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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원문보기 글쓴이: 청라언덕
여행 다녀온지 두 주일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때의 기억을 놓지고 싶지 않고 다시 그 때를 돌아보고 싶어 글을 올린다. 다녀와서 바로 올렸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고 또한 이튿날 부터 카메라를 놓고 다닌 터라 더욱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무심재님과 Arippa님의 사진을 빌려 구성했다.
마침 창가 쪽에 앉게 되어 창밖을 찍어봤다.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 중에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땅의 모습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평소 생각하고 있기에... 강원도쯤 될까... 골마다 쌓인눈과 능선의 모습이 뚜렷이 대비된다.
아오모리공항이 가까워졌는데 온통 하얀세상이다. 설국으로 들어가고 있음이다...
아오모리공항을 빠져나가는...
떠나기 전 서울의 매서운 추위를 생각하며 아오모리의 날씨를 검색했더니 우리가 출발하는 날과 이튿날은 기온 -2,3도에 흐림 정도였고 다음 이틀간은 "소낙눈"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우리는 쓰가유온천의 송영버스에 가방을 실은채 하코다산 로프웨이 입구로 향했다. 날씨는 맑음었으나 드디어 설국이구나 하고 실감이 될 정도로 보이는 모든 자연이 깨끗한 하얀색이었다. 너도밤나무 숲 사이의 구불구불한 눈길을 화선지에 그려진 기막힌 전경의 먹그림들 보는 듯한 착각속에서 헤메는 사이에 해발 670m에 있는 하코다산 로프웨이 입구에 도착했다.
자판기에서 물 한병을 꺼내는데 140엔.. 2000원 정도니 무지 비싸다. 한꺼번에 100명을 태운다는 곤돌라를 타고 천천히 오르며 눈 아래 펼쳐지는 은회색 대 자연에 어쩔 수 없는 탄성을 쏟는다.
내려다 보니... 스키어들은 저 숲사이의 좁은 길에서 스키를 즐긴다고 한다. 참으로 온 산이, 그 산의 모든 나무가 눈에 덮인 깨끗한 설경을 내려다 보며 로프에 매달린채 해발1500m의 정상에 도착했다.
곧장 스패치와 아이젠을 착용하고 설경...하코다산의 설경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고요한 세상 기기묘묘한 수빙들이 서 있는 모습은 어디 살아서는 갈 수 없는 먼 나라에 온 듯하여 말을 잊고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 snow monster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사람의 모습이 모두 다르듯이 하나하나 모두 다른 모양의 수빙들이 하얀 설산위에 넓게 고요히 포진해 있는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다. 어렴풋한 기억속에 있는 어렸을적에 읽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어디엔가 있을것 같기도 하고.... 억만년 전 부터 그렇게 서 있었을 것 같은 침묵속의 수빙들 사이로 하나 둘씩 빠져들었다.
안내판도 천정도 벽도 완전히 눈으로 만든 집이 되어버린 정상의 로프웨이입구...
다시 내려와 이 사진 찍고 내 카메라는 장애를 일으켰다.(집에 돌아와서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내 무지 탓인지 알았지만..) 안타깝지만 마음을 비우자. 카메라없이 온전히 눈(眼)으로 마음으로 즐기는 설국여행이 더 행복할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오늘 우리가 묵을 료칸으로 향했다. 쓰가유온천...호텔 입구에 도착하니 유황냄새가 머리까지 차오르고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집과 눈 봉우리들 사이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무언지 모를 옛날의 향수에 젖게 한다.
photo by무심재
photo by Agrippa
집에서 일찍 서두느라 아침식사도 부실했고 기내에서 나온 점심식사도 부실했고 눈 쌓인 하코다山 수빙사이를 헤메느라 시장기가 느껴지는 시간 일본정식으로 나온 저녁상은 충분히 포만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9시쯤 우유빛 유황온천에 몸을 담궈 후끈해진 몸으로 다다미방 푹신한 요위에 몸을 눕혔다. 異國에서의 첫 밤,.. 50여년 전 대구의 어느 여관 2층 다다미방 에 선생님을 따라가 잠을 잤던 기억을 더 올리며 잠이 들었다.
새벽 세 시쯤 언뜻 잠에서 깨어 미닫이를 열었다. 동산처럼 쌓인 눈과 처마사이의 좁은 시야에서 아! 밤하늘에 하현달이 빛나고 있었다. 달이 그렇게 빛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옆에 못지않게 빛나는 별들...너무 아름다운 밤하늘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시야가 너무 좁았다. 벅차고 성급한 마음에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이리저리 창을 찾아보아도 밖으로 향한 창이란 창은 모두 비닐덮개를 하고 있었다. 로비로 나가 현관문을 열어보려 했으나 문은 잠겨있고..거기도 하늘로 향한 시야가 좁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하이얀 앞마당에 차갑게 반짝이는 수 많은 보석들...그 또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 아름다운 밤 전경을 나혼자 보아야 한다는게 아쉽기만 했다. 나갈 수만 있다면 달려나가 밤의 설원과 하늘에 빛나는 달과 별들의 잔치에 함께 하고 싶었지만 낯선 이국의 숙소라 어찌 할 수가 없었다. 혼자만 보고 느낀 그 소중한 순간은 아마도 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귀한 기억이 되리라.
