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며칠 전에 김장을 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세 판의 배추 모종을 사다 심었으니까 360 포기의 배추를 심은 것이다. 예년 같으면 12월 중순 어간에 김장을 할 텐데 텔레비전에서 올 겨울은 춥다고 하도 많이 이야기들을 해서 12월이 되자마자 김장을 한 것이다. 물론 배추도 속이 실하게 들어서 12월 초에 김장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지나면 안 될 정도로 배추가 크고 실하게 알이 꽉 찼다.
올해 김장은 나흘 동안 했다. 하루는 배추를 뽑고 하루는 배추를 잘라서 절이고 또 하루는 배추를 씻어서 물을 빼고 마지막 날은 비볐다. 300포기가 넘는 배추를 뽑고 손질하고 비비는 김장을 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살 때에는 겨우살이 준비라는 것을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골에 내려와서 살면서 월동준비라는 것이 보통 큰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벼농사까지 마치면 한 해 농사를 마쳤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배추와 무, 갓 등을 심어서 김장을 하고 메주를 써서 처마 밑에 메달아 나야 한해 일이 끝났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가을이 되자마자 배추는 모종을 사다 심었고 파, 갓, 무 등은 씨앗을 뿌려 김장준비를 하였다. 배추와 같이 심었던 갓이 너무 빨리 자라는 바람에 갓은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다 뽑아서 미리 김치를 담을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덕분에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서 먹을 수 있었다.
이번 김장은 작년 김장과 달리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 물론 작년에도 400포기 가까이 김장을 했었다. 그런데 올해 김장 분량이 두 배 가량 차이가 나게 많은 이유는 배추 포기가 아주 크고 실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아주 큰 배추는 하나가 거의 10kg이 될 정도로 무거웠다.
첫날 배추를 뽑는 일은 엄마와 나 그리고 오빠와 언니가 함께 했다. 아예 밭에서부터 겉의 푸른 잎은 잘라내고 뽑았기에 시간이 두 배 가량 들었다. 배추를 부엌 곳곳에 쌓아 두는 일도 쉽지 않아서 무척 신경이 쓰였다. 산더미처럼 쌓아둔 배추를 다음 날은 일일이 반으로 쪼개는 일을 했다. 엄마와 둘이서 했다. 배추 한 포기 당 1분씩을 잡고 180포기면 180분 남짓 들리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웬걸 하루 종일 걸렸다. 배추를 자르고 겉잎을 추려서 버릴 것은 버리고 시래기 할 것은 모으고 하는 일이 꽤 오래 걸렸다. 아침 여덟시부터 시작했던 일이 세 시가 넘어서 끝났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엄마 약을 타러 병원으로 모시고 갈 정도였으니까.
다음 날도 일찍부터 서둘러서 배추를 씻기 시작했다. 엄마와 언니가 배추를 씻는 동안 나는 불을 때서 찹쌀 죽을 쑤기 시작했다. 양념을 버무리는데 무려 10kg의 찹쌀죽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궁이에 솥을 두 개씩이나 걸어놓고 한쪽에서는 다시마와 양념멸치를 넣고 끓이고 한쪽에서는 찹쌀죽을 쑤기 시작했다.
나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가 좋다. 겨울이라 불을 때면 따뜻하기도 하거니와 불을 때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어다가 불을 모아두기도 했지만 불앞에서 나무를 더 넣고 조정하는 일은 그래서 항상 내가 담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에 김장하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면서 시골사람들은 김장에 많은 정성을 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김치냉장고가 있어 이전보다 훨씬 김장을 많이들 한다. 게다가 겨울김장에 들어가는 양념들이 너무 많다. 우리 집만 하더라도 새우젓, 멸치젓에 갈치며 돼지고기 등을 갈아 넣고 각종의 과일들과 양념들을 넣어서 함께 버무렸다.
김치를 버무리는 날은 가까이 사는 가족들이 다 모여서 함께 했다. 한쪽에서 김치를 비비고 한쪽에서는 서로 나눌 것을 포장하고 솜씨가 없는 나는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불을 때서 밥을 짓고 돼지고기를 삶았다. 세살짜리 조카 유까지 일을 거두며(?) 왔다 갔다 했다.
김치를 다 비비고 나니 정말 양이 엄청났다. 이번에는 김장을 해서 무려 열일곱 집이 나누었다. 그냥 김치 한통씩 나눈 것이 아니라 일곱 집에 25kg 한 박스 씩 택배로 보내고 일을 도와주신 이모와 작은엄마께도 한 박스씩 그리고 나머지 집들은 각자 집에 있는 김치냉장고의 통들을 가져와서 담아갔다. 많게는 김치통이 열 개가 넘는 집도 있었고 우리 집은 김치통 두 개가 마실 나가고 없어서 나머지는 항아리에다 담아놓았다.
모두가 양껏 가져가고 남을 정도로 김치를 많이 담갔다. 힘이 든 것도, 김장비용이 많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이 김장하는 시골인심이고 모습이다. 물론 양념비용은 함께 나누어서 했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서로가 김장을 할 수 있었다.
김장을 담는 일도 메주를 쑤는 일도 이제 다 끝났다. 그야말로 겨우살이에 들어간 것이다. 춥다 춥다 해도 시골의 추위는 서울의 추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올 겨울을 나는 일이 그래서 내게는 또 다른 골치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