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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이버 할아버지 이야기
대전 유성구청 복지정책과 희망복지지원팀
통합서비스전문요원 김정란
동 주민센터의 도움요청,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6월 초입, 더위가 막 시작될 무렵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동 주민센터 담당 사회복지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가족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집인데 늙은 아버지가 장성한 자녀를 돌보기 힘에 부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변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집이라며 한번 찾아가 보는 게 어떨지에 부탁하셨습니다.
방문 전, 할아버지는 청각장애가 있으시고 할아버지가 돌본다는 쉰이 넘은 아들은 주로 자고 있어 상담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계시는데 방문 약속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과연 뵐 수는 있을까…?
먼저 할아버지 댁으로 전화했습니다. 얼마간의 연결 음이 흐른 후 중년의 신사가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가족이 살고 계신 교회의 목사님이시랍니다. 할아버지는 전혀 들을 수가 없지만, 말씀하시는 건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할아버지를 찾아뵐 때 할아버지 댁 2층에 살고 계신 목사님도 뵙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지난 날 살아오신 이야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떤 어려움은 없으신지, 자녀와의 관계, 주변에 좋은 이웃이 있는지를 여쭤보고자 미리 이런 내용을 적어 준비한 뒤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습니다.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
할아버지 댁은 교회건물 3층입니다. 3층을 할아버지와 쉰이 넘은 아들이 모두 사용하셨습니다.
3층으로 올라가 보니 현관에 ‘이곳은 청각장애 가족이 살고 계신 집입니다. 들으실 수 없으니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교회 목사님의 배려 같았습니다.
비록 할아버지께서 들으실 수는 없지만 노크를 하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노크 후 집으로 들어가니 거실이 좀 독특했습니다. 거실 한쪽에 성인 가슴 정도 위치에 거울이 붙어있었습니다. 그 높이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데 거울 옆에 또 거울이 있었습니다. 거실 한쪽 벽면에만 거울이 4~5개는 되어 보였습니다. 게다라 집 안에 경사로도 누군가 만들어 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거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안방’이라고 쓰여 있는 방으로 시선을 옮기니 아들로 보이는 분이 바닥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 옆에 계신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만들며 집중하셨습니다.
“어르신~” 크게 불렀으나 역시 듣지 못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 다가가 어깨를 톡톡 친 후 인사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활짝 웃으셨습니다.
어라? 치아가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왜 틀니를 끼지 않으셨지?’라는 생각과 함께 가지고 온 희망복지지원팀 사업 소개하는 안내문을 보여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소개지를 읽으시며 고개를 끄덕끄덕 해 보이셨습니다.
한 가지를 여쭙고 할아버지의 대답을 듣고, 또 하나를 여쭙고 다시 대답을 듣는 형식으로 첫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맥가이버 할아버지
여든이 훌쩍 넘으신 할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셨답니다. 그것도 자원하여 입대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국가유공자로 보호받고 계셨습니다. 6.25에 참전할 정도로 건강하셨던 할아버지는 60대에 갑자기 이유도 모른 체 청력을 잃게 되셨다고 합니다. 나라에서 준 보청기가 있으나 보청기를 착용해도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어릴 적에 수막염을 앓았다고 합니다. 큰 열병을 앓고 난 후 걸을 수가 없게 되셨답니다. 지체장애 2급인 아저씨는 세상과 단절된 체 점점 건강이 나빠져 지금은 혼자서 걸을 수도, 설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 거의 누워만 계셔서 그런지 아저씨는 온종일 하릴없이 잠만 잔다고 하셨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드시는지 여쭈니, 아들은 라면만 좋아한답니다. 이전에 복지관에서 반찬을 갖다 주기도 했으나, 어떤 이유인지 아들이 거절했고, 지금은 대체로 식사 때마다 라면에 밥을 말아 드신답니다. 할아버지라도 좀 잘 드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나도 먹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어” 라며 이를 보여주셨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할아버지 윗니는 모두 없어졌고 아랫니가 한 개 뿐입니다. 아랫니 한 개로 김치를 씹어 드신 답니다. 할아버지를 처음 뵈었을 때 ‘왜 틀니를 끼지 않으셨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 개밖에 남지 않은 이로는 틀니를 끼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반찬 갖다 드릴까요?” 라고 여쭙자, 고개를 저으시며 “됐어. 어차피 나도 못 먹고 저 녀석도 라면 아니면 먹지를 않아. 그냥 지금처럼 둬” 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라면만 드시는 아들 걱정에 매월 영양제를 사서 아들 먹인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아들을 돌보고 계시지만, 할아버지도 자식 돌보기엔 너무 늙고 병드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지금보다 환경이 좋은 곳에서 아들이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요양병원에 보내고 싶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아들의 강한 거부가 이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이 녀석이 병원에 들어가면 좋은데 자꾸 나를 괴롭혀” 라고 말씀하시지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 계셨습니다. 편식이 심해 라면만 먹는 아들이지만 라면을 먹은 후 두유로 영양보충을 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가끔은 아들을 구슬려 물에 말은 밥에 김을 얹어 주기도 하셨습니다. 영양제도 꼭 챙겨 주셨고요!
