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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홍규의 「고별강연(1984)」의 내용 따라가기.
류종렬, 2020 07 13 등재
박홍규의 강연에 따르면, 플라톤을 정리한다는 것은 플라톤의 작품들을 다 읽고서 그의 문헌상 데이터를 우선 용어별로 용례별로 나열하고, 그 개념들이 지니는 유형과 위상을 정리하고 배열하고, 분류하여 지위의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리라. 박홍규 사상을 정리한다는 것을 위에 비추어서 정리한다는 것은 우둔한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설령 자료가 정해져 있고 검증할 수 있다고 해서 정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리한다는 것, 그것은 분류상의 지위들(철학사에서 나중 이야기이지만, 구성이든, 구축이든 복합체이든, 유기화이든)이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모순을 회피하려고 경계들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야 하며, 시대의 연관 속에서 드러나는 기호와 의미의 영역들을 설명해야 한다. 설명에는 법칙으로서 원인과 설명으로서 원인을 구별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선생님의 남기신 말씀들을 따라간다고 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정리된다고 생각할 수 도 없고 ... 그래도 뭔가를 써야 한다고 강요받지만, 쓴다는 것은 욕심(차라리 공상이리라)이지 능력에 속하지 않았다.
고별강연을 ‘나름으로’ 요약하자면, 철학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들을 모두 모아서 정리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정리한다는 것은 잰다는 활동이 이미 들어가는 것이다. 이 활동은 포이융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활동성은 운동이라기보다 지성의 기능이다. 활동성 이전에 자료들에게는 양 극한이 있다. 박홍규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 즉 정지와 운동이다. 공간과 정지, 운동과 시간이라는 두 극한이다. 그의 베르그송에 관한 한편 밖에 없는 글에서 두 좌표축이라 했다. 시간과 운동에서 출발하는 철학이 벩송의 사유이다. 강연에서는 플라톤은 양자들을 다 놓고 나갔는데, 서양 철학사에서는 공간을 주축으로 하는 경우가 있었고(플라톤주의), 벩송에서야 진정으로 시간(운동)으로 철학을 했다. 이 후자는 기억과 생명(유전)이라는 학문이 성립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연에서 박홍규는 세 가지 철학이 있다. 양자를 동시에 놓고 사유하거나, 정지(공간)로부터 시작하거나, 운동(시간)으로부터 시작하거나, 이 이외에 철학은 없다고 하였다. 이런 박홍규의 생각은 전집에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그럼에도 그가 철학하는 이유, 철학사의 과정, 철학의 전환[전복] 등으로 철학사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을 대중들 앞에서 한 강연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행한 이 강연이었다.
그 강연을 기초로 하여 글을 쓰려고 했다. 요약정리를 하고 나름대로 부연 설명을 붙이려고 했다. 어느 정도 읽고 정리를 하고서, 그러면 앞에 들어가는 말을 무엇을 쓸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시간 나는 대로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사람들을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상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간을 벌어다준 것 같기도 하다.
박홍규전집(5권, 1995-2007)의 출판 이래로, 김재홍의 서평 「박홍규 철학이 남긴 헬라스 사유의 유산」(철학사상, 2004), 최화의 저술 박홍규의 철학: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2011), 이태수 외 9인의 논문집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이정우의 저술 소은 박홍규와 서구 존재론사(2016) 등은 박홍규와 연관에서 나온 글들이다. 그런데 우연히 구글 서핑에서 ‘랭’이라는 필명의 “독서 노트”를 보았다. 철학도가 아닌 사람으로 잘 정리된 글이라 흥미로웠다. 다시 ‘랭’을 서핑해보니 “레고로 만든 집”의 주인이었고, 소설가 윤성희였다. 작가는 박홍규의 데이터의 총체를 언급했다. - 박홍규의 정년퇴임 강연인 「고별강연(1984)」은 데이터에 관해서 길게 설명했다. 매우 중요하다고. 그 데이터(data), 즉 프라그마(pragma) 또는 프라그마타(pragmata)는 벩송이 윌리엄 제임스에서도 말했듯이 관념이나 개념이기에 앞서서 사유의 실재적 대상이다. 그런데 미국철학에서 실용주의(le pragmatisme)가 실생활에서 유용(utile)으로 되었던 것, 다시 말하면 공리주의(l’utilitarisme)를 이어간 것으로 되어 있다. 벩송의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들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édiates de la conscience, 1889)에서 자료들(les données)이 다타(data) 즉 데이터들이다. 이 용어들에서 플라톤이래로 제임스나 벩송이 실재론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박홍규의 플라톤을 탐구하는 바탕과 들뢰즈가 플라톤을 끌어들인 방식에서 유사성을 보았다. 그것은 나중에 한번 다루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두 사람이 살아오면서 타인들에 비친 모습이 닮았다. 은둔지사라고.
들뢰즈의 사후 철학지 특집호에서 조사(弔詞) 겸 존경의 뜻으로 「수이다스(Suidas)」를 쓴 베르노(André Bernold, 1958-)는 들뢰즈를 “혈거인”(troglodyte)이라 표현하였다. 내가 알기로 선생님의 호가 없었는데, 그날 윤명로 선생님께서 고별강연(1984)의 사회를 보시면서 후배가 선배에게 호를 지어드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날지 모르지만 호를 지어드리겠다고 하였던 것 같다. 소은(素隱)이라고. 소은과 혈거인은 내용상 닮았다. 출세간 하지 않았지만 학문을 깊게 탐구하였다는 의미에서 은둔지사이다. 또한 두 철학자는 서로 몰랐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게다가 박홍규(朴洪圭, 1919-1994)와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둘 다 ‘플라톤주의’에 빠지지 않고, 플라톤을 또는 그리스인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였던 것 같다.(53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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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강연」의 시작에서 데이터가 무엇인가를 화두로 끌어내면서 시작하여, 강연의 마지막에 “철학은 데이터 그 자체가 어떻게 성립하느냐는 것도 문제입니다. 모든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그것은 간단하지 않아요. 내 얘기 그만 하죠.”(55쪽)로 끝난다. 여기서 ‘데이터 그 자체가 어떻게 성립하느냐’는 데이터의 성립과 더불어 아마도 성립된 데이터들을 이것저것 다 모아보아서 정리하고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의 성립의 문제는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가면 매우 길다. 간략하게 플라톤의 국가편의 선분의 비유에서 보자면, 밑에서부터 자료 또는 대상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흐릿하게 뒤죽박죽으로 있는 그림자 같은 아페이론이 있고, 이런 다양한 그림자를 있게 하는 사물이 있다. 그리고 사물들을 요즘 말로 추상하면 도형들이 있고, 도형들의 근본적 원리 또는 본질과 같은 동일자들 즉 이데아들이 있다. 이 네 가지들이 모두 데이터로서 성립하느냐는 말씀대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데이터들에서 출발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용어로서 ‘확실하다’고 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그렇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데이터들(les données)에서 출발한다고 여기고 박사학위 논문(1896년)을 쓴 벩송은 데이터들 중에서 무매개로 주어진 것들에서 출발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의 형이상학을 설명하는 「형이상학 입문(1903)」에서는 철학은 “총체적 경험(l’expérience intégrale)”을 다룬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박홍규의 사유와 벩송의 사유의 유사성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벩송이 다룬 데이터와 박홍규가 다룬 데이터는 차이가 있다. 벩송은 당대의 제반 과학들의 성과를 다루는데 비해, 박홍규는 플라톤이라는 작품들을 데이터로 삼았다는 것이다. 물론 박홍규는 말한다. “플라톤의 경우는 문제가 굉장히 많아요. 왜냐하면 그는 2천년 전 사람이거든요” 그의 설명으로는 플라톤의 작품이 그 당대의 것이 맞는지 아닌지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테파누스판을 기준으로 한다. 그럼에도 그 내용에서는 일관성 있게 여러 데이터들이 성립할 수 있는 근본적인 데이터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찾아서 플라톤의 사상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이런 연구에서는 우선 남겨진 문헌에서 한 용어가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또한 다른 문헌과 관계도 조사해야 하고, 그리고 그 용어가 문맥들 사이에서 일정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악하여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문헌학은 어휘목록도 만들면서 데이터를 정리한다. 이런 작업이 데이터를 성립하게 하여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 정리로부터 객관성을 찾아서 정립해야 한다. 이리하여 학문은 데이터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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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님는 데이터로부터 시간과 공간이라는 문제로, 그러고 나서 있음과 없음으로, 결국 사유의 극한을 따라가는 길을 설명하는데, 요약을 잘 한 것인지 모르지만 아래와 같다.
