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해안도시 마산의 클라이밍 열풍이 전국을 강타했다. 그 바람은 작은 도시 마산에서 일어났지만 몇 년을 두고 식을줄 모르고 계속 이어져 갔다. 때는 1989년 전국에 프리클라이밍이 한참 무르 익어갈 때였다. 당시에 국내 프리클라이밍은 주로 크랙등반이 주류를 이루는 시기 였었고 간혹 페이스 등반이 이루어 지곤 할 때였다. 그러나 페이스 등반의 강한 바람은 마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마산에는 큰 산도 없으며 큰 바위도 없는 작은 해안 공업도시다. 그런데 어떻게 전국을 떠들석 하게 휩쓸었을까?, 그것도 몇 년 동안이나 장기 집권 할 수 있을까?, 의문 스러웠었다. 그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애기봉 ‘주사위바위’ 팔용산 ‘계곡암장‘과 ’꼬시락바위’ 등 3개의 작은 바위들이 있었기에 마산 클라이머들의 실력 향상을 가져다준 것이다.
대한산악연맹에서 주관하는 암벽등반경기는 1981년부터 매년 열려 왔었다. 경기방식은 톱로핑 방식으로 진행 되었으며 속도 경기였었다. 그러나 1988년부터 리딩 방식 난이도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마산의 클라이머들은 1988년부터 상위권 입상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후 1989년부터는 남 녀부 각각 우승을 차지하며 마산의 힘을 과시 했었다.
당시 국내 최고의 프리 클라이머로 활동했던 마산의 이근택씨가 몇 년을 일반부 우승 하였고 여성부 김정미씨도 몇 년을 우승 했었다. 이밖에도 임두학. 류재경. 정쌍영. 천원석 이학길씨 등 많은 클라이머들이 국내 최고의 클라이머로 활동 하면서 국내 클라이머들의 기량 향상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당시에 이곳에선 5.12b급이 거뜬히 등반되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가 페이스 오버행의 작은 홀드들의 바위들 이였다.
당시에 그들에게 공헌한 것은 다름아닌 애기봉의 ‘주사위 바위’ 팔용산 ‘계곡암장‘ ’꼬시락 바위’ 였었다. 이들 바위는 언듯 보면 사실 우습게 보일 정도다. 높이12m, 폭20여m에 불과한 작은 암장들이다. 그러나 바위의 형태가 페이스 오버행이며 손가락 끝만 걸리는 작은 홀드들의 암장이기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마산. 창원지역의 클라이머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는 ‘중부 경남 클라이밍연합회’에서는 애기봉 주사위 바위. 꼬시락 바위. 팔용산 계곡암장과 상사바위에 노후된 볼트작업을 하여 안전하게 등반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각자 소속이 틀린 산악회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연합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인공암장에서 같이 운동을 하며 이지역 클라이머들의 유대 관계와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