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 수 전쟁에서 고구려가 승리를 자신한 이유
아들아,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수의 입장에서 보았으니..이젠 고구려의 입장에서 한번
풀어보자.
고구려는 동북아에서 오랜 세월을 군림해온 전통의 강국이다.
고구려는 중국 대륙에서 수많은 왕조가 세워지고 무너지는 동안에도 건재했으며..
중국 대륙이 통일국가를 이루었을 때도 분열되었을 때도 전쟁과 외교를 펼치며
생존해 왔지.
고구려는 분열된 중국 대륙의 상황을 충분히 활용해 오며 위상을 굳혔는데..
중국 대륙이 통일되고, 그 이후 확장하여 주변 세력을 위협하는 것을 보고,
멀지않아 큰 싸움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대비해왔다.
그 준비는 중국 대륙이 통일되기 전, 그리고 통일 직후인 평원태왕 대부터 시작하여
그를 이은 영양태왕 대까지 아주 오랜 기간,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고..
그 준비가 빛을 발하여 제1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압도했지.
하지만..고구려의 계산이 어긋나 버린 것은..바로 수 양제, 양광이란 문제적 인간이다.
보통은 그정도로 크게 당했으면 한동안 다시 덤벼들 엄두를 못낼 텐데..
수 양제, 양광이란 자는 그런 상식으로 판단할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제대로 미친 자를 만난게 불운이지.
수 양제, 양광
아들아, 그 수 양제 양광이 611년 2월 고구려 친정을 천명하고 모든 병력과 물자를
고구려 정벌의 출발지인 유주의 탁군으로 모이도록 했어.
공식적으로 사서에서 언급된 수의 병력은 113만 3천8백. 그리고 전투병력 배 이상의
수송부대..합쳐서 3백만에 달하는 대군.
고구려의 전병력을 끌어모아도..30만이 될까 말까 일텐데..
거기에 고구려의 모든 백성의 수를 끌어 모아도 4백만 정도일까?
고구려도 이런 압도적인 숫자의 위력에 눌려 굴복할만도 할텐데 왜 하지 않은 것일까.
고구려도 그런 생각 안해본 것 아닐 것이다.
통일된 중국과의 전면전은 이전에도 없던 일이니까.
고구려군 행렬도
고구려도 천손(天孫)임을 자처하는 또하나의 세계관을 가진 제국이고 오랜 전통을 가진
강국으로서 자존심도 생각했을 것이고..
또 제1차 전쟁을 통해 얻은 자신감과 오랜 대외항쟁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그것을 이겨낸
저력에 대한 믿음도 있었을 것이며..
무엇보다 수에 굴복했을때 과연 고구려란 나라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 봤을 것이다.
고구려는 수가 고구려란 나라와 문명을..지도에서 아예 지워버릴 심산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고구려는 더 숙일 수 없었던 것이겠지.
그렇다면 죽기로 싸울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고구려는 살 수 있다 봤을 것이다
고구려가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북방유목민족과의 전쟁을 통해 요동 벌판과 요하라는
자연방벽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또 요하를 넘어 요서지역에 진출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광개토태왕 이후의 일이라 보면 될 것이다.
요하를 중심으로 대릉하, 태자하, 혼하 그리고 요택이란 자연방벽
고구려는 요서지역의 요택이란 험한 늪지와 요하라는 자연방벽이 있고..
또 요동성을 비롯한 요동지역의 강력한 요새들이 촘촘하게 방어선을 구축했으며..
고구려-수 전쟁 당시 수나라 수군의 행로(비사성~장산군도는 고구려 수군의 거점이다)
요동반도 끝 비사성에서 부터 서해상의 장산군도 그리고 압록강 하구와 평양으로 통하는
대동강 하구까지 해상방어선도 구축되어 있었다.
고구려의 성은 중국과는 달리 평지가 아니라 산위에 축조된 산성
이 대부분이며..
또 흙이 아니라 돌로 촘촘하게 맞물려 쌓고..이중구조라 투석기 등으로 타격해도
성은 무너지지 않지.
그뿐인가? 고구려 성에는 치, 어긋문, 옹성 등 방어력을 최대치로 높인 시설이 되어있고
험한 산 위에 있으면서 또 그 외곽엔 하천이 자연 해자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또 들여쌓기를 통해 성벽 자체의 구조에도 안정감을 주어 굳건하기 이를데 없다.
한마디로..고구려의 성은 당대 최고의 전쟁 기술의 집약체다.
방어력에 관해서라면 고구려의 성은 중국의 성과 수준이 다르다
이런 성이 수십, 수백에 이르고 촘촘하게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방어선을 구축한다.
1차는 요하를 따라 요동성을 주축으로 요동방어선이 있고
2차는 요하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구간 수백리에 걸쳐 방어선이 있으며
3차는 압록강에서 평양까지..
마지막은 왕도인 평양인데..왕도인 평양의 장안성을 비롯해, 대성산성 등 왕도를
지키는 성 하나하나가 천혜의 요새로 굳건하기 이를데 없지.
아들아, 고구려가 수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 믿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고구려의 이 강력한 방어선의 위력이다.
고구려군은 오랜 기간동안 전쟁을 통해 성장해온 전쟁에 대해선 도가 튼 사람들이다.
철을 다루는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강력한 무기로 무장했으며..
고구려 개마기병
보병이면 보병, 기병이면 기병 어느 병과든 모자람이 없고,
고구려의 활은 중국의 활보다 훨씬 긴 사정거리와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며..