>그러면 최초로 반성하는 사람은 주어진 데이터가 총체 속에 있는 관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소크라테스의 “이것은 무엇이냐”라는 물음에서 이것은 데이터인 셈이다. 그러면 플라톤도 데이터에서 출발하는데, 이 데이터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느냐는 것이다. 철학적인 데이터는 개별과학과 달리 “모든 데이터의 총체를 의미”하며 “추상적 사고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부터 데이터를 이해합니다.” 그 총체란 우선 직접적인 역사적 사건 이다. 플라톤에서는 테이터가 항상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고유명사로 표기” 되며,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일반명사이다.
>이런 데이터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플라톤에서 전형적인 특성을 보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연장성 속에 들어 있어서, 그 특성은 잰다는 것이다. 잰다는 것은 주체자와 대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들어있다. - 여기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뒤로 젖혀 두어야 할 것이다. -
>잰다는 것은 대상이 자기 동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래야 인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잰다는 것은 대상을 되풀이해서 반복해서 동일하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잰다는 의미는 대상이 연장성 속에 있다는 것이며, 플라톤에게서는 대상에서 양적인 것만이 아니라 질적인 것도 정도의 차에 의해 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는 것은 기학적 의미를 갖는 것이며, 도형의 형태로서 파악하는 것이다. 이 도형의 형태가 형상(eidos)라고 한다.
>연장성을 갖는 도형을 설명하는 데, 도형이 성립하는 것은 변의 길이와 면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잰다는 것은 연장성을 파악하는 것이며, 여기서 공간이라는 무엇인가가 제기된다. 공간은 정지해 있는 것이고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게 하는 것에 쓰인다. 이 대상과 저 대상의 각각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운동이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서 운동이란 질이 연결되는 것으로 서로 묶여있는 것이다. 공간에서처럼 대상들이 각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이란 항상 정지해 있는 것, 구별되는 것에만 쓴다. 질이 각각 구별되어 자기 동일성을 가지고 있으면 운동이 성립하지 않는다. 운동이란 질이 연결되어 있어야만, 묶여져 있어만 성립한다. 시간 즉 운동이라는 것도 질의 연속과정, 연결된 과정이다.
>그러면 “공간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운동과 갈라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흐름 즉 운동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듯이, 동시에 공간도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모른다. 풀어져 있지 않고 묶여 있다. - 시간과 공간은 엉켜있다. 엉켜있는 흐름(유동)에서 운동이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하여 나중에 완전히 빠져나가면, 운동과 공간은 분리된다. 그때에 형상이 나온다. 그러니까 형상은 움직이지 않는 즉 부동이다.
> 엉킴과 부동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공간들이 있다. 크게 보아 유클리드 공간과 비유클리드 공간 [그리고 흐름으로서 아페이론이다.] 등 매우 많다.
> 철학은 모든 데이터를 다루는데, 데이터가 들어가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간과 시간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인식이 안 된다. 그럼에도 데이터로서 사물을 정의해야 한다. 그 정의가 형상(eidos)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런 형상들이 동일한 공간 속에 들어갈 때, 무(無)는 없다. - 이쯤에서야 선생님은 “나의 플라톤 해석입니다”라고 한다. - 학문이 데이터를 취급할 때 모순을 회피하라는 것은 [존재론의] 출발점이자 첫째 조건이다. 그런데 형상들 사이에 차이[différentiation]가 있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 그래서 존재론은 원인론(aitiology)이다.