할머니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방문 전에 미리 주민센터의 기록을 살펴보니, 할머니께서는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께는 함께 사는 아들 말고도 두 명의 자녀가 더 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한 자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또 다른 자녀도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할머니의 이야기를 여쭈었습니다. 할머니는 지체장애 1급 이셨다고 합니다. 밤에 잠을 자던 중, 할머니가 누운 상태에서 구토했는데 할머니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할아버지는 한참 후에야 일어나셨답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할머니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곧 돌아가시고 말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들을 수가 없어서 토하는 걸 몰랐어.”라며 흐느껴 우셨습니다.
조금 진정되신 후에, 아까부터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셨는지 방안 곳곳을 에워싸고 있는 높낮이가 다르게 붙여져 있는 거울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며 늙은이가 미쳐서 방에 이렇게 거울을 붙여놨다고 하겠지. 그런데 이렇게 거울을 붙여 놓지 않으면 이 녀석이 화장실을 가다 쓰러졌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어.”
처음 안방에 들어섰을 때는 벽면에 덕지덕지 붙여져 있는 거울이 기괴해 보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찬찬히 방안을 둘러보니 할아버지가 누워 계시면 천장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거울이 아저씨를 비추고 있었고, 오른쪽 벽면에 붙여져 있는 거울이 방문 모서리에 있는 거울을 통해 거실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거실에 높낮이가 다르게 지그재그로 붙여져 있는 거울이 걸을 수 없는 아들이 기어서 화장실 가는 모습을 잘 볼 수 있게 놓여 있던 거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솜씨와 아이디어는 거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기어서 방에서 화장실을 가기 편하게 화장실에 경사로를 만드셨고, 화장실에서 아들을 씻기 편하도록 바닥에 장판을 깔았으며, 지금 입고 있는 할아버지와 아들의 옷도 원래 긴팔 옷이었는데 직접 재봉틀로 민소매를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곁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TV, 안방 전깃불, 선풍기 등의 전기선을 한 곳으로 모아 쉽게 조작하는 장치를 만드셨습니다. 일어나지 않아도 방안에 있는 여러 전자기기를 작동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와~ 어르신 정말 대단하세요! 맥가이버 같아요!!”
할아버지의 지혜를 보고 있으니,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신과 아들에게 필요하신 건 대부분 혼자 만들어 사용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거울과 경사로, 전자기기 조정장치, 의자, 아저씨 소변통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음식 조리와 아저씨 돌봄은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가 다소 힘드실 것 같았습니다.
밑반찬 지원이 싫으시면, 그래도 라면만 드시기보다 때때로 죽을 드시면 어떨지 여쭈었습니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죽집을 알고 있는데 소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일도 괜찮다고,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아들 생활을 조금 거들 수 있는 이런저런 ‘재가복지서비스’ 어떨지 여쭈었더니 이 또한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맥가이버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할아버지를 뵙고 온 후, 할아버지 가족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밑반찬 지원도 필요 없다고 하시고, 재가복지서비스도 괜찮다고 하시는 할아버지를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물질적인 무언가를 연계해드려서 할아버지가 조금 더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니 할아버지는 지금 잘 지내고 계셨습니다. 충분히 잘하고 계셨습니다. 라면을 주로 드시긴 하지만 아들을 구슬려 밥을 먹게 할 때도 있으며, 활동보조인이 오지 않을 때에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씩은 아들 목욕 시키고, 아들 약 처방도 잊지 않고 잘 받고 계셨습니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장애인복지관에서 찾아와 할아버지와 아들 머리를 정기적으로 다듬어주셨는데,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보건소 방문간호 또한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 할아버지 곁엔 목사님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도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가족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잘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 같았습니다.
어떤 자원을 연계하기보다는 우린 할아버지의 이런 강점을 살리고 기존에 있는 주변 이웃들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키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더 잘할 수 있도록’ 돕기로 한 것입니다.
