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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4> 서장 (書狀)
증시랑에 대한 답서(2) 많이 배운 지식인이나 선방에서 오래 참선하는 납자들이 걸리기 쉬운 선 공부의 병(病)은, ‘날카로운 근기와 총명함 때문에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들은 배운 지식과 총명한 생각 때문에 ‘깨달음이란 이런 것이며 화두란 이런 것이다’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견주고 헤아려서 깨달음을 구하려 할 뿐, 지식과 생각을 내려놓고 쉬는 곳에서 본래면목이 바로 드러남을 알지 못한다. 본래면목은 언제 어디서나 빛을 발하며 처음부터 한 번도 어두워 본 적이 없는데도, 본래면목을 찾는다는 생각에 가로막혀서 바로 그 찾는 생각 속의 본래면목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헤아리고 비교하는 생각에 의지하기 때문이니, 마치 “배는 뒤집어지지도 않는데 스스로 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이 매우 불쌍한 일”이다. 이들은 “공(空)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바로 ‘수미산’이며, “공에 떨어질까봐 두려워할 줄 아는 그 곳”에서 ‘방하착’해야 함을 알지 못하고 있다.
생각에 의지하여 보면 시비분별도 생각이요 공(空)도 생각이며 ‘수미산’도 생각이요 ‘방하착’도 생각이지만, 본래면목에서 보면 시비분별도 본래면목이요 공도 본래면목이며 ‘수미산’도 본래면목이요 ‘방하착’도 본래면목이다. 깨닫고자 하는 생각을 앞에 두어서 스스로 장애를 만들지만 않는다면 모두가 본래면목일 뿐 다른 일은 없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기다리거나 쉬기를 기다리는 생각에 매여 있는 한, 아무리 오래 기다린다 하더라도 깨달을 수도 쉴 수도 없다. 깨달음을 기다리고 쉬기를 기다리는 그 생각이 바로 본래면목의 드러남임을 알지 못하고 생각에 막혀서 본래면목을 찾고 있으니, 오히려 어리석음과 번뇌만 더할 뿐이다.
그러므로 “신령스런 빛이 어둡지 않으니 영원히 쓸 수 있는 훌륭한 꾀이다. 이 문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알음알이로 이해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또 “이 일은 마음을 가짐으로써 구할 수도 없고 마음을 버림으로써 얻을 수도 없으며, 언어로써 이룰 수도 없고 침묵을 가지고 통할 수도 없다”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취사간택(取捨揀擇)은 모두 생각을 따라다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각을 일으킬 줄도 알고 생각을 놓을 줄도 안다. 생각을 일으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나타나며 생각을 비우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다. 마치 우주가 별들로 꽉 차 있기도 하고 허공이기도 하듯이, 생각이 있어도 본래면목 그대로이며, 생각이 없어도 본래면목 그대로이다. 그러므로 이러니 저러니 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이러니 저러니 라는 생각을 놓을 수만 있다면 본래면목이 달리 없다. 따라서 대혜는 이렇게 말한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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