 형성해 가는 방식’이란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이러한 양식개념에 따라 문학을‘서정적 양식, 서사적 양식, 극적 양식’으로 구분하고,‘가사’는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가사와 객관적이고 서사적인 가사로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주종연(朱鍾演) 역시 가사를 유개념으로 서정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으로 2분하고, 종개념에서 수필로 규정했다가 뒤에 이를 다시 ‘서정적인 것, 서사적인 것, 교시적인 것’으로 3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논의의 한계는 ‘양식론’의 속성을 주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제 운용함에 유개념과 하위 개념 사이를 분별 적용하지 못함으로써 하나의 역사적 장르인 가사를 2분 또는 3분해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데 있다.
가사에 양식론적 사고를 원용하여‘문학적 진술방식’을 양식개념으로 보아 이것을 기술적(記述的) 차원에서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실례는 김병국(金炳國)에 의해 시도되기도 하였다. 가사를 역사적인 관습 장르로 보아 가사의 ‘진술양식’의 복합성에 주목하여 양식론을 구체적으로 운용하는 실제는 김학성(金學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는 공시적 관점에서 관습적 장르의 가사와 통시적 관점에서 역사적 장르의 가사라는 두 측면을 중시하고, 가사는 서정적 지향(서정성), 서사적 지향(서사성), 교술적 지향(교술성)이라는 문학적 ‘정신’을 동시에 보이는 장르적 속성의 ‘혼합성’ 내지는 ‘복합성’을 갖고 있으며, 4음 4보격이라는 율격장치의 손쉬움과 낯익음으로 계층을 초월하여 모든 계층에 개방되어 있는‘개방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적 장르로서의 가사는 전·후기 가사의 동태적 변화에 주목하여 전기 가사는 서정·서사·교술성의 장르적 성격 가운데 어느 하나를 중심적 정신으로 삼고, 다른 둘을 보조 장치로 포용하는 장르의 지향을 보이며, 이러한 장르의 복합성은 임·병 양란 이후 사회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해지면서 각 지향간의 불균형으로 인해 서정성·서사성·교술성이 각각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논의를 폈다.
뒤에 수정하여 가사를 포괄할 수 있는 원리를‘주제적 양식’이라는 진술 방식에 있다고 보면서,‘서정적·서사적·극적 양식’들은 그 주제의 양식이 실현되는 양태들로 파악하기도 했다. 이‘주제적 양식’이란 용어는 조동일의 ‘교술’개념이 주는 부담감을 덜어 준다는 측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김흥규(金興圭)는‘가사작품들의 다양한 성향에 주목하여 그것을 여러 종류의 경험, 사고 및 표현 욕구에 대하여 폭넓게 열려 있는 혼합 갈래의 일종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논의는 가사가 ‘서정, 서사, 교술, 희곡’의 여러 성격이 복합·혼효되어 있다는 주장이라는 측면에서 양식론의 사고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제5의 장르류인 ‘중간·혼합 갈래들’의 장르 설정의 기준이 다른 네 가지 장르류와 동질성을 갖지 못한 까닭에 논리적 설득력이 약하다.
더불어 실제로 구체적 문학작품의 대개가 어느 정도는 혼합성과 복합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혼합성의 정도가 주관적인 기준으로 판별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한편 최근에 성무경(成武慶)은 기존 장르론을 재검토하면서 새로운 장르론의 구도를 제시했는데, 가사의 존재양식은 ‘노래하기라는 환기방식이 서술의 입체화를 방해하여 서술의 평면적 확장’을 이루는 ‘전술(傳述)양식’이라고 하고, 그‘전술양식’은 서술언어의 통사적 의미를 구조적으로 연계하는 특성을 보이며, 또‘나’라는 ‘인격적 서술 주체의 목소리’로 진술되는 까닭에 서술의 신빙성을 확보하는 문학양식이라고 했다.
일반 서술자 목소리의 신빙성은 소설적 세계관이 성립되면서 신빙성이 의심받게 되고, 신빙성 있는 서술자 ‘나’로 진술되는 문학적 진술방식이 필요해졌는데, 이것이 가사문학을 발생시킨 근본적 동인이라 보았다. 이‘나’에 의한 서술은 근대 소설이‘1인칭 서사’를 실험하면서 소설의 서술방식으로 자리잡자 그 신빙성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어, 근대 1인칭소설의 등장과 함께 가사 장르의 양식적 존재가치가 소멸된 것으로 설명했다.
이 논의는 기존의 가사 장르 논의가 안고 있던 몇 가지 모순을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밖에도 가사의 담론 특성을 통한 장르 논의나 향유방식을 포괄하는 역사적 장르로서의 가사에 대한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는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편 전체 국문학의 질서 체계와 연관된 논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가사가 지닌 ‘서정’의 문제는 가사문학 연구 초기부터 줄곧 논의되어 왔는데,‘가사는 시가인 이상 엄연한 시(詩)’라고 하거나 ‘가사는 비연시(非聯詩)로서의 정형시’라고 할 때의‘시가’또는‘시’는 가사가‘서정 장르’에 속한다는 표현이거나 적어도 ‘서정성’이 가사의 중심적 표현 원리라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는 의견이다.
또한 가사를 산문적인‘수필’이라고 보자는 견해와 가사의 독자성을 인정하여‘가사는 가사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러한 의견은 가사 내용의 다양성 또는 독자적 특성을 살리려는 의도이기는 하나 체계적인 장르론에 입각한 것이 아니므로 재고의 여지가 있다.
〔유형 및 내용〕
가사문학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과 다층적 세계관 및 이념들이 총체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기존 가사의 유형을 내용별로 분류한 것을 보면, 적게는 5종에서부터 많게는 32종류(139개 항목으로 나눈 경우마저 있다)에 이르기까지 유형 분류의 진폭이 아주 크다. 가사는 한 작품 안에서도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는 작품이 많아, 단순하게 구분하면 가사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세분하면 유형의 가닥이 잡히지 않아 복잡성만 더해진다.
그러므로 학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유형의 범주들을 토대로 교차 분류를 피하는 방향에서 몇 가지 유형을 묶어 그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한데, 현재로선 일정한 범주의 교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사의 주요 작가층이 양반 사대부계층이고, 작품의 양과 질에서, 또 작품세계에서도 양반 사대부 세계관의 투영이 지배적이라는 판단 아래 사대부가사(士大夫歌辭)를 중심으로 기술(記述)하고, 규방가사(閨房歌辭)와 서민가사(庶民歌辭)를 부가적 항목으로 하여 각각의 내용별 유형을 살피기로 한다.
이 밖에 특정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주제적 기준에 따른 것이기는 하나, 종교가사와 개화가사를 또 다른 유형으로 하여 간략히 기술해 보기로 한다.
(1) 사대부가사
① 강호생활(江湖生活):가사 장르가 문학적 세련성을 획득하며 구체적인 유형으로 자리잡을 때 형성된 유형으로, 자연과 합일을 표방하면서 강호지락(江湖之樂)을 읊은 작품들이 있다. 강호한정(江湖閑情)과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주된 주제이다.
