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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무시된 선지자 에스겔! (겔 1:1-3)
오늘 제목은 무시된 선지자 에스겔입니다. 에스겔을 누가 무시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들과 설교자들이 무시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들이 가장 설교 안하는 책이 에스겔서입니다. 에스겔서에서 설교한다면 본문이 뻔합니다. 에스겔37장입니다. “에스골 골짜기에 마른뼈가 큰 군대가 되더라” 보통 그것만 하지 다른 본문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이 무시된 선지자 에스겔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에스겔서는 전체가 4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겔서를 가리켜 대선지서라고 합니다. 소선지서 보다도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선지서라 하는 것이 아니고, 소선지는 분량이 적기 때문이고, 대선지서는 분량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다니엘서와 함께 에스겔서는 대선지서에 속한 책입니다. 아마도 성경 가운데 설교자들이 가장 설교하지 않는 책은 에스겔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한 부분이라도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어느 한 구석이라도 우리 성도들이 등한시 해서는 안되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은 에스겔서를 강해하기 전에 먼저 서론적인 말씀으로 에스겔 선지자의 삶과 사역에 관해서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에스겔 선지자가 사역을 했던 장소(location)와 그 때(time)는 언제입니까?
Ⅰ. 에스겔 선지자가 사역했던 장소
에스겔 1장 3절을 보면 “갈대아 땅 그발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지금 어디에 가 있습니까? 갈대아 땅 그발강가에 가 있습니다. 갈대아 땅은 어느 나라입니까? 바벨론을 말합니다. 갈대아와 바벨론은 정확하게 동의어는 아닙니다만, 갈대아 땅에 바벨론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갈대아 땅이라고 하면 바벨론 땅이요, 갈대아 인이라 하면 바벨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갈대아 땅, 바벨론 땅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포로가 되어서 에스겔은 지금 그발강가에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강가에 나갈 때는 기분 좋을 때 나가나요? 쓸쓸할 때 나가나요? 한강에 나간다고 하면 잘 봐야 합니다. 저는 설교 마치고 가서 수상한 삼형제를 시청합니다. 지난주에는 맏아들이 그만 한강으로 갔습니다. 가서 울부짖고, 자신의 고통을 부르짖었습니다. 사람이 강가에 나갔다고 하면 그 심령이 슬프고, 호소할 때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그로부터 40년 후에 솔로몬이 왕이 되었고, 또 40년 후에 주전 930년에 솔로몬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지만, 강력한 야당 여로보암이 일어나서 나라가 두 쪽 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 열지파가 여로보암을 따라서 야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쪽에 왕국을 형성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차지했습니다. 남쪽의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유다라는 이름으로 유다왕국, 남왕국을 형성했습니다. 그런데 북쪽 왕국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과의 시내산 언약을 모두 어겼습니다. 주전 721년에 앗수르 왕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에스겔이 예언 할 때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없어져 버렸습니다. 남왕국 유다도 역시 우상숭배하고 언약을 어기고 해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될 것을 앞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느그아부지는 갓 네 살이다! 외우기도 참 쉽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왕국 유다도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멸망 당할 것을 앞두고 있는데 유다가 멸당 당하기 직전의 마지막 세 왕은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입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멸망 시키는 것은 이 세 왕 시대를 거치면서 18년 동안 걸린 사건이었습니다. 바벨론 열여덟 해 동안에 세 번이나 유다를 침공 했습니다. 여호야김은 왕은 주전 609년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중동의 패권은 애굽 왕 바롯느고가 장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야김은 주전 609년부터 4년동안 애굽의 속국 노릇을 했습니다. 애굽 왕 바롯느고에게 조공을 바친 것입니다. 주전 605년에 중동 지방 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일어나서 애굽 왕 바롯느고와 전쟁을 해서 이겼습니다. 그 전쟁을 가리켜 갈그미스 전투라고 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중동 지방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여새를 몰아 유다를 침공하고 당시에 왕이었던 여호야김 왕의 항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 왕은 바벨론의 속국이 되겠다는 조건으로 왕위를 유지 했습니다. 주전 605년의 이 침공을 가리켜 바벨론의 1차 침공이라 말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의 청년들 가운데 아름답고, 재주에 통달한 젊은이들을 뽑아 바벨론으로 사로 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왕궁에서 왕의 산의 진미를 먹이고 바벨론의 언어와 학문을 그들에게 가르치게 했습니다. 바벨론화 한 것입니다. 사람이 일본말 배우면 일본사람 같고, 영어만 하면 영국 사람같고, 중국말만 하면 중국 사람 같습니다. 