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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경 제 10권 38 아난총지품 개작 동화
깨달음의 이음 끈-정옥임
세상에서 살 만한 곳을 녹야원이라 부릅니다. 사미랑은 녹야원에서 늦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공부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까닭 없이 짜증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가 하면, 녹야원에 안락한 평화가 지루하게 생각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장난치다 녹야원에 불을 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녹야원은 신설된 마을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다지고 가꿔온 자연과 불심이 깃든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만든 정토였어요. 잘 가꾼 녹야원 나무들은 봄이면 예쁜 꽃을 피워 꽃동산을 이뤘어요.
기어 다니는 벌레와 날아다니는 벌 나비의 잔치, 막 열린 비린 열매는 턱이 자라지 않은 곤충에게 내주었습니다,
어느 날 사미랑은 하얀 투명 투구를 뒤집어쓴 노란 꽃 앞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미랑이구나!”
“내 이름을 아니?”
“네 친구들이 네 이름을 부르는 소릴 들었어. 혼자 내 앞에 한참 서 있다 가곤 했었잖아?”
“그랬었나! 네 이름은 뭐니?”
“내 이름은 들레야, 성은 알지? 내일 우린 여행을 떠날 거야.”
“여행을 떠나? 왜? 민들레야, 이곳이 좋지 않니?”
민들레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나도 공부를 해야 돼. 하지만 내가 있는 땅은 양분이 적어. 밤낮없이 양분을 빨아들이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없어.”
“나는 먹을 걱정은 안 해. 하지만 공부도 하기 싫어. 공부는 귀찮아.”
민들레가 슬픈 얼굴로 사미랑을 바라보았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 너처럼 많지 않아. 그런데 그 기회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구나.”
사미랑은 부끄러워졌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퉁명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다음에 하면 되지 뭐?”
“지금하지 않으면 늙어서도 고생이지만 다음 삶에서도 힘들지.”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과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일주일 동안 명상하자고 하셨어! 그것도 공부지 뭐!”
“중요한 공부지. 네가 명상을 마치고 돌아 올 때쯤은 내가 여행을 떠난 뒤가 되겠구나.”
민들레의 말이 아스라한 메아리처럼 들렸습니다.
사미랑은 오랜만에 명상에 참여하였습니다. 스님이 명상 지도를 해 주었습니다.
“넌 또래보다 생각이 깊구나!”
스님이 불쑥 말씀하셨습니다. 사미랑은 다음 말씀이 어떻게 이어질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습니다.
“명상이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지만 넌 어쩌면 명상이 꼭 필요한 아이야.”
스님은 붓을 들어 화선지에 ‘행복 문’이라 쓰셨습니다.
“명상하는 동안 행복 문에 대해 깊이 한 번 생각해 보려무나.”
사미랑은 혼자 있게 되자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깨달음이란 뭘까? 공부할 기회를 얻었을 때 집중해보고 싶어.’
사미랑은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허리를 쭉 펴고 무릎에 손을 얹고 반쯤 눈 감은 채 행복 문을 떠올렸습니다.
수레바퀴가 굴러간 자국처럼 있는 그대로 나쁜 생각을 지우고 깨달음의 즐거움을 갖는 것이라 했지요. 나쁜 생각은 주변 모든 것들을 불태울 수도 있다했어요.
욕심과 시기 질투 어리석은 말과 행동이 지나치면 불씨가 일어나 보이는 눈이 불탑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불탑니다. 귀가 불탑니다.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불탑니다. 코가 불탑니다. 코 속 스민 향기가 불탑니다. 혀가 불탑니다. 맛에 불이 붙어 불탑니다. 몸과 마음이 불탑니다.
몸과 마음에 불이 일어나 탐욕은 배품을 잃고 성냄은 자비를 잃고 어리석음은 지혜를 잃어 삼독이 기세등등해진다 하였습니다.
어른들과 친구들이 하는 말과 행동도 무시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행복 문이라는 질문을 받고나서 아무 생각이 없고 머릿속이 텅 비었습니다.
‘나만 행복하면 되는 걸까요?’
바람에 실려 여행을 떠난 민들레 홀씨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디 쯤 갔니? 몇 번이나 옮겨 앉았니? 아니 너의 삶의 여행은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니?’ 다음 생을 위해 씨앗들이 견뎌야 하는 날들을 생각났습니다.
