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 제7권
5.3. 유식과 외부 대상
[외부의 대상]
[문] 만약 오직 내부의 식뿐으로서 외부대상에 사현해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세간의 유정과 무생물을 보는 데 장소, 시간, 유정의 신체, 외계대상의 작용의 일정함과 일정하지 않는 데서 전전한다고 말하는가?256)
[답] 꿈속의 대상 등과 같다고 한다. 마땅히 이러한 의문을 해설해야 한다.
[12처]
[문] 무엇에 연(緣)하여 세존께서 12처로 말씀하셨는가?257)
[답] 식이 전변한 것에 의거해서이고, 별도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공의 이치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62법을 말씀하셨다.
단견(斷見)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상속하는 유정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
법공의 이치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다시 오직 식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외부대상도 역시 실유가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유식정은 공이 아닌가]
[문] 이 유식성258)도 어찌 역시 공이 아니겠는가?259)
[답] 그렇지 않다.
[문] 어째서인가?
[답] 집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이 전변된 것에 의거해서 망령되게 집착된 실법을 이치적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법공(法空)이라고 말한다.
언어를 떠난 바른 지혜의 증득된 유식성이 없기 때문에 법공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이 식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문득 세속제가 없게 된다.
세속제가 없기 때문에 진제도 역시 없어야 한다. 진제와 속제는 서로 의지해서 건립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악취공(惡取空)이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치료할 수 없는 자라고 한다.
마땅히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일체법은 공ㆍ불공(不空)이 있으며, 이에 의거해서 미륵보살께서 앞의 두 게송을 말씀하신 것이다.
[물질의 상속]
[문] 만약 모든 물질계[色處]가 역시 식으로써 자체[體]로 삼는다고 말하면,
무엇에 반연하여 물질의 모습으로 사현하고, 한 종류로 견고하게 상속해서 유전하는가?260)
[답] 명언훈습의 세력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261) 잡염과 청정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262)이 만약 없다면 마땅히 전도됨이 없어야 하고, 그러면 문득 잡염도 없고 역시 청정법도 없게 된다. 따라서 모든 식이 역시 색법으로 사현한다.263)
게송(『대승장엄경론』)에서 아래처럼 말한 것과 같다.
잡란264)의 형상265) 및 잡란의 자체266)를
색식(色識:상분) 및 색식이 아닌 것[非色識:견분 등]으로 인정해야 한다.
만약 (잡란의 형상이) 없다면
나머지 다른 것267)도 역시 없어야 한다.268)
[색정 등의 존재]
[문] 색경(色境) 등 외부대상을 분명히 현재에 깨닫고 현량으로 인식하는데, 어째서 부정하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269)
[답] 현량으로 깨달을 때는, 집착해서 외부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이후의 의식이 분별하여 망령되게 외부대상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따라서 현량의 대상은 자신의 상분이고, 식이 전변된 것이기 때문에 역시 실재[有]라고 말한다.
의식이 집착한 외부의 실재의 색경 등은 망령되게 실재라고 계탁한 것이므로 그것을 비실재[無]라고 말한다.
또한 색경 등의 대상은 색경이 아니면서 색경으로 사현한 것이고, 외부대상이 아니면서 외부대상으로 사현한 것이다.
꿈속의 인식대상처럼 집착해서 이것은 실재이고 외부의 색경이라고 할 수 없다.
[깨어 있을 때의 자신의 색경]
[문] 만약 깨어 있을 때의 색경은 모두 꿈속의 대상처럼 식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꿈에서 깨어나서 그것은 오직 마음뿐이라고 아는 것과 같아야 한다.
어째서 깨어 있을 때에 자신의 색경에 대해서 오직 식뿐이라고 알지 못하는가?270)
[답] 꿈이 깨지 않았을 때에는 스스로 알 수 없고, 반드시 깨어났을 때에 비로소 능히 따라서 깨닫는 것과 같이 깨어 있을 때의 대상의 색법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직 참다운 깨달음271)이 아닌 지위에서는 스스로 알 수 없다.
참다운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에 역시 능히 따라서 깨닫는다. 참다운 깨달음을 얻지 않은 때에는 항상 꿈속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으므로, 부처님께서 생사의 긴 밤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에 의해 아직 색경은 오직 식뿐이라고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
[문] 외부의 색경은 참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부 식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어째서 자신의 인식대상이 아닌가?272)
[답] 누가 다른 사람의 마음은 자기 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는가?
다만 그것은 친소연(親所緣)이라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식이 일어날 때에는 참된 작용이 없어서, 손 등이 직접 외부 물건을 집거나, 273) 태양 등이 빛을 펼쳐서 직접 외부대상을 비추는 것274)과 같지는 않다.
다만 거울 등처럼 외부대상에 사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요별한다고 이름하며, 직접 요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요별되는 것은 자신이 전변된 것이다.275)
따라서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작은 법이라도 능히 나머지 다른 법276)을 취하는 것은 없다.