언어는 사고구조와 문화를 굉장히 바꿔 놓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쳐서 유다의 지도자급 청년들을 세뇌 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여기에 포함 된 사람이 다니엘과 세 친구였습니다. 주전 605년은 느부갓네살 왕의 1차 침공이요, 이 때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 왕은 속국이 되겠다는 조건으로 왕위를 유지한 것입니다. 주전 605년부터 여호야김 왕은 3년 동안 느부갓네살 왕에게 조공을 잘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 여호야김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바벨론에 반역을 하고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야김을 향해서 끊임없이 예언했습니다. “바벨론에 항복하시오. 항복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바벨론이 쳐들어 온 것은 유다백성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징벌하시는 것이니깐 매를 순순히 맞으시오.” 그러나 여호야김 왕은 하나님의 말씀, 두루마리를 소도(小刀)로 잘라서 화로불에 던져 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불 질러 버린 인간이 여호야김입니다. 여러분, 예수 안믿는다 해도 점잖게 안믿어야 합니다. 성경 내용을 안믿는 것 까지는 말릴 수 없지만 성경을 갖다가 찢어 버리고 학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호야김 신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호야김은 주전 602년에 반란을 일으켜서 598년까지 4년 동안은 독립은 했습니다만, 그 독립은 대단히 불안전한 독립이었습니다. 여호야김의 통치는 4년은 애굽의 속국이었고, 3년은 바벨론의 속국이었고, 4년 동안은 불안정한 독립이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11년을 통치 했습니다. 그런데 주전 598년 4년 동안 독립선언을 하던 여호야김을 향해 느부갓네살 왕이 2차 침공을 감행 한 것입니다. 여호야김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 밖에 내어 던지고 나귀같이 매장을 당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2장 19절에 예언 되었습니다.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11년동안 왕 노릇을 하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서 그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 달 밖에는 왕노릇을 하지 못하고 느부갓네살 의해 포로되어 끌려 간 것입니다. 그 때에 느부갓네살은 용사 일만 명을 사로 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유다에 있는 모든 기술자들을 모두 사로 잡아 갔습니다. 유다에는 천민만 남게 된 것입니다. 이 때에 에스겔 선지자도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느부갓네살 2차 침공 때에, 주전 598년에 일만 명 끌려 갈 때에 여호야긴 왕과 함께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 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시드기야는 11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드기야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옥에 가두웠습니다. 그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리고 애굽과 동맹을 맺어서 느부갓네살 왕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은 주전 587년에 3차 침공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성전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시드기야는 두 눈 멀쩡히 뜨고 자신의 두 아들이 죽는 것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시드기야의 두 눈은 뽑혔습니다. 아들 죽는 것 보고, 눈 뽑히운 것입니다. 그리고 쇠사슬에 매여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예레미야 52장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야김 11년, 여호야긴 3개월, 시드기야 11년 그리고 시드기야가 끌려간 후에 느부갓네살은 그달랴를 세워 통치하도록 했는데 그달랴도 3개월 밖에 통치하지 못하고 이스마엘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유다 멸망 마지막에 4명의 통치자는 11년, 3개월, 11년, 3개월 이렇게 통치하다가 다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에스겔 1장 1절을 보면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제 삼십년이라 하는 것은 대부분의 성서 주석가들이 동의 하고 있는 내용인데, 에스겔의 나이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지금 1장에 하나님의 이상을 받을 때에 삼십세 였습니다. 2절은 보면 “여호야긴왕의 사로잡힌지 오년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것이 느부갓네살의 2차 침공, 주전 598년입니다. 598년에서 5년이 지났으니간 주전 593년이 되는 것입니다. 주전 593년에 에스겔은 나이 삼십살이 되었습니다. 몇 살에 포로가 되었냐면 스물 다섯살에 포로가 된 것입니다. 장가도 가야 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여행도 가야 되고, 인생의 구만리 같은 계획을 세워야 될 나이에 포로로 끌려가 인생의 쓴 맛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의 직업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민수기에 따르면 제사장은 스물 다섯살 때에 훈련을 시작합니다. 스물 다섯살 때에 훈련을 시작해서 삼십세에 성전 공사를 시작해서 오십세까지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이었지만 훈련 받을 기회도 없었고, 봉사할 기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 삼십에 “너는 선지자가 되어라”라고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이 예언을 시작한 것은 주전 593년이요, 그 때 나이는 삼십살이요. 그 때는 이미 여호야긴 왕과 함께 포로로 끌려 온지 오년이 되었습니다.