이런 강호가사로는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 賞春曲〉, 송순(宋純)의 〈면앙정가 潭仰亭歌〉, 정철(鄭澈)의 〈성산별곡 星山別曲〉, 차천로(車天輅)의 〈강촌별곡 江村別曲〉, 이양오(李養五)의 〈강촌만조가 江村晩釣歌〉, 박인로(朴仁老)의 〈사제곡 莎堤曲〉·〈노계가 蘆溪歌〉, 허강(許艮)의 〈서호별곡 西湖別曲〉, 정훈(鄭勳)의 〈수남방옹가 水南放翁歌〉, 작자 미상의 〈낙민가 樂民歌〉·〈창랑곡 滄浪曲〉·〈안빈낙도가 安貧樂道歌〉·〈은사가 隱士歌〉 등이 있다.
② 연군(戀君)과 유배(流配):사대부란 관료로서의 ‘대부(大夫)’와 독서인으로서의 ‘사(士)’가 복합된 명칭으로, 정치적인 진퇴(進退)를 숙명적으로 반복한 계층이다. 이러한 정치현실을 배경으로 사대부의 갈등을 읊은 가사에는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연군가사(戀君歌辭)와 정치적 패배로 인해 유배를 당해 유배지에서 겪는 고난의 생활상을 기술하면서 우국지정(憂國之情)을 토로한 유배가사(流配歌辭)가 있다.
전자에는 정철의 〈사미인곡 思美人曲〉·〈속미인곡 續美人曲〉, 조우인(曹友仁)의 〈자도사 自悼詞〉,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別思美人曲〉,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이긍익(李肯翊)의 〈죽창곡 竹窓曲〉 등이 있고, 후자에는 조위(曹偉)의 〈만분가 萬憤歌〉, 송주석(宋疇錫)의 〈북관곡 北關曲〉, 이방익(李邦翊)의 〈홍리가 鴻罹歌〉, 안조환(安肇煥)의 〈만언사 萬言詞〉,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 北遷歌〉 등이 있다.
③ 유교 이념과 교훈:유교적 실천 윤리를 규범적으로 제시하거나 경세적(警世的) 교훈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특히 봉건 사회질서가 흔들리던 조선 중·후기에 지배질서의 유지나 이념 강화를 목적으로 많이 지어졌다.
이 유형에는 이름 높은 유학자가 지은 것이라면서 진술의 권위를 강조하는 〈권선지로가 勸善指路歌〉(조식), 〈도덕가 道德歌〉·〈금보가 琴譜歌〉·〈상저가 相杵歌〉(이황), 〈자경별곡 自警別曲〉·〈낙지가 樂志歌〉(이이) 등과 허전(許唆)의 〈고공가 雇工歌〉 및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 雇工答主人歌〉, 정훈의 〈성주중흥가 聖主中興歌〉, 이기경(李基慶)의 〈심진곡 尋眞曲〉, 정인찬(鄭寅燦)의 〈삼강오륜자경가 三綱五倫自警歌〉, 유영무(柳榮茂)의 〈오륜가 五倫歌〉, 작자 미상의 〈오륜가 五倫歌〉, 김경흠(金景欽)의 〈삼재도가 三才道歌〉 등이 있다.
넓게는 조선 후기에 여러 편의 경세류(警世類) 가사를 편집해 묶은 〈초당문답가 草堂問答歌〉나 규방가사의 한 유형인 〈계녀가 誡女歌〉류 등도 이 유형에 속한다.
④ 기행(紀行):일상적 주거 환경을 벗어나 명승지나 사행지(使行地)를 기행하고 여정(旅程)을 중심으로 견문과 감회를 읊은 가사들로서, 이 유형은 국내 기행가사와 국외 기행가사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주로 관료들이 부임지(赴任地)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거나 임지(任地) 주변의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경관을 읊은 것이고, 후자는 중국이나 일본에 사행을 다녀온 것으로 견문의 기록성이 높다.
국내 기행가사로는 백광홍(白光弘)의 〈관서별곡 關西別曲〉, 정철의 〈관동별곡 關東別曲〉, 이현(李俔)의 〈백상루별곡 百祥樓別曲〉, 조우인의 〈관동속별곡 關東續別曲〉·〈출새곡 出塞曲〉, 박순우(朴淳愚)의 〈금강별곡 金剛別曲〉, 위백규(魏伯珪)의 〈금당별곡 金塘別曲〉, 작자 미상의 〈금강산유람록 金剛山遊覽錄〉 등이 있다.
국외 기행가사로는 박권(朴權)의 〈서정별곡 西征別曲〉,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 日東壯遊歌〉, 유인목(柳寅睦)의 〈북행가 北行歌〉,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 燕行歌〉, 작자 미상의 〈연행별곡 燕行別曲〉 등이 있다. 이방익의 〈표해가 漂海歌〉는 예기치 않은 표류로 인한 해외 경험을 읊은 것이다.
⑤ 전란의 현실과 비분강개:나라 안팎의 전란의 피해와 처참한 정상, 거기에서 오는 비애와 의분(義奮)을 토로한 작품들도 적지 않다. 전란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양사준(楊士俊)의 〈남정가 南征歌〉, 박인로의 〈태평사 太平詞〉·〈선상탄 船上嘆〉, 최현(崔晛)의 〈용사음 龍蛇吟〉 등이 있고, 전란 후 곤궁한 현실을 드러낸 작품으로 박인로의 〈누항사 陋巷詞〉, 정훈의 〈우활가 迂闊歌〉·〈탄궁가 嘆窮歌〉등이 있다. 애국계몽기의 의병가사도 이 유형에 포함될 수 있다.
⑥ 영사(詠史)·풍속(風俗)·세덕(世德):우리 나라의 역사나 가문(家門)의 전통을 노래한 것, 중국 역사나 고사(故事)를 읊은 것, 또 지리(地理)·풍물(風物)·풍속(風俗)·인사(人事) 등 신변에 관심을 표현한 것들을 말한다.
이들 중에는 신득청(申得淸)의 〈역대전리가 歷代轉理歌〉, 작자 미상의 〈해동만고가 海東萬古歌〉, 박리화(朴履和)의 〈만고가 萬古歌〉·〈낭호신사 朗湖新詞〉, 여러 종류의 〈역대가 歷代歌〉·〈한양가 漢陽歌〉·〈농부가〉 일부,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팔도읍지가 八道邑誌歌〉·〈팔역가 八域歌〉·〈광산김씨세덕가 光山金氏世德歌〉·〈전의이씨세덕가 全義李氏世德歌〉, 김충선(金忠善)의 〈모하당술회가 慕夏堂述懷歌〉, 정습명(鄭襲明)의 〈정처사술회가 鄭處士述懷歌〉 등이 있다.
(2) 규방가사
규방가사는 부녀자들에게 향유된 가사로 ‘내방가사(內房歌辭)’라고도 한다. 규방가사의 내용별 유형 구분 역시 논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크게 ‘교훈가사’와 ‘생활 체험가사’로 나눌 수 있고, 전자는 다시 ‘계녀가류’와 ‘도덕가류’로, 후자는 ‘탄식류’와 ‘송축류’, 그리고 ‘풍류류’로 나뉜다.
