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인 나
최우림
삼십 년, 삼 년, 그리고 삼 개월. 내가 산 날 수를 계산하면 삼십삼 년 하고 삼 개월이다.
그리고 벌써 구 년, 올 여름이 지나갈 즈음이면 십 년. 내가 ‘사회복지사’, ‘사회사업가’로 산 날이 곧 십 년이다.
대학 사 년을 포함하면 아주 조금 과장해서 삶의 절반을 ‘사회복지사’, ‘사회사업가’로 살고 있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 나는 그게 좋다. 점점 좋아진다.
십 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나는 매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빠듯하긴 해도 먹고 사는 데에 큰 지장 없다. 사회복지 현장이 익숙하다.
처음과 비교하면 아주 능숙하게 여러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다.
그 사이 내 처지에서 꽤 큰 돈을 들여 학위 한 장을 더 얻어냈다. 이쯤 하면 ‘전문가’ 반열에 오른 걸까?
십 년 모은 돈과 대출로 작은 집 한 칸을 마련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온전히 내 공간, 내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십 년 전 그렇게 갈망하던 삶, 나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공허하다.
지금 나는 당장 바로 앞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짙은 안개 같은 불안과 우울, 또 공포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이 안개가 걷히고 나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나는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우리 현장 곳곳,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두 귀는 쫑긋, 어르신 말씀에 집중한다.
이를 마음 깊은 곳에 넣어둔다.
시간 지나 차곡차곡 모아놓은 글감이 잘 익은 때가 되면 흰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옮겨 적어 한 편의 글로 완성한다.
그리고 이 글 한 편이, 그렇게 쓴 책 한 권이 아직 나를 사회복지사로 살게 했다.
덕분에, 그래도, 그럼에도 사회사업 하게 했다.
몸을 쓴다.
아는 사람은 이미 잘 알 테지만 나는 몸을 쓰는 데에 관심이 많다.
스물다섯 살 때부터 팔 년간, 주 사오일 중량 운동을 한다.
최근에는 밤낮없이 집 근처 공원을 뛴다. 음식을 가려 먹는다.
가능하면 몸을 가볍게 유지하려 한다. 때로는 ‘본업을 이렇게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조금 무리하다 싶을 만큼 몸을 관리하는 이유는
결국 사회사업 잘 하기 위해, 또 오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사회복지사는 몸이 곧 도구이고 수단이다.
사회복지사의 건강이 곧 사회복지 실천의 건강이고 사회복지사 개인의 건강이 곧 우리 현장의 건강이다.
그래서 나는 책임과 의무로서 운동한다.
마음을 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마음을 쓴다. 기꺼이 그렇게 한다.
또 그렇게 하는 게 옳다 생각한다.
혹자는 “선생님, 그렇게 하면 이 일 오래 못해.” 하며 나를 걱정한다.
물론 그 마음이 참 고맙다. 그 말의 뜻도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적당히, 대충 할 수 없다. 또 어떤 어르신은 이런 나를 보면
“바쁠 텐데 시간 내어줘서 고마워요. 젊은 사람이 우리 같은 늙은 사람하고 어울려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너무 마음 쓰지 말아. 우리 같은 사람한테….” 한다.
역시 나는 어르신 말씀대로 할 수 없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많을 때는 일 년에 열 분 가까운 어르신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 드는 생각은 늘 비슷하다.
‘덜 할 걸’이 아닌 ‘더 할 걸’, 더 자주 만날 걸, 더 물을 걸, 더 들을 걸, 더 잘 할 걸. 늘 ‘걸걸’하며 지난날의 게으름을 자책했다.
그래서 나는 더 마음을 쓰려한다.
물론 아무리 마음을 쓴다 한들 사람을 잃고 나면
그때 쓰지 못한 마음에 괴로울 테지만 그럼에도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마음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나는 쓰는 사람이다.
글을 쓰고 몸을 쓰고 마음을 쓴다. 그리고 이렇게 쓰고 쓰다 보면
알 수 없는 불안, 공허, 공포 앞에 서도 조금 의연하게 맞설 수 있을 테다.
바라 건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그날,
그래도 사회복지사이길, 그때 역시 사회복지사이길,
글을 쓰고 몸을 쓰고 마음을 쓰는 사회복지사로 우리 현장에 남아있길,
첫 글을 쓰는 지금 마음 깊이 소망한다.
2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