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낭과 지슬
최 화 웅
내가 제주에 처음 간 것은 4.19 혁명으로 휴교령이 내렸을 때였다. 그 이후로는 몇 차례 등반과 여행을 즐겼고 그마져도 사흘을 넘긴 여정은 없었다. 최근에는 제주 피정 순례를 위해 열사흘동안 줄곧 제주에 머물렀다. 신부님 한 분을 비롯한 네 사람이 12박 13일의 일정으로 해안선 250여 km를 걸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일주 순례를 다녀왔다. 나는 그 이후 제주에 꽂혀 제주를 공부하게 되었고 제주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제주를 생각하면 어느 틈에 내 마음에는 제주의 바람이 머물고 폭낭과 지슬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나는 마침내 제주와 사랑에 빠졌나 보다.
영화 ‘지슬’ 덕분에 지슬이 제주말로 감자를 가르키는 말인지 알게 되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제주에서는 감자를 지슬 또는 지실이라고 일컫는다. 지실은 한자로 지실(地實), 즉 땅속에서 열리는 열매라는 뜻으로 지금도 나이 든 어르신네들은 즐겨 쓴다. 제주 햇감자의 껍질에는 검은 화산재가 묻어 있다. 그래서 초여름 수확기가 되면 시장에 나오는 제주감자를 흔히 제주흙감자라고 부른다. 제주흙감자를 쿠킹호일에 싸서 버터를 듬뿍 발라 오븐에 구워내면 그 맛 또한 빼어나다.
영화 '지슬'은 한국영화가 아니라 제주영화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스크린에 우리말 자막이 깔린다. 제주말을 잘 못 알아듣는 관객을 위해 자막을 띄운 것이다. 자막이 없었다면 몇 마디나 알아듣고 스토리 전개를 얼마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서울에 있는 제작진이 감독과 배우를 데리고 촬영기자재를 들고와서 장소만을 빌린 것이 아니다. 영화 지슬은 제주를 지키는 오멸감독이 제주사람들을 출연시켜 제주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 제주에서 개봉한 순수 탐라산 독립영화다. 그러고도 지슬은 지금 관객 10만 명을 넘어섰으며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했고 세계의 유명 영화제를 휩쓰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영화 '지슬'은 제주와 제주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 지슬은 올해로 65주년을 맞은 4.3사건의 진상을 자연스럽게 세상 바깥으로 들고 나왔다. 그동안 4.3사건은 색깔논쟁아 두렵고 제주의 트라우마가 되어 가슴에 묻고 살았다. 그 결과 어느 누구도 감히 말문을 열지 못했고 말하지 않으려 했던 사건이다. 2000년 1월 12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서야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진상조사 결과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선거가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킨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조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군, 경찰,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우익단체가 어린이, 노인, 부녀자들 비롯한 무고한 양민 3만여 명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고 심지어 마을 전체를 불살라 버렸다고 한다.
당시 남로당 무장대 350명에 대한 이른바 빨치산 토벌에 나선 군에게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오가는 자는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빨치산과 빨갱이는 반드시 토벌해야 한다. 그러나 빨갱이와 무장봉기 가담자를 토벌한다는 명분 아래 선량한 국민을 대량학살한 것은 권력남용이요 독재의 망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냉전체제와 이승만 독재정권이 저지른 양민학살은 바로 제노사이드(Genocide)이었다. 끌려가 총살당하고 배에 태워 바다에 수장한 희생자 14,032명의 위패와 아직도 시신마저 수습하지 못한 행불자 3,692명의 표지석이 12만 평에 이르는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의 그 너른 들녘에 누워 까마귀울음만 듣고 있다.