‘교훈가사’의 주류는 ‘계녀가류’로 시집가는 딸에게 시집살이에 필요한 생활 규범을 가르칠 목적에서 ≪소학 小學≫등의 유교적 규범을 전달하는 것이며, 그 내용이 13개 항목으로 전형화해서 구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계녀가’라는 제목의 많은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규범서에 바탕을 두지만 화자의 구체적 체험을 서술해 훈계하는 유형이 있는데, 〈김씨계녀사〉·〈복선화음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도덕가류’는 특정인에게 주는 교훈이 아니라 일반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서술한 것으로 부덕(婦德)을 강조하는 〈도덕가〉·〈오륜가〉·〈나부가 懶婦歌〉 등이 있다. 그러나 교훈가사의 ‘계녀가류’와 ‘도덕가류’는 한 권의 책에 같이 필사되거나 여러 장의 ‘두루말이’에서 같이 발견되므로 내용을 분석하여 세분할 때 구분되는 유형이지 엄밀한 유형구분은 힘들다.
‘생활체험가사’는 〈화전가〉류 가사가 많으며, 시집살이의 괴로움과 신세한탄이 주류를 이룬다. 그 가운데 ‘탄식류’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인생의 무상감을 읊은 것으로 〈사친가〉·〈사향가 思鄕歌〉·〈여자자탄가〉 등이 있고, 남편의 사별, 노처녀의 한을 노래한 것으로 〈한별곡 恨別曲〉·〈원별가 怨別曲〉·〈청상가 靑孀歌〉·〈노처녀가〉·〈춘규자탄별곡〉 등이 있다.
‘송축류’는 자녀의 장래를 축복해 주는 〈귀녀가〉·〈재롱가〉·〈농장가〉 등이나, 부모의 회갑이나 회혼을 맞아 장수를 송축하는 〈수연가 壽宴歌〉·〈헌수가 獻壽歌〉·〈회혼참경가 回婚參景歌〉 등이 있다. ‘풍류류’는 〈화전가 花煎歌〉가 대표이며, 여행의 즐거움을 노래한 〈관동팔경유람기〉·〈경주관람기〉 등이 포함된다.
(3) 서민가사
임진·병자 양난 이후 서민의식의 성장은 문학사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두루 확인되는데, 가사작품에서도 그러한 지향을 보이는 작품들이 일부 보인다. 서민가사는 서민에 의해 지어졌거나 서민의식이 투영된 가사를 말하는데, 작가층의 개념이 모호해서 유형 성립에 문제점을 안고 있다.
종래에 서민가사의 주류는 ‘현실적 모순의 폭로와 비판’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로 알려졌는데, 〈갑민가 甲民歌〉·〈기음노래〉·〈거창가 居昌歌〉·〈정읍군민란시여항청요 井邑郡民亂時閭巷聽謠〉·〈민원가 民怨歌〉·〈합강정가 合江亭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이 봉건 지배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곧바로 이들을 ‘서민가사’라 할 수는 없다.
이 유형에 속한 작품의 대다수는 작자를 알 수 없는 것들로서 유교의 정신세계를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이 많기 때문에 ‘현실비판가사’라는 유형으로 따로 묶어 다루며 그 작자층도 서민층이 아니라 향촌의 몰락사족층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대개 조선 후기 신분제가 심하게 동요되던 시기에 나온 작품들로 보이는데, 이 시기는 양반계급의 숫자가 증가를 보인 반면, 실질적인 권리는 상대적으로 약해져 양반층 내부에서도 체제 비판이나 현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현실 사안에 대해 제한적 비판을 보이는 작품들을 서민가사로 보기보다는 기존 관념에 대한 도전과 인간 본능의 표출을 주제의식으로 하여 세계관에 변화를 보이는 작품들에서 서민들 특히 시정인의 개방된 세계관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유형에는 〈청춘과부곡〉·〈규수상사곡〉·〈상사회답곡〉·〈양신회답가〉·〈단장사〉·〈송녀승가〉·〈재송녀승가〉·〈거사가〉 등이 있다.
(4) 종교가사
종교의 교리를 세상에 널리 펴는 것을 주제로 한 가사로 경전 교리를 가사체로 서술한 것, 신앙정신에 입각하여 창작한 것, 전도를 목적으로 지은 것 등 모두 포함된다. 종교가사에는 불교가사, 천주교가사, 동학가사, 유교가사 등이 있다.
불교가사는 가사 발생문제의 쟁점이 되어온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서왕가 西往歌〉·〈승원가 僧元歌〉 등에 이어 휴정(休靜)의 〈회심곡〉과 회심곡의 이본들, 침굉(枕肱)의 〈귀산곡 歸山曲〉·〈태평곡〉, 지영(智塋)의 〈전설인과곡 奠設因果曲〉·〈수선곡 修善曲〉 등이 있다.
천주교가사는 정약전(丁若銓) 등이 지은 〈십계명가 十誡命歌〉, 이벽(李檗)이 지은 〈천주공경가〉, 도마 최양업(崔良業)의 〈사향가〉·〈삼세대의〉 외 20편, 김기호(金起浩)의 〈성당가 聖堂歌〉 등이 있다.
동학가사는 천도교가사라고도 하는데, 후천 개벽의 도래를 주창하면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의 ≪용담유사≫ 9편은 가사가 곧 동학의 경전이 된 작품이며, 김주희(金周熙)가 설립한 상주 동학본부에서 수집 정리하여 간행한 동학가사 100여 편이 있다. 동학가사는 민중의 힘을 결집시킨 구국과 개혁의 사회적 이념이 자생적 근대 지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유교가사는 이태일의 〈오도가 吾道歌〉가 대표작이다. 종교가사는 세계관의 전환을 모색하면서 유교 이념과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근대로 넘어 오는 이행기(移行期)에 이들이 가사를 매체로 이념논쟁을 벌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5) 개화가사
갑오경장(1894) 이후, 한일병합(1910)에 이르는 소위 ‘개화기’를 배경으로 개화문제를 중심화제로 삼은 가사들을 말한다. 이 유형은 개화문제를 놓고 찬·반의 입장이 분명하게 갈리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서구와 일본을 문명 개화의 모범으로 삼고 위로부터의 개혁을 내걸면서 계몽적 개화사상을 주장한 것으로는 〈애국가〉·〈동심가〉·〈성몽가〉 등이 있고, 반제구국(反帝救國)을 주장하면서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의식하고, 신문화 수용을 비판한 것으로는 〈문일지십 聞一知十〉·〈일망타진 一網打盡〉〈육축쟁공 六畜爭功〉 등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사 개관
문학의 한 형식.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쳐 발생했는데 작자는 주로 사대부, 승려, 부녀자, 평민 기타 각종 민간 종교계 등 다양하며 다행성(多行性) 율문(律文)의 문학 형식이며 '가사(歌詞)', '가사(歌辭)' 등으로도 불리었으나 지금은 '가사(歌辭)'로 표기한다.