다시 잠자리에 들기는 무리인것 같아 24시간 열려있는 온천탕으로 혼자 들어갔다. 잠시 새벽온천 삼매경에 빠져있는데 인기척이 들리고 현지 여자분이 들어온다. 밝은 미소로 눈인사를 나누었는데 아마도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야하는 호텔 근무자인 듯했다.
6시 반 쯤 이른 아침을 먹고 스패치와 아이젠을 착용하고 숙소 옆의 산으로 올라간다. 무심재여행만의 특별함...아침산책. 구름 한 점 없는 푸른하늘과 다이야몬드 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는 설원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무릎위 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마치 물길을 헤치듯 허우적거리며 불가능해 보이던 정상까지 모두들 올라갔다. 가늠할 수 없었던 미지의 세상, 정복될 것 같지않던 산정에서 오로지 순백의 자연속에 동화된 우리들은 아마도 작은 사슴같이 순수한 영혼들이었으리라. 그 순간 만큼은... 내려오는 길은 두려움도 힘듦도 없이 그저 행복한 걸음으로 순식간에 내려올 수 있었다.
photo by무심재
photo by무심재
photo by무심재
photo by무심재
photo by Agrippa
photo by무심재
아침산책 후 다시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선다. 니지노 휴게실에서 송영버스를 갈아타고, 호롱불온천으로 유명한 깊은 산속의 아오니온천을 향해 눈쌓인 산길을 달렸다. 참 신통하게도 체인같은걸 하지 않고 눈길을 잘도 달린다. 눈길에 익숙해진 기사의 솜씨와 스노우타이어의 힘만은 아닌것 같고.아무래도 눈길이 우리나라의 눈길 보다는 훨씬 덜 미끄러운것 같다. 산속에 감추어진 비탕인 아오니온천은 350년이나 된 전통있는 일본의 온천이라고 한다. 전기는 자가발전으로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며 탕은 여러개지만 크지는 않아 우리는 몇개의 팀으로 나누어 체험했다.
눈 덮인 산과 바위에서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한 눈에 보이는 작은 노천탕에 여섯명이 함께 들어갔다. 유리창에 비친 폭포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실제로 보는 경치보다도 넓은 창 속에 들어간 경치가 더 멋있게 보였다. 마치 커다란 스크린을 앞에 놓고 온천에 몸을 담근채 한 편의 자연다큐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가지가지의 호롱들이 달려있는 아오니온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니지노휴게소로 가서 전용버스를 바꿔타고 아키타로 향했다. 잘 하면 분홍빛으로 물든 다자와호의 아름다운 물빛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 하면서... 본토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2차선 고속도로를 달렸으나 고속도로의 사정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산촌의 겨울해는 일찍지는 법, 3시간여를 달려 다자와호에 도착했을때는 해가 완전히 져 어둑해지는 저녁무렵이었다. 다츠코히메의 슬픈 전설이 어려있다는 다자와호는 어둠속에 고요하기만 했고 다츠코를 기리는 고자노이지 신사도, "아이리스"에서 이병헌 김태희가 함께 묵었다는 이스기아호텔도 버스안에서 왼쪽을 보세요.오른쪽을 보세요. 하는 선생님의 말씀따라 눈길만 줄 수 밖에... 그리고 호수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만난 금빛 다츠코상.... 그 주위에서 인증샷을 찍느라 모두들 바쁘다.
photo by Agrippa
아키타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묵는다는 산록소 호텔 로비에는 실습을 나온 관광학과 한국학생도 배치되어 있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첫날 아오모리에서와 같이 저녁식사는 일본의 전통의상을 입고 일정식이었다. 하루를 정리하는 넓은 탕 속에서 창밖에 소리없이 내리는 눈을 볼 수 있었다. 이틀동안 맑은 하늘에 눈이 내리지 않는 설국에서 지냈으니 내일은 눈이 오면 오는대로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다음날 아침식사후 뉴토온천 순례에 나섰다.
츠루노유온천 350년 전통의 비탕중 하나다.
photo by Agrippa
츠루노유 온천체험을 하기 전 침엽수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키보다 높은 雪壁이 양쪽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길이었다. 눈이 오고 있었고 또 어느 순간 빽빽한 침엽수가 안고 있던 눈을 힘에 겨워 털어버린다. 떨어지면서 연쇄적으로 다른 가지를 건드려 삽시간에 눈보라가 된다. 아름다워라! 자연이 만들어내는 파노라마는 언제나 경이롭다. 봄이면 저 설벽이 10m 높이가 된다하니 얼마나 눈이 많이 오는지 짐작 할 만하다.
