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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4일 아산UBF 주일메시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말씀 / 사사기 17장, 18장
요절 / 사사기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오늘 말씀은 앞에서 기록된 역사의 연장에서 시간의 역속선 위에 이루어진 사건이 아닌 것으로 봅니다. 오늘 말씀은 사사시대의 혼란 상황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사사시대의 혼란의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배우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초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 있는 삶을 사건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거하는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부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가 가진 재산 중에서 은 1천1백 세겔을 아들이 훔쳤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머니에게 은 일천백을 자기가 가졌었다고 고백하고 돌려드렸습니다. 미가는 어머니가 은을 잃어버리고 돈 가져간 자에게 퍼붓는 저주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아들이 어머니 재산을 훔쳤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머니는 자기의 재산을 훔친 죄에 대하여 잘못을 지적하여야 합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아들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까지 그의 생활과 내면이 시정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의 탐욕과 도둑질에 대해서 죄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복’ 받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그녀는 돈 가져간 도둑이 누군지 몰랐을 때 쏟아낸 ‘저주’가 아들에게 임할까 걱정입니다. 이 때, 그녀가 아들이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한다며 한 일이 신상을 부어 만든 것입니다.
사건을 다시 정리하면, 아들이 어머니 돈을 훔칩니다. 푼돈이 아니고 지금 시세로 1억 넘는 거금입니다. 돈을 잃은 어머니가 돈 훔쳐간 사람에 대한 저주를 퍼붓습니다. 아들은 마음에 찔리기도 하고 어머니의 저주가 걱정되었는지 자기가 훔쳐 갔다고 토설하고 훔쳐간 돈을 내놓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부담을 못 이기고 돈을 내놓자 아들의 잘못에 대하여 가슴 아파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혹여 자기가 한 저주를 아들이 받을까 혹시 나쁜 일 생길까 염려되었습니다. 이 가정이 걱정에서 벗어나고자 행하는 일의 첫째가 신상을 부어 만든 것이고 둘째가 산당을 짓고 아무 사람 하나 세워서 제사장 삼는 것이었습니다.
신상을 부어 만든 것은 십계명 제 1 계명과 2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긋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집안에 산당을 짓고 아들 중 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사에 관한 율법을 모두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나아올 때, 하나님게서 절차를 따라 먼저 죄를 씻도록 하였습니다. 죄문제를 해결하여야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씻는 절차와 제물과 이 절차를 진행하는데 돕는 사람과 자격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장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막이어야 합니다. 백성들은 여기로 오기 앞서서 먼저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야 하는데, 몸을 씻고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성막에 들어올 때, 빈 손으로 오지 말고 제사 드릴 때, 제물로 드릴 동물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양, 염소 또는 소입니다. 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여기서 제물을 바치고 제물의 피를 흘립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나올 때, 선행하여야 하는 죄사함을 위한 것입니다. 번제단 다음에 있는 큰 물그릇인 물두멍에서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어 정결하게 합니다. 일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소 입구까지만 갈 수 있습니다. 성소로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소 안에 지성소가 있는데 여기는 가장 거룩한 장소로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언약궤가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오기 위하여 필요한 정결과 속죄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오직 아론의 자손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아론의 자손이라고 해서 무조건 가능하지 않고 신체적으로 온전하여야 했고 나이 제한이 있어서 30세~50세까지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처녀와 결혼한 사람이어야 하였고 율법에 대하여 깊이 있는 지식을 가져야 했습니다. 항상 정결한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고 부정한 것을 피하여야 합니다.
돈을 탐하여 도둑질한 아들, 그 아들의 도둑질을 책망하지 않는 어머니가 아들이 저주 받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신상을 부어 만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은을 도둑질 하였던 아들 미가의 집에는 이미 우상숭배에 사용되는 산당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신상을 부어 만드는 일에 더하여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자격없는 한 아들을 임의로 제사장에 임명하는 일까지 하였습니다.