> 데이터 일반은 항상 차이를 갖고 있다. 그 원인은 모순이다. 모순을 회피해야 하니까, 존재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에서 출발하는 데, 그것을 무한정자(apeiron)라 한다. 동일자와 다른 아페이론은 공존과 비공존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무한정자에서는, 즉 다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함께 나온다. 플라톤은 형식적 존재론으로써 차이 있는 사물들을 다루려 한다. 그러면 사물들 사이에 정도의 차이로 정리할 수 있다. 형상에서 정도의 차이가 많은 아래로 내려가면 궁극적으로 아래(깊이)는 모른다. 플라톤에서는 존재론이란 말이 없다. - 깊이에서 운동만 또는 흐름(시간)만 있는 엉킴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 그럼에도 철학은 모든 데이터 총체를 다루고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형상(에이도스)에서 그것과 정도의 차이들이가 가장 큰 아페이론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배열하고 정돈한다. 그래서 개별과학들이 성립한다. 개별과학 성립 이전에 선행하는 것이 존재론이다. 즉 철학이다. <
덧붙여서 말하자면,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부딪히는 일반적 대상들 즉 사물들을 재고 잘라서 정리하고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그 자료들이 척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대상으로서 동일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변화하면 동일성을 지닐 수 없다. 그 동일성 즉 자체적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을 탐구하려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운동과 시간이 빠져나가야 한다. 완전히 빠져 나간 상태가 대상으로서 형상(eidos)이며 그 자체적으로 부동이다. 그런데 세상은 부동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거꾸로 내려와 보자 부동에서 조금씩 운동이 섞이면서 공간들이 여러 종류이고, 너무나 많이 섞여서 대상이 흐물흐물해지면 흐름으로만 있을 것인데 이를 아페이론이라 부른다. 결국 방법적으로 두 가지 추상의 길이 있는데, 하나는 운동이 빠져버린 상층의 길의 극한에서 공간만으로 성립하는 에이도스가 있다. 거꾸로 공간이 점점 빠지고 질적인 것이 점점 활성화하여 엉킴으로 있는 심층의 극한에서 운동만이 있는 아페이론이 있다. 플라톤이 모든 데이터의 성립의 극한에서 무(無)라는 모순을 회피하려 한다. 그러면 존재가 성립한다. 그러면, 이런 추상의 두 극한에서 한 극한인 아페이론이 문제거리로 남는다. 나로서는 선생님의 두 제자 윤구병과 이태수 사이에 차히를 뒤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나중에 “플라톤과 허무주의(1989)”에서 허무주의 극복이 철학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전쟁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 마찬가지로 플라톤이 펠로포네소스 전쟁을 20여년 겪으면서, 깊은 고민 중에 하나를 드러낼 것이다. 인간에게 공포와 혼란을 심었던 전쟁에 관하여 “플라톤과 전쟁(1990)”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극한은 각각이 잘려지지 않은 이어짐이 있다고 한다. 벩송은 두 이어짐을 구별하여 하나는 공간, 다른 하나는 지속이라 부를 것이다. 이것들은 유형적 차이라기보다는 ‘위상적 차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차이란 잰다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이 두 극한 사이에 정도의 차이를 이루는 것이라 한다. 그 정도의 차이의 절편화된 단위들로 한계를 지우는 방식에서 개별학문이 성립한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설명에는 추상의 두 극한에서 둘 다 자발적인 운동이 없기에 정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어떤 작용 또는 기능이 필요했으리라는 것이다. 포이융이라는 개념을 들어서 데미우르고스가 하는 작업도 운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한다. 그러면 운동은 사물의 외부에 있는 것이 된다. 여기에 난제가 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궁극적으로 두 개(정지와 운동)의 전제가 있을 뿐이고, 플라톤은 둘을 다 놓고 자기 사상을 전개해 나갔다. 그후에 정지 측면은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고, 운동 측면은 벩송으로 계승된다고 하면서 두 가지 방식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면 플라톤 또는 선생님의 설명에서 왜 포이융을 운동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인식작용이 아니다. 오히려 아페이론 성격자체에 운동의 능력과 수용력이 있다고 해야, 아페이론의 정도차가 나오고, 인식작용에 의한 정도 차이가 배제될 수 있을 것이다. 인식작용의 정도차는 관심의 차이, 또는 재는 도구의 차이, 나아가 학문의 영역과 한계의 차이일 것이다. 이런 영역을 단위로 삼게 되면 들뢰즈가 말하는 유형학, 개별학문들이 등장하게 된다. 철학은 총체적 데이터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자연이 유출하는 데이터(기호와 증후)들을 각각의 고유한 성질들로서 다루게 될 때 위상학적이라고 한다. 학문들에는 유형들이 있고 의미를 다룰 것이다. 고유한 표출의 표현들을 다루는 위상학적 방식에서는 발생의 토대(깊이), 과정의 이중화(다양체) 그리고 표면에서 성립된 또는 만들어진 사건들을 설명하고 서술할 것이다. 전자의 지식론으로 진위의 구별은 어떤 조건아래서이다. 또는 삶에서 기회원인적 경우(개연성)에 속할 것이다. 후자에서는 다양체의 발현의 방식에 따라 삶의 양식은 다르고 다른 양식들 사이서 놀이의 선택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후자는 실재적인 문화론에 속한다. 후자에서는 삶이 먼저이고, 전자에서는 지식의 철학함이 먼저일 것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로비네가 쓴 「프랑스 철학사」에서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 경향과 플라톤 경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불교에서 나가르주나(Nâgârjuna 150?-250? 용수, 龍樹)의 중론(中論)에서 상좌부와 대중부의 차이와 닮은 것 같다. 삶과 철학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세계관이라고 하는데, 세계관의 차히일 것이다.
박홍규의 설명에서 후대의 경향이 아니라, 플라톤의 두 극한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두 축으로 설명했던 것과 비슷하게, 서양 철학사를 설명하는 데도 한 극한(에이도스)과 다른 극한(아페이론) 사이의 공간적 차이들의 정도의 차이로 보았다. 그 정도의 차이들 안에 여러 층들이 있는데, 그 층들이 개별과학을 성립하게 한다. 물론 플라톤에서 이 개별 학문들의 성립에 관한 일반론 이전에 존재[에이도스]가 선행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강연은 그 다음으로 서양학문의 발달사와 계승에 대해 전개하였다.
> 그리스 로마의 학문은 이탈리아를 거쳐서 프랑스 갑니다. 프랑스의 파리는 로마 교황청의 딸이라고 불립니다. 라틴 사상의 진수는 파리에서 정립됩니다.
> 플라톤의 티마이오스편, 알렉산드리아의 유클리드, 시실리의 아르키메데스의 전통은 이탈리아의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로 이어집니다. 그리스 자연학이 물리학으로 성립합니다. 라틴어 스키레(scire, 알다)는 자의적 생각을 빼버리고 실증적인 데이터를 다루고자 합니다.
> 중세에서 스콜라의 학문은 주입식이고 세뇌 작업입니다. 데이터 보다 논리를 중요시 여깁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천문학과 물리학처럼 플라톤의 유동이론(flux theory)으로부터 출발이 있습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도 유동이론으로부터 출발하여, 데이터를 잽니다. 잰다는 것은 데카르트의 코기토 철학과 다른 길입니다.
> 사변의 길과 달리 실증적인 학문을 주장하는 꽁트(Auguste Comte, 1798-1857)가 나옵니다. 그는 갈릴레이처럼 중세의 신학과 형이상학을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는 수학, 무기물, 유기물, 다음으로 사회학을 놓았습니다.
> 실증 학문은 여러 방면으로 퍼져나갑니다. 사회학에서 레비브륄과 뒤르켕이 있고, 병리학에서 샤르코가 나옵니다. 데이터의 취급에서, 수학, 물리학, 생물학의 경계는 분명합니다.
> 이 경계에서 수학을 기반으로 그 위에 물질을 놓는 것, 수학으로 흡수될 수 없는 물질을 놓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물질과학으로 환원되면 유물론적 형이상학으로 갈 것입니다 여기서 결정론과 비결정론이 나온다. 우선 우연이 개입하는 개연성이 나옵니다. 수학에서 뒤엠, 보렐이, 철학에서 부트루가 있습니다.
>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결론이 나지 않을 때,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 이 등장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데이터 자체를 구분합니다. 생명현상은 수학과 물리학의 데이터가 아니라 생물학의 데이터를 정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스퇴르 이래로 생명은 무생물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생물은 유전이며, 그 유전되는 것은 살아가는 기능입니다. 기능이 무엇인가가 문제입니다.
