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제주 도보 순례 피정 열한 번째 날
어김없이 아침이 밝아옵니다.
부스스 일어나 고양이 세수만 하고
발가락 대공사를 시작합니다.
발은 퉁퉁 부어 발가락 양말이
잘 신어지지도 않습니다.
힘들고 짜증날 만도 한데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왜일까요?
오전 7시 미사
신부님 강론 말씀이 아련히 들려옵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인간은 육적인 한계를 가진 영적인 존재.....
spirit,.... body spirit....”
잠을 거의 자지 못해 몽롱합니다.
걸으면서 졸면 어쩌죠?
함께 자는 형님들의 걱정이 태산입니다.
지난밤에 제가 글을 쓴다고 새벽 3시 30분이
지나서 살며시 방에 들어갔더니, 걱정이 되었는지
다들 선잠을 자고 있더라고요. 특히 율리엣다 형님은
뜬눈으로 절 기다리고 있고. 괜히 많은 분들께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안하기만 합니다.
오전 8시 아침식사
김치국밥이 나왔네요.
토마스님이 지금까지 먹어 본 김치국밥 중
가장 맛있다며 어떻게 만들었나며 칭찬을 늘어놓습니다.
오늘 식사 당번인 박영순 마리아님이 레시피를 알려줍니다.
우리 모두 토마스님이 집에 돌아가서 배우자를 힘들게 하려고 그
러느냐며 놀리자, 토마스님은 자신이 배우자를 위해
맛있는 김치국밥을 끓여주고 싶다네요. 정말이지요?
아침 9시 국민체조를 마치고 어제 걸었던 마지막 지점까지
봉고를 타고 이동합니다. 홍기사였던 토마스님이 오늘은
흑기사로 나타났네요. 오늘 하루도 안전운전 부탁합니다.
오전 9시 20분 오늘 출발지점인 블루 하와이 리조트 앞에서
“제주 5피 5피 파이팅!” 구호를 외치며 도보 여정을 시작합니다.
10명 전원 출발입니다.
이른 아침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했는데
오히려 무덥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도로를 따라 20여 분을 지나니 금능 해변이
눈에 들어옵니다. 검은 바위들을 품고 있는
하얀 모래들과 어우러진 바닷물이 비취빛으로
반짝이며 우리를 반깁니다.
금능해변을 지나니 마른 풀들이 있는
모래 사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사막과 광야를 건너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순례자처럼
우리도 모래 언덕(?)을 넘어갑니다.
저 멀리 아름다운 섬 비양도가 보이고
에메랄드빛 해변 협재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어봅니다.
다음 목적지 한림성당으로 출발 합니다.
약 1시간 정도 아스팔트 도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발이 불편한 율리엣다님,
세레나님, 레지나님은 나중을 위해 한림성당까지
봉고를 타기로 합니다.
정예부대라 부를 정도로 잘 걷는 7명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정말 잘 걷습니다.
가장 연장자인 미카엘님이 너무 빨라 못 따라
가겠다며 너스레를 떱니다.
예정 시간보다 빠른 11시 20분,
한림성당에 도착합니다.
봉고로 미리 와 있던 레지나님이 아니 벌써!
이제 겨우 쉬려고 하는데 벌써 도착했냐며 깜짝 놀랍니다.
한림성당은 고풍스런 느낌의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마리아님은 한림성당이 메주고리예의 성 야고보 성당을
닮았다고 하네요. 성당 앞 입구에는 종탑이 있습니다.
종탑이 있는 자리는 옛 한림성당의 터라고 합니다.
도로가 생기면서 성당건물과 사제관 대부분이 도로에
편입되는 바람에 현재의 성당 건물이 지어졌고 종탑만이라도
남겨 보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마당 한 편에는
한림성당 출신이고, 성경번역에 혼신을 다 하시고
선종한 임승필 요셉신부님의 추모비가 있습니다.
한림성당을 나와서는 다시 해변을 따라 걷습니다.
봉고를 타고 이동했던 3명이 함께하면서 완전체가
됩니다. 어? 아니네요. 토마스님이 율리엣다님을
붙잡아 가버렸네요. 이럴수가!
한림 항구에 들어섭니다. 한림항구가 참 큽니다.
정박해 있는 많은 배들 중 오징어 배도 보입니다.
뜨거운 햇볕 속에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 시원합니다.
30분정도 걷다보니 정자가 하나 보이고 거기에
토마스님과 율리엣다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2시, 조금 이른 점심 식사를 하려 합니다.
부활삼종기도를 바치고 신발을 벗고 정자 마루에 올라가
신부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율리엣다님이 벗어놓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합니다. 참 예쁩니다.
신부님이 오시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주먹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후 1시 해변을 걸어갑니다. 해수풀 해녀학교 근처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귀덕궤물 동산을 지나갑니다.
돌 의자 4개가 있습니다. 엉덩이 모양입니다.
민망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재미있게도 보입니다.
햇볕을 받아 앉으니 참 따뜻합니다.
넓은 도로를 나와 30분정도 걸어
곽지 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합니다.
오후 2시 50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빨리 걸은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오후 4시정도면 애월성당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속으로 큰일이다 싶습니다.
오늘은 5시 전에 도보순례가 끝날 것 같아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곽지해수욕장 입구에서
많이 쉬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이 아직 해수풀 해녀학교를 안 지나갔느냐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신부님, 벌써 지나갔는데요. 귀
덕궤물 동산을 지나 곽지해수욕장에서 쉬고 있는걸요.
