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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임고면 정재영·정용준 가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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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충효당, 양진당, 북촌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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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하회마 을은 부쩍 외지 인들의 발걸음 이 잦다. 초, 중, 고등학 교의 소풍 시즌 을 맞아 인근지 역은 물론 제법 거리가 있는 울 산, 포항 등에서 까지 학생들의 소풍 버스가 몰 려오고 있다. 또 풍성한 봄의 기운을 즐기기 위해 각종 단체 관광객들이 휴 일과 평일을 가 리지 않고 이곳 을 찾고 있다. 예년에 비해 외지인들의 방문이 적지 않게 늘어났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말이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이곳 방문이다.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하회마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멋진 풍광을 갖춘 지역을 주로 찾아다니던 중 장년층의 관광객들의 다수가, 영국 여왕이 일부러 찾을 정도니 이곳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그럴 듯한 분석이다. | ||
그러나 무언가 그럴듯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하회마을 을 찾는다면 실망하기 십상 이다. 이곳 마을에서 보이는 형체로 기대감을 채워 줄 수 있는 것 이라곤 옛집들 과 마을을 휘 감아 돌아가는 물길, 그리고 강변의 나무들 정도뿐이다. 그러니 노골적 으로 “엘리자 베스가 무얼보 러 이곳까지 왔을까”하는 이들도 있다. 하회마을에서는 충효당과 양진당, 북촌댁, 남촌댁, 빈연정사, 원지정자, 옥연정사 등 건물 앞에 큼지 막한 안내판을 내건 많은 건축물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안내판의 내용이 아니라 그 건축물에 서려 있는 옛사람들의 생각과 자취이 다. 이들 건축물들을 통해 우리는 좁게는 이곳 씨족인 풍산 류(柳)씨의 생활 질서를, 좀더 넓게는 안 동지역 유림의 정신 세계를 만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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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김좌진 장군 생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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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 윤리에 따른 전형적인 채나눔 방식을 버리고 실리에 따라 배치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는 내외담 등의 구별이 없으며 안채에 사랑방 을 들이는 등 파격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김좌진 장군 생가는, 그 가 청소년기에 살았던 집으로 만주로 간 후 쇄 락을 거듭해 주춧돌만 남기고 사라졌던 것을 90년대초 홍성군에서 이 일대를 성역화하면서 복원하였다. 복원 작업은 그 당시에 태어난 촌로(村老)의 자문을 받았기 때문 에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80여 칸에 달하던 당시의 건물을 모두 복원하지 못 하고 안채, 사랑채, 곡간채, 마굿간 등 주요 건물만 다시 세웠다. 이 집은 채와 채를 널찍이 띄워 배치했다. 안채를 중심으로 앞쪽에 곡간채를 두고 왼쪽에 사랑채를 두었는데 이들 사이의 거리가 여느 집의 2배 이상 된다. 마굿간과 행랑은 본채와 떨어뜨려 담밖에 세 웠다. 이렇게 채와 채를 널찍하게 띄워 놓은 것은 마당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 인다. | ||||||||||
▶ 우진각 지붕으로 문간과 같이 쓰이는 사랑채. 권위와 위엄보다는 실용성을 생각해 지은 것이다. 장군의 집안은 계급적 으로는 양반이었으나 전형적인 사대부가라 기보다는 '경영형' 부 농으로 성장해 왔으므 로 대규모 농토를 경 영하고 솔거(率居) 노 비를 쉽게 통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집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곡간채를 안채 앞쪽에 독립채로 배치한 것에서도 부농 가옥의 배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부농형 가옥의 면모는 배치뿐 아니라 안채와 사랑채의 구조에서도 찾아진다. 이 집은 조선 시대 사 대부가의 전형적인 채나눔을 따르지 않고 있다. 사대부가들은 삼강오륜에 따라 사랑채를 떨어뜨려 놓고 내외담으로 서로의 영역을 갈라놓는다. 물론 사용자도 안채는 아녀자, 사랑채는 바깥주인으 로 엄격히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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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