개설
(1) 가사의 분류
가사는 일반적으로 그 작가에 따라 사대부가사. 규방가사. 평민가사 등으로 그 영역을 설정할 수 있으며. 그 가창(歌唱)의 역사성에 따라, 궁중의 악공(樂工)들에 의하여 가창되었던 십이가사(十二歌辭), 광대들의 단가(短歌), 소리꾼들의 잡가(雜歌) 및 서도창(西道唱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2) 형식
대체로 한 행이 8·조의 무제약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사대부가사인 정통가사에 있어서는 작품의 끝맺음 부분이 시조의 종장(3·5·4·3조)과 같이 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평민 가사 및 규방가사는 그 행수가 방만하며, 나아가서는 기행 가사까지 나타나게 되었으며, 귀양살이의 사연을 쓴 유배가사와 세시풍속 같은 기록물도 나타나게 되었다.
(3) 장르
국문학에서 가사를 시가로 다루었으나, 뒤에 작품 내용에서 산문적 특질을 발견하였다. 조윤제(趙潤濟)는 그의 논설에서 "그저 가사라 하니까 시가의 일종이라고 막연히 생각되어왔을 뿐인데, 그러면 과연 가사는 단순히 시가의 일종이라 규정하여 버려두어서 좋을 것인가.......' 가사를 단순한 시가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시가 아닌 다른 문학, 즉 감상문. 수필문. 기행문과 비슷한 성격이 있고, 또 한문류의 사(辭).부(賦).서(序).기(記)에 가까운 점이 있다."고 하여, 결론적으로 운문적 형식을 빌어 문필적 내용을 표현·묘사하는 문학, 즉 양면을 동시에 포함하는 문학으로 가사문학이라는 것을 따로 확립시키고자 하였다. 그 뒤 고정옥(高晶玉)은 "실로 가사는 현대소설의 '인생의 서사시'라고 불리는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중세기의 산문문학'인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장덕순(張德順)은 서구적 장르개념을 원용하여, 주관적이며 서정적인 가사는 시가로 개관적이며 서사적인 사가는 수필로 처리하였다. 이태극(李泰極)은 가사에서 운문형식과 서정성의 우세 및 가창되었던 사실 등을 들어, 가사는 시가라고 주장하였다. 조동일(趙東一)은 서구의 전통적 장르 구분법인 3분법만으로는 정리될 수 없는 복합적 성격을 지닌 것이 가사라고 말하고, 새로운 장르의 설정을 모색하여 가사를 교술(敎述)장르로 규정하였다. 주종연(朱種演)은 독일 문예학의 이론을 원용하여 세계문학이 지닌 보편적인 장르와의 관련 속에서 가사문학의 특성을 구명하고자 하여, 가사문학의 장르는 유개념적으로 서정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으로 양분되고, 종개념적으로는 수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능우(李能雨)는 가사에서 보통 일괄하여 다루고 있는 잡가(雜歌). 단가(短歌). 긴민요. 기행. 만록(漫錄). 만필(漫筆) 등을 따로 특립(特立)시켜 볼 것을 제의하였으며 이는 장르의 파악이라는 점에서 김병국(金炳國)에 의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사의 복합성과 유동성은 3분법이나 4분법의 개념틀에 맞추는 정태적 장르론만으로는 그 해명이 불가능하다고 논설한 다음, 프랑스 문예학의 한 이론을 원용하고 가미하여 12가지 개념체계로 가사의 장르적 성격을 파악하였다. 김학성(金學成)은 공시태로서의 가사는 관습적 장르로서 복합성을 지니며, 공시태로서의 가사는 역사적 장르로서의 유동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중시하였다.
(4) 내용 및 유형
정형용(鄭亨容)은 일찍이 가사의 내용적 분류를 궁정가사·양반가사·내방가사·평민가사 등으로 하였다. 그 뒤 김기동(金起東)은
① 서경문학으로서의 가사,
② 애정문학으로서의 가사,
③ 은일문학으로서의 가사,
④ 서사문학으로서의 가사,
⑤ 감상문학으로서의 가사,
⑥ 교훈문학으로서의 가사,
⑦ 이여(爾餘)의 가사 등으로 구분하였다.
이태극은 작품에 담겨진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유가성. 도가성. 혼융성. 문학성 등으로 분류하고, 그 형식을 위주로 하여 서정·서사·기행·수필·일기·사대(事大)·자주(自主) 등으로 분류하였다. 유우선(柳玗善)은 상사·경계·풍경·한정(閑情)·교훈·연정·권불(勸佛)·경물(景物)·서사·기행·은일·유희(遊戱)·유배·서경·탐방·개탄·권농·권선·유흥·몽유·사친(思親)·화초·전쟁·이별·무상·자탄(自嘆)·풍자·사우(思友)·낙빈(樂貧)·지명·원한·찬양·인물·징계·음주·경축·동학(東學)·풍류·퇴폐·문물·상서(相書)·한로(恨老)·궁궐·탄세(嘆世)·사제(思弟)·연사(演史)·제전(祭奠)·허무·선유(船遊)·금슬·악곡·춘흥·향락 등의 53개항으로 분류하였으며, 이상보(李相寶)는 은일가사·유배가사·기행가사·전쟁가사·도덕가사·송양가사(頌揚歌辭)·상사가사·포교가사 등의 8개항으로 분류하였다. 서원섭(徐元燮)은 연주충군적인 가사·안빈낙도적인 가사·도덕적인 가사·추모찬송적인 가사 등의 7항목으로 분류하였다. 또, 주제별 분류에서는 강호한정·연주충군·추모찬송·복수송축(福壽頌祝)·도덕교훈·기탁풍류(寄託風流)·유람기행·풍류기행·풍물행락·풍물서경(風物敍景)·연모상사·무상차탄(無常嗟嘆)·장부호기(丈夫豪氣)·고사회고(古事懷古)·회포술의(懷抱述義)·풍속권농(風俗勸農)·종교포덕(宗敎布德) 등으로 정리하였다. 최강현(崔康賢)은 주제별 유형, 소재별 유형, 사상별 유형으로 구분하여,
주제별 유형으로는 29개항, 즉
①개탄 : 개인적인 탄식과 인생무상 및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분을 읊은 노래-<내자탄>. <노처녀가>.<백발탄식가> 등
②경물 : 자연의 아름다움과 기이함을 읊은 노래-<개암가 皆巖歌>. <희설가 喜雪歌>등,
③경세 : 세상사람들 세태를 타일러 조심시키는 노래-<심진곡 尋眞曲>. <횡설수설수세가> 등,
④계몽 : 계발하고 깨우치기 위한 노래-<개명가>. <경고동포문 警告同胞文>등,
⑤교술 : 일상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노래-<농가월령가>. <팔도읍지가 八道邑誌歌> 등,
⑥교훈 : 교계훈육의 노래-<계녀사 戒女詞>. <심청효행가>등,
⑦기행 : 국내외를 여행하며 얻은 경험. 느낌. 견문의 노래- <관동별곡>. <일동장유가>등
⑧모현(慕賢) : 선현을 사모하여 그 사당이나 서원 등 유적지를 받들거나 방문하고 지은 노래-<도산 별곡>. <독락당 獨樂堂> 등,
⑨몽유 : 꿈속의 경험이나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이상적 소망을 꿈에 가탁(假託)한 노래-<몽유가>. <몽중탄식가> 등,
⑩사친 : 자식이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는 노래-<사친정부모가>. <월령가> 등,