우리가 전날 푸른 하늘을 보고 왔던 아오모리에는 이 날 하루에 3m의 눈이 내려 우리가 다녀왔던 온천들이 모두 눈 속에 고립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올 겨울 눈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100여명에 이른다고 하는 뉴스를 집에 와서 들었다. 출국하기전 인터넷 세계의 날씨를 검색했을때 아오모리의 날씨에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낱말의 예보가 있었다. "소낙눈"... 하루에 3m가 쌓이는 눈이면 소나기오듯 쏟아져야겠지....
photo by Agrippa
photo by Agrippa
photo by Agrippa
photo by Agrippa
photo by Agrippa
photo by Agrippa
츠루노유온천 별관이다. 점심식사를 위해 화로불앞에 네 명씩 다섯 명씩 둘러앉았다. 가운데 숯불을 놓고 모래위에 둥근 선을 그려 마치 어렸을적에 겨울이면 안방 한가운데를 차지하던 화롯불을 만난듯 해서 반가웠다. 눈 쌓인 산촌의 겨울날 화롯가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부젓가락으로 불장난하던 유년시절이 아련하기만 하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휴대폰으로 불을 찍어봤다.
가운데 숯불은 그야말로 화롯불이었고 우리는 4각 난간에 그릇을 놓고 우동을 먹었다. 몇몇분들에 의하면 정말 맛있는 제대로 된 우동이라는 식후평이었다.
점심식사후 대중교통인 구간 버스를 타고 어딘가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좀 걸읍시다." 하시는 선생님 말씀따라 길을 따라 걸었다. 내(川)를 끼고 나 있는 좁은 길을 무작정 걸어 올라갔다. 간간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얼마를 걸었을까? 앞에 눈속에 묻혀 있는 듯한 孫六溫泉이라는 간판이 나왔다. 이 곳이 계획된 곳은 아니었지만 秘湯중에 비탕이 아닌가! 모두의 찬성으로 이 곳을 뉴토의 두 번째 체험장소로 정했다.
photo by Agrippa
photo by Agrippa
역시 작은 탕들이 여러개 있어 몇명씩 나누어 들었다. 노천탕이 어찌나 좋은지 이 곳에 오길 정말 잘 했다고 함께 들어간 분들이 입을 모아 칭송했던 곳이다. 실내의 탕에는 발을 넣을 수도 없을 만큼 뜨거워 포기했고 사방에 눈이 샇인 작은 탕에 몸을 담군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곳...
이렇게 온갖 효능들이 있다는 많은 秘湯들을 찾아다니며 체험하고 저녁에는 호텔에서 후끈후끈한 톱밥에 몸을 묻는 효소온천까지 했으니, 내 몸에 찾아들려고 틈을 엿보던 모든 질병들이 기겁하고 도망갔으리라....ㅎㅎ
photo by 보리수
photo by Agrippa
다음날 공항으로 나가는 길은 내내 굵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에도시대의 무사마을로 작은 교토라 불린다는 가쿠노다테를 지나며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던 전설같은 무사의 사랑얘기가 가슴에 짠하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벚나무인 수양벚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니 언제든 기회가 되면 4.5월쯤 이 곳을 다녀오고 싶다.
영하2,3도의 날씨 푸른하늘 눈 내리는 날... 이번 여행에 나흘 연속 소낙눈이 오는 날씨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큰 축복속에서 여행했는지 알 수 있다.
멀리 울산에서 중학생 딸과 친정엄마, 여성3대가 아름다운 동행을 한 작은악마님 신혼때 같은 아파트 같은 통로에 산 인연을 오래 이어가고 있다는 김미경씨 팀 언제나 여행길에서 부러운 시선을 받고 있는 싱아님 부부와, 그에 뒤질세라 부부애를 과시하신 사랑애님 부부 성당의 성가대에서 만나 오랜세월 변함없는 우정을 쌓아오고 계시다는, 도무지 연세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활력을 가지고 계신 솔마루님과 친구분. 스패치에서 부터 목도리와 모자,우의까지 손수 만들어 특별한 패션으로 부러운 시선을 받으신 열정적인 삶을 사시는 보리수님. 탁월한 일본어 실력으로 선생님을 확실하게 보필하여 닉 값을 톡톡히 하신 돕는배필님 언제나 멋쟁이신 평강공주님 그리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신 바다님... 우리 모두를 또 다른 인연의 고리로 엮어주신 무심재님 내 여행에 함께 하여 행복한 여행하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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