‘큰물에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한 겨울 얼음 속에서 살이 터지는 건 아닌지! 엄마 되는 꿈은 거룩한 건데! 운 좋게 미화원 아저씨 빗자루에 쓸려 기름진 땅에 뿌려질 거야!’
사미랑은 저도 모르게 합장하여 두 손을 모았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제타 숲에 계셨다.
아승기 전 비구들은 산방에 앉아 계율을 외우는데 늘 못 외우고 꾸중을 듣는 아이가 있었다. 장자의 아들은 가난하여 꾸중을 듣는 부자친구 집에 책을 빌리러 자주 갔었다. 장자의 아들은 부자 친구가 꾸지람 듣는 게 늘 안타까웠다. 장자 아들은 생각 끝에 부잣집아이와 계율 낭송 내기를 하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부자친구가 계율을 다 외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외우곤 하였다.’
현우경 아난다총지품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의 부자친구에게 행한 좋은 업으로 불정토 녹야원에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화선지를 펼쳐 <행복문>의 답을 써내려갔습니다.
<행복 문> 똑똑 노크 굳게 닫힌 마음 문/첫째 문 삐꺽~ 빠끔 열린 달구나 문/둘째 문 삐꺽~ 간신히 열린 시구나 문/셋째 문 삐꺽~ 겨우 열린 쓰구나 문/다 지나서 스르르~ 열린 행복의 문
의미를 알 것도 같지만 확실한 뜻은 사미랑 자신이 쓰고도 알쏭달쏭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서서히 가슴속에 기쁨이 벅차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출처: 현우경 제10권 38품 아난총지품(阿難摠持品)>
끝
[생각 키우기]
좋은 환경에서도 그 나름의 고민이 있고,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실수들이 항상 마음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고 명상하면서 마음속에 꺼렸던 생각들을 꺼내 닦아보는 것이 좋은 수행이라 여겨집니다.
*불교아동문학 문인협회 현우경 개작 동화입니다.
2020 월간 우리시 7월 소 시집 원고
세기말의 칼 외 8편-정옥임
어떤 것의 내면을
알아가는 것은 흥미롭고 신비롭다
우리는 먼 것을 동경한다. 아련한 꿈
별을 보고 평생 신비에 빠지는 것과 다름 아니다
동경은 그리움이고 희망이고 선동의 이끌림이다
선동은 마법의 주문을 외게 한다
배이지 않는 칼은 엎치락뒤치락
때로는 거짓이 군신의 자리에 앉는다
그러고 한참 서로 신이라 우긴다
신이 된 황제들은 근심한다
흰 비단 레이스로 입술을 막고
내장을 다 토해 낼 것 같은 두려움에 떤다
가상의 용기는 신을 죽이고 죽어 주술만 남긴다
세기말의 칼은
가짜를 도려내고 진실을 캐낸다
투명 칼날에 쓰러지는 말의 잔치
잔치상의 말들이 기어코 주인의 심장에 꽂힌다
진실은 한참 카오스처럼 뒤엉킨다
닥터 포스터(Doctor Foster)
남자는 벌이고 여자는 꽃이다?
남자는 야망으로 살고 여자는 사랑으로 산다?
결론 낼 수 없는 설정
마님 시대 여인들은 그닥 지혜롭지 못했다
1인자와 2인자는 누름과 눌림의 관계였고
지혜로 평화를 평정한 예도 있을 수 있다
인류의 번영은 부부 소단위로 짜여 있다
가정의 부부 밀 당 또한 극렬하다
교묘한 심리 리그 전
허들과 방어 제동장치
고급 브레인 전쟁
드러나지 않는 교묘한 숨겨진 악랄함
포스터의 불륜 여인 재혼녀 승리 녀도 악마적 지혜 녀
뺏은 남편도 그녀 쏠림 편이고 동네 수다 녀들도 그녀 편
흔한 약육강식의 일반적 공식
젬마의 아들 톰도 고래싸움에 등터진
학교 문제까지 해결하는 자리에서
엄마를 패스하고 스쳐지나간다
사람은 어쩜 번식하는 즐거움으로 산다
자식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각오는 동서양을 막론한다
자식은 따로 부부에겐 영원한 빗장
골고다의 자갈길이다
침묵
침묵의 덩어리들이 움직인다
무수한 입자들이 속전속결 공격자를 쓰러뜨린다
방심한 틈으로 들불이 컨테인 컨테이젼한다
신이라고 자처한 사람들이 숨어 기도한다
입이 있어도 入口를 막아 말할 수 없다
허둥대며 보이지 않는 침을 피하느라 등뼈가 닳는 사람들!
