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es Stanley Coen"은 일부 문헌에는 1919년 2월 23일 태어나 당일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부 : "로스코에 콘클링 코엔" (Roscoe Conkling Coen 1888~1986).
모 : "메리 뷰캐넌 코엔" (Mary Buchanan Coen 1895~1989).
"로스코에 콘클링 코엔"(Roscoe Conkling Coen 한국명: 高彦)은
미국에서 시카고대학을 졸업(1918)하고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18년 10월 1일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부인(Mary Bushanan)과 함께 내한했다.
부인 "메리 B. 코엔"(Mary Bushanan Coen)은 미국에서 "R. C. 코엔"과 결혼했다.
1918년 10월 1일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남편과 함께 내한했다.
그는 한국에서 남편의 선교 활동을 내조하면서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수로 음악을 가르쳤다.
그는 서울 연지동 1번지와 136번지에 거주하면서 선교사로서
특히 경기 중앙시찰구역과 남부시찰장 등으로 15처의 교회를 주관하는 등 많은 선교 활동을 했다.
노량진교회에서 동사목사(同事牧師)로 활동(1921-1923)을 비롯하여,
광주 신사리(新沙里)교회, 광주 진촌(鎭村)교회에서
"곽안련"(Clark, Charles Allen)선교사와 상계(相繼) 시무한 바 있다.
용인 아곡(牙谷, 1925)교회, 시흥 삼성(三星, 1919, 1929)교회, 안성 안성읍교회(1928),
방축리(防築里)교회, 대갈리(大葛里)교회에서 당회장 등으로 시무했다.
그리고 광주 용수리교회(1927), 용인 문촌교회, 아고리교회에서 사경회 강사로 활동했다.
경,충노회에서는 목사가족구조부(1920-1928), 학무부(1922-1923), 공천부(1922),
경기남편시찰장(1923), 목사장립위원, 부회계(1927-1928), 재정부(1925-1930) 등에서 활동했다.
이밖에 진우, 쌍동, 상동막, 신대교회와 시흥지역에서 둔전, 금광, 둔토, 세곡, 송파, 심곡,
교회, 수원지방의 학현, 부림교회 등 경기 중앙 및 남부시찰 구역의 교역자로 헌신하였다.
그리고 “미국북장로회선교역사” 편찬위원(1931)으로 활동하고
"노해리"(Harry Andrew Rhodes, 1875-1965)선교사를 도와
“The Korea Misson Field”의 편집에도 참여하였다.
조선예수교서회 실행위원(1934)과 한국에 있는 중국인 선교사업 감독으로 활동했다.
1933년부터 1940년까지 연희전문학교 교수로서 성서와 영어를 강의했으며
재단 이사(1940)로 선임되기도 했다.
연세대교수 재임 기간에 인접하여 있는 서교동교회 교역자로 겸직(1935. 11. 10 - 1936. 4. 29)하면서
당회장 직무를 비롯하여 성례와 성찬식을 집례하고, 구역을 조직하여 가정기도회를 갖게 하였다.
12집사를 교인들을 통하여 민주적으로 뽑게하여 교회를 섬기게 했다.
1942년 강제 출국되었다가 1946년 다시 내한하여
서울에서 선교사업 복구활동과 영락교회 맹인 선교사업을 지원했다.
1946년 조선기독교연합회(NCC) 대표로 참여한바 있으며
1948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였다.
양화진의 D-9는 "코엔"부부의 묘지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