고구려인은 한 명, 한 명 뛰어난 명사수다.
고구려군 한명, 한명 전투력으로 보자면 수나라 군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 고구려는 수와의 전쟁에 고구려 영향하에 있는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말갈을 비롯한
북방 유목민족도 동원할 수 있지.
또한, 고구려는 오랜 기간을 중국 왕조들과 전쟁을 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전술로
어떻게 싸우는지 훤히 안다.
또 선비, 돌궐, 거란 등과의 전쟁을 통해 북방 유목민족과의 전투 경험도 풍부하지.
한마디로..농민이 주축이 되어 전쟁을 위해 갑자기 강제 동원된 수나라군과는 달리
고구려군은 전쟁 경험많고 전쟁으로 단련된 뛰어난 전사들이며, 수를 상대로도 위축되지
않고 전투의지가 높다. 고구려와 수는 병력의 질이 다르다.
이게 고구려가 이길 수 있다 믿은 두번째 이유였다.
고구려-수 전쟁도
아들아, 물론 고구려의 강역(疆域)이 중국에 비할 바는 아니나..
고구려 또한 동서, 남북 길이가 수천리에 달하는 넓고 넓은 영토를 자랑한다.
전쟁의 천재, 당대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하늘을 찌르던
기세가 꺾이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바로 무모한 러시아 원정이 결정적이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1812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가 러시아군보다 못해서 진게 아니다.
문제는 넓고 넓은 러시아 땅과 너무나도 많은 러시아군의 병력, 그리고
늘어지는 보급선과길어지는 전쟁..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의 위력을
가볍게 본 나폴레옹의 자만이 문제였지.
고구려의 병력이 물론 수나라 군에 비해 작으나 적지 않은 병력이고..
고구려의 강역도 수천리에 이르는 넓고 험하며..고구려 땅의 추위도 러시아 못지않게
혹독하다.
요하와 압록강 같은 큰 강이 있고, 그 사이에 험한 산 위에는 또 고구려의 굳건한 성이
촘촘하게 위치하여 서로 호응하며..여름의 더위와 장마 그리고 더 무서운 겨울의 맹추위..
낯선 기후와 풍토는 수나라 군에게 이보다 더한 가혹한 조건도 없었을 것이다.
고구려 요동성 복원도
거기에 늘어지는 보급선 때문에 원활하지 않은 보급과 고구려 군의 습격으로 빼앗기고
길이 끊겨서 굶주리고..현지에서 조달하려니 취할 곡식도 물도, 심지어 머물 집도 없다.
왜냐하면 고구려군이 모두 태워버리고 우물도 메우고, 쓸만한 것은 산성으로 옮겨놓고..
할테니 전장이 될 고구려 땅에서 수나라군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수나라 군의 입장에서 허탈하고 힘이 빠진다.
고구려의 백암성과 오골성
고구려 비사성
고구려의 성을 넘자니..너무 험하고 쉽게 함락되지 않는데..
또 보니까 앞으로 넘어서야 할 성들이 첩첩산중이고..
그래서 성을 놔두고 돌아가려니..뒤로 보급로를 끊고 주변 성에서 온 고구려군이
또 사방에서 괴롭혔지.
고구려 평양성의 구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하다가 야영하다가 수시로 기습을 당하며 직면하게 되는
죽음의 공포..이는 안그래도 지치고 힘든 병사들의 사기를 꺾고 피로하게 만들기 충분하지.
고구려군이 승리를 확신하는 마지막 이유는 수나라 군은 보급 문제와 고구려의 낯선
환경과 혹독한 기후를 이기지 못해 자멸(自滅)할 것이며
그리고 이에 더해져서 위력을 발휘하는 고구려의 견벽청야(堅壁淸野) 전술.
고구려가 승리를 자신했던 세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결국은..시간은 원정을 온 수가 아니라 지키는 고구려 편이란 것.
강력한 고구려 성에 막히고, 험한 지형과 혹독한 기후에 굶주리고 지쳐 군을 되돌릴때
고구려는 그 뒤를 쳐서 무자비하게 살육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것이다.
함부로 고구려 땅에 들어선 이들을 응징하며..공포감을 심어줄 것이다.
중국을 상대하며 언제나 그랬듯이.
아들아, 마지막으로..고구려와 수는 전쟁의지가 다르다.
수와는 달리 고구려는 생존을 걸고..필사적이기에, 항전의식이 높다.
태왕에서부터 일개 백성과 병졸에 이르기까지..그렇게 하나로 뭉쳤다.
그런데 수는 어떤가?
백성들 사이엔 염전의식이 널리 퍼졌고, 백성들이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
황제가 그의 허영심을 위해 일으킨 전쟁이고, 백성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전쟁은 머리 숫자로 하는게 아니라..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이게 고구려가 수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를 자신한 마지막 이유다.
아들아, 이해하느냐?
고구려가 수와 당이란 당대 최강의 대제국을 상대로 싸워 이긴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살수대첩 (612)
아들아, 훗날에 고려 말 대유학자였던 목은 이색 선생이 당 태종의 이야기를
시로 읊은 정관음(貞觀吟)에 이런 구절이 있다.
三韓箕子不臣地(삼한기자불신지)
우리나라는 기자 때부터 중국이 신하 삼지 않던 땅이니
置之度外疑亦得(치지도외의역득)
예외로 하여 그냥 둠이 좋았을 것을
왜 그런 말을 했는지..수 양제 양광은 곧 그 이유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 작성자:방랑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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