사사기 말씀은 이것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6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씀은 정치사회학적으로는 중앙 집권적인 지도체제가 없었다는 사회구조, 국가통치 체제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적으로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왕정 시대가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씀은 이 시대 사람들이 개인의 판단과 양심을 따랐다는 뜻이고 백성들의 실제 삶이 그렇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6절 말씀은 그야말로 사사기 시대를 총괄적으로 요약하는 말씀입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 말씀은 각자가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였다는 자율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 영성과 도덕성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보다 개인의 판단을 우선시 하였을 때, 심각한 문제들이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사사시대는 인간 중심 사고의 위험성을 역사를 통하여 입증하는 시대였습니다. 사사시대의 혼란과 타락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절대 기준이 없을 때, 상대적인 판단을 하게 되며 그렇게 해서는 백성들이 온전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원칙이 없고, 올바른 가치관이 없고, 선악의 기준이 없고, 지혜가 없었으며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자기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유다 출신의 레위인 청년이 미가와 같은 동네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미가는 이 사람을 자기 집 제사장으로 채용하였습니다. 한 해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는 조건이었습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숙식제공은 당시 임금수준으로 좋지 않은 대우였습니다. 레위인은 이런 헐값에 개인 가정의 산당과 신상 세워 놓은 곳에 제사장을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레위인을 개인 제사장으로 세우는 사람이나 그에 응하는 레위인이나 모두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푼돈이라도 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면 계명을 어기고 있는 곳에서 해괴한 제사장직이라도 하겠다는 레위인은 구별된 사람으로써 자각이 없고 사명감도 없고 영적 분별도 없습니다. 미가는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하여야 할 사람을 돈 몇 푼 쥐어주고 자기 복이나 비는 제사장으로 세우고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 아노라” 한심하게 자족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고 일반 백성도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부려먹었습니다. 레위인은 액을 막아주는 부적역할이 될 뿐이었습니다.
17장 말씀은 이스라엘 가정, 개인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지 미가라는 사람의 대표적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의 이런 모습은 사사시대로 끝나면 좋습니다. 그러나, 사사시대의 모습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고 경계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모 대학 UBF 동아리 지도교수는 부동산 투자로 재력을 보유하였는데, 자기를 위한 작은교회를 세우고 싶다 하였습니다. ‘나 죽을 때 내 손 잡아 줄 목자’를 필요로 한답니다. 캠퍼스 제자양성과 세계선교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자, 하나님께서 한 사람 목자를 부르시고 키우시고 세우기 위하여 얼마나 오랜 시간 인내로 인도하시는지 보았으면서 그런 말을 반복하여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어리고 가난하게 산다고 ‘나 죽을 때 내 손 잡아 줄 목자 역할 해달라’고 자기 저택안에 작은 건물하나 세워줄테니 거기서 자기를 위한 목회를 하라는 말을 주저없이 했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까? 사사기 말씀이 옛날 이야기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인 줄 알면서 얼마나 경외심이 없습니까? 그런 사례는 더 있습니다. 풀타임 사역자로 일생을 드리고자 결단한 목자 부부를 자기 농장에 방 만들어 거기 살게 하고 농장의 온갖 궂은 일을 시키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예배당 안에 조각상 세우는 일도 얼마나 많습니까? 성인상을 세우고 복 빌면서 그 발을 하도 만져서 발가락이 닳아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사사기 말씀이 남의 이야기입니까?
학생들 많이 모아 사람들에게 보여 자랑하고 사람들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일이 전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유명해져서 그것을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모임 전체에 자기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일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귀한 영혼을 자기 자랑의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양들을 자아 실현 위한 도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 세우고 세계선교하도록 부르신 모임에서 자기를 바라보라고 자기를 인정해달라고 사람들 관심과 시선 끄는 일을 지속하면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개인야망 추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되는 것 같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렇지만 자존심 때문에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열매맺는 사람, 성과 있는 사람을 깎아내리면 됩니다. 다른 목자 양들의 문제를 행여 알면 신속하게 말하고 공개합니다. 열매맺던 사람의 허물이 드러나 연약한 때가 오면 굉장히 신나서 오버합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을 섬긴다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자기 자존심의 신상을 깍는 일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역사 섬긴다고 하면서 자기야망의 신상을 부어 만드는 일입니다. 자기영광을 위한 산당을 세우고 거기서 아침 저녁으로 자기영광을 위하여 빌고 빕니다. 주의 능력으로 자기를 유명하게 해달라고 빕니다.
18장 말씀은 단 공동체가 17장에 나타난 미가와 그 가정의 죄를 단지파 공동체가 전체로 공유하는 문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사회의 최소단위입니다. 가정의 타락은 사회의 타락, 국가의 타락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미가의 가정 중심에 저주를 피하고 복을 비는 신상이 있고 신상을 둔 산당이 있는데, 단 지파 사람들이 떼로 와서 이것을 빼앗습니다. 이때 레위인 청년에게 자기들을 따르라고 합니다. 레위인도 오늘은 여기서 신세졌으니 내일은 저기서 신세지는 마음으로 단 지파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 우상숭배의 다른 이름은 이기심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는 사람은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삶의 다른 표현입니다. 우상숭배는 욕심의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18장 말씀에는 진리가 없는 집단, 이기심과 욕심을 따르는 집단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단 지파는 땅 분배가 끝난 시점에 새로운 땅을 찾아 불법 정탐활동을 합니다. 단 지파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정복하지는 못하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시지 않은 다른 땅을 찾아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지경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캠퍼스 제자양성과 세계선교의 분명한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교회 시스템이 좋다하니 이런 것을 도입하자, 저런 교회 교육방식이 좋다 하니 저것을 배우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점을 배우고 벤치마킹하는 정도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캠퍼스 제자양성, 세계선교 제쳐두고 잘 된다는 다른 시스템을 완전히 따르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 많이 모아보자는 성과지향 욕심의 발동입니다.