먼저 할아버지와 연계된 기관 선생님들께 구청에서도 함께 함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동 주민센터, 시립장애인복지관과 유성구보건소에 연락 드렸습니다. 보건소 방문간호사 선생님과는 날짜를 조정해 함께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더 잘 하실 수 있도록
할아버지를 뵌 첫날, 아랫집에 사시는 목사님을 뵙고 싶었으나 목사님의 바쁜 스케줄로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방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번째 방문 시, 이번에는 기필코 목사님을 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화 드렸으나 목사님께서는 영 부담스러운 눈치셨습니다. 억지로 뵙는 것도 도리가 아니기에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번째 방문 날, 현관문을 열어주러 나오신 목사님 사모님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에 관해 여쭈니 대답을 피하셨습니다. 저를 소개하고 우리가 하는 일과 그 의도를 말씀드린 뒤에 사모님께 겨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귀가 안 들리다 보니 오해하시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저희도 할아버지와 대화할 때는 종이에 써서 이야기하지만,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고요. 아무래도 이 집은 엘리베이터도 없고 너무 더워서 엘리베이터 있는 영구임대아파트나 전세임대 아파트 들어가시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다가 할아버지가 역정을 많이 내셨어요.”
목사님께서 왜 만남을 피하셨는지(?) 알듯 했습니다. 혹시라도 괜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았습니다.
구청으로 돌아와 장애인복지관 담당자와 통화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방문 이미용을 나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복지관도 밑반찬을 지원해드리려고 했으나 할아버지께서 거절하셨다고 했습니다.
보건소에도 전화를 해봤습니다. 할아버지 혼자 아들을 살피기 어려워 보이니 활동보조인처럼 누군가가 집으로 찾아가 집안일을 돕거나 아들을 살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곳저곳 연락해보니 예전에 할아버지 댁과 이런 서비스를 진행한 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다들 대체로 오래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미 몇몇 기관들이 할아버지 댁을 잘 살피고 계신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욱 할아버지께서 더욱 ‘잘 하실 수 있도록’ 돕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종종 찾아뵈면서 칭찬과 지지를 아끼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할아버지는 사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아들이 볼일을 보거나 목욕할 때에는 스스로 기어서 화장실을 가실 수 있게 할아버지가 직접 경사로를 만드셨고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방 불을 켜고 끌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저를 비롯해 할아버지를 도와달라고 청한 좋은 이웃들은 사실 본인들만의 관점으로 할아버지를 지켜보고 지레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정말 원하시는 건 전반적인 도움이 아닌, 지렛대 역할일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더 잘하실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스스로 하실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역할 말입니다.
맥가이버 할아버지에게 다른 분들처럼 서비스가 연계되거나 경제적 도움을 크게 드리진 못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소위 ‘실적’은 할아버지께 여쭙고 의논하는 과정에서 낡은 여름 이불을 새것으로 바꿔드려 보송보송하게 장마철 나실 수 있도록 도운 일 뿐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지금처럼 할아버지의 삶을 존경하고 지지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삶 자체를 응원하면서 이런저런 일이 있을 때에도 먼저 할아버지께 여쭙고 함께 궁리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할아버지의 삶을 응원해주시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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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구청은 희망복지팀 주무관 박혜성 선생님 주선으로
지난 4월, 5월, 6월. 세 번 만나 공부했습니다.
그때 함께 공부한 김정란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김정란 선생님께서 할아버지의 삶을 멋대로 재단·판단하지 않고
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려 하신 모습이 와 닿습니다.
할아버지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 보여도, 그래도 잘해 오신 일, 잘하신 일을 찾으려 했습니다.
여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잘해오신 일이 많고 잘하시는 일이 보였습니다.
이미 좋은 분들과 잘 관계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만큼만 거들려고 했고 살아계신 한 끝까지 당신 삶을 사시게 도우려고
당사자인 어르신께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둘레 사람을 만나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면서
좋은 관계 더 잘하시게 도우려고 했던 모습이 감사합니다.
실적으로 이불교체라 적었다고 하셨지요.
그 실적 밑에는 이렇게 할아버지의 삶을 존중하고,
당신 삶을 사랑하는 아들과 잘 지내시게 지지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사례관리는 당사자가 이런저런 자원을 활용하여 욕구를 해결하게 ‘돕는’ 일입니다.
그 자원도 당사자의 강점과 관계에서 찾게 돕는 일입니다.
이를 생각하고 이대로 실천하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잘했습니다.
사회사업가답게 실천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려울수록 서로 의지하고 살피는 게 가족이지요.
할아버지, 저도 응원합니다.
김정란 선생님 글 읽으니 구청 희망복지지원팀의 실천도 귀합니다.
희망복지지원팀에서도 이런 실천이 가능합니다. 희망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