> 생명은 자기 운동을 하는 자기 운동자입니다. 자발성 즉 운동의 능동성입니다. 그러면 물질은 무엇이냐? 물질은 베르그송에서는 엔트로피입니다. 생명은 엔트로피의 역행입니다.
> 운동의 자발성에서, 베르그송은 플라톤의 운동을 중심으로 봅니다. 이 자발성은 자기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측면이 바로 심리학에서 기억, 생물학 쪽에서는 유전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철학은 본질(essentia)의 입장에서 현존(existentia)의 입장으로 돌려놓습니다. 그러니까 니체의 “땅에 충실하라”[bleibt der Erde treu, « À la Terre, restez fidèles. »]의 실증주의와 같은 측면에서 입니다.
> 베르그송에서 데이터의 중요시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자기 자신입니다. 이것을 잰다고 하는 것은 플라톤이 질을 재거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양화하는 것과 다릅니다. 그 질에는 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세계와 같이 어떤 동기가 들어갑니다. 생명현상에서 자발성은 자기조절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외부에서 어떠한 척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특징입니다. 이런 것이 존재론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이것은 전체에 대한 의도가 들어간 것입니다. 플라톤의 고유명사나 아리스토텔레스 일반명사에서 형상이 성립하려면 공간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런 서술문장 앞에 어떤 가정이 빠진 결론(apodisis)만 모은 것입니다. 추상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모든 것은 사건으로서 성립합니다. 법칙도 사건으로서 성립합니다. 이에 비해 베르그송에서는 어떠한 추상적 사고 안 들어간 데이터를 사용하며, 이것은 존재론적으로 실재(reality)입니다.<
철학사는 전제로서 어떤 가정을 세워두고 철학을 하다가 벩송에 와서야 전제 없는 데이터에 의한 학문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 데이터가 현존에서 실재성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사를 뒤 바꾸어 보는 것은 베르그송에서야 나왔을 것이다. 베르그송 「형이상학 입문」(1903)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은 전도된(invertion) 철학을 했다고 한다. 들뢰즈는 논문 「플라톤주의를 전복하다(Renverser le platonisme: Les simulacres, 1966)」에서 전복(renversement)이라고 한다. 왜 이런 사유 방식이 철학사에 늦게서야 재조명 되었을까 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지 않고 서양 철학사의 오랜 과정에서 이 둘의 입장이 엎치락뒤치락 해왔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 입장과 투쟁과 전투에서 진솔한 실재성을 다룬 입장이 있어왔는데, 잘 드러나지 않다가 벩송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플로티노스, 스피노자, 니체, 벩송, 들뢰즈/가타리에서 표출되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철학사의 연속과 불연속에 관해 간단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자국의 역사가 기원전이 없듯이, 학문에서도 10세기 이전은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로마, 이슬람권 영향이 있다. 그러고 나서 프랑스에서 지혜와 지식의 학문으로서 철학이 도래한다고 할 수 있다. 앙드레 로비네는, 그의 프랑스 철학사에서 프랑스 철학은 제1 르네상스시기에 신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1142)와 신앙으로 복귀하려는 성 베르나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가 있었다. 제2 르네상스시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플라톤철학의 부활이 있는데, 플라톤 학설의 부활을 알리는 샤르트르(Chartres) 학파로서 퓔베르(Fulbert de Chartres, 970경-1028) 등은 프란체스코파에 속한다. 이에 비해 도미니크파에 속하며 파리 대학에서 강의하였고 그 대학의 주류를 이루게 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 계열이 있다. 이제 교회의 권세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다. 파리대학이 플라톤주의자들 즉 유명론자에 대한 공격으로, 이를 이탈한 부류로서 오캄주의자들 중에 니콜라 도트레꾸르(Nicolas d'Autrécourt, 1300경-1350)가 있다. 다른 한편 회교의 아베로에스주의자들에 대항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신앙에서 떼어내려는 브라방(Siger de Brabant, 1240-1284)이 있다. 파리대학에 종교의 독단에 빠져있을 때조차 고전을 고전 자체로 연구한 연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이탈 시기는 서유럽의 새로운 탄생을 가져다 줄 것이다. 로비네는 프랑스 중세 철학사가 질송이나 다른 철학사가들을 인용하면서, 파리대학 성립 이전에도 파리노트르담학교 등에서 작은 분야들에서 프랑스 학자들이 죽 있어 왔다고 한다.
제1기 아벨라르(1079-1142)대 베르나르(1090-1153)의 12세기 시기, 제2기는 오컴주의자에 경향(1350-1500)에 대한 파리 대학의 반격과 아베로에스주의(아리스토텔레스 경향)의 탈교회 방향 잡기였다면, 제3기 르네상스에는 인쇄술 발명(1450년)과 발달로 유럽의 문화 창달의 시기이다. 이른바 인문과학의 전파, 자연과학의 발달, 종교개혁의 시기이다. 이 때에 몽테뉴(Michel Montaigne, 1533-1592)가 선두적이었다. 이때에 유럽인들이 자의식의 발생의 초기이다. 프랑스가 자유와 평등을 깨닫게 되는 것은 지식인이 라틴어에서 벗어나서 자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몽테뉴도 프랑스어로 썼고, 물론 작은 작품이지만 데카르트도 프랑스어 자국어로 썼다. 우리의 자국어에 의한 자의식의 발동은 빠르다. 훈민정음 창제의 1446년이래로 인민의 자의식의 발현을 잘 키웠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말 우리글로 철학하기는 언제든지 좋다.
그리고 근세철학에서 데카르트를 처음 꼽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벩송은 그의 저작 곳곳에서 근대의 시작으로서 특징을 설명하면서, 천문학이 지상으로 내려와서 물리학이 되는 갈릴레이를 중요하게 꼽고 있다. 그 다음으로 1830년대 이후로 사물을 안에서 또는 안으로 들어가서 탐구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안에서 즉 내재성의 철학이 다루는 데이터는 아리스토텔레스 학문들의 몰락을 의미한다. 물체에서 원자 속으로, 생명체에서 세포 속으로 수학에서 군론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또한 벩송이 강조한 것은 열역학 제2법칙에서 평준화에 역행하는 힘이 생명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근세철학 이후로 벩송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철학의 개관은 로비네의 「프랑스철학사(1977)」에서 설명한 근세철학의 흐름을 보면 벩송이 「프랑스철학(1915, 1933)」에서 배열 정리한 의미를 보게 될 것이다.