그가 예언했던 장소는 바벨론의 그발강가였다는 것이 첫 번재 대지의 답인 것입니다.
Ⅱ. 에스겔 선지자가 사역했던 기간(적어도 22년)
에스겔 29장 17절을 보게 되면 포로된지 27년까지 정월 초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라고 했습니다. 포로된지 5년에 예언을 시작해서 27년까지 계속 했으니깐 적어도 22년이상 선지자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얼마나 더 살고, 예언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에스겔8장 1절을 보면 재미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기로”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에서 집을 사가지고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은 애굽 포로생활 같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포로생활 할 때는 일시키고, 때리고 했는데 바벨론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집도 사가지고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출세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나중에 70년이 지나서 돌아오라고 하니깐 안돌아온 사람이 98%인 것을 보면 바벨론은 포로가 되어도 살기는 괜찮은 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집을 사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에스겔과 같은 시대에 예언하던 사람이 예레미야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예레미야 29장의 내용입니다. 그 편지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라고 했습니다. 포로 생활에서 쉽게 돌아 올 수 없고, 70년이 차야 돌아 올 것이니 거기 가서 집도 사고, 집도 짓고, 결혼도 하고, 애들도 결혼을 시키고, 정착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실천했던 것입니다. 유다의 장로들이 에스겔 앞에 앉었다고 하는 말은 유다의 장로들이 에스겔을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했다는 말인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이요, 하나님의 손이 임하여 있는 선지자로써 존경했다는 말입니다. 에스겔 14장 1절로 2절에서도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와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장로들은 에스겔 발 앞에 앉아서 말씀도 듣고 존경하는 것 같지만 그 존경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었습니다. 에스겔 33장 31절에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유다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아도 마음으로는 이욕을 좇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깐 에스겔은 최소한 22년은 집 사가지고 피상적이지만 존경을 받으면서 사역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Ⅲ. 에스겔 선지자의 초기사역의 특징(애곡과 애통)
에스겔은 몇 장이라고 했습니까? 에스겔서는 48장입니다. 48장을 둘로 나누면 24장입니다. 에스겔서는 구조는 반으로 나누어집니다. 1-24장, 25-48장입니다. 앞의 스물네 장은 에스겔 선지자의 초기 사역이고, 뒤의 스물네 장은 25-48은 에스겔의 후기사역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초기사역은 한 마디로 애곡과 애통과 재앙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에스겔 2장 8절로 10절에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라고 했습니다. 1장부터 24장까지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을 증거한 것입니다. 에스겔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왔어도 그것은 주전 598년에 사건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아직도 완전히 멸망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시드기야가 왕이 되어 11년동안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일어났습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거짓된 예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어 버릴 것이고 유다 백성들은 두 해가 지나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거짓 예언에 속지마라. 속지마라 바벨론에서 70년은 살아야 된다” 그 이유를 역대하 36장 2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여러분 하나님의 법은 농사를 지어도 육년은 짓고 일년은 쉬라는 것입니다. 땅을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토지가 산성화 되어 못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년간 농사 지으면 일년간 반드시 토지 안식년을 갖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90년 역사 가운데 단 일년도 안식년을 안지켰습니다. 490년 동안 안식년을 70번을 떼어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가 내 것을 다 뺏어 먹었느뇨? 내가 강제로 찾겠다. 네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있는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옮기고 70년 동안 이 땅을 쉬게 하겠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안드려도 하나님께서 다 찾아 가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100% 십일조를 다 합니다.” 어떻게 목회를 그렇게 잘 하십니까?