⑪송축(頌祝) : 축하와 기리는 마음을 표현한 노래-<형수씨수연경축가>.<회혼잔치가> 등, ⑫연군 : 임금을 사모하거나 그리워하는 노래- <속미인곡>. <죽창곡> 등,
⑬염정 : 남녀간의 사랑과 그리워함을 노래-< 미인별곡>.<홍도상사가 紅桃相思歌> 등,
⑭우국 : 나라일을 근심한 노래-<시사분탄가>. <회포가> 등,
⑮우정 : 친구간의 우의를 표출한 노래-<붕우상영가>. <사우가 思友歌> 등,
16. 은일 : 세상일을 피하여 숨어 사는 기쁨을 읊은 노래-<상춘곡>,<일민곡>
17. 이별 : 이별을 읊은 노래 - <송별애교사>. <형제원별곡> 등,
18. 자전(自傳) : 자기의 전기적인 노래-<갑일서회가>. <회덕송씨부인전> 등,
19. 전쟁 : 전쟁의 경험과 승리의 기쁨 및 그 의지를 묘파한 노래-<남정가>. <신의관창의가> 등,
20. 조애(弔哀) :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거나 슬퍼한 노래-<망실애사 亡室哀司>.<선친회곡> 등, 21. 취락 : 술에 취하여 인생을 즐거워한 노래-<권주가).<화류가 花柳歌>등,
22. 친목 : 친족간에 서로 친하여 뜻이 맞고 정답거나 정다워야 한다는 뜻을 옮은 노래- <안동김씨친목화수가>.<임오화수가>등,
23. 포교 : 종교적 신앙을 권장한 노래-<권선가 勸禪歌>.<십계명가>등,
24. 풍류 : 풍치 있게 시를 짓고 놀이하며 멋스럽게 노는 노래-<놀음유쾌가> . < 태평화전가> 등,
25. 풍물 : 풍속과 문물의 노래 -<경복궁가> . <한양가> 등,
26. 풍자 : 사회의 죄악상이나 불미스러운 점을 비꼬아 찌르는 뜻으로 묘출한 노래-<고공가 雇工歌> . <합강정선유가 合江停船遊歌> 등,
27. 한정 : 한가한 정의(情誼)의 노래-<강촌별곡> . <춘산노인가> 등,
28. 회향(懷鄕) :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며 지은 노래-<견월사향가 見月思鄕歌> . <귀래사향가 歸來思鄕歌> 등,
29. 희롱 : 귀여운 어린아이를 어루며 달래거나, 동류 또는 남녀간에 장난하며 놀리며 지은 노래-<종제 매유희가> . <여자농락가> 등으로 나누고, 소재별 유형으로는 가족·강산·경계·교훈·궁루(宮漏)·권농·권선·권학·도덕·몽유·무상·무아·미인·붕우·사군·사향·상술(相術)·선유·송축·악기·애제(
哀祭)·여공(女工)·연정·용저( 杵)·원탄(怨嘆)·유배·음주·이별·전쟁 ·조충(鳥蟲)·지명·척사(擲柶)·탐방·포교·한정·향락·화분(花芬)·희학(戱謔) 등의 39항목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사상별 유형으로는 유학·불교·도교·서학·동학 등의 다섯 유형으로 분류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①유학 : 효·제·충·신·열을 주로 한 일상생활의 실천도덕으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목표로 하는 의지가 들어 있는 노래-<눌봉도덕가 訥峰道德歌> . <심진곡> 등이다.
②불교 : 불타에 의한 종교 또는 불타의 교법에 의한 종교 및 성불의 종교로서 무루(無漏)의 정지(正知)로 우주의 진리에 체달(體達)하고,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성자가 되거나 세간의 도덕을 완성하려는 목적의 노래-나옹화상(懶翁和尙)의 <서왕가 西往歌> . <참선곡 參禪曲> 등이다.
③도교 : 무위자연을 존경하고 인위(人爲)를 배척하며, 자연의 대도(大道)에서 유유자적함을 이상으로 삼는 노래 -<낙빈가 樂貧歌> . <요지가 瑤池歌> 등이다.
④서학 : 천주교가사를 말한다-<영세가> . <천주공경가 天主恭敬歌> . <허탄가> 등이다
⑤동학(東學) : 천도교 가사를 말한다-<논학가> . <안심가> . <통운가> 등이다.
사적전개
가사문학의 사적전개는 대체로 다섯 시기로 시대 구분할 수가 있다.
(1) 제1기
고려말부터 조선 성종까지로서 가사문학의 발생 시기이다. 가사문학의 발생에 대하여는
①경기체가에서의 발생설 : <한림별곡> 같은 경기체가의 <청산별곡> 같은 긴 노래에서 분련체(分聯體)가 사라지고, 여기에 다시 중국의 사(辭)·부(賦) 문학의 형태적 영향을 받아서 가사형식이 발생하였다는 주장,
②시조에서의 발생설 : 일부 가사의 결사장(結詞章)이 시조의 종장체 형식으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사형식이 3·4조 또는 4·4조 행씩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사를 시조의 파격형(破格形)이라고 하는 견해
③악장체(樂章體)에서의 발생설 :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 같은 분장형식이 파괴되면서 사설 형식의 가사가 나타났다고 보는 것,
④한시현토체 (漢詩懸吐體)에서의 발생설 : 종래 우리 조상들은 글을 읽을 때 축문이나 치사(致詞)이외에는 반드시 우리말로 토를 달아 읽었기 때문에 장편한시에 토만 달아 읽든지 시조체의 초. 중장을 연속하면 가사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
⑤민요에서의 발생설 : 가사의 기원은 같은 4·4조의 연속체의 교술 율문인 교술 민요에 있으며, 구비 문학인 교술민요가 기록문학으로 발전한 것이 가사라고 보는 견해,
⑥불교계의 신라가요에서의 발생설 : 신라 경덕왕대에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도솔가>이야기에 나오는 "별도로 산화가가 있는데, 글이 많아 싣지 않는다. "에 근거한 주장 등이다. 그런데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작품은 고려말 나옹화상의 <서왕가>와 조선 성종대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을 들 수 있다.
(2) 제2기
성종 이후 임진왜란 이전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는 전기에 발생한 가사문학사상에 본격적으로 향유되기 시작하고 그 지속이 이어지는 때이다. 이때에 나타난 작품들의 주제 및 소재적 특성은 먼저 전기(前期)의 계승으로 강호가사(江湖歌辭)를 들 수 있으며, 이에 속한 작품들로 이서(李緖)의 <낙지가(樂志歌)> 송준의 <면앙정가> 이이(李珥)의 <낙빈가(樂貧歌)> 등을 들 수 있다. 작품들에서는 주로 전원과 강호의 생활을 노래하는데, 먼 서사(序詞)에서는 강호에 머무르게 된 취지를 노래하고, 전개에서는 그들이 아름다운 강산에 자리를 잡은 뒤 초가삼간에 정자를 곁들이고 있는 생활환경을 노래하고, 그 다음에 소요음영(逍遙吟詠)과 석조(夕釣) 및 취흥으로 즐기는 생활양상을 노래하고, 결사(結詞)에서 강호에 살며 인빈낙도하겠다는 뜻과 성은에 감사한다는 두 유형을 보인다. 이후에 새로 나타난 기사로 기행가사. 유배가사. 교훈가사 등이 있다.