독침의 독은 더 독한 독을 부르고 쫒기는 자
쫓아가는 자가 되어 사는 동안 내내 숨차 한다
차라리 침 덩어리 부술 침묵 하나 옆에 둔다
적을 대적할 침묵, 언제든지 던질 수 있게 가까이!
섬뜩한 차가움과 묵직함!
어느 시점에서 침묵을 들어 올리고 던져야 할까!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자꾸 질문만 던진다
큰물
부러진 나뭇가지 돼지 발톱사이
닭들의 가는 발 사이 여자 하이힐을 뚫고
바람을 끌어 구름을 끌어 소꼬리를 잡아채더니
코뚜레를 잡고 소등을 타고 성큼성큼 걸어
소 한 마리 두 마리 꿀꺽꿀꺽 삼킨다
머리 쳐든 저 기 세고 당당한 몸뚱이 기단 황구렁이
보아 구렁이 먹구렁이 비단 구렁이 징글징글
덧 친 실 구렁이까지 꿀럭꿀럭 쏴쏴쏴 쉭쉭 나른다
닿는 것마다 배 밑에 깔고 유유히 흘러간다
저 멈출 수 없는 따라잡을 수 없는 가속도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물고 금을 뭉개고 선을 지운다
막을 수 없는 여편네의 날름거리는 포악한 혓바닥
아버지의 눈물을 아이의 눈물을 보태
머리채를 휘어잡은 꾸룩꾸룩 허기진 앙칼진 배
아직도 덜 찬 뱃속을 움켜쥐고 아우성이다
내가 더 배고프다 아니 내가 더 배고프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말한다
며칠이나 굶은 사람들은 허기져 말을 못한다
시작 메모
시란 무엇인가! 좋은 시를 읽으면 내 안의 설움과 아픔을 들켜버린 느낌이 든다. 그 만큼 공감하여 위안을 받는다는 말이다.
나도 부족한대로 누군가의 눈물이 되고 위안이 되고자 시를 쓴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단 한 줄의 글을 읽고 인생이 바뀐 사람도 많다. 예술가들은 해안이 있다. 특히 시는 영감에 의지해 신들린 것처럼 단번에 쓰는 수도 있다.
누구는 시마가 온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마구잡이로 오는 게 아니다. 빙의? 아니다. 순간에 아무 조짐 없이 갑자기가 아니다.
시인이 살아온 인생의 로드맵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다름이다. 강력한 시마를 맞이하려면 얼마나 외롭고 많은 피눈물을 흘리며 고뇌하여야 하나! 시는 고뇌의 덩어리라고 말들 한다. 시가 종교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몇 십 년 절친 친구라는 사람이 루머를 전염병처럼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좋은 시 한편은 읽는 이에게 감동으로 연결된 변치 않는 인연, 바로 좋은 시의 연결고리로 친구보다 더 위안과 행복을 준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세기말의 칼을 비롯하여 몇 편의 내가 썼음에도 이러한 종류의 작품을 좋아하지도 좀처럼 쓰지도 않는다. 마치 탐정추리소설 같기 때문이다. 내가 아동문학을 애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심코 종이에 낙서처럼 내리받이로 써놓은 시를 읽고 마치 내 글이 아닌 것 같았지만 속은 후련했다. 그리고 가끔 이런 글을 써 볼까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한다. 시사적이기도 하고 목소리 한 번 크게 내질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글을 세상에 내놓으려면 참용기가 필요하다. 이리 걸리고 저리 걸리는 부문이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19를 등에 업고 용기를 내보았다. 나도 투명 칼 한 번 휘두를 용기를 가져봤다.
*몇 편만 골랐습니다.
코로나로 접한 신세대
-실버독서동아리 은비소리의 변모-정옥임
내가 독서회에 발걸음 한지 벌써 4년째로 접어든다.