다만 식이 일어날 때에 그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그 사물을 취한다고 이름한다”277)고 한다.
타인의 마음을 반연한다고 말하는278) 것과 같이 색경 등도 역시 그러하다.
256)
다음에 만약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면 세간의 일과 어긋난다고 비판하는 것에 답변하는 것으로써 논증한다[第二世事乖宗難].
257)
다음에 성스러운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답변함으로써 논증한다[第三聖敎相違難]. 만약 마음 밖에 색경(色境) 등의 참다운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존께서 어떻게 12처(處)가 있다고 말씀하셨는가라고 비판하여 묻는다.
258)
여기서 유식성(唯識性)은 의타기법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고, 원성실성의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
259)
비판하여 묻기를, 법집(法執)을 없애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유식의 가르침을 말한다면, 그 유식성 자체도 역시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畢竟空無]이 아니겠는가라고 한다[第四唯識成空難].
260)
다음에 외부대상[色境]의 모습은 마음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비판하여 묻는다[第五 色相非心難].
261)
아득한 옛적부터 허망분별의 훈습력에 의해서, 상주하고 항상하며 변하지 않는 색경(色境)의 모습이라고 집착한다. 이러한 훈습에 의해 한 종류의 견고한 색경의 모습으로 사현한 것이지, 마음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대상[實境]은 아니다.
262)
색경(色境) 등 외부대상을 가리킨다.
263)
색경(色境) 등으로부터 잡염ㆍ청정법의 의지처로 된다. 왜냐하면 욕계와 색계의 유정이 아득한 옛적부터 색경 등에 미혹되게 집착함으로써 전도(顚倒)된 망심(妄心)을 일으키고, 그것에 의해 번뇌ㆍ업ㆍ생(生)의 잡염을 일으켜 생사에서 윤회한다. 만약 색경 등이 없다면, 전도된 망심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잡염이 없으면, 청정법도 있지 않아야 한다.
264)
잡란[亂]은 심왕 등을 말한다. 허망하고 전도됨[妄倒]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265)
잡란의 형상[亂相]이란 색식(色識), 즉 상분을 말한다.
266)
잡란의 자체[亂體]는 비색식(非色識), 즉 모든 식의 견분을 말한다.
267)
잡란의 자체[亂體], 즉 견분을 가리킨다.
268)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제4권(『고려대장경』 16, p.927中:『대정장』 31, p.612中).
269)
외부대상을 현량(現量)으로 인식하는데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비판하여 묻는다[第六 現量爲宗難]. 즉 색경(色境) 등 다섯 가지 외부대상은 5식의 현량으로써 분명히 깨달아 알고, 현량으로 인식하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서 조금도 오류가 없다. 만약 외부대상이 실유(實有)가 아니라면, 현량으로써 반연하여 색경 등이라는 인식을 일으킬 수 없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270)
꿈과 깨었을 때의 차이점을 들어 비판하여 묻는다[第七夢覺相違難].
271)
참다운 깨달음[眞覺]은 무루의 참다운 지혜를 말한다.
272)
마음 밖의 실재 대상인 타인의 마음을 인식하는 경우를 들어 비판한다[第八外取他心難]. 즉 외계의 색경(色境) 등은 실체가 없고 내부의 식이 전변된 것이지만, 타인의 심식은 자기 마음에서 떠나서 외부에 그 자체가 있다. 만약 마음 밖의 실재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타인의 마음은 자신의 인식대상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타심지(他心智) 같은 것은 타인의 마음을 반연해야 하며, 그렇다면 이것은 마음 밖의 실재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으로서, 유식(唯識)의 뜻이 성립되지 않아야 하지 않느냐고 비판하여 묻는다.
273)
정량부(正量部)를 논파한다. 그들은 상분(相分)을 건립하지 않기 때문에 심왕과 심소법이 직접 대상을 취하는 것이, 마치 손[手] 등으로 외부 사물을 잡는 것과 같다고 말하므로 여기서 그것을 논파한다.
274)
승론(勝論) 학파를 논파한다. 그들은 안식이 일어날 때 빛을 펴서 직접 눈앞의 대상을 비추는 것이, 마치 해와 달 등이 빛을 펴서 직접 외부대상을 비추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므로 여기서 논파한다.
275)
타인의 마음은 능히 자기 식[自識]의 인식대상이 되므로, 타인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으로써 친소연연(親所緣緣:상분)으로 삼는 것은 아니고, 오직 그것을 소소연연(疎所緣緣:본질)으로 한다. 자기 마음 위에 그 영상인 상분을 현현하여, 그것으로써 친소연연으로 반연할 뿐이므로 유식(唯識)의 뜻이 성립된다고 논증한다.
276)
마음 밖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법[心外法]을 가리킨다.
277)
『해심밀경』 제3권(『고려대장경』 10, p.723中:『대정장』 16, p.698中).
278)
『유식이십론』(『고려대장경』 17, p.481上:『대정장』 31, p.77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