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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과 스마트폰 사이에 기기를 하나 더한다면 어떤 제품을 떠올릴까? 아마 대부분은 ‘태블릿’이나 ‘아이패드’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 1월까지만 해도 열에 아홉은 ‘넷북’을 떠올렸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할 정도지만 넷북은 저전력 프로세서를 넣은 미니 노트북 모양의 기기로 꽤 주목을 받았다. 노트북에 비해 작고 가벼웠고 배터리는 7~8시간씩 쓸 수 있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넷북은 처음엔 경기 불황을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성능이 떨어진 탓에 바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2010년을 전후로 소비자들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스마트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애플이 ‘아이패드’를 꺼내들었다. 2010년 1월27일,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소개한 첫 장면은 바로 아이폰과 맥북, 그러니까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이에 넷북 대신 태블릿이 자리잡을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렇게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아이패드를 두고 시장은 처음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태블릿 형태의 컴퓨터가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윈도우 계열은 2000년대 초반 터치스크린과 디지타이저 펜을 넣은 ‘태블릿PC’를 내놓은 바 있다. 이 제품은 값이 비쌌고 무거웠던 탓에 전문가들이 쓰는 기기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아이패드는 터치 화면을 앞세워 누구나 쓰기 쉬운 기기라는 점을 부각했고 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혹평도 잇따랐다. 미덥잖은 반응을 보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패드를 가리켜 ‘커다란 아이팟터치’라고 평가절하했다.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그저 화면 커진 아이팟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패드에 얹은 iOS3.2는 아이폰, 아이팟터치에 들어간 그것과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화면만 3.5인치에서 9.7인치로 커졌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첫 발표회장에서 화려한 게임들을 보여주었지만 그 역시 아이폰에서도 할 수 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제품이 나오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이패드가 출시되던 2010년 4월3일 미국 전역의 애플스토어와 양판점은 엄청난 인파로 둘러싸였다. 첫날에만 60만대가 팔렸고 몇 달동안 다른 나라에 공급하지 못할 만큼 미국내 수요가 엄청났다. 애플 창업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직접 세그웨이를 타고 나와 아이패드를 구입해 간 것도 유명한 일화다. 이후 아이패드를 ‘별로’라고 평가하는 목소리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애플이 아이패드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배경은 역시 응용프로그램(앱)과 운영체제 환경에 있었다. 아마 애플이 아이패드만 덩그러니 내놓고 좋은 하드웨어를 강조했다면 이 기기는 진짜로 ‘커다란 아이팟터치’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패드를 그렇게 보는 이용자들이 많지는 않다. 분명 아이패드의 운영체제와 이용자경험(UX) 그 자체는 아이폰이나 아이팟터치와 거의 똑같다. 아이폰이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바뀐 직후 ‘아이패드2’까지는 해상도가 비슷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앱 화면 구성을 다르게 하길 원했다. 앱스토어도 분리했다. 아이패드 앱 중에서 아이폰 화면을 그대로 키운 화면을 쓰는 앱은 없다. 그런 앱은 앱스토어 심사를 통과할 수도 없다. 결국 아이패드 앱스토어는 자연스럽게 해상도보다도 화면 크기에 따른 앱 UX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주었고, 단순히 큰 아이팟터치가 아니라 큰 화면을 활용하는 또 다른 카테고리의 기기로 자리잡았다. 특히 아이패드는 현재 교육용 태블릿으로 역할을 굳혀 가고 있다. 갖가지 교육용 앱이 나오고 있고, 많은 학교가 아이패드를 교육용 기기로 구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교육청이 시 단위로 구입해 수업에 활용하고, 국내에서도 아이패드를 활용하는 수업이 증가하는 추세다. 애플도 아이튠즈U를 통해 교육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현재 아이패드는 전용 앱이 50만개를 넘어섰고 100만개 이상의 아이폰용 앱도 모두 돌릴 수 있다. 가장 큰 앱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 태블릿인 셈이다. 아이패드의 역사를 둘로 나누자면‘아이패드 미니’ 이전과 이후로 볼 수 있다. 처음 나온 아이패드는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휴대용 기기는 아니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두께나 무게가 제법 됐다. 출퇴근 지하철에 서서 1세대 아이패드를 두 손으로 들고 책이나 영상을 보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애플도 처음에는 아이패드를 그런 용도로 만든 것은 아니다. 애플은 키노트에 많은 메시지를 담는데 아이패드의 발표 현장에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데모할 때마다 그 소파에 앉았다. 거실이나 사무실에서 쓰는 기기라는 이야기다. 물론 아이패드는 배터리가 10시간씩 버텼고 당시 넷북보다 가벼웠기 때문에 10인치 기기 중에서 들고 다니며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모바일 기기이긴 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태블릿을 들고 다니면서 쓰길 원했고,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다양한 화면 크기를 통해 태블릿의 휴대성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는 9.7인치가 완벽하다고 말했고, 실제 이용자들도 화면 크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커서 구입이 망설여진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여기에 구글이 ‘넥서스7’ 태블릿을 성공시키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2012년 10월, 애플은 드디어 7.9인치 ‘아이패드 미니’를 내놓는다. 