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한 영혼의 목소리를 똑바로 들을 용기
강론 정상호 신부(수원교구 산본성당)
어느 고을에 사또가 부임하면 일주일을 채 못 버티고 사또가 도망을 가버리거나, 까무러쳐 정신을 잃는 일이 발생 합니다. 마을에는 포도청에 귀신이 붙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두려워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용감한 관리가 그 고을의 사또로 부임할 것을 자진해서 청합니다. 새 사또가 고을에 부임한 날 밤, 음산한 바람과 함께 귀신이 나타납니다. 사또는 짐짓 놀랐지만 침착하게 그 귀신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귀신은 흐느끼며 이전의 사또들은 자신이 나타나기만 하면 모두 겁에 질려 도망가거나 기절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은 사또가 처음이라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사또에게 호소합니다.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특정 사건 안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들과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억울함이 풀리지 않고는 죽어서도 편히 눈감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억울함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풀려야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굉장히 특이한 구절이 한 곳 눈에 띕니다. 바로 마귀 들린 사람들에 대한 부분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마귀가 들렸다고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어때야 할 것 같습니까? 누구를 증오하거나 저주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복음에서 마귀는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외칩니다.
그들도 여기 있는 우리처럼 하느님을 믿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믿기는 하지만 그것을 증오하고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따를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드러내놓고 사람을 저주하고 증오하는 마귀는 등급이 좀 낮은 놈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정체를 이미 드러냈기 때문에 피하거나 물리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등급이 좀 높은 놈들의 특징은 은폐와 위장에 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선으로 위장할 줄 알기에 그 정체를 알아내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알아내더라도 ‘저 사람이 정말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라고 생각될 정도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문 미사를 봉헌하면서부터 TV속에서 혹은 신문에서 대통령의 얼굴을 대할 때마다, 혹은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이 진짜 악인이란 말인가? 저 사람도 집에서는 다 사랑받는 자녀이며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한테는 따듯한 아버지일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악인들의 특성이 ‘위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그들은 잘 차려 입은 옷 안에, 사람 좋아 보이는 그 밝은 웃음 아래, ‘소통’과 ‘공감’이라는 미명아래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들만을 생각하는 태도를 감추고, 그 적의를 매우 교묘한 수법으로 신사적인 척 표출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미사를 봉헌하는 의미는 억울함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짜 선이 무엇인지 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탐욕이, 사람보다 이윤을 먼저 추구한 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미사 중에 이 불쌍한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기를, 마귀의 위선에서 벗어나, 억울한 영혼의 목소리를 똑바로 들을 용기를 가진 사또처럼 그들이 변화될 수 있기를 미사 중에 하느님께 마음을 다해 청해야겠습니다.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만 대학강사 교원 지위가 없어요"
대학강사 교원 지위회복과 대학 교육 정상화 투쟁 이야기 김동애
저희가 여의도 농성을 시작한지 2190일째이고 9월 7일이면 만 6년이 됩니다. 사실 투쟁의 과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대학강사들이 대학에서 왜 이렇게 열악한 처우를 받고 신분보장이 안 되는 것일까입니다.
그래서 싸움을 시작하고 보니, 대학강사에게는 법적으로 아무런 지휘가 없더군요. 그렇게 싸움을 시작해 2007년에는 근로기준법 대상이 되는 노동자성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노동자성을 받았으나, 전국 13만5천명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대상도 되고도 실제적으로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이가 일반 생산직 비정규직에 비하여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 우수대학의 정규직교수는 평균 연봉 1억2천인데 반해 강사는 연봉 4~5백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봉이 10~20배의 차이가 나지요. 근로기준법 개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시간강사들은 대학을 상대로 감히 싸울 수 없는 것이,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항의하면 대학 측에서 강의를 슬그머니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아예 매장을 시킵니다.
요즘 대학에서 공정성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이제 대학은 전국적으로 50조의 시장입니다. 한국의 어떤 대기업도 대학만큼의 이익을 내기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대학의 이윤 중 큰 부분은 시급강사의 인건비를 줄여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대학은 정규직교수와 비정규직강사 사이에 큰 차별을 두고, 시급강사들이 언젠가는 높은 연봉과 인정받는 지위의 정규직교수가 되길 기대하며 연봉 400-500을 받으면서도 바둥거리며 살게 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이 점을 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정치적으로 대학강사의 교능지위를 빼앗을 것은 박정희입니다. 1977년, 당시 지식인들이 유신에 반대하고 대학에서 정치적으로 바른말을 하고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치니까 언론과 대학에 손을 댔습니다. 언론기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면서 상대적으로 비판적인 기자들을 내쫓아버리고, 대학에서는 강사들의 교원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독재정권의 잔재가 있는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한국만이 대학강사들의 교원지위가 없어요. 결국 후진국인 것이죠. 가르치는 사람에게 신분을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올바른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박근혜가 정권을 잡고 이렇게 상상할 수 없는 괴물사회가 되는 이런 사회를 다시 겪는 것은 사실 대학이 비판적 기능과 학문이 이미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신 자유주의적 시장에 편입되지 않는 어떤 사상과 학문도 용납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2011년 긴 싸움 끝에 마침내 강사에게 교원지위를 주었으나, 사실상 빈 껍질뿐인, 잘못된 법안이었습니다. 전국 협력병원의 의사들 월급을 학생들의 등록금 회계로 지급하는 이런 말이 안 되는 짓이 교원지위의 이름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 잘못된 안을 고치고자 2012년 19대국회에서 1년 유예되었고, 대체 비정규직교수 강사처우개선과 신분보장을 요구했더니 이제는 오히려 교수 비정규직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를 비롯해 전국의 대학에서 모든 교수를 평균 연봉 2-3천의 장기 비정규직인 연구강의교수제로 변경하고자 현재 정규직교수가 퇴직한 자리를 연구강의교수로 대체할 계획에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유예안은 민주당 오원식의원이 발의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말만으로도 치가 떨리는데 이제 전문직의 비정규화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문제를 자기문제로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정규직교수는 자신의 퇴직 이후의 일이라 무관심하고, 시급강사들은 연봉 4-5백만원보다는 2-3천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많은 기도 부탁 드립니다.
공권력도 떳떳하게 국민과 함께 살아가길...
쌍용차 해고 노동장 이야기 한윤수
아까 신부님들께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이 사회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생활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들의 성폭행 등 기타 범죄로 인한 뉴스가 좀 많이 보입니다. 공무원들은 국민들에게 더 신뢰를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보통 직장인의 경우 음주운전사고가 났다면 벌금 등의 손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경찰공무원은 그런 사건이 있고도 몇 개월 후 복직된 경우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모순된 공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공무원이 되면 죄를 짓고도 면죄부를 얻는다는 생각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저희 쌍차해고노동자들은 옥쇄파업에서, 대한문에서 싸우다 보니 공권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큽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같이 미사를 드리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공권력이 검찰과 자본의 하수인이나 누군가의 쫄병이 아닌 자기 자신이 떳떳하고 국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경찰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