로비네는 프랑스 중세철학에서 신앙과 이성의 구분이 프랑스 근세철학에서는 시기적으로 경계를 달리하여 전개한다. 저자는 신앙의 변신론자에는 말브랑쉬와 라이프니츠를, 이 반대편에 파스칼과 아르노을 놓는다. 데카르트의 신은 후자의 편이라고 한다. 다음 시기를 위하여 전자와 후자를 합리론과 비합리론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계몽기에서는 크리스트교도와 데카르트 주의자들이 거부했던 감각과 경험을 기초로 삼는데, 이 시기에 우선 볼테르가 있었고, 다음으로 라메트리 등의 18세기 유물론자들이 있다. 이에 비해 기존의 형이상학을 배제하고 철학에서 인간 인식의 기원을 다룬 꽁디약도 있다. 다른 범위의 경계에서 역사의 개념을 다루면서, 사회 상태에 대한 관점이 도래하는데, 몽테스키외, 루소 등이 있다. 또 다른 경계로서 사유를 내부로 향한 멘 드 비랑과 외부로 향한 콩트를 거치는 시기에는 학문의 다양성이 성립한다. 화학에서 라브와지에, 생물학에서 비샤, 공동체의 인간학에서 생시몽 등이 있다. 또한 칸트의 비판철학을 영향으로 쿠르노와 르누비에가 있다. 이 저자는 뉴턴을 언급했던 것과 달리 라마르크와 다윈의 언급이 없다. 의학에서 베르나르는 제3장 현대철학에서 벩송과 더불어 언급될 것이다.
벩송이 「프랑스철학(1915, 1933)」에서 정리한 프랑스 철학의 배열과 배치를 보자.
그는 프랑스 철학이 “독창적인 철학적 창조”로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데카르트부터 시작하고, 스피노자도 강조한다. 데카르트, 파스칼, 말브랑쉬의 시대를 지나, 벨(Pierre Bayle, 1647-1706)과 같은 비판적 관점을 지닌 철학자들, 라마르크(Lamarck, 1744-1829) 같은 자연학을 하는 과학자들, 생명을 다룬 생리학자와 의사 등의 과학자들도 열거한다.
다음으로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다룬 라메트리(La Mettrie, 1709-1751), 사회철학에서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 백과전서파로서 디드로(Diderot, 1713-1784) 등등, 도덕론자자로서 루소(Rousseau, 1712-1778)도 다룬다.
이제 개별과학들이 열리는 시기가 도래한다. 라플라스(Laplace, 1749-1827), 앙페르(Ampère, 1775–1836), 뒤마(Dumas, 1800-1884), 까르노(Sadi Carnot, 1796-1832) 등에서 천문학, 물리학, 화학, 열역학 분야뿐만이 아니다. 특히 꽁트(Comte, 1798-1857)는 라그랑쥬(Lagrange,1736-1813)의 분석 역학(Mécanique analytique, 1788), 조제프 푸리에(Joseph Fourier, 1768-1830)의 열의 분석론(1822)과 조제프 푸리에(Joseph Fourier, 1768-1830)의 열의 분석론(1822)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생명체 형성에 관한 조프루아 생틸레르(Geoffroy Saint-Hilaire 1772-1844)와 퀴비에(Cuvier 1769-1832), 의학에서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의 실증적인 실험의학 서설이 데카르트의 추상적인 방법 서설(1637)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꾸르노를 언급하지만 사회철학자들은 나중에 주에서 첨가하였다. 사회 쪽이 아니라 인류성(종교)에 대한 실증주의로서 르낭(Renan, 1823-1892)이, 역사 비평가로서 뗀(Taine, 1828-1893)이 있다. 프랑스 철학의 경계를 확장하여 생리학과 심리학의 방향도 나올 것이다.
프랑스 철학의 전통에서 파스칼에 가까운 멘 드 비랑(Maine de Biran, 1766-1824), 칸트주의의 입장에 선 르누비에(Renouvier, 1815-1903), 그리고 실재성을 다룬 라베송(Ravaisson, 1813-1900)을 이은 벩송이 존경한 라슐리에(Lachelier, 1832-1918)가 있다.
그의 당대의 철학의 경향들을 세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꽁트 이래로 실증주의 경향이다. 사회학, 심리학, 병리학, 생리학 등에 많은 학자들이 있다. 둘째로는 도덕철학과 종교를 연결하는 쪽이다. 혁명을 옹호하는 쪽과 혁명을 반대하는 카톨릭 성향의 학자들을 나열한다. 셋째로는 라베송과 꽁트를 연결하는 부류들이라 한다. 여기에선 수학자 특히 개연성(확률론)을 다루는 수학자들을, 실증적으로 다루는 과학철학들과 구체적 물질을 다루는 물리학자들을 소개한다.
프랑스 철학은 형이상학에서는 랄랑드(André Lalande, 1867-1963), 논리학에서는 꾸튀라(Louis Couturat, 1868-1914) 등이 있고, 그리고 역사적 탐구로는 브룅슈비크(Léon Brunschvicg 1869-1944)의 수학철학의 제 단계(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912) 등의 작품은 진실한 “주지주의”의 기초를 놓았다. 프랑스 철학을 조망한 라베송(Félix Ravaisson-Mollien, 1813-1900)의 19세기 프랑스 철학에 관한 보고(Rapport sur la Philosophie en France au xixe siècle, 1867)도 있다. 형이상학과 과학을 대등하게 보려는 리야르(Louis Liard 1846-1917), 도덕론에서 니체만큼 유명하지 않지만 푸이예(Alfred Fouillée 1838-1912)의 제자 기요(Jean-Marie Guyau 1854-1888)도 있다. 또한 베르그송이 매우 존경한 라슐리에(Lachelier)의 제자인 라뇨(Lagneau 1851-1894)는 스피노자에 빚을 지고 있고, 순수하게 내재적이고 내부의 신을 생성적 활동성으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세 가지 특징을 말한다. 첫째로는 인류 일반에게 이야기를 건다. 둘째로는 프랑스 철학은 실증과학에 연결되어 있고, 과학에 지지를 받고 있다. 셋째로는 거대함(énorme)과 뻣뻣함(rigide)에 대한 불신이다. 프랑스 사유는, 영국 사유와 더 가까워서, 항상 척도(la meaure)와 올바름(la justesse)을 염두에 두고 있다.
프랑스 철학은 두 변증론자들 사이에서 단순한 놀이(un simple jeu), 즉 시합(un tournoi)을 이룰 것이다. 또한 프랑스 철학에서는 일종의 체계 또는 체계의 원리 자체가 있지만, 유연할(flexible) 것이며, 멈춰진(정지된)원리가 아닐 것이라 한다. 한마디로 “프랑스 철학은 한결같이 천재적이고 한결같이 창조적이다.”라 한다. - 여기까지는 벩송의 「프랑스철학(1915, 1933)」을 간추린 것이다. 물론 내용은 이보다 넓고 깊다.
