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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출입기자들에게 복지사각지대 해소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송파동 세 모녀의 동반 자살, 동자동 쪽방촌 어르신의 고독사, 발달장애 아동 가족의 동반자살. 지난 두 달 동안 생계형 자살과 고독사가 잇달아 보도되면서 충격을 줬다. 언론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저마다 우리 사회를 향한 분노와 안타까움을 토로했고, 불안정한 사회안전망을 개탄했다.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하루하루 먹을거리를 비롯해서 안녕한 삶을 위한 다양한 외부 도움이 절실하지만 아무런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고, 결국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 것이다.
이렇듯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야만과 폭력성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빈곤의 대물림, 극단적인 경제사회적 양극화, 비정규직의 양산과 청년백수의 증가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 문제와 용산참사, 쌍용차문제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지만 이를 진지하게 접근하고 해결하려는 법률·제도적, 정치사회적 노력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그들이 남긴 유서.
나는 이들의 죽음을 일종의 사회적 타살이라고 본다. 그에 대한 책임에서 국가도, 지역사회도, 사회구성원인 우리도,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자살과 죽음이 잇따르는 병든 사회를 어떻게 수술할 것인지, 우리 모두 깊이 살펴봐야 한다. 책임 주체들이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야 한다. 공적 책임, 공동체적 책임을 확보하고 확대하여, 모든 것을 개인의 무한책임으로 지우는 사회구조를 바꿔내야 한다. 잘못된 복지제도를 개혁하는 실천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절대빈곤율은 8%, 상대빈곤율은 16.5%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호를 받는 인구는 2.8%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빈곤 상태에 있으면서도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고, 상대빈곤층은 언제 절대빈곤 상태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긴급복지제도는 소득 상실과 질병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취약 계층에게 생계비·의료비·주거비·교육비 등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서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지만 수급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 그래서 지자체들은 부정수급 시비를 우려하여 대상 선정과 지원을 엄격히 하고 있고 특히 사회복지통합전산망 운영으로 소득과 부양 의무자 파악이 체계화되면서 기초생활보장 탈락자가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잘못 설계된 제도는 당사자들의 미약한 관계마저도 완전히 끊어내고 만다. 기초생활수급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부모, 자식, 형제자매들과 단절을 공식적으로 증명해야만 한다. 사실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이미 사회와 가족과 단절된 사람들이지만 더 깊은 단절을 요구 당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 수요는 늘어나고 있으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줄어들었고, 수급자가 줄어든 까닭에 그나마 확보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예산의 집행률도 높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지사각지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민기초생활보장의 범위를 넓히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걸림돌을 제거해야하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예산을 획기적으로 증액해야 한다.
공공부조를 강화하는 것 또한 이제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이를 토대로 4대 보험과 사회투자, 사회서비스, 사회수당, 일자리 등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 복지의 원칙에 부합되는 적용과 제도화가 필요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임금 비중의 확대와 사회복지세 도입 등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한 지속적인 실천과 운동이 필요하다.
최근 서울시는 세 모녀 사건의 발생 원인이 취약한 복지전달체계와 신청주의의 한계, 엄격한 선정기준 등에 있다고 진단하고, “세 모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복지전문 상담사 260명과 공무원, 통반장 등을 총동원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정에 대해 전수조사에 나서고,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소득 기준을 현행 최저생계비의 68%에서 연내 80%로 대폭 확대한다.” 라고 발표했다.
신청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적극적 발굴주의’로 이를 극복하겠다는 방향성은 일단 옳게 잡았다고 본다. 하지만 최저생계비가 노동자 평균 소득과 비교했을 때 계속 낮아지고 있고, 국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편해 최저생계비를 중위소득 기준으로 대체하려는 상황에서 이런 서울시의 조치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수급자 발굴 또한 이미 희망복지지원팀에서 진행해 왔던 것 아닌가. 수급신청의 높은 문턱을 낮추고 신청절차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등의 근본적인 조처가 따르지 않는다면 서울시의 발표는 한시적 대책으로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발굴과 지원 역할을 일선에서 감당하는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점도 선결과제이다. 또한 서울형 주택 바우처의 급여를 현실적으로 상향시켜 주거비 지원에 대한 대책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넓게는 서울형 기초보장의 확장을 위해 자활근로사업의 차차상위 계층으로의 확대도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국가나 지자체의 노력만으로 완벽히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차원의 사회복지 실천이 그래서 중요하다. 사회복지 실천은 당사자 중심, 지역 중심이 관철될 때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조직화와 네트워킹, 인큐베이팅 과정이 필요하다.
지역은 사회의 모순이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며, 따라서 사회복지 실천은 삶의 공간인 지역사회, 곧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복지생태계 회복은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 지역을 건강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바꾸어나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껏 경제적·사회적·물리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됐던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이라는 공간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복지사각지대 해결책은 그동안 분절됐던 주민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제적 결핍의 해결을 넘어서서 관계 결핍까지 어루만지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사회복지 실천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의 나눔이웃 사업이 좋은 예이다. 동단위의 복지위원회와 복지거점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발굴하고 보호, 돌봄 체계를 만들어 보다 촘촘한 안전망을 일구어야 한다.
문제와 이슈 중심의 관계망을 넘어서서 일상과 삶의 관계망을 엮어나가야 한다. 육아와 다문화, 문화 활동, 먹거리 등 다양한 생명활동에 필요한 것들의 관계망으로 확장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일상적 관계망의 확충이 사회경제와 공유경제의 원천이며, 다양한 마을일자리를 제공하는 토대가 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복지공동체의 기반이 될 것이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책 <분노하라>에서 스테판 에셀은 “참여는 사람됨을 다하는 책임이다.”라고 했다. 계속되는 사회적 타살에 분노하자. 숨이 턱턱 막히는 일상과 어떤 희망도 가지지 못하는 삶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권리마저 짓밟히는 사람들과 함께 분노하자. 그리고 사람됨을 다하기 위해 참여하자.
첫댓글 많은 공부가 필요해보입니다...갠적으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