제주에는 역사 이래 끊이지 않는 외침과 난리를 겪는 난리 통에 수많은 민중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고 오름마다 봉수대요 포구마다 연대가 세워지고 바닷가 300리에는 빼곡히 장성(長城)을 쌓느라고 끌려 다녔다. 1271년부터 1273년에 이르는 삼별초의 난에 이은 몽고의 총관부 설치로 이민족의 식민시대가 시작되었고 1374년 몽고 목호의 난, 1862년 강제검의 난과 1898년의 방성칠의 난, 민중에 의해 종교의 역할을 제시하며 천두교인 371명을 살해한 1901년 이재수의 난과 참혹했던 일제의 탄압, 그리고 6.25한국전쟁과 4.3사건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제주는 섬이 아니라 나라였다. 우리나라에 건국신화인 단군신화가 있듯이 제주에는 탐라탄생신화인 '삼성혈과 삼공주'의 신화가 있고 탐라탄생설화 '설문대 할망'이 전해진다. '설문대 할망'은 신의 딸, 설문대와 인간 하르방과의 사랑이야기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제주는 탐라국이었다. 그 이후 몽고의 침략으로 고려와 몽고의 틈바구니에서 국호를 잃고 하나의 주(州)로 전락하게 된다. 제주가 지질시대의 빙하기 이후 해수면의 상승으로 대륙으로부터 분리되면서 대륙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위상을 지켜나가기에 얼마나 힘겨운 세월을 보냈다. 제주는 원래부터 대륙에 딸린 섬이나 변방이 아니었다. 제주의 정체성은 여기서부터 다시 찾아 나서야 한다.
제주말도 그렇다. 우리나라에는 표준어와 지역마다 다양한 사투리가 있다.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표준어 사정원칙의 총칙에 따른 것이다. 나라마다 표준어를 가지는 것은 방언의 차이에서 오는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해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쓰도록 정했을 뿐이다. 서울말에도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가 있다. 서울말의 대표성에 비해 지방방언은 정서와 공동체 결속력을 느낄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제주말 폭낭과 지슬이 바로 그렇다. 아직껏 'localism과 provincialism'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서울을 일방적으로 우월 시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서울이 오히려 지방보다 교양을 갖추지 못하고 시골뜨기 짓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제주에는 바람이 쉼 없이 불어온다. 제주에서는 바람을 맞아 바람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특히 겨울이면 뭍으로부터 불어오는 북서계절풍이 바다를 건느면서 날을 세운다. 심지어 큰 바위가 바람에 날려 와 선이 되었다는 비양도의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고산과 한림 협재 해변으로부터 애월, 하귀, 조천, 김녕, 세화에 이르는 북쪽 해안에는 바람 타는 나무가 흔하다. 이른바 풍향목(風向木)이다. 대표적인 풍향목이 팽나무다. 제주에서는 팽나무를 '폭낭'이라 부른다. 풀은 바람이 불면 엎드리거나 누워버린다. 그러나 폭낭은 엎드리기를 거부하고 죽어라고 바람과 맞선다. 바람에 맞서서 온몸을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굽히고 낮추어서 버틴다. 뭍에서는 높이 25~6m 까지 자라는 팽나무가 제주에서는 바람과 싸우느라고 고작 6~7m의 키에 나무 모양새가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 항몽의 격전지 애월읍 해안도로에는 폭낭이라는 이정표와 폭낭오름도 있다.
주강현 교수는 ‘제주 기행’에서 “바람에 꿋꿋하게 맞선 대가로 폭낭은 폼 나는 모양새를 선물 받았다.”고 썼다. 그렇다. 폭낭은 의(義)로운 반란과 항쟁으로 제주 정신을 드높인 기개를 상징한다. 바람을 이기지 못해 줄기나 가지가 꺾이면 그 자리에서 다시 움이 솟아 자라는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한다. 제주에는 모두 129 그루의 보호수가 지정되어 있는데 그 중에 60%가 넘는 79그루가 폭낭으로 해송의 두 배를 넘는다. 폭낭은 한쪽으로 쏠리다 못해 등굽은 몸으로 중심을 잘도 잡은 채 용케 버틴다. 환경과 현실에 맞서는 폭낭의 강인한 정신이 보이지 않는 제주의 전통이자 기질처럼 든든하다.
오! 아름다워라, 탐라여.
첫댓글 폭낭이 참으로 멋진 나무네요... 담에 제주가면 꼭 봐야겠습니다... 제주 지슬도 먹고싶습니다... 감명깊게 글 잘읽었습니다...저도 제주가 좋아집니다 ..^^*
율리님! 저는 이번에 제주를 다녀오고 그만 사랑에 빠졌습니다.
제주의 바람과 폭낭, 지슬과 화산석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
제주도를 다녀 온지가 벌써 이십여년 된것 같습니다. 국장님 글을 읽으니 옛날 여행 갔던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다시 간다면 이번에는 제주 성지를 한번 돌아 보고 싶습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명금당님! 여행과 순례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시간 나실 때 편안히 떠나보십시오.
