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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펼친 생리학 교과서에서 그녀의 메모를 보았다. 학창 시절의 아련한 기억이다. 읽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또 읽었다 하더라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도 흘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펼친 교과서에서 젊은 날의 하루를 만난 건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이 글이 내게는 젊었던 어느 하루의 행복한 기억을 불러주었지만, 독자들에게는 앞으로의 산행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건강을 잃으면 즐거운 산행도 할 수 없는 거니까.
등산을 하다가 누구나 다리에 쥐가 나는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준비운동 없이 갑자기 무리하게 다리 근육을 사용한다거나, 오랫동안 휴식 없이 계속 걸을 경우 발생한다. 다리에 쥐가 나는 가장 흔한 원인은 포타슘, 소듐, 칼슘 등 전해질의 불균형으로 인한 근육경련이다. 전해질 불균형의 흔한 원인은 여름철 고온의 환경에서 많은 땀과 함께 빠져나간 전해질 보충에 실패하거나 지속적인 설사 등으로 전해질의 소실과 흡수장애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또 지속적인 운동으로 근육 내 피로물질이 젖산에 축적된 후 원활하게 제거가 안 되어도 근육경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등산 중이나 혹 수면 중에 근육경련, 흔히 쥐가 난다는 현상의 원인이지만 하지정맥류도 쥐를 유발하는 원인 중 한 가지로 알려져 있다. 발목 주변이나 종아리 쪽에서 보라색의 실핏줄이 거미줄 형태로 나타난다든지 또는 종아리 주변의 혈관이 눈에 띄게 굵어지고 구불구불해 보인다면 쥐가 나는 원인으로 하지정맥류를 의심해 볼 수도 있다. 하지정맥류가 발생하면 하지로 들어가 정맥이 원활하게 심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하지에 정체될 수 있고 따라서 노폐물이 근육을 비롯한 하지에 고이게 된다. 발이 저린다든지 또는 쥐가 난다든지 하는 증상으로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증상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발목과 종아리를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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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리 근육이 수축됐을 때와 이완했을 때 혈액의 흐름을 나타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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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직립해서 생활하므로 발끝에서 심장으로 향하는 정맥혈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역류하기 쉽다. 심장으로 돌아가는 하지의 정맥혈은 별도의 추진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맥혈이 중력을 거슬러서 심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종아리 근육의 수축력과 혈관 내에 존재하는 판막이라는 구조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맥 내부에 존재하는 판막(Valve)이라는 구조물은 아래로 향해지는 압력을 차단하고, 혈액 흐름을 항상 심장 쪽으로 향하도록 해준다. 하지근육 속 동양혈관(洞樣血管)이라는 공간에 고여 있던 정맥혈은 종아리근육의 수축에 따라 풀무질의 원리로 심장을 향해 흘러가게 된다. 종아리근육이 심장처럼 혈액을 짜서 밀어 올리고, 판막이 열렸다 닫히길 반복하며 혈액이 심장 쪽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돕는다.
하지정맥류란 오래 서 있거나 하는 동작 등으로 하지정맥 내의 압력이 높아지는 경우 정맥 벽이 약해지면서 판막이 손상되어, 심장으로 가는 혈액이 역류해 늘어난 정맥이 피부 밖으로 보이게 되는 질환이다. 움직이는 사지동물 중 거의 인간에게만 나타나는데,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특성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도 치료법을 언급할 만큼 다리에서 발생하는 가장 흔한 혈관질환이다.
발이 저리거나 쥐가 나면서 시작될 수도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경우 근육의 움직임이 줄면서 다리에 혈액이 고이고, 흘러가려는 혈액과 고인 혈액이 만나면서 혈관 안에서 서로 소용돌이치게 된다. 자연히 그 부분의 혈관은 늘어나고, 역류를 막아주던 판막마저 고장 나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이다. 때로는 막힌 혈관부위가 아리거나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는 등 운동량이 부족하면 증상이 더 심해지며, 좀더 진행되면 늘어난 정맥이 피부 밖으로 돌출되어 뭉쳐 보인다. 진행에 따라 피부색이 검게 변하거나 궤양이 생길 수 있으며, 더욱 심하면 혈액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심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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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준 내과 원장·서울시 의사산악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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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높은 근육운동의 경우 근육 내 혈류량은 평소에 비해 최대 25배나 증가하게 되고, 중장년층에서는 종아리근육의 탄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약해진 혈관이 혈액량을 감당하지 못해 하지정맥류로 이어지는 것이다. 평소에 운동을 안 하던 중장년층이 주말에 갑자기 장시간 가파른 길을 걷는 운동은 다리 혈관과 근육에 쉽게 피로를 싸이게 하고, 또한 배낭 등으로 큰 하중이 다리를 압박하기 때문에 하지정맥류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가을이나 겨울은 찬 기온으로 혈관이 수축되고 근육이 경직하게 되면, 혈액이 종아리나 허벅지 정맥혈관에 고이게 되어 증상이 더 빨리 악화될 수 있다. 다리가 무겁고 저린 것이 대표적인 초기증상으로, 산행 중 발의 감각 이상이 잘 오거나 쥐가 잘난다면 의심해 보아야 한다. 하지정맥류의 형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가느다란 모세혈관이 확장되어 가늘고 빨갛거나 혹은 보랏빛의 실핏줄 형태인 거미양정맥류, 손등 및 발등에서 주로 관찰되는 굵기의 파란색 혈관이 내압상을 확장되어 나타나는 망상정맥류, 피부 안쪽 깊숙이 위치한 정맥이 역류 및 혈관확장으로 울퉁불퉁 튀어나와 보이게 되는 복재정맥류 등 다양한 형태의 정맥류가 있다.
하지정맥류가 있다면 완만한 코스를 선택해 평지를 걷듯 1시간 정도 가볍게 하는 것이 하지정맥류 예방과 증상 악화를 막는 데 좋다. 또한 다리 혈액순환을 돕는 의료용 압박 스타킹을 신고 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르막 산행에서는 무리하게 다리에만 힘을 주기보다는 스틱의 사용 등으로 하지에 갑자기 급격한 부하가 가해지는 것을 덜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평소에 의자생활을 오래하는 직장인이라면 틈틈이 발목을 돌려준다든지 발목을 무릎 쪽으로 꺾었다가 다시 발목을 쭉 펴주는 운동도 쉽게 하지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운동이다. 이때 종아리에 힘을 충분히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편안한 자세로 누운 후 다리를 올려 자전거를 타듯 다리를 움직이는 공중자전거타기가 좋은 운동일 수 있다. 근력도 강화되고 심장보다 다리를 높이기 때문에 다리에 몰려 있던 피가 내려와서 부종 완화에 도움된다.
하지 내의 정맥은 판막에 의해 흐름의 방향이 차단되어야 하지만 판막이 고장 나면 혈류에 역류가 발생한다. 이렇게 역류가 있는 상태에서 무리한 근육운동을 하면 역류가 흘러들어가는 정맥은 더 큰 손상을 입게 될 수도 있다.
하지정맥류가 의심된다면 주변 전문병원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