기행가사로는 백광홍(白光弘)의 <관서별곡>과 정철(鄭徹)의 <관동별곡> 등이 있으며, 이들 작품에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여 준 성은에 감사하고 공무에 틈을 내어 자기 임지의 곳을 둘러보며, 임금에 대한 충성을 노래하고, 아울러 자신의 감흥과 선정(善政)을 읊고 다짐하였다. 유배가사로는 조위(曺偉)의 <만분가 萬憤歌>가있어, 적객(謫客)의 쓰라린 회포와 아울러 임금에 대한 끝없는 충성을 절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교훈가사로는 이황(李滉)의 <도덕가 道德歌> . < 권선지로가 勸善指路歌> 등과 이이의 <자경별곡 自警別曲> 등이 있는데, 효제충신 등의 유교교훈을 풀어서 엮은 것이다. 이 시조의 형식적 특징은, 첫째로, 3·4조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중 2·3조와 2·4조가 상당히 섞여 있는 점이다. 둘째로 가사의 종행(終行)과 같은 이러한 정격(正格) 혹은 정통가사가 많은 점이다. 셋째로 작품의 길이가 후기 가사에 비해 짧아진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에 나타난 작가의 특성은, 첫째로 사대부들이 주류를 형성하였고, 셋째로 정극인. 송순 백광홍. 정철. 이서 등과 같은 호남작가가 많았다. 끝으로 허난설헌(許蘭雪軒)과 같은 여류작가의 등장이 있었다.
(3) 제3기
임진왜란으로부터 숙종조까지로 잡을 수 있다. 이 시기는 전쟁이 있었던 때이고, 동시에 당쟁도 심하였던 때이다. 이 시기에 나타난 작품들의 주제 및 소재적 특성은 먼저 전기를 계승한 가사로 강호·기행·유배 가사 등이 있다. 강호가사의 작품으로는 고응척(高應陟)의 <도산가 陶山歌>와 같이 난을 피하여 산중에 은거함을 노래한 것과, 박인로(朴仁老)의 <노계가>, 윤이후(尹爾厚)의 <일민가 逸民歌>와 같이 자연을 벗하여 사는 즐거움을 노래하는 것이 있다. 기행가사의 작품으로 지방관으로 나아가 그곳의 풍경을 노래한 조우인(曺友仁)의 <출새곡(出塞曲)>,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것을 표현한 박권(朴權)의 <서정별곡(西征別曲)> 경치를 노래한 이현(李俔)의 <백상루별곡(百祥樓別曲)> 등이 있다.
유배가사로는 조우인의 <자도사(自悼詞)>와 유배인을 수행하면서 지은 송주석(宋疇錫)의 <북관곡(北關曲)>등이 있다. 이 시기의 새로운 경향으로 전통가사의 출현과 현실비판가사의 대두를 들 수 있다.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한 작품으로 <용사음(龍蛇吟)>이 있으며, 적개심을 묘사한 것으로 <태평사(太平詞)>와 <봉산곡>이 있고, 포로생활을 묘사한 것으로 백수회(白受會)>의 <도대마도가(到對馬島歌)> . <재일본장가(在日本長歌)> . <화안인수가(和安仁壽歌)> 등이 있으며, 현실비판을 묘사한 작품으로는 <용사음>이 있다. 이 시기의 형식적 특징은 첫째로 4·4의 율조 파괴인데, 이 현상은 노계가사(蘆溪歌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사의(詞意)의 전달에 중점을 둔 것이거나 아니면 그율조가 가지는 격식의 파괴로 생각된다. 둘째로서두에 산문적인 사설을 삽입한 것이다. 그 예는<지수정가 止水亭歌)>의 서두이다. 이 시기의 작가에서 불 수 있는 특성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전기와는 달리 박인로. 조우인. 정훈(鄭勳). 백수희 등에서 살필 수 있듯이 개인 창작의 작품수가 많아졌다. 둘째로 서지적(書誌的)으로 믿을 만한 승려 작가가 등장하였다. 그 예가 바로 침굉선사(枕肱禪師)이다
(4) 제4기
숙종 이후 동학운동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가사가 거의 보편화되며 이로 인하여 전기의 주제 및 소재가 그대로 전승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먼저 전대의 것을 계승한 것으로는, 남도진(南道振)의<낙은별곡(樂隱別曲)>과 박이화(朴履和)의 <낭호신사(浪湖新詞)>, 조성신(趙星臣)의 <개암가> 등의 강호가사와, 이용(李溶)의 <북정가(北征歌)>,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이방익(李邦翼)의 <표해가(漂海歌)>등의 기행가사와,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안조환(安肇煥)의 <만언사(萬言詞)>,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北遷歌)>등의 유배가사와, 이기경(李基慶)의 <심진곡(尋眞曲)> . <낭유사(浪儒詞)>, 권섭(權燮)의 <도통가(道統歌)>, 한석지(韓錫地)의 <길몽가(吉夢歌)>, 배이도(裵爾度)의 <훈가이담(訓家俚談)>, 실명씨의 <우부가(愚夫家)> 등의 교훈가사와, <갑민가(甲民家)> . <향산별곡(鄕山別曲)> . <거창가(巨昌歌)> 등의 현실비판의 가사와, <대명복수가(大明復讐歌)> . <천군복위가(天君復位歌)>등의 전란가사 등이 있다.
이 시기에 새로 나타난 주제와 소재로 우선 실용가사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의 예로 <농가월령> .<농가월령가> 등이 있는데 , 이들은 실학정신과 통하는 것들이다. 다음으로 이 시기에 오면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상사별곡>, <춘면곡>,. <사랑가>, <단장사>, <유산가>, <금루사> 등의 평민가사 및 애정가사가 나타난다. 다음으로 남인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천주교 가사를 들 수 있다. 정약전의 <십계명가>, 이벽의 <천주공경가>, 이가환의 <경세가>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 전후에 규방가사가 발생한다. 끝으로 이 시기의 형식적 특징은 사실의 정확한 기록을 위하여 가사가 장형화한 것이다. <일동장유가>, <북천가>, <한양가> 등은 그 한 예들로 3·4천행의 장형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작가들에서는 그들이 특수한 계층이 아니라 규방층과 서민층이 작가군으로 부상했다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5) 제5기
동학가사가 창작된 때부터 한말까지를 뜻한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듯이, 가사문학에서도 많은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강호가사·기행가사·교훈가사 등이 상당수 창작된다. 즉, 김은후의 <거성가> 권광범이 <농서별곡> 박시현의 <울도선경가> 정현덕의 <봉래별곡> 등의 강호가사와 유영무의 <오륜가>, 김경흠의 <삼재도>. <불효탄>, 이방현부인 홍씨의 <홍씨부인계녀사>등의 교훈가가 등이다. 그러나 이들 가사들도 1910년대 이후에 이르면 몇몇 작품들에서만 나타나는 퇴조의 현상을 보인다. 이런 퇴조와 더불어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는데, 바로 동학가사·개화가사·항일의병가사·비판가사·독립투쟁가사·신문명저항가사·신문명찬양가사 등의 출현으로 가사부흥의 시도가 된다. 동학가사는 최제우가 득도과정에서 체험한 것과, 동학을 포교하고, 아울러 그 자제와 부녀 등의 가족과 교도들을 깨우치고 훈계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용담가>·<안심가>·<교훈가>·<권학가> 등이 있다.
