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식 불고기를 먹을 때마다 한 가지가 늘 아쉬웠다. 우리나라 전통 불고기의 특징이자 한국인이 좋아하는 불맛(훈향)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는지 서울식 불고기에 직화 요소를 가미한 새로운 형태의 불고기를 선보이는 곳이 생겼다. 기존처럼 국물을 먹을 수 있는데다 불맛까지 입힌 진화한 서울식 불고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가격까지 저렴해 온 식구가 부담 없이 즐기기에 그만이다.
1++ 등급 한우를 직화로 구워낸 서울식 불고기
인천 원당지구에 위치한 <진수정갈비>의 한우숯불양념불고기도 직화구이로 개량한 서울식 불고기다. 우선 양질의 원육을 사용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 1++ 등급의 한우로 만든다. 양념 맛으로 먹는 불고기 재료는 굳이 상위 등급의 고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최상급 원육만 쓰겠다는 주인장의 고집에서 진정성이 읽혀진다. 주문과 동시에 바로 고기를 썰고, 즉석에서 양념에 잰다.
서울식 불고기의 핵심 포인트는 직화구이라는 점이다. 불땀 좋은 참숯 불기운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드나든다. 거센 불길이 날름거리며 불판 위의 고기를 골고루 핥아준다. 순해빠진 고기는 이내 제 몸 속에 불의 향기를 간직한 채 야들야들해진다. 그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불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간다.
원래 우리나라 불고기의 전통은 불길이 고기에 직접 닿게 익혀서 먹는 직화구이였다. 광양식 불고기처럼 화로 위에 석쇠를 얹고 숯불에 구워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식 불고기는 마치 뚜껑 없는 냄비를 닮은 불판에 국물을 넉넉히 붓고 익혀서 전골처럼 먹었다. 그러다 보니 전통 논란이 있었고, 맛에서도 좀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 집 불고기는 광양식 불고기의 장점인 직화구이 방식과 서울식 불고기의 장점인 육수의 존재를 모두 아우른 진화한 서울식 불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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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 불판 가운데서 참숯불과 고기의 정열적 해후가 지속되는 그 순간, 가장자리에서는 육수가 고기를 품은 채 조용히 뜨거워진다. 팽이버섯 대파 당면과 함께 고기까지 수저에 얹어 국물을 떠먹어본다. 약간 달착지근하면서 혀끝에 감도는 기분 좋은 미감이 밥과 술을 재촉한다. 서울식 불고기는 우리나라 사람의 밥 반찬 술 안주로는 더없이 좋은 메뉴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수준급 음식인데다 저렴해 가족 외식 메뉴로 으뜸
고기를 어느 정도 먹으면 남은 육수에 김치와 공기밥을 넣어 만든 김치볶음밥을 먹을 수 있다. 소고기 국물과 김치 맛이 어우러진 기막힌 밥맛 때문에 수저를 내려놓지 못한다. 후후 불어가면서 먹는 재미와 맛이 꽤 괜찮다. 불고기김치볶음밥 아이디어는 아주 신선해 보인다. 고기와 함께 먹는 양상추 샐러드, 파래 우무, 다래순 장아찌, 시래기 나물은 고기와 잘 어울린다. 특히 이 찬류들은 주부들의 입맛을 정확히 겨냥한 듯 하다.
썩 훌륭한 고기 메뉴인 한우숯불양념불고기(180g)는 점심(오후 세시까지)시간에는 9000원, 그 이후에는 1만 2000원으로 아주 저렴하다. 이 가격도 저렴한데 한우국밥, 만두, 떡갈비를 서비스로 준다. 고기가 나오기 전에 미리 입을 다시라는 뜻으로 내온 것들이다. 서비스라 하기에는 그 음식의 수준 역시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어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여기에 하루 전에 미리 예약하면 육회까지 서비스로 내온다.
서울에서는 어렵겠지만 인근 김포나 인천 검단 원당 지구 주민의 가족외식 메뉴로는 이 집의 한우숯불양념불고기가 제격일 듯 하다. 부담 없는 가격에 부모님 아이들과의 단란한 한 끼 식사 메뉴로 이만한 것도 없다. 주변 크고 작은 공장에 차츰 알려져 이 집 서울식 불고기로 회식하는 실속파들도 차츰 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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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 수제 돼지갈비와 김포 쌀로 지은 밥맛도 보물급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이들을 위해 국내산 한돈으로 만든 한돈수제갈비(250g 1만2000원)도 준비했다. 김포의 도축장에서 최상품 한돈만을 엄선한 원육을 쓴다고 한다. 물론 냉동육이 아닌, 냉장육이다. 포를 떠서 하룻동안 양념에 잰 것을 구워낸다. 역시 참숯을 사용한 화로에서 직화로 굽기 때문에 진한 훈향이 일품이다. 부드럽고 과하지 않은 달달한 맛은 동급 돼지갈비 중 단연 앞선다.
서비스로 주는 돼지껍질도 술 손님에겐 반가운 안줏거리다. 만일 식사를 겸하고 싶다면 돌솥밥 세트를 주문하면 된다. 단돈 2000원에 김포 쌀로 지은 밥맛 좋은 돌솥밥, 멸치가 진하게 우러난 된장찌개, 짜지 않은 목포산 어리굴젓이 입과 배, 그리고 지갑을 신나고 즐겁게 해준다.
갈수록 어버이와 자식, 지아비와 지어미, 벗과 벗의 사이가 데면데면해진다. 모든 관계가 금전의 가치로 쉽게 환원되는 풍조도 만연하고 있다. 우리가 언제부터 서양 사람 습속을 닮아가는지 야속할 때가 많다. 더없이 찬란하고 눈부신 오월, 가정의 달이다. 짙어져 가는 신록처럼 사람과 사람, 식구와 식구의 사이도 그렇게 짙어졌으면 좋겠다. 비록 값비싼 요리는 아닐지라도, 서로 함께 나누는 음식이 그 출발점은 되어줄 것이다. 물론 진심으로 섬기고 아끼는 마음이 그 어떤 양념보다 단맛을 내줄 것은 자명한 일일 테고.
<진수정갈비> 인천시 서구 당하동 22-14, 032-569-6851
출처: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