나는 여러 형태의 모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만나고 싶고 기다려지는 모임은 그리 많지 않다. 내 개인의 문제겠지만 어쩌면 많은 수와 넓은 공간에 눌려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는 점도 있는 것 같다. 운영자에 따라 모임의 색깔이 정해지는데 은비소리 독서모임은 참석 횟수가 거듭될수록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모임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읽기를 마친 어느 날에 있었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얘기를 살짝 밝히고 싶다. 회원 한 분이 독서모임 대표에게 점심 식사 제안을 했는데 단호히 거절하는 걸 보고 놀라웠다. 대부분 단체를 이끄는 사람은 응분의 대접을 받기를 당연시 하는 걸 여러 번 봤다. ‘어! 의외로 다른 사람도 있네!’ 이런 느낌 처음이었다. 거기다 결석 지각의 벌칙비가 일체 없고 운영비 간식비나 회비 1원도 거두지 않는, 말 그대로 클리너였다.
요즘 언텍트 시대에 연결고리가 되고 있는 ‘쏘크라테스와 소통하라’ 고 하는데 나는 우리모임의 대표를 대인이라 이름하고 싶다. 모든 게 자율이었고 가끔 특별하게 간식을 단체 톡에 올리기도 하였지만 비교하거나 지나친 칭찬을 늘어놓지도 않았고 누가 준비하건 말건 대표는 군 말없이 항상 자기 몫을 준비했다. 나는 우리모임 장수를 대표의 공으로 돌리고 싶다.
그러면 책으로 돌아가 보자. ‘소리 내어 읽는 즐거움’의 즐거움을 끝내고 <문장의 온도>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혼자서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이다. 이덕무 영 정조 조선시대의 최고 에세이스트이고 독서가로 간서치看書痴라고 책만 읽는 바보라는 별호가 붙은 당대 최고 지성인이 쓴 책을 읽으며 십여 명이 서로 내용에 부연 설명을 덧대었다. 열띤 토론을 하며 개인 지식까지를 공유했다.
은비 모임의 진가가 여기 있었다. 회원구성원들 모두 책을 가까이 하는 분들이었고 교원출신도 여러분이어서 쫑긋하고 듣게 되고 연륜과 일상에서 느끼는 본이 되는 생활 철학도 만만치 않았다.
문장의 온도를 마치고 포노사피엔스가 투표로 선정되었는데 반대하는 분도 더러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제목부터가 생소했고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는 부제가 붙은 시니어들이 소화하기엔 벅찰 거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 코로나19의 발발! 독서 모임이 중단 되었다. 그 참 발 빠르게 대처한 대표의 가이드에 의해 서툰 음성 녹음 메시지와 라이브 화상 단체 톡에 참여 줌Zoom에 초대까지 해 신기해하며 어린아이들 수업처럼 모두 신기해했다.
예쁜 옷들을 갈아입고 각자 집에서 핸드폰 카메라 앞에 앉았다. 이제 우리 은비소리 회원들도 스마트폰이 뇌이고 손인 신인류가 된 것이다. 한국보다 더디게 출발한 선진국으로의 중국진출 경제대국으로 진입한 사실에 놀라며 비로소 국제경제에 눈뜨기 시작하였다. 줌 화상 모임에선 코로나로 만나지 못한 반가움이 더해 서로 마구 손을 흔들었다. 우리모임 대표가 작가강연이나 공연장에도 단체로 초대, 콘텍트 대면 때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 하는 동안 두꺼운 포노 사피엔스 읽기가 끝나 지금은 ‘취서만필’을 읽고 있다.
비대면 덕에 오히려 우리 은비독서모임은 더 단단히 뭉쳤다. 카톡에 보고 싶다고 서로 올렸다. 이제는 좋든 싫든 코로나 시대를 접하여 언텍트 비 대면으로 소통하면서 살아야 한다. 나는 그 일환으로 우선되어야 할 일이 폰뱅크라고 생각한다. 몇 시간이고 세월아 내월아 기다리던 은행업무. 과감하게 카드 하나로 송금도 하고 여러 은행 통합업무를 보도록 어플을 깔았다.
이 부분에서 위험요소에 노출될 수 있다면서 딸이 말렸지만 손가락이 다해 주었다. 여럿이어서 행복한 도봉도서관 모임, 귀한 장소 제공에 감사하며 부족한 사람을 독서모임으로 이끈 김 선생님께 감사한다. 더해 모든 회원께 ‘고맙소’ 라고 인사하고 싶다.