바람에 흔들리는 차창 밖의 풍경이 스르도록 아름다운 제주가 그립습니다.^*^
제주에 가면 친척들이 고구마를 쪄서 `감저 먹으라게`하셨어요. 근데 죽어라 바람과 맞서는 폭낭! 너무 멋진 나무네요.저도 이번에 순례를 가게 되었는데 제주 피정 순례길을 하루에 한 번씩 읽고 또 읽노라면 가슴이 벅차옵니다.이렇게 좋은 글과 피정 순례길 자세하게 올려 주신 덕분에 잘 다녀오겠습니다.그리고 다시 한 번 순례길 함께하시기를 희망해봅니다.
강엘리님! 제주에 가시군요. 추카드립니다.
오늘도 저는 슬프도록 아름답고 슬프디 아픈 제주의 사무치는 그리움과 기다림에 빠집니다.
잘 다녀오십시오.기다리면 때가 올테죠. ^^*
마음이 힘들어 질때면 언제나 그리워지는 제주..그곳에 가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영화 '지슬'을 보며 아픔이 있는 제주를 더 사랑하게 되었지요..
오드리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사비노님과 따님들두요.
저는 이번 제주를 다녀온 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텅 빈 마음에 제주의 그 바람이 입니다.
아마도 저에게는 첫사랑이 그랬나 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랑도 다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그리움을 어찌 하오리오까!
남국의 햇살이 속석이던 온평리에서의 만남에 인연을 맡깁니다.
건강하십시오.^*^
가슴이 짠해 옵니다.
제주 도보순례에서 진짜 제주를 맛보고 돌아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민들레님! 미안합니다만 저의 생각으로는 제주 순례에서는 되도록이면 모든 걸 잊고 단순하게 걸으십시오.
그리고는 바람이 읽어내리는 소리없는 아우성과 울림을 놓치지 않고 들으십시오.
제주에서 한국의 숨은 얼굴, 우리의 페르소나를 만나 보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마음을 비우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God with us!!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접니다. 하고픈 것을 해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 하면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은 맘임다.
지금 아니하면 아무것도 못 할것 같아 용기를 가지고 모든것 내려놓고 떠나 볼렵니다.가슴아픈 제주,바람을 친구삼아 받아안고 아프면 아푼대로,힘들면 힘든대로 맘은 즐건 맘으로... 멋진 제주를 맘메 가득 담고 돌아오도록 최선을
다 하겠슴다. ^*^ 주님과 함께......
차사랑님! 건투를 빕니다.^^*
제주와 사랑에 빠지신 선생님! 오랫만에 선생님 글을 대하는 듯하여 반갑습니다.
저는 4월 23-25일에 정신지체 아이들과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는데, 아이들 돌보는 일에 신경쓰느라
제대로 된 여행은 못할 듯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조용히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길에 나서고 싶은데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네요.
날씨가 오락가락 하는데 건강 유의하시고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그리운 청초이님! 오랜만입니다. 사실은 제주와 사랑에 빠져서 그동안 아무 일도 손애 잡히질 않았드랬습니다.
힘드시겠지만 보람찬 일을 하시는 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잘 다녀오시고 저의 간절한 이 마음도 제주 가는 곳마다 전해주십시오.^*^
국장님 글 읽다가 눈물났습니다.
좋은일 나뿐일 겹겹히 쌓인 짧지않은 인생이
제주의 아름다움 속에 숨어있는 아품으로 위로받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레오님! 잘 지내셨죠? 오늘 따라 부산에는 봄비가 내립니다. 마치 답사 첫 날 처럼 말입니다.
제주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지나고 나니 그 때가 그립고 사무칩니다.
봄농사 준비 잘 하시고 부디 건강하십시오.
그리움님의 제주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도보 순례 - 저도 내년쯤에 그 대열에 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나리님! 저두요^^*
그리운 날을 마음껏 그리워 하는 그리움님의 그리움이 그립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에 감춰진 슬픈 역사의 흔적마저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뵈야 할 그리움님의 그리운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자로 불러주신 그리움님! 6월 9일 그리움님을 그리움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