선생님의 강연에서도 철학사를 개괄하고 서양 철학의 전통은 프랑스철학이라고 강조하면서 실증적인 토대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강연이외의 강의에서 프랑스 철학은, 그리스철학처럼, 그들이 쓰는 일상어로 쓰여 있기에 행간과 깊이를 잘 읽어내야 한다고 한다. 이 행간의 읽음은 분석이라기보다 내재성의 내용을 잘 추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그보다 더 깊이 있게 철학사적 맥락을 읽어내야 한다. 선생님의 깊은 사색은 “베르그송은 생물과 무생물을 형이상학의 입장에서 정의하려고 하니까 플라톤으로 갑니다. .. 그러니까 베르그송은 플라톤 존재론의 직계 제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직계 제잡니다. 플라톤에 운동을 중심으로 해서 우주를 분류해(classfy) 놓은 구절이 나오니까요. 그러나 그 내용을 형이상학적으로 더 자세히 구명해 놓은 것이 베르그송입니다.” - 「고별강연」(40쪽), 강연의 결론에서 또다시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사물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냐 공간이냐 둘 뿐이에요. 플라톤은 둘 다를 놓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에서 형상이론(form theory)을 놓았고, 베르그송은 시간에서 정리했습니다. 그 이외는 없어요. (54쪽)
「고별강연(1984)」은 제자들과 함께 네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첫째는 1988년 5월 1일, 둘째는 5월 29일, 셋째는 8월 22일, 넷째는 1989년 2월 3일에 행한 것이다. 이는 형이상학 강의 1: 박홍규전집 2(민음사, 2007, 초1995)에 실려 있다. 이 검토들 중에서, 제자들 사이에 두 가지 방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구병에게서는 아페이론을 중시하고, 이태수는 에이도스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먼저 「강연 검토(1)」에서 “사생아적 논리(nothos logos)”에 대한 논의가 나온다.
> 박홍규: 아니 자네 무한정자(apeiron)에서의 결여태-A(A-privation)와 부정(negation)은 다르다는 걸 생각해야 돼 그러니까 자네가 말한 무적인 것은 무한정자의 결여태-A이지 무는 아냐. 그걸 구별해야지. / 윤구병: 그렇죠. 그 결여(privation)의 측면이 수동적인 측면을 낳는다는 거지요. / 박: 그렇지, 그래. 그런데 그 결과라는 것이 존재도 아니고 무도 아닌 무한정(indefinte)인 것이지. <in->, 즉 <not–definte>에 해당해. (357-358)
윤: 그런데 방황하는 원인(planōmenē aitia)은 사생아적 논리(nothos logos)[같잖은 생각]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것이니까, 그게‥… / 박: 그렇지, 사생아적 논리에 의한 것인데, 그것을 직접적인 것으로 환원해야 돼. 직접적으로 환원하면, 그걸 불투명한 성질(amydron eidos)이라고 해. 그건 직접적으로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아. (359)
박: <amydron>, 어두운(dark) 성질이라고. 그것이 사상아적 논리로 파악된다는 거야. 그것은 존재와 무와 동시에 주어져. 그런데 존재와 무가 동시에 있다는 것은 모순이야. 존재만 있거나 무만 있거나 이지. 그런데 이것은 제삼자이니까, 어떤 관점에서 보면 존재고 어떤 관점에서 보면 무야. 동시에는 아냐. 그래서 그것을 존재와 무의 제삼자라고 해.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는 그런 세계[현존계]야. (359) <
다음으로 「강연 검토(4)」 에이도스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태수: ... 휘었다는 말과 안 휘었다는 말의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지위가 어떠냐는 큰 문제가 아니고, 휘었다는 것과 안 휘었다는 것 둘 중에 어느 하나를 더 일차적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뿐이죠, 그런데 이제 곧은 것을 기준으로 해서 휜 것을 휘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철학이 나오면 되는 거죠. (507)
이태: 그러니까 형상을 기준으로 해서 보니까 이런 등급이 나올 수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 박: 아냐, 형상(eidos)이론을 설명하자니까 그렇게 되는데, 공간 자체가 연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운동이 연속적으로 빠져서 운동이 전혀 안 빠진 상태에서 완전히 빠진 상까지 단계(Stufe)가 있어. [운동이 완전히 빠진] 그 하나가 형상(Idée)이고 내려가면서[운동이 점점 들어가면] 관계(koinônia)가 자꾸 나와. 티마이오스편에 그렇게 되어 있어. (515)
이태: 그러니까 이 [위상 수학의] 공간 속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저긴 기준에 의해서 이것이 가지는 도형의 형태나 규정은 이제 동일성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이것을 변형해서 이것이 나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법칙이 이것의 동일성의 기준이 된다.
아무리 변형해도 도저히 이것이 나올 수 없으면, 같은 것이 아니라고 친단 말이야. 이 경우에는 아까 말한 기하학적 이론의 형식적 구조를 떠나서, 우리가 동일성을 생각하는 일상적인 기준이랄지 어떤 그 원래적 표상과 멀단 말이야. (517)
이태: 그렇죠. 바로 조작(operation)이 들어간다고 말씀 하시는데, 그러려면 동일성 그 자체(identity in itself), 즉 우리가 정의는 못해도 여기서 얘기하는 동일성과 저기서 얘기하는 동일성이 다 다르다고만은 얘기할 수 없는 어떤 기준점으로 잡는 형상(idea)으로서의 동일성이 있어서, 그런 평가를 한다는 거죠. / 이태: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존재론적 전제는 형상 그 자체(eidos kath’hauto)의 이론이 결국 있어야만 한다는 거죠. / 박: 그렇지. / 이태: 형상이론을 버리고 나면 사실 상대주의 이론 밖에 안 나오거든요? 모든 체계는 체계대로 다 독립하고, 의미는 의미대로 다‥…(519)
박: 이것 봐, 자네(이태수). 물론 내가 인식론으로 간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원인론(aitiology)에서 출발한 것 아냐? 무한정자(apeiron)니 뭐니 하는 것이 말이야. 원인론에서 출발하니까 플라톤에서는 원인(aitia)이 객관적으로 있다는 거야. 인간이 원인이 아니야. (521)
이 두 견해에 대한 사유의 전개는 김재홍이 「박홍규 철학이 남긴 헬라스 사유의 유산」에서 박홍규 전집 서평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우선 서두 부분에서, 함선의 선장인 박홍규는 선원들[수강자]과 항해한다고 하면서 “선원들의 철학 기질과 다양한 관심사가 나타나고, 상호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냉랭한 지적인 전선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노련한 선장의 일사불란한 지휘는 분분한 논의를 한데 모은다.” 그리고 그는 “박홍규라는 사상을 실은 철학적 항해의 배가 좀 더 성숙한 항해가 되기를 바란다면, 그 배를 이어받을 능력있는 키잡이가 나와야 할 것이다. 새로운 키잡이가 누가 되었건 어느 정도는 그의 사상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가시적으로는 드러났다고 믿는다.‘라고 썼다.
