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을 '폐기하러'(없애버리는 것)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미래에 대한 예언도 하지만, 율법을 가르치고, 백성들에게 해석하여 적용하는 일을 한다. 예언의 핵심에는 메시아가 있다. 선자자도 율법과 관련이 있다)'는 구약 전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의 가르침과 행위를 비판하셨습니다.(예. 눅 18장 9-14절)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존경했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백성들에게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구약에 근거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의 가르침과 행위를 비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은 그들의 가르침을 폐하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없애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봅시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꼐서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고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의인이라고 생각했고 메시아가 오시면 그들이 율법을 지킨 것에 대하여 보상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율법을 지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율법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고 율법을 지키는 그들의 생각과 상태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자기 - 의'를 쌓는 도구로 생각을 하였습니다.(눅 18장 9절. 롬 10장 3절)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자신들의 신앙적 우월성에 대한 증명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행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에 이 사실을 잘 지적해줍니다. 구제나 기도나 금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완전하게(fulfill. 이행하다. 이루다) 하려 함"입니다. '완전하다'는 말은 '가득 채우다, 완성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폐기하거나(요 10장 35절) 율법이 잘못 되어서 수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예수님과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구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가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 아니라 구약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더욱 밝게 해석하여 가르쳐주셨습니다. 구약의 그 완전한 의미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과 일치를 하고 구약의 의미를, 그 실체를 밝게 드러내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면 예배와 관련된 의식법이 있습니다. 제사법과 그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구약은 예표의 성격을 가집니다.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우리는 구약의 의식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의 희생 제물의 실체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더 이상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따라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관계가 있습니다.
또 하나 도덕법이 있습니다. 그 도덕법의 중심에 십계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도덕법을 완전하게 지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신 것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이런 도덕법을 완전하게 지키신 분이십니다. 도덕법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 22장 37-40절) 이 '사랑'은 영원한 법 정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히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을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배우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모르면 예수님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