개화가사
개화기에 제작, 발표된 한국 시가의 한 양식을 개화가사라 한다. 그 내용에는 개항과 함께 한국사회의 한 과제가 된 문명개화와 진보·발전·부국강병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형태면에서 보면 고전 시가의 한 양식인 가사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4·4조 또는 3·4조의 자수율에 의거한다. 그리고 그 분량이 상당하여 긴 연형체시가이다. 시기적으로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창가나 신체시보다 앞서 제작, 발표되었다. 따라서, 개화가사는 한국시가사상 최초로 형성된 근대적 양식이다. 다만,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그 선구성 때문에 과도기적인 단면도 강하게 지닌다. 개화가사의 어투는 대게 직설적이다. 이것은 근대시가 정서적인 언어를 써야 한다는 공리에 어긋난다. 개화가사의 또 다른 과도기성은 작자의 비전문성으로도 나타난다.
구체적인 예로 <독립신문>에 실린 개화가사를 보면 <국가>(인천제물포, 전경택),<동심가>(양쥬, 리즁원), <도당가>(김교익),<독립문가>(안셩, 김석하) 등이다. 이들 보기를 통하여 드러나는 바와 같이 개화가사의 작자는 모두 전문적으로 글을 쓰거나 시가를 제작한 문필인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다수의 개화가사에는 작자의 서명이 표시되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작품이 발표된 지면도 문예란이 아니라 사회면기사와 같은 잡보란이었다. 근대적인 시라면 그 작자는 반드시 자신의 이름을 밝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그 제작은 필수적으로 양식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일부 개화가사에는 그런 자취도 잘 검출되지 않는다. 이런 면으로 보면 개화가사의 과도기성이 다시 한번 입증된다. 비전문적이고 개방된 양식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개화가사는 여러 사람에 의하여 아주 많은 숫자의 작품이 생산되었다. 구체적으로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것만 보아도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은 6백여편에 달한다. 이것은 같은 개화기의 시가양식으로 창가나 신체시의 숫자가 대개 20∼30수에 그치는 것과 좋은 대조가 된다. 한편, 개화가사 가운데서 활자화된 것은 대개, 그 발표매체가 일간지였다. 따라서, 개화가사 가운데 많은 작품은 시사성을 띤다. 이 유형에 속하는 많은 작품에는 국내외 정세나 당시의 사회사정이 반영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개교기념·운동회·농사·회의내용을 다룬 것도 있다. 결국 개화가사는 당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일들을 소박한 입장에서 다루고 읊조리는 입장을 취한 셈이다.
권고현내각(勸告現內閣)
개화가사는 그 과도기성 때문에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우선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전문작가에 의하여 쓰여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격조가 확보되지 못하였다. 또한, 개화가사는 근대시의 한 갈래인 채 가사형식을 기계적으로 이용하여 거친 말들로 당시의 우리 주변에서 빚어진 사회상을 반영했을 뿐이다. 근대시에 요구되는 언어의 신선미라든가 긴축성 같은 것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개화가사가 근대시의 모습을 띠기 위하여 그 말씨나 형태·구조 열시 고전시가의 경우와는 달라야 하였다. 특히,4·4조의 자수율이 제나름대로 지양 극복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이에 대하여 기능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편이다. 그리하여 1890년 중반기경 개화기 기사의 또 다른 양식인 창가가 나타나자 개화가사는 그 역사적 의의를 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에게도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문학사적 의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하나가 한국 근대시의 초창기에 나타난 양식이라는 점이다. 어설픈 대로 이 양식을 통하여 한국 근대시는 첫 걸음마를 시작하였다.
다음 이 양식을 통하여 우리 주변의 시가 제작 의식에도 변화가 일어 났다. 그 이전까지 우리 주변에서 시라면 한시를 뜻하였다. 더러 시조나 가사를 짓는 예가 물론 없지는 않았다.그러나 대부분은 사대부나 양반 계층이 여기(餘技)로 손을 대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은 부녀자들의 손에 의하여 지어졌다. 그러나 개화가사의 작자는 그와 다르다. 이 양식은 당시 우리 주변에서 상당한 신분을 가진 관리나 문필인 ·사회 운동가들도 썼다. 그러니 개화가사에 이르러 우리 주변에서는 비로소 국문을 표현매체로 한 작품도 본격적인 문필활동으로 인식되기에 이른셈이다. 그밖에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이 나타나기 전 우리 시가에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였고 개화가사를 통하여 가능하였던 것이다.
연구사와 과제
가사문학의 연구사는 크게 두 방향에서 정리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자료정리이다. 1936년에 처음으로 나타난 신명균편(申明均編) 가사집인 <가사집 歌詞集>을 필두로, 김성배(金聖培)·박노춘(朴魯春)·이상보(李相寶)·정익섭(丁益 ) 공편(共編)의<주해 가사문학전집(註解 歌辭文學全集)>,이상보의<이조가사정선(이조가사정선)>, 군영철의 <규방가사>등이 나왔다. 이들 가사집들의 출간은 자료정리에 매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산재한 자료들은 체계적으로 정리하여야 하고, 나아가 그 자료를 출간하여 연구에 동뭄을 주여야 한다는 점은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방향은 학문적인 연구사쪽이다. 가사문학의 문학적 연구는 그 초점이 사적 연구와 장르론적 연구에 있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작품을 문예학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은 지금까지의 연구가 포함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의 과제는 가사장르의 체계적 검토와 문예학적 연구에 있다고 볼 수 있다.(출처 : 국어국문학 자료 사전, 한국사전연구사)
가사(歌詞(개념))
우리 나라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 사설은 가곡이나 시조에 비하여 매우 길어서, 그 음악적 구조도 가곡이나 시조보다 확대된 형식을 보여준다. 노래의 양식이 가곡만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시조나 가곡과 함께 정가(正歌)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사설의 길이가 대체로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곡이나 시조에서와 같이 하나의 고정된 가락에 다른 사설을 얹어서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설에 따라서 가락이 조금씩 다르며, 조바꿈이나 반복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점이 가곡이나 시조와는 다르다.
오늘날까지 전래되고 있는 곡은 〈춘면곡 春眠曲〉·〈백구사 白鷗詞〉·〈황계사 黃鷄詞〉·〈죽지사 竹枝詞〉·〈양양가 襄陽歌〉·〈어부사 漁父詞〉·〈길군악〉·〈상사별곡 相思別曲〉·〈권주가 勸酒歌〉·〈수양산가 首陽山歌〉·〈처사가 處士歌〉·〈매화타령 梅花打令〉 등의 12곡으로 흔히 12가사로 알려져 있다.