박홍규의 형이상학의 세계에서는 지적 전선과 같은 두 성향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태수의 제1장 「박홍규의 무한정자(apeiron)에 대한 사색 – 티마이오스 편 강의를 중심으로」; 그리고 윤구병의 제2장 「0과 1사이」이다. 이 두 편에서 아페이론은 다루는 상이한 방식의 차이를 볼 것이다. 나로서 또 달리 아페이론을 다루는 방식은 들뢰즈가 쓴 논문 「루크레티우스와 자연주의(Lucrece et le naturalisme)」(1963)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페이론을 자연으로 놓으면, 벩송이 EC 1장에서 말한 자연의 자기에 의한 자기 생성이란 견해도 나올 수 있다.
앙드레 로비네의 중세철학의 의미는 프랑스 철학이 미미하게나마 왕국의 권력, 교회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러셀의 중세철학은 교회 권세와 평신도의 선거라는 힘 사이의 관계에서 그래도 인민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철학이 민주주의를 배양하고 있음을 알리려 한다. 박홍규도 그리스와 프랑스의 학문이 민주주의를 고양한다고 여긴다. 들뢰즈도 자연주의와 권능이 민주주의의 심급처럼 여긴다. 그럼에도 근대에 와서 철학은 권력과 권세의 대척점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그런데 신칸트학파처럼 학적 권위가 권력과 권세의 지위를 대신 차지하려는 데서 관념철학 또는 주지주의에 이른다. 마치 정신분석가들이 성직자를 대신하려고 하는 경우와 같다. 권력, 권세, 권위에 휩쓸리지 않은 자발성과 자유의 구현이 벩송과 프랑스철학 속에 내재해 있다.
여담으로 설탕물이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고르기아스 말대로 때(kairos)가 있다. 고별강연(1984)가 정년 퇴임 후 네 차례 이루어졌다. 첫째 검토에 참여한 윤구병이 대중부에 속한다면, 넷째 검토에 참여한 이태수는 상좌부에 속할 것이다. 전자에서 아페이론과 같잖은 이야기의 성찰에 있고, 후자에서 에이도스와 사고의 기준에 관심이다. 대승 불교에서 달마(達磨, Bodhidharma, ?-528경) 이래로 5조 홍인(弘忍, 601-674)에게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신수(神秀: 606-706)의 계통 북종선(北宗禪), 혜능(慧能, 638-713)의 계통을 남종선(南宗禪)의 양 갈래가 있다. 조선 시대 서산대사는 6조 선사 혜능의 길을 이어받았다는 의미에서 선가귀감을 썼다.
그럼에도 박홍규는 「고별강연」에서 실증철학을 말하면서 <땅에 충실하라(bleibt der Erde treu)>을 인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시 물을 수 있다면, 땅 즉 지구 또는 가이아에게 충실하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라고. 선생님은 평소 독일 철학을 등한시하다시피 하였는데, 니체의 언급은 의외이다. 물론 실증의 차원에서 언급이지만.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을까? 실재 삶이 중요하다는 것일 것이다. 벩송은 “사는 것이 먼저다(primum vivere)”라고 하였다.
- 강연록을 또 다시 읽는 동안에, 박홍규의 플라톤과 벩송에 대한 견해가 들뢰즈의 견해와 유사성이 너무 많아서, 그 먼 거리에 또 서로 만나지 않아도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내재성의 맥은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낀다. 박홍규(朴洪奎, 1919-1994)와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사이에는 삶의 시기도 비슷하다. (53NMC)
나로서는 벩송의 작품들을 박홍규를 통해서 읽으면서 지속, 기억, 생명은 자연의 자기활동, 자발성이라는 점을 수용한다. 그리고 벩송에서는 이데아란 상징일 뿐이지 실재성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은 실재성과 실증에 근거한다. 이런 방향을 잡은 들뢰즈를 읽다가 보면 박홍규와 들뢰즈의 유사성이 매우 많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대한 글은 나중에 한번 써야겠지만 말이다.
한 가지만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20세기에 두 은둔지사가 있었다. 박홍규는 아이티아라는 의미에서 플라톤처럼 아페이론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면 들뢰즈는 생명(une vie)이라는 의미에서 벩송에서부터 거꾸로 니체, 스피노자, 에피쿠로스, 플라톤, 아낙시만드로스에 이르기까지 아페이론이란 내용물의 발현물을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프랑스와즈 발리바르(Françoise Balibar, 1941-): “물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물질(hyle)이라는 철학적 개념이 물리학으로서는 소용이 없지만, 그 무엇인가가 무규정이기에 아직도 그 규정을 찾으러 극소 미립자로 또는 광대한 우주로 탐색하고 있다고 하면서 철학적 개념은 소중하다고 한다.
(53OLB) (수정, 20:23, 53QMH) (수정, 20:18, 53RKD)
# 참조* 여기 인용문은 “창조적 진화 3장 강의록”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H. Bergson에 있어서의 자연의 질서에 관하여」(류종렬, 석사논문, 1984)
<법칙이란 반복되는 두 대상이 서로 일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관계를 맺을 때 두 대상이 독자적으로 갖는 성질은 빠져 버린다. 이 독특한 성질이 완전히 빠졌을 때 등질적 공간이 성립되며 여기서 동일율이 성립한다. 이 때 두 대상 사이의 일정한 관계라는 것도 이 등질적 공간에서 기계론적 방법으로 맺어지는데, 원인 없는 결과는 없고 동일한 원인은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인과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인과론의 물질적 세계, 즉 실질적 세계에의 적용은 여러 난점을 수반한다. 실재적 세계에는 성질(qualité)과 운동(mouvement)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명체에는 인과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더욱 많은데, 인과론은 이 설명 불가능한 부분을 우연적 사실로 치부하고 추상화해 버린다. 추상화하거나 일반화하는 지성의 작업에 중점을 둘 경우에 철학자는 실재문제에 개입하지 않게 되며, 그 대신 원리 문제와 법칙 등을 보다 정확한 언어로써 정식화하고자 한다. 이러한 태도는 외관상으로 자연의 사물과 인간의 지성에 의해 파악된 사물과의 유사성을 대비하는 데에서 형성된다. 이렇게 외관에 따라 취급된 실재는 실재의 변화과정에서 찍힌 사진과 같은 것으로서 여기에는 연속적 흐름이 배제되어 있다. 곧 실재의 지속하는 측면인 운동 자체가 빠짐으로써 실재자체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는 것이다. (2)> 이 글을 들여다 보건데, 박 선생님의 강의 테이프를 충실히 번안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나의 수준으로서는 원리와 흐름 사이의 내용들과 1과0와 사이의 아페이론와 같은 추상적 논의에서 정도의 차이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마치 자연의 드러난 측면과 자연에서 지성에 의해 재단된 측면의 논의를 써보려 했다는 점이 보인다. 