해수풀 해녀학교 앞에서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고 있는데
못 보고 지나갔냐고 묻습니다. ‘아니요, 못 받는데요.’
근데 율리엣다님이 신부님과 토마스님의 차를 봤다고 합니다.
그럼 말 좀 해 주시지요~
20분 이상 쉬고 나서 애월성당을 향해
곽지 해변을 걷습니다. 협재 해변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무다리를 지나고 기암괴석을 따라 이어놓은
돌길을 걷고 토비스 콘도 앞쪽으로 해서 도로를 걸어갑니다.
애월중학교 뒤로 애월성당이 보입니다.
성당 입구에 건물이 지어지고 있네요.
성당 교육관일까요? 성당 건물이 아니라네요.
이럴 수가! 그 건물 때문에 성당이 가려져
잘 보이지가 않는데 어쩌죠?
애월성당 성전은 제대 위 색 유리창과
한쪽 벽 색 유리창 여러 개를 통해 빛이 들어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성당 마당 잔디밭에 계신 성모님 앞에서
인증샷도 찍었습니다.
오후 4시가 겨우 조금 지나갑니다.
애월 해안대로에 들어섭니다.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조차도 감탄을 숨길 수 없었던
애월 앞바다를 보러 갑니다.
30분 정도 걸어 다락쉼터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여기서 멈추려 합니다.
오후 5시밖에 되지 않았네요.
저녁 시간은 6시 30분이라는데...
그 동안 정자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뭘 하며 쉬는 게 좋을까요?
정자에 빙 둘러 걸터앉아 한 사람씩 돌며
일명 ‘묵찌빠’를 했습니다.
먼저 레아님과 율리엣다님. 가위바위보, 묵, 찌...
율리엣다님이 이겼습니다.
저는 화장실을 갔다 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여왕님이 탄생하고 춤까지 추었답니다.
왜 여왕님이지? 누가 여왕님인가요? ‘묵찌빠’에서
최후의 우승자가 여왕님이랍니다. 세레나님이
여왕님이 되어 춤까지 추었다네요.
깔깔깔 웃으며 너무 재미있었는데 어디 갔다 왔냐합니다.
즐거움을 함께 못해서 아쉽네요~
그냥 가만히 앉아있으니 춥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제안을 하십니다.
좀 더 걷는 게 어떠냐고.
이제 다 걸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더 걸으라고 하면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30분 정도 2km를 더 걷고
오후 6시경에 이제는 정말 오늘의 일정을 마칩니다.
토마스님을 기다려 봉고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저녁 메뉴는 ‘한라산 볶음밥’이라네요. 돼지고기 주물럭과
한치 주물럭을 먹고 거기에 밥을 볶아 한라산 볶음밥을
만들어 주는군요. 맛있게 잘 먹고 우리의 숙소로 돌아와
하루 마무리를 합니다.
저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온전히
저의 아픔과 고통과 불평까지도
주님께 바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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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령(엘리사벳)님이 쓴 글을
제가 대신해서 올려드립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안젤로님과 세레나님에 이어 엘리사벳님이 순례길을 생생하게 알려 주는군요.
다들 어찌나 현장감 있게 올려 주시는지!
모아 읽으니 한편의 멋진 기행문을 읽은 것 같습니다.
하느님 주신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을 보며
산과 들을 수놓는 청보리 사이로 순례객들이 보이는 것 같군요?
다수 발생한 부상자들, 위로와 응원을 보냅니다.
순례 유공자로 하느님의 포상을 받으실겁니다.
막바지로 치닷는 순례길!
귀한 시간 내신 만큼 보람도 엄청날테죠.
홍,흑기사로 맹활약 하시는 토마스 형님,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자기 양들에게 목숨을 내놓은 발 신부님, 성모님의 특별한 보살핌이 있기를!
남은 일정도 두려움 없이 전진 하시길!
빨간옷 소녀가 글을 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덕분에 방에 편안히 앉아 마음으로 따라갑니다.
어떻게 그렇게 피곤한 몸으로 빨리도 걸으셨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화이팅!
힘들게 걷고 밤을 꼴딱 새우며 쓴 글이 굉장히 맑게 느껴지고 즐겁네요. 이제 엘리 반장님은 제주 도보 순례 곳곳이 환할 것 같아요. 같이 걷는 듯 즐거웠어요. 홍기사님은 소망이 이루어지시길 빕니다.
내일 하루 남은 걷는 길도 제5피 화이팅입니다~^^
오늘하루도 온전히 모든것을 주님께 바치면서 마무리하는 엘리언니의 마음에 숙연해집니다.
너무 상세하게 글 올려주셔서
이젠 순레하는 곳으로 막 달려가고픈 마음이 생기네요~~~
며칠 남지않은 순례여정이지만 끝까지 화이팅 하세요!
그 힘든 길을 걷고도 이렇게 맑은 글을 써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리얼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 들어요.
모두들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힘든 순례여정중에 부족한 잠도 설처가며 이렇게 생생하게 알려주시니 마음으로나마 함께 할수있어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화이팅!!
애월성당 마당의 꽃잔디며 소화데레사상이 생각나네요.
글따라 추억따라 함께 걷고 있습니다.
오늘도 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