〔연 혁〕
정확하게 언제 발생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악장가사≫에 전하는 〈어부가 漁父歌〉가 12가사의 〈어부사〉와 같은 곡으로 생각되며, 그 〈어부사〉가 음악적인 면에서는 가사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고금가곡≫에 〈죽지사〉·〈춘면곡〉·〈양양가〉·〈어부사〉의 사설이 전하고, ≪청구영언≫에는 〈백구사〉·〈황계사〉·〈춘면곡〉·〈길군악〉·〈상사곡〉·〈권주가〉·〈양양가〉·〈처사가〉·〈매화가〉 등 9곡이, ≪남훈태평가 南薰太平歌≫에는 〈백구사〉·〈춘면곡〉·〈상사별곡〉·〈처사가〉·〈매화가〉 등 5곡, 그리고 ≪가곡원류≫에는 〈어부가〉의 사설이 전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영조 이후부터 불리기 시작했으리라 추측되며, 현행 12가사의 전통이 성립된 시기는 한말인 금세기 초라는 것이 정설이다. 가사의 곡조를 담은 옛날 거문고 악보인 ≪삼죽금보 三竹琴譜≫에 〈상사별곡〉·〈춘면곡〉·〈길군악〉·〈매화곡〉·〈황계곡〉·〈권주가〉 등 6곡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가사도 가곡처럼 거문고 등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로 불렸으며, 비교적 중류 이상의 선비들에 의해서 연주되었으리라고 믿어진다.
현행 12가사의 전통은 가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족항일기에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비로소 아악생(雅樂生)들에게 전승되었다. 당시 가사 선생으로 하규일(河圭一)과 임기준(林基俊) 두 사람이 초빙되었다.
하규일은 1926년부터 아악생들에게 〈백구사〉·〈황계사〉·〈죽지사〉·〈춘면곡〉·〈어부사〉·〈길군악〉·〈상사별곡〉·〈권주가〉 등 8곡을 전수하였고, 임기준은 1939년부터 〈수양산가〉·〈양양가〉·〈처사가〉·〈매화타령〉 등을 전수하였다.
〔장 단〕
현행 12가사에 사용되는 장단은 6박자를 한 주기로 하는 장단과 5박자를 한 주기로 하는 장단 등 두 가지이다. 6박자 장단에 속하는 가사는 〈백구사〉·〈황계사〉·〈죽지사〉·〈어부사〉·〈길군악〉〈수양산가〉·〈매화타령〉·〈춘면곡〉 등 8곡이며, 〈상사별곡〉·〈처사가〉·〈양양가〉 등 3곡은 5박자 장단에 속하는 가사이다.
오직 〈권주가〉 한 곡만은 일정한 장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불규칙적인 자유스런 장단의 반주로 불려진다. 이를 편의상 서양식 기호법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연주형태〕
가곡은 반드시 관현악 반주에 의해 연주되나 가사는 반주가 없어도 무방하며, 시조와 같이 장구장단에 의해 혼자 부르는 것이 원칙이다. 반주를 할 경우에는 피리나 대금 등 단(單)재비에 장구를 곁들여도 좋고, 좀더 범위를 넓혀 피리·대금·해금·장구로 편성하기도 한다.
반주하는 방법은 노래를 따라가는 ‘수성(隨聲)가락’이기 때문에, 반주하는 사람이 가사가락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가사 반주에 익숙한 악사가 적다는 것은 반주자가 가사를 부를 줄 모르고 노래의 뒤를 따라가는 안이한 태도를 갖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음악적 특징〕 가사의 가락은 가곡이나 시조와는 다른 여러 가지 음악적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창법은 속청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창법은 여창 가곡이나 경제(京制)의 시조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둘째, 전성법(轉聲法)·퇴성법(退聲法)·요성법(搖聲法)을 곡에 따라 적절히 사용한다.
요성법에서 〈백구사〉·〈황계사〉·〈죽지사〉·〈권주가〉·〈춘면곡〉·〈길군악〉·〈상사별곡〉·〈처사가〉·〈양양가〉·〈매화타령〉은 아악과 전라도 민요에서 보이는 요성법을 주로 쓰고 있다. 〈어부사〉와 〈수양산가〉는 진폭이 넓은 서도소리식의 요성법을 쓰고 있으며, 〈권주가〉와 〈춘면곡〉도 때로는 서도소리에 가까운 요성법을 쓰고 있다.
전성법에서 〈백구사〉·〈죽지사〉·〈어부사〉·〈상사별곡〉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수양산가〉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황계사〉·〈춘면곡〉·〈처사가〉·〈양양가〉는 4도 상행할 때 사용하고, 〈매화타령〉은 4도 상행할 때 가끔 사용한다. 〈권주가〉는 장2도 상행할 때 사용하고, 〈길군악〉은 같은 음이 중복될 때 사이음을 전성한다.
퇴성법에서 〈백구사〉·〈황계사〉·〈어부사〉는 아악의 계면조나 시조에서 보이는 퇴성법을 사용한다. 〈죽지사〉의 퇴성법은 가곡 우조의 퇴성법과 같고, 〈춘면곡〉·〈길군악〉·〈상사별곡〉·〈권주가〉·〈처사가〉·〈양양가〉·〈매화타령〉은 장2도 혹은 단3도 하행할 때 퇴성법을 사용한다.
셋째, 종지법에서 〈백구사〉·〈황계사〉·〈상사별곡〉은 시조의 종지법과 같이 하행 4도의 종지를 한다. 〈처사가〉와 〈양양가〉는 4도 하행 혹은 4도 상행종지를 한다. 〈춘면곡〉·〈어부사〉·〈권주가〉·〈매화타령〉·〈수양산가〉는 4도 상행종지를 하나, 〈수양산가〉는 5도 상행종지를 할 경우도 있다. 〈길군악〉은 순차적 하행종지를 하고, 〈죽지사〉는 잡가의 종지법과 비슷하다.
넷째, 〈죽지사〉와 〈길군악〉에서 의미 없는 말로 구성된 입타령〔口號〕이 쓰이는데, 이것은 시조나 가곡에서는 없는 가사만이 갖는 특징이다.
다섯째, 조성(調性)은 분명하지 않으나, 계면조(界面調)와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은 〈백구사〉·〈어부사〉·〈상사별곡〉이며, 〈죽지사〉나 〈길군악〉의 조성은 가곡의 우조(羽調)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평조(平調)의 특징을 내포하는 곡들은 〈춘면곡〉·〈권주가〉·〈수양산가〉·〈처사가〉·〈양양가〉·〈매화타령〉 등 6곡이다.
여섯째, 현행 12가사 가운데 〈매화타령〉과 〈수양산가〉·〈양양가〉·〈처사가〉의 가락은 하류층에서 많이 불린 잡가창법(雜歌唱法)의 영향을 받은 곡이다.
〔악 보〕
현행 가사의 악보로서 정간보(井間譜)로 채보(採譜)된 악보가 처음으로 출판된 것은 이주환(李珠煥)의 ≪가사보 歌詞譜≫이고, 그 뒤 이양교(李良敎)의 ≪십이가사전 十二歌詞傳≫이 출간되었다. 이 두 가지 정간보는 현행 12가사를 장구 반주보와 함께 기보해 놓았다.
이 밖에 그래프식(graph式) 기보법과 정간보로 채보한 정경태(鄭坰兌)의 ≪가사보 歌詞譜≫가 있다. 5선보로 채보된 악보로는 김기수(金琪洙)가 채보한 ≪한국음악≫ 제9집이 있다.
이러한 가사는 1971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고, 1975년 예능보유자로는 이양교와 정경태가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