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어와 역설
민근홍 언어마을
@ 반어(反語, 아이러니, irony)
머리 속의 생각(뜻하는 의미, what is meant)과 겉으로 표현한 말(what is said)이 다를 때 이를 가리킴. 반어는 <거짓 꾸밈>을 뜻하는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반대되는 표현을 하여 '날카로운 멋'과 '예리한 감각'을 발휘하는 기법이다.
1) 언어적 반어 (verbal irony)
겉으로 드러난 말과 실질적 의미 사이에 상반된 관계가 있는 말. 잘했다(속뜻; 잘못했다), 똑똑해라(어리석다) 식의 표현은 상대방에게 우회(迂廻 ; indirection)적 기능에 의존하여 진술하는 언어적 반어로 빈정거림, 욕설, 비난 등의 경우에 쓰인다.
2) 상황적 반어 (situational irony) = 구조적 반어
현재 진행 중인 상황과 전혀 반대되는 결말이 드러나도록 장치된 사건이나 삶의 과정, 즉 미리 예상했던 상황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경우를 가리킨다. 흔리 자신의 행위가 같은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는 인물들에 의해 나타나는 구조적 반어로서 채만식의 <태평천하>,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운수좋은 날>의 반어는 바로 이야기의 발단과 결망의 상호 관계와 기대와 현실과의 상호 괴리 내지는 상충 관계를 형성하여 빚어 내고 있는 상황적 반어이자 구조적 반어이다.
@ '반어'
비꼬는 말 또는 반어(反語). 낱말이 문장에서 표면의 뜻과 반대로 표현되는 용법이다. 어원은 그리스어의 에이로네이아(eironeia:위장)이다. 소크라테스가 무지(無知)를 가장하고 논적(論敵)에 접근, 지자(知者)로 자부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상대방 입장의 내적 모순을 폭로하고, 그 무지를 자각하게 하는 문답법으로 사용한 일이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진의(眞意)와 반대되는 표현을 말하는데, 표면으로 칭찬과 동의를 가장하면서 오히려 비난이나 부정의 뜻을 신랄하게 나타내려고 하는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그것은 지적인 날카로움을 갖는 점에서 기지(機知)에 통하고, 간접적인 비난의 뜻을 암시하는 점에서는 풍자와 통하며, 표리(表裏)의 차질에서 생기는 유머를 포함한다.
19세기 독일낭만파에서는 예술창작상의 지속적인 정신태도의 뜻으로 쓰여 ‘모든 것 위에 떠들면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초월하는’ 정신적 자유를 뜻하였으며, 키에르케고르는 미적(美的) 존재에서 윤리적 실존으로의 이행(移行)을 부정적으로 매개하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말하는 사람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들으면 뜻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할 경우, 이것을 ‘비극적 아이러니’ 또는 ‘소포클레스적 아이러니’라고 하여 비극적 인물의 대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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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어적 표현의 예
김소월 시 <먼 후일>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 잊지 못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
김소월 시 <진달래꽃>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哀而不悲(애이불비)',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정서 표현
유치환 시 <저녁놀> 에서 "저녁놀"
☞ 저녁놀 : 표면상 곱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지니지만, 내면적으로는 가난한 존재들의 우울하고 서글픈 이미지를 지님.
한용운 시 <알 수 없어요>
☞ 대상(누구)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확신을 반어적으로 표현.
김성한 소설 <바비도>
믿음이 두텁고 나라에 충성된 백성들
바비도의 얼굴을 명중시킨 용사도 있었다.
가장 용감한 친구는 마차에 튀어 올라 -
인간 세상의 증오라는 증오는 모조리 바비도로 향하고, 두터운 신앙과 충성은 뜨거운 물같이 뒤끓고 있었다.
☞ 작가의 반어적 의도
김유정 소설 <만무방>
"내 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형 응칠이가 벼를 훔치는 도적을 잡고 보니 오히려 동생 응오였던 것이다.)
☞ 동생 응오가 자신이 수확한 벼를 훔치는 행위 속에는 일제하의 절박한 우리 농촌의 삶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 다시 말해 일 년 내내 애써 농사를 지어보아야 늘어나는 것은 빚뿐이고 농사의 대가(代價)는 돌아오지 않으므로 자신의 농사를 도둑질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피폐함이 그려지고 있다.
