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이때쯤 산길이나 들길을 걸으면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향기를 뿜는 꽃이 있다. 한국의 들장미이자 야생 장미인 찔레꽃이다. 대부분 흰 꽃을 피우나 곳에 따라 붉은 찔레도 있다. 찔레꽃은 지역마다 여러 전설을 간직한 꽃이다. 우리 선조들이 즐겨 입던 흰색 옷이나 전쟁 끝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여인들의 한을 담은 이야기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고혹적이며 짙은 향기를 지닌 꽃이 한국의 장미 찔레꽃이다.
아파트는 물론 인접한 학교 울타리가 온통 붉은 장미로 단장되어 있다. 성당의 성모 상에 바쳐진 순결과 숭고함 의미의 장미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현재의 삶을 낙관하거나 미래를 향한 희망을 이야기할 때 장밋빛이라는 말을 쓴다. 차가운 철제 울타리를 감출 정도로 넉넉하고 촘촘히 벙글은 장미꽃 송이를 보는 느낌은 따뜻함을 넘어 흐뭇하기까지 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청춘의 열정이 붉은 장미가 응원하는 것 같아 더욱 그렇다.
향기의 계절이다. 봄이 끝나고 여름으로 넘어가면서 연초록 초목 사이에서 꽃들은 진한 향을 내뿜는다. 유전자를 이어가기 위한 존재감 표출이 매개곤충을 유혹하는 향기로 나타난다. 이즘의 꽃들은 대부분 향이 짙다. 찔레며 백합에 밤꽃 또한 그렇다.
무성한 잎들에 감추어져 곤충의 접근이 쉽지 않음을 꽃들은 알고 있다. 큐피드의 화살이 곧 향기다. 하지만 울타리에 핀 덩굴장미는 은은한 향에 고혹적인 붉은색이지만 날아드는 나비나 벌들을 보기는 어렵다.
오로지 인간을 위해 화려하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도록 육종된 장미는 곤충들에게 필요한 꿀이나 꽃가루를 충분히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장미꽃에는 사람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향기를 지니고 있단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장미축제가 여러 곳에 열린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아파트가 숲을 이룬 삭막한 도심에 수만 송이 장미가 피어 바람에 하늘거리는 풍경은 장관이다. 바쁜 일상으로 자연의 꽃과 향을 즐기기 어려운 도시인들이 즐겨 찾는다. 한 손에는 음료를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추억사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점심시간을 틈타 장미축제를 즐기는 직장인도 보인다. 색깔에 관계없이 멋지게 어우러진 장미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영국은 국화가 장미다. 15C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영국의 유력 가문이 30년간 내란을 벌였다. 바로 장미전쟁이다. 이들 두 가문은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문장으로 썼다. 상대방 가문의 여성을 왕비로 받아들이면서 전쟁은 끝났고 결국 두 가지 장미를 합쳐 영국 왕실 문장이 되었으며 지금도 튜더 로즈를 사용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장미는 찬미 받고 추앙받는 꽃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에도 장미가 그려져 있으며 비너스와 함께 태어난 꽃이라고 찬양했다. 비너스가 사용하던 비에 젖은 베일을 들장미 위에 걸쳐 놓았더니 비너스의 순결이 옮겨져 순백의 백장미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자료를 찾아보면 영국 더 타임스(1951.10.1일자)에 실린 <War and Peace in Korea>라는 제목에 “It would be more reasonable to expect to find roses growing on a garbage heap than a healthy democracy rising out of the ruins of Korea”라는 기사가 있다.
지자체 단체장과 의원들을 뽑는 날이다. 우리도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풍경처럼 진영을 떠나 오로지 국민을 위한 선량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도 욕심일까. 장밋빛 미래까지는 아니라도 색깔에 관계없이 사람의 향기로 어우러진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서민의 소박한 바람이다.
장밋빛 미래를 위한 약속이 아니라 내일 당장 곤궁한 사람들을 위해 물가며 환율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싸움꾼이 아니라 살림꾼.
집으로 배달된 후보들 약력에 전과 기록을 살핀다. 법이 있으니 마지못해 밝히면서도 억울하다는 변명이 구구하다. 자고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자신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으면서 남들을 위해 살겠다는 구호가 공허하다. 장미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다. 전과가 상처일 수는 있지만 자랑일 수는 없다.
담장 위에 붉게 피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향기를 나누어 주는 장미, 사람보다 장미다. 찔레를 심은 사람은 무더운 여름날, 그늘을 즐길 수 없다.
첫댓글 만삭의 여인이 순산하듯이 쑥쑥 뽑아내는 글솜씨 참 경이롭습니다.
붉은 장미의 계절처럼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6월 되세요~^^~
헐~~~
최작가님
저도 어렵게, 고민 고민하고 씁니다
원래 무재주라 ㅠㅠ
작가님은 타고난 수필가이십니다. 멋지십니다
장미... 계절의 길목을 환히 밝혀주던... 조그만 꽃잎의 들장미 찔레꽃... 그리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