14~20절을 보십시오. 단 지파는 미가의 집에 있던 에봇과 드라빔, 새긴 우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훔쳤습니다. 명백히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며 집단적으로 우상숭배를 도입하고 조장하는 심각한 죄를 짓습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단 지파는 미가의 제사장으로 있던 레위 청년을 설득하여 자신들의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제도 제사장 제도를 무시하고 자기들의 편의대로 종교지도자를 선택합니다. 우리 UBF는 복음주의를 표방합니다. 개인의 구원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고 보수적 교리 해석을 따릅니다. 우리는 모든 교리와 실천이 대학생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행정이나 치리 구조에 대해서 깊이 집착하거나 몰입하는 대신 대학생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 대학생 선교, 세계선교의 역동성을 지속하는데 집중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은사주의나 은사주의적 현상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가집니다. 개인의 욕심 있는 사람, 주의 일을 가지고 야망을 이루려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른 교단의 교리들을 임의로 끌어들이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단 지파는 평화롭게 살고 있던 라이스 성읍을 불법적으로 기습공격하여 주민들을 칼로 죽이고 성읍을 불살랐습니다. 단 지파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잔인한 폭력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차지하라는 땅은 정복하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며 그들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진리가 없는 이기심과 탐욕, 하나님 없이 자기를 위한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은 필연적으로 불법과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단 지파는 빼앗아온 우상을 세우고 타락한 제사제도를 세웠으며 모세의 손자 요나단과 그의 자손을 제사장으로 삼아 우상 숭배를 제도화하고 자기들 가운데 정착시켰습니다. 학생 때부터 진실한 소감쓰기가 중요합니다. 나이들면 소감을 통하여 자기 비겁함을 합리화하는 일이 나타납니다. 나이들면 소감도 사람들 들으라 쓰는 일이 늘어납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체면 때문에 회개하지 못하고 소감으로 쓰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소감과 사람 앞에 자랑하는 소감은 엄연히 차이가 있지만, 학생 때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사는 훈련이 없으면 소감쓰기, 양식메모하기 통성기도, 대표기도가 가식으로 물드는 경우가 생깁니다. 사람 앞에서 살지 않고자 특히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사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미가의 집과 단 지파의 타락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배웠습니다. 이런 타락한 사사시대를 마무리 해주시고 새로운 왕국시대를 여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타락한 사사시대의 마지막을 영적으로 마무리하고 이스라엘 왕국시대를 여는데 헌신하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 사무엘입니다. 다윗왕의 이야기로 가득한 성경을 다윗서라고 하지 않고 사무엘서라 하는 것은 사무엘의 영적인 영향력과 그의 역사적인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 위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17:6절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말씀이 사사시대를 대표하는 말씀이라면 사무엘서 요절은 사무엘상 2:30절입니다.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긴 한나가 사무엘을 낳는데 쓰임받았고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사람과 싸운 브닌나는 쓰임받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긴 사무엘은 어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 보다 자식을 귀하게 여긴 엘리는 자식들도 비참하게 죽었고 자신도 어처구니 없이 죽었습니다. 하나님 보다 자기 이름을 사랑한 사울은 왕이 되었어도 악신에게 괴로움을 받았고 하나님을 사랑한 요나단은 아름다운 우정과 평화의 왕자가 되었습니다. 자기에 집착한 사울은 불순종하다가 하나님께 버림 받았으나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 중심이었던 다윗과 그의 나라는 메시야를 낳는 조상이요 메시야 왕국의 그림자로 두고두고 아름다운 이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사사시대를 마무리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세워주셨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를 친히 열어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람의 양심과 판단은 죄로 물들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미 나쁜 습관이 뿌리 깊이 우리 속에 내려져 있습니다. 심각하고 죄악된 인격을 가졌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하다 여기거나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끝없이 타락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쁜 습관과 죄로 가득한 인격을 가진 우리는 예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 예수님의 삶, 예수님의 인격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이 나의 생각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의 따라야 할 절대 진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려는 의지와 목표를 가져야 하고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그 깊은 죄를 자각하고 분별하여 떨쳐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낮은 곳, 수치되는 자리에 기꺼이 내려가는 연습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하늘 문을 열어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해주십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게 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고 배우게 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사사시대의 죄악이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시대를 풍성한 은혜로 각 사람에게 열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마치겠습니다.
아산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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