*도봉도서관 소식지 청탁 원고입니다.
정옥임 시 산책 88~89회 2020년 11월 4일 기사 승인
EXODUS(액소더스)-시월의 기적-정옥임
1951년 10월 13일 단풍도 지고 나뭇잎도 떨어져 인제군의 까치산, 저녁으로 삶은 강냉이 몇 알로 허기를 때우고 휴식하는 중에 국방군의 대포일격에 사단과 연대통신선이 끊겼다. 연대 통신대 선임하사가 김일병과 나를 불러 통신선을 복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가 공구와 전화선을 꾸려 왔더니 김일병이 잠시 머뭇거리며 한참을 뭔가 준비하는가싶더니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아니 통신선은 사단사령부인 북쪽일터인데 이거 남쪽으로 가는 거 아니가?” 내가 묻자 순간 김일병이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봐! 우린 남쪽으로 가는 거야.”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빨리 갑시다.” 하니 놀랍다는 듯
“그래 빨리 가자.” 고 했다.
사실 나는 일선에 배치된 그 날부터 남쪽으로 갈 동반자를 물색 중이었다. 그 후 우리는 길 없는 어두운 풀밭을 남으로 뛰다시피 하였다.
“섯! 손들엇!” 하며 총을 내미는데 나는 발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러나 김일병은 “누구야!” 하며 도리어 큰소리로 되묻는 것이었다.
“난 수색 병인데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난 사단 통신병인데 지금 포사격으로 통신선이 끊어져 수리하러 가는 중이요.”하고 김일병이 둘러댔다.
“통과! 수고하시오!”라 한다. 멍청한 수색대원 여기가 어딘데 통신선이 있겠느냐며 웃고는 길 대신 흐르는 개울 속으로 소리 안 나게 걸었다. 물은 몹시 차가웠다. 얼마나 갔을까 두런두런 북한 말씨가 아닌 남한 정찰병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김일병은 산으로 오르자며 내 손을 끌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춥고 떨리고 잠이 왔다. 내가 좀 자고 가자하니 무슨 소리냐고 했지만 그대로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한기가 들어 눈을 떴을 땐 날이 밝아 있었고 옆에서 김일병이 자고 있는 게 아닌가! 김일병을 흔들어 깨웠다. 깜짝 놀라 눈을 뜨더니 내 손을 잡고 한 걸음 떼는데 피웅 신호탄이 날아온다.
그러자 김일병이 정신없이 옆으로 달리다 납작 엎드린다. 나도 따라 엎드렸다. 앞에 참호가 있었다. 김일병이 살살 기어 참호 입구에 바짝 붙어 내부를 살피고 언제 가져왔는지 수류탄을 들고 뛰어든다. 출발 전에 꾸물댈 때 수류탄을 숨기느라 시간이 지체 했구나 그때야 알아차렸다. 남하 아니면 죽음이다. 하고 수류탄이 외치는 것 같았다. 참호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다시 산정을 향해 올라갔다. 산 중턱을 넘었을 때 이젠 살았다며 반듯하게 서서 오르기 시작했다. 지뢰밭을 지나 둘둘 말린 철조망이 나타났다. 김일병은 수류탄을 버리고 큰 소리로 ‘군군 선생님’ 하고 외쳤다. 국군 한 명이 철조망을 열고
“짜식들 잘 왔다. 추울 텐데 어서 들어와.” 했다. 1951년 10월 14일 자유대한 품에 안긴 날, 시월의 첫 기적!
1955년 10월 8일 사병생활이 끝날 즈음 통신학교 교재과 보좌관 이상병이 제대하면 응시해보라며 지원서를 한 장 주었다. 수험 날 필기시험을 마치고 합격 판정관이 국사에 대해 물었는데 이북에서 인류사회 발달사만 배워 국사는 모른다 했더니 시험지를 훑어보다가 아까운데 하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좋아! 국사공부 열심히 해.” 하며 합격 도장을 쾅 찍었다. 시월의 두 번째 기적!
6개월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대한민국 소위로 임관되었다. 시월 달은 굽이굽이 나에게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준 행운의 달이다.
