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일 7월13일(수) 상트페테르부르크-> 인천 ( KE 930 )
* 여름궁전 분수광장, 겨울궁전( 에르미타주 박물관 ), 운하투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귀국하는 날이다. 어제 밤에는 깊은 잠을 잤다. 국경 통과에 장시간을 기다리며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밤사이에 많이 풀린 듯하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9시경 오늘의 첫 일정인 “여름 궁전”을 향해 출발했다. 여름 궁전이 있는 페트로드보레츠 섬까지는 버스로 약 40분(30Km)이 걸렸다. 현지 가이드(디나 김)는 이 시간 동안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듯 열정적으로, 조금은 과장된 제스추어까지 써가며 러시아와 이 도시에 관해 설명했다. 특히 그녀는 푸시킨이나 차이콥스키 등 문학, 예술인들을 설명할 때는 자가 도취에 빠지는 듯 했다.
역사와 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혁 군주로 불리는 표트르 1세가 만든 도시다. 황제는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서 이겨 1703년 네바강의 하류 델타 지역인 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을 스웨덴으로부터 탈환하였다. 그 뒤 이곳에 러시아의 새 수도를 건설하기로 하고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세운 것이 도시의 기원이다. 이어 1712년 수도가 모스크바에서 이전해 오면서 장대한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이 진행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당시 후진적 러시아를 유럽과 같은 선진국가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네바 강을 통한 수로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위치를 감안하여 이곳에 도시를 만들었다. 황제는 이 땅에 새로운 러시아를 상징하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서유럽으로 향한 창”으로 불리는 이 도시는 이렇게 태어났다.
도시는 네바 강 하구의 델타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42개의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 만든 계획적인 인공 도시다. 이 때문에 “북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 건축가의 설계와 러시아 병사, 스웨덴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 포로, 그리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노동자와 인부들의 엄청난 노동력이 강제 동원 되어 만들어졌다. 표트르 대제는 건설의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지시하고 감독하여 자기의 의도대로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황제의 열정과 추진력으로 불과 10 여년의 짧은 기간에 거대한 신도시가 조성 된 것이다. 이후 그를 계승한 예카테리나 여제, 알렉산드르 1세, 그리고 니콜라이 1세(Nicholas I)가 이 도시를 완성했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재위 15년차( 25세)인 1697년에 당시로는 엄청난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유럽을 방문하여 18개월이나 체류하면서 유럽의 선진 문물을 견학했다. 황제는 이 기간 중 네덜란드의 조선소에서 노동자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일하는 등 유럽 학습에 진력했다고 한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황제는 귀족을 포함한 모든 백성의 복장을 편리한 유럽식으로 바꾸고, 턱수염도 자르게 하는 등 겉모습부터 바꾸고자 했다고 한다. 표토르 황제의 유럽화 정책은 예카트리나 2세 여제 재위기간에 더욱 확대 발전하였다.
한편 이 도시는 정치면에서도 1826년 데카브리스트의 난 이래 절대왕정에 대한 혁명운동의 온상이 되었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와서 노동운동, 공산혁명 운동의 무대가 되었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시작되는 러시아 제1혁명과 1917년의 3월 혁명, 10월 혁명이 결행됨으로써 세계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을 거둔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는 페트로드보레츠 섬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여름궁전 관광에 나섰다. 검소하고 실용주의를 추구한 표트르 황제였지만, 파티 장소로 쓰기위한 여름 궁전만은 규모나 건물, 조형물 등 모든 면에서 프랑스의 벨사이유 궁전과 비슷하게, 화려하게 만들도록 지시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러시아 제국의 위엄과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려고 했다고 한다.
궁전은 1714년 착공 9년 후 완공 하였다고 하나, 실제로는 150년이 지나서야 완공되었다고 한다. 3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공원에 설치된 150여개의 분수들은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작동한다고 한다. 1990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공원의 경치는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발트 해를 향한 궁전의 계단을 내려가며 만들어진 중앙(삼손) 분수대는 아직 분출시간이 되지 않아 작동되지 아니했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오른 쪽 숲속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우산 분수들과 이 분수를 중심으로 주변에 설치된 각종 분수들을 구경했다. 체스분수, 나무분수, 버섯 분수, 등등 이름만 붙이면 되는 온갖 분수들이 힘찬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숲속의 가로에 세워진 표트르 대재의 동상을 지나 중앙 분수대와 핀란드만을 연결하는 긴 운하의 중간 다리를 건너 우리는 다시 중앙 분수대로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되어 중앙 분수대에서도 힘찬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분수대의 조각상들에서 뿜어 나오는 흰 물줄기가 부서져 햇빛에 반사되며 반짝인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다. 분수의 중앙에 있는 황금 조각은 삼손이 사자를 찍어 누르는 형태인데 삼손은 러시아를 사자는 스웨덴을 상징한다고 한다. 당시 스웨덴에 대한 러시아의 적개심을 보여주고 있다.