박선생의 정도의 차이와 위계(hierarchy)의 설명에서 아페이론이라는 제3자의 설명에 연관 있다는 것을, 아마도 그 당시 나로서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30여년 이상 지나서야 이게 존재론과 (자연)형이상학을 구별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귀동냥으로 깨달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베르그송은 우주에 있어서 하나의 질서는 우연적인 것이고, 하나의 질서는 다른 질서에 대해서 우리에게 우연한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여기에서 하나의 질서가 우연적인 것은 그 외의 질서가 나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질서가 나왔다는 것, 또는 둘 이상의 질서에서 그것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만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번호판에 어느 숫자에 돈을 걸어서 자기가 원하는 숫자에 맞아 돈을 벌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돈을 건 사람의 의도가 원하는 숫자를 맞아 떨어지게 한 것이 아니고, 기계의 작동이 그 숫자를 맞춘 것이 된다. 이때 기계 작동이 가지는 방식에서 여럿이 나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숫자에 맞았다는 것이 요행(hasard)이다. 여기서 무질서와 요행의 상호관계를 보면 기계적인 작동에 의한 질서가 그 사람의 의도하는 질서와 합치한 측면에서는 요행이고, 무질서 속에서 하나의 질서가 나왔다는 측면에서는 우연이다. / 이처럼 하나의 질서가 다른 질서와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우연적이라는 것은 베르그송에 의하면 하나의 질서만이 아니라 두 개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무질서라는 개념 속에는 지성의 작용에 의해 암암리에 두 개의 질서가 내포되어 있다. 무질서란 정신이 두 개 질서 사이에 왔다 갔다 하면서 주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 질서에 어떤 의미있는 부정사(préfixe négatif)[부정접두사]를 부과시켜서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실은 이 두 실서는 서로 환원 불가능한 질서이다. 이 환원불가능에서 우연이 나온다. 두 질서가 있는데 그 두 질서가 서로 연속성을 가질 때에는 정도차가 인정되기 때문에 우연이 있을 수 없고, 이 두 질서가 분리되었을 때도 이 둘은 서로 별개의 사실로서 우연일 수 없다. 두 개의 질서가 하나의 한계를 가질 때 우연은 생겨난다. 곧 한 질서가 다른 질서와 관계를 맺을 때면 우연이 성립한다. 이로서 우리는 어떤 질서의 우연성이 있다는 것은 다른 질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29-30-31)> - [이태수 외 9인: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 플라톤과 베르그송, 2015)(310쪽)의 제7장, 류종렬,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의 관점들: 하나의 생성, 두 질서, 세 실사」(류종렬, 187쪽 이하)라는 논문에서 자연의 질서의 두 질서에 관한 벩송의 해명을 깡길렘의 논문을 참조하여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벩송의 실질 존재론의 확장방향으로서, 한 존재(생성), 두 질서(하강 대 분출), 세 실사(명사, 형용사 동사)에 대한 설명은 깡길렘 것이 아니라 논자의 것이다.]
두 질서는 존재의 생성에서 한 질서와 다른 질서(방해질서)가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존재에게 능동성과 수동성 있다는 의미이다. 선생님의 나중 설명에서, 플라톤 식으로 보면 아페이론의 운동과 데미우르고스의 운동의 두 종류가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도 질료에 들어있는 가능성의 운동으로 하나의 운동이 있다. 이에 비해, 한편 벩송에서는 생성의 운동은 하나인데 외부에 저하, 낙하, 평형을 이루려는 운동이 있다고 보면서, 두 개의 질서로서 두 개의 운동처럼 보이게 설명했다. 다른 한편 인식의 두 질서(속성)으로 보면 기하적 인식과 생명 인식은 전혀 다르다. 하나는 공간(신체)에서 다른 하나는 시간(영혼)에서 파악하는 두 질서이다. 두 인식 질서는 서로 환원되지 않는다. 시간 질서를 자르는 측면에 따라서 공간 질서가 나온다. 자르지 않고 변환시키는 방식에서 위상질서가 나올 수 있다. 이로서 벩송의 시간질서를 방해차원인 장소(milieu) 질서가 아니라 위상(topique)질서로서 달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 들뢰즈에서는 전자에서 의미를 논하는 유형론이, 후자에서 기호의 발생과 연관을 탐구하는 위상론이, 성립할 것이다. (53MKE)
# 짜투리
요컨대 고전의 학문 정신은 데이터에서 출발한다.(강연, 13쪽), ‘뭣’은 데이터이다. 철학은 모든 데이터를 취급한다는 점에서는 다 같습니다.(‘강연’ 35쪽) 그리고 정리하는데 시간과 공간상에서 하고, 분류하는데 모순을 회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선 공간상에서 존재와 무이고, 시간상에서 운동의 동일성이 문제이다. 플라톤 데이터의 특징은 고유명사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특징은 일반명사이다. 중세를 지나 데카르트는 데이터에서 회피하는 데 비해, 갈릴레이에서 자연학의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19세기에서 생명에 대한 새로이 주어진 대로 데이터를 받아들여 실증적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꽁트에 따라서 각각의 학문이 성립한다. 벩송에서는 상태로서 “무매개적으로 주어진 것들”을 다룬다.
동일성의 자료와 달리 이질성의 자료를 다루게 되는 것은 벩송이 잘 보여준다. 이로서 윤구병이 문제 삼은 사생아적 논리는 이때 나온 것이다.
그는 <방황하는 원인(planōmenē aitia)은 사생아적 논리(nothos logos)[같잖은 생각]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것이니까> 이 문제는 동일성이 학문의 토대가 된다고 하지만, 잘 숙고해보면, 정지의 동일성 자체가 운동의 동일성의 사생아일 수 있다. 들뢰즈가 원리로부터 철학하는 것이 소수자의 것, 즉 전지구적이 아니라 지역적이라고 했다. 봉준호는 미국 영화가 지역적(local) 영화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인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 창의적이다”. 보편화와 절대화라는 것은 상징적이고 오만과 편견에 가득찬 것이며, 일반화는 인간 삶에서 인성이 잘 드러날 때 일반화가 되고, 이 일반화의 영토를 벗어나 탈영토화는 세태의 변화에서 인성을 잘 드러낼 때 창의적인 것으로 되면서, 탈영토화가 이루어진다. 이 탈영토화의 재영토화가 일반화이다. 이렇게 변전 확장되어 가는 것이 ‘같지 않은 생각’을 하는 권능이 발휘하는 것이다. 이 권능도 정체성(동일성)이다. (53MLF)
아래 파일에는 강연과 연관있는 참조글 들
첫댓글 <박홍규의 강연에 따르면, 플라톤을 정리한다는 것은 플라톤의 작품들을 다 읽고서 그의 문헌상 데이터를 우선 용어별로 용례별로 나열하고, 그 개념들이 지니는 유형과 위상을 정리하고 배열하고, 분류하여 지위의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리라. 박홍규 사상을 정리한다는 것을 위에 비추어서 정리한다는 것은 우둔한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설령 자료가 정해져 있고 검증할 수 있다고 해서 정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아직도 플라톤에 관한 강의록을 다 읽지 못하고 있다. (53U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