저자: 이문호 글을 정옥임이 정리함
얼마 전 저자는 ‘더 가까이’란 요양원 일기 시집을 냈고. <어머니 천수를 누리소서> 일본어 하이쿠 단시집도 출간했다. 지금은 파킨슨병을 앓으며 치매에 걸린 부인과 요양원에서 지낸다. 그런데 이 글은 90세인 이문호 시인이 손 떨림을 감수하며 카카오 톡으로 보낸 어디에도 발표 되지 않은 글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영화의 탈출기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 같은 빠른 전개와 심리 공방까지, 마치 대형영화 스크린 속의 액소더스 박진감까지 느껴졌다. 특히 김일병의 용기와 죽음을 각오한 사나이다운 결기. 어쩌면 코믹하기까지 하다. 그런 김일병이 대전에서 50년 목회자로 지내다 돌아가셨다 한다.
이문호 시인은 통신병답게 5개 국어에 능통한 천재이다. 영어 구사는 물론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국어 능통자이다.
내가 영어번역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친해졌다. 그리고 사심 없이 도와주러 애썼다. 나중엔 가족을 소개하고 마치 딸처럼 대해주었다. 내 주변 좋은 친구 중 한 사람이다.
코로나19로 가족 면회까지 두절 된 요양원에서 때로 내편이며 자상한 아버지 같던 90세 친구 전화. “보고싶어!” 나직하니 떨리는 음성으로 전언 할 때 마음이 아프다.
정옥임 시 산책 89회
청산무(靑山舞)
푸른 산 속 개울가 큰 너럭바위 위에
휘청거리며 움직이는 한 사람이 있네
짚신에 누더기 걸친 백발의 늙은이
한 손엔 청려장 또 한 손엔 호리병
불그레한 얼굴에 들썩이는 어깨
흔들리는 품새로 보아 춤을 추나 보네
앞으로 몇 걸음 뒤로 몇 걸음
좌로 몇 발짝 또 우로 몇 발짝
넘어질 듯 일어서고 쓰러질 듯 살아나고
호리병에 매달렸다 지팡이에 의지했다
밀고 당기며 끊어질 듯 이어가는
느리게 뒤뚱대는 게으름뱅이 춤사위
청려장의 장무杖舞요 호리병의 병무甁舞로세
근심 떨친 무애무요 불로장생 선무로다
개울물의 현금소리 딱따구리 비파소리
청성모도 들썩이고 청 노루도 껑충이고
흰 구름도 너울너울 청솔가지도 휘청휘청
얼씨구나, 온 청산이 신명난 춤판 일세
저자: 임보<청산무> 전문
처음 우리시에 친구 따라 참석하게 된 날, 임보선생님 청산무 낭송을 들었다. 즉시 녹음하고 사진 몇 장 찍으며 이보다 더 좋은 놀 판이 또 있을까 어깨춤이 절로 나고 온몸의 피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고른 리듬으로 명확한 소리 가락으로 완 송하셨다.
젊을 때 우리 아파트 앞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었는데 창이 희뿌옇게 여명이 들 때면 박수무당처럼 차려 입고 알록달록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사내가 있었다. 처음엔 괴기스럽기도 하였지만 여러 번 거듭, 같은 장면 연출에 익숙해지고 기다려지기까지 하였다.
그는 새벽에 풀밭에 나타나 두 발 두 손 가지런히 모아 반듯하게 서서 동쪽을 향해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팔을 벌려 하늘을 안 듯하며 주문을 외듯 입을 달삭였다. 앞으로 뒤로 스텝 밟듯 몇 걸음 걷다 빙그르르 돌기도 하고 줄부채를 폈다 접었다하며 마치 아침을 여는 의식을 행하는 것 같았다.
임보 선생님의 청산무를 들으며 그때 그 사내의 춤이 오버랩 되었다. 6장의 만화(움직이는 그림)를 만들 때 동작그림이 그려졌다. 그림이 잘 그려지는 시, 감동이 오는 시, 노래가되는 시. 시마 들인 임보선생님 시를 대하여 고개 숙인다.
*네이버 골프타임즈 정옥임 시 산책 수요 연재 영구 편집되어 제가 세상에 없어도 조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돌이켜 보니 제가 시 산책에 올린 시들이 강동 문인의 작품이 가장 많았습니다. 좋은 시를 띄울 수 있게 협조 해주신 강동 문인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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