박영준 소설 <모범경작생>
☞ 주인공 길서는 일제의 편에서 보면 모범경작생이지만, 농민들 눈에는 이기적 배신자이다.
박완서 소설 <배반의 여름>
☞ 이 작품에서 반어(反語)는 주제를 형상화하는 주요한 기법이다.(둘째 에피소드에서 아버지의 금단추가 달린 검은 제복이 의미하는 바나, 셋째 에피소드에서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새앙쥐가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 소년만이 모르고 있을 뿐 독자는 다 짐작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년이 기대하는 바와 어긋나는 결과가 나타났을 때 아이러니가 일으나며, 극적 반전(反轉) 효과를 거둔다.)
염상섭 소설 <삼대>
"일세의 혁명가가 인제 중학교나 면한 어린애를 친구라기는 창피할걸세. 대단 영광일세."
☞ 일세(一世)의 혁명가 : 김병화를 표면적으로 추켜 올리고 속으로는 빈정거림.
유진오 소설 <김강사와 T교수>에서 T교수가 김만필을 칭찬하는 부분
"조선말을 배우느라고 신문에 나는 소설과 논문을 학생더러 통역해 달래며 읽었는데 우련히 당신이 쓰신 '독일 신흥 작가 군상(群像)'이란 논문을 읽었어요. 정말 경복하였습니다. 독일 문학에 대해 당신만큼 연구와 이해가 깊은 이는 온 일본 안에도 적을 것입니다 ~~ 앞으로도 많이 써 주십시오. "
☞ 주인공 김만필의 전력(前歷)을 칭찬하는 교수 (겉으로 칭찬하고 있지만 내면으로는 경고하고 있음)
채만식 소설 <태평천하>(제목의 반어적 의미)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오,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末世)넌 다 ----지나가고요........
자 --- 부아라,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하게 살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하는 것이여, 태평천하 !
......그런데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집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땅땅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말이여, 으응?
☞ 손자인 윤종학이 조부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잡힌 것을 보고 조부가 분노하는 장면. 1930년대 사회 현실은 우리 국민에게는 억압과 고통의 세월이었으나, 부정적인 인물(윤직원-배금주의, 보수적)을 내세워, 윤직원 영감에게만은 태평세월로 인식되고 있는 당대의 식민지 현실을 풍자적으로 고발함.
현진건 소설 <운수 좋은 날> : 비극적 반어
☞ '운수 좋은 날'이란 말은 가장 참혹하고 비통한 날에 대한 반어적(反語的) 표현임
'운수 좋은 날'은 그 구조에 있어서 표제가 암시하는 행운과 사건 내용의 불행과 상호 불일치 내지는 괴리(乖離) 현상에서 비롯되는 교차 전개의 반어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는 작 품이다. 즉 이를테면, 행운의 반복적인 상승화와 불행의 한 절정이 같은 시간 속에서 상호 교차하는 점이 그것으로서, 분명히 반전(反轉)의 반어적인 구조의 소설이다. '반어'란 흔히 말해서 두 개의 상호 모순, 표리의 언술이나 태도의 동시적인 표현, 또는 서로 다른 상황의 병치에 의해서 결과적으로 표리(表裏)가 어긋나는 상태 및 미리 예상했던 상황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운수 좋은 날'의 반어는 바로 이야기의 발단과 결말의 상호 관계가 '기대와 현실과의 어긋남 내지는 상충(相衝) 관계에서 비롯된다.
현진건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 의 '희극적 반어'(작품 결말부)
<심청전>
"허허 그 말 들음직허다." (심청이 말을 들은 심봉사의 충격)
박인환 시 <목마와 숙녀>
'한때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 반어적 성격의 제목과 명명
소설 <화수분> : 주인공의 이름과 실생활
소설 <감자> : 주인공 복녀(福女)의 이름과 그녀의 일생
소설 <태평천하> : 반어적 성격의 제목과 시대 현실
소설 <치숙> : 어리석은 자는 아저씨가 아니라 서술자('나'임)
김유정 소설 <금 따는 콩밭> : 주인공이 농사를 통해 건실한 삶을 살지 않고 유혹에 빠져 헛된 꿈(금광)에 결국 비극적 종말을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