분수공원 관광을 마친 후 우리는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중국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니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에르미타주 미술관(겨울궁전) 관람을 위해 폭우 속에서 우산을 받치고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오전에 여름궁전을 관람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청명하던 날씨가 갑자기 변한 것이다. 비를 맞으며 겨우 입장했다.
미술관은 예카트리나 2세가 자신이 수집한 서구 회화 226점을 보관하기 위하여 당초 겨울궁전 북쪽에 건물을 덧붙여 불어로 은둔지를 뜻하는 “에르미타주”라는 명칭을 붙였고, 후에 니콜라이 1세가 겨울궁전의 대부분의 방들을 갤러리로 개조하여 신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추가된 것이다. 현재 약 300만점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에 손꼽힌다. 미술관은 서유럽관, 고대유물관, 원시문화관, 러시아문화관, 동방국가들의 문화예술관과 고대화폐전시관 등 총 6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서유럽 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125개의 전시실이 있다. 전시된 작품을 한 점당 1분씩만 본다고 해도 총 관람 시간이 5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외국사절들이 황제 알현을 위해 걸어 올라갔던 계단을 오르며 수신기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겨울궁전이었던 이 미술관은 27km를 걸어야 모두를 돌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미술관에서 우리는 1시간 정도를 보냈다. 북적거리는 관광객들 틈에 끼어 가이드가 보여주는 중요 전시물만을 대충 보고 박물관을 나왔다. 황금방의 장식의 화려함, 공작석으로 장식한 방, 이태리 대리석으로 만든 황제의 방, 쌍두 독수리가 붙은 황제 옥좌, 독특한 구조로 작동되는 공작새 시계, 루벤스의 명화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예수 등을 눈여겨보았지만 나머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예카트리나 2세, 그녀는 로마노프 왕조의 3대 황제로 영토 확장과 민생 안정, 내분 수습, 경제 발전 등을 통해 러시아 제국의 국력을 대폭 신장시킨 황제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 출신으로서 근위대를 동원하여 남편을 폐위시키고 황제로 등극하였으며, 화려한 남성 편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반 뇌제 등과 함께 러시아의 영웅이자 민족적 자긍심의 근원으로도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나오니 다시 비가 멈췄다. 우리는 예정된 나머지 일정을 위해 유람선을 탔다. 가이드는 수신기를 통해 유람선이 지나가는 운하 양안의 중요 건물들을 모두 설명했다. 특히 차이콥스키가 다녔던 학교와 그가 작곡한 백조의 호수를 탄생시킨 공원, 도스토옙스키가 살던 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방, 소설 죄와 벌의 배경이었던 센나이 광장, 푸시킨이 살았던 집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적인 문인과 예술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든 것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운하 유람이 끝날 무렵 다시 비가 쏟아졌다. 버스를 타고 거리를 돌며 해군성본부, 피터엔 파울요새, 피의 성당, 네브스키 대성당 등을 차례로 차창으로 관광 했다. 차창 관광이란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일이다. 사진도 찍을 수 없고,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없으니 지나가면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짧은 하루 만에 이 거대한 도시의 명소들을 모두 둘러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도시에 온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후진 러시아를 서유럽과 대등한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심혈을 기우렸던 표트르 대제의 위대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러시아를 서유럽과 대등한 문화 예술의 나라로 만들기를 원했던 예카트리나 2세 여제의 꿈을 조금이라도 엿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일간의 러시아, 북유럽 4국, 에스토니아 탈린 여행은 여기에서 끝났다. 아무 탈 없이 그 빡빡한 일정을 강행군할 수 있었던 것과 새로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첨부 동영상 : 유럽으로 열린 창, 상트페테르부르크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