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에 토함산에 불국사와 석불사가 건립된 의미는 무엇인가?
통일신라는 혜공왕까지 불교는 꽃을 피우게 된다. 그 상징적인 유적이 바로 불국사와 토함산 대불인 석굴암이다. 과거의 4국, 또 동아시아의 모든 불교 사상을 다 수용한 통일신라 불교는 새로운 풍조, 새로운 불교 사상을 전개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삼국 통일이라고 하는 이 결정적 계기는 과거에 끊임없이 3국 또는 4국이 영토 확장 전쟁으로 끊임없이 윤회를 반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는 1국 체제로 통합됨으로써 한민족 소위 말하면, '동이'라고 하는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 무릎을 꿇고 잘 앉는 그런 민족인 '동이'의 어떤 개성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민족불교가 개화되면서 한국불교라고 하는 오늘날의 이 기반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민족불교, 또 한국불교가 바로 오늘날 우리 불교를 대표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대표적으로 활동했던 인물이 원효, 의상, 대륙의 원측, 대륙의 도증, 또 현장 법사의 제자였지만, 신라 출신으로, 현장대사 입적 이후에 원측법사로 건당한 승장대사, 또 태현법사, 둔륜대사, 경흥대사, 이런 여러 석학 불학자들이 활동을 하게 된다. 적어도 한 100여 명 이상의 학자들이 활동하면서 신라불교는 꽃을 피우게 되고, 그 최정점에 원효, 의상 같은 인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신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이 4국 불교의 에너지를 종합시켜서 토함산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과 같은 국보를 또 조성하고 석불사에는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바 아미타유스 수광전을 짓고, 인공 석굴을, 가장 아름다운 석굴을 지어서 새로운 절을 창사했다. 토함산 대불은 오늘날 여러 석굴 중에서도 특히 인공 석굴의 최고봉이라고 평가받지 이유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