휴대용 태블릿이었다. 같은 운영체제 환경에 화면을 달리하는 건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패드 미니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3년에는 그 메시지를 더 확고히 했다. 9.7인치 아이패드도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얇고 가볍게 만들었다. 기존 4세대 아이패드의 경우 와이파이 버전을 기준으로 두께 9.4mm, 무게 650g이었는데 이를 각각 7.4mm, 469g으로 대폭 낮췄다. 아이패드 미니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이패드 미니도 성능을 강조하면서 두 화면 크기의 아이패드는 온전하게 공존하기 시작했다. 당시 PC 업계는 아이패드는 잠깐의 유행일 뿐 PC 중심의 컴퓨팅 환경이 바뀌지 않으리라고 바라봤는데, 이는 결국 큰 오판으로 남게 됐다. 하드웨어만 놓고 봤을 때 아이패드는 PC에 비해 보잘 것 없었고 앱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는 썩 신통치 않아 보였을지 모르겠다. 여러 PC 제조사들은 아이패드를 손가락질했지만 앱이 쏟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결국 PC 제조사들도 태블릿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한쪽은 스마트폰처럼 안드로이드로 태블릿을 만드는 노력을 했고, 다른 한쪽은 윈도우를 태블릿에 넣었다. 안드로이드는 원래 스마트폰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운영체제였다. 아이패드가 나온 직후 여러 제조사가 구글에 태블릿용 안드로이드를 요구했는데, 당시 앤디 루빈 안드로이드 수석부사장은 안드로이드는 스마트폰만을 위한 운영체제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갤럭시탭’으로 7인치 태블릿을 만들고, 시장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구글은 태블릿 전용 ‘안드로이드3.0’을 만든다. 이후 4.0부터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용 운영체제가 하나로 통합됐고, 최근에는 앱도 구분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태블릿으로 PC 시장의 수요가 급격히 빠져나가자 윈도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국 2012년 ‘윈도우8’을 출시하고, 윈도우 스토어를 비롯해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의 흐름을 뒤따르기 시작한다. 2010년 1월, 첫 아이패드 등장 첫 아이패드는 무게 680g ,두께 13mm로 꽤 묵직했다. 9.7인치 화면에 4대3 비율은 이때 정해진 것으로, 5세대를 거쳐오면서도 이 화면 크기와 비율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소파에 앉아 제품을 시연했는데 이로 인해 ‘카우치 디바이스’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아이패드와 함께 ‘MLB 앳 배트(MLB at Bat)’를 비롯해 EA의 몇몇 게임들이 등장했다. 뉴스를 보여주는 플립보드도 아이패드의 등장으로 주목받은 앱이다. 2011년 3월, 얇아진 아이패드2 아이패드2는 1년 새 발전된 하드웨어 기술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기기다. 두께와 무게가 각각 8.6mm, 601g로 1세대에 비해 훨씬 얇고 가벼워졌다. 하지만 성능은 2배 빨라졌고 배터리는 여전히 10시간을 버텼다. 이 아이패드2에 쓰인 A5 프로세서는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뛰는데 전혀 성능에 문제가 없다. 아이패드2는 출시된 지 3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iOS7을 돌리며 보급형 기기로 판매되고 있다. 이 프로세서는 아이패드 미니에도 쓰이고 있다. 2012년 3월, 아이패드+레티나 디스플레이 애플은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마법을 한껏 부리고 있었다. 애플이 직접 개발한 것도 아니고 한 회사가 도맡아 만든 디스플레이도 아니지만,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애플의 상징 브랜드가 됐다. 2012년 3월, 드디어 아이패드에도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더해졌다. 애플은 1024×768의 해상도를 4배로 늘린 2048×1536픽셀의 해상도를 똑같은 9.7인치 화면에 밀어넣는 데 성공했다. 노트북도 풀HD 해상도를 내기 쉽지 않았는데, 499달러짜리 기기에 들어간 고해상도 디스플레는 당시 업계에 충격을 주었다. 배터리 때문에 무게와 두께는 약간씩 늘었다. 하지만 이 3세대 아이패드는 아이패드 역사상 가장 짧은 수명을 가진 기기로 기록된다. 그 해 가을에 새 기기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 아이패드 미니 애플은 그동안 아이패드를 봄에 선보여 왔는데, 2012년에는 가을에 곧바로 신제품을 내놓았다. 10월 애플은 4세대 아이패드를 내놓는다. 아이폰에 도입했던 라이트닝 USB 커넥터를 적용했고 성능은 더 좋아졌다. 하지만 이 행사의 주인공은 더 빨라진 아이패드가 아니라 더 작아진 아이패드 미니였다. 아이패드 미니는 7.9인치 디스플레이로 휴대성을 극도로 강조했다. 성능은 아이패드2 수준이었고 디스플레이 해상도도 딱 아이패드만큼이었다. 화면은 작아졌지만 4대3 비율의 디스플레이는 세로로 보기에 충분한 크기였고 판매 성적도 좋았다. 2013년 10월, 아이패드 에어 하지만 아이패드 미니에는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해상도다. 시장은 아이패드 미니를 좋아했지만 곧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넣은 기기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제품 구입을 망설이는 이들이 많았다. 결국 1년 내내 돌았던 이 소문은 10월, 현실이 됐다. 아이패드 미니는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얹었을 뿐 아니라 성능도 한 세대 전이 아니라 현재 가장 빠른 칩을 넣었다. 아이패드 미니에 대한 수요를 확인한 애플은 크기만 작을 뿐 성능에는 차별을 두지 않아 소비자들이 화면 크기만 고르면 되도록 했다. 오히려 시장을 놀라게 한 건 9.7인치 아이패드였다. 아이패드 미니와 똑같은 7.4mm로 얇아졌고 테두리 두께도 얇아졌다. 당연히 무게도 469g으로 가벼워졌지만 배터리 성능은 그대로였다. 이름은 ‘에어’라고 붙였다. 맥북에어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이름에 잘 담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2014년 2월 현재 애플은 아이패드 에어,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디스플레이 등의 신제품과 아이패드2, 아이패드 미니의 보급형 제품들 등 4가지 아이패드를 내놓고 있다. 발행2014.0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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