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어떤 분은 교회에다가 십일조 내고, 어떤 분은 병원에대가, 사기꾼한테 낸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것은 다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결국 십일조는 100% 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것을 떼어 잡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도로 찾아 가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스겔서는 1장부터 24장까지 예루살렘의 심판이 오고 재앙이 오고 결국은 망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에스겔서 24장을 보게 되면 심판의 마지막 날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24장 2절을 보면 “인자야 너는 날짜 곧 오늘날을 기록하라 바벨론 왕이 오늘날 예루살렘에 핍근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쳐들어 오는 날이 예루살렘이 멸망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48장 가운데 예루살렘 완전 멸망의 날이 예언 된 장은 24장입니다. 에스겔은 그 날을 결코 잊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에 에스겔의 아내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 그 날 저녁에 아내를 잃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24장 16절에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 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내가 죽은 기일이 예루살렘의 멸망의 날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는 자기의 아내를 잃어도 울지도 못하고, 슬퍼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 잃었다고 슬퍼하냐? 나라가 망했는데,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 날인데, 민족적인 대슬픔 앞에 개인의 문제 가지고 울면 되겠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 슬퍼서, 그 슬픔에 압도 당하면 눈물도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비운과 고통의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Ⅳ. 에스겔 선지자의 후기사역의 특징(구원과 소망)
에스겔 24장에서 예루살렘이 완전 멸망을 당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하나님이 이제는 유다 백성들에게 소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감옥살이 10년을 했다면, 10년 할 때는 괴롭겠지만 마치고 나면 감옥에서 나옵니다. 나오면 두부도 먹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있고. 이제는 과거에 죄로 인해서 경찰을 봐도 두려워 떨 것도 없습니다. 25장부터 32장까지는 유다 백성들을 괴롭힌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3장-48장까지는 구원과 소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4장 11절로 12절을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찌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제는 내 흩어진 양을 찾아 다 모으겠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회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8절에는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실을 맺으리니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땅도 70년 안식년을 다 지켰으니 가지를 내고, 과실을 내고, 이제는 영양가 있는 산물을 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는 영혼의 회복, 국가의 회복, 땅의 회복 그리고 성전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에스겔 후반부에는 회복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Ⅴ. 에스겔서의 교훈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무궁합니다. 영원전부터 사랑해서 영원후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해도 사랑하고 잘못해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 충성해도 사랑하고 불충성해도 하나님이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표현을 받는게 틀려 집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사랑하면 땅의 기름진 것을 먹게 되고, 불충성하고 하나님을 배역하면 하나님의 매를 맞아서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표현이 다릅니다. 우리가 자식이 있어도 잘하면 상주고, 잘못하면 때립니다. 때린다고 미워합니까? 표현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랑을 경험하시겠습니까? 매로 경험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알아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에서 15절입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사람 막대기, 인생 채찍! 이것으로 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당근과 채찍이 있습니다. 둘 다 우리를 사랑해서 갖고 계신 것입니다. 올해는 채찍 맞지 마시고, 하나님의 당근을 받고 축복을 받고 하나님이 미소 짓는 얼굴을 뵙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파숫꾼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에 땅, 포로의 땅, 고난의 땅, 바벨론에 있는 선지자 에스겔을 일으켜서 말씀을 보내신 것입니다. “에스겔아, 바벨론 땅에서 70년 포로가 된다. 그러나 70년이 지나면 회복된다는 것을 믿어라!” 시편107편 20절에도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서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010년도는 하나님이 대한민국에도 말씀을 보내시길 원합니다. “김정일아 너는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느냐?”라고 말씀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화폐개혁해서 나라를 어지럽게 만드냐? 화폐개혁으로 북한의 고위 간부를 돈 다 잃어 버려서 속으로 꿍시렁 꿍시렁 합니다. 아버지 때에는 먹고 살만 했는데 아들이 와서 다 뺏어 간다고 꿍시렁 꿍시렁 한다고 합니다. 이제 김정일이도 살 길 찾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독재자의 최후는 자기 개인 목숨 지키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과 자기 자식을 지키는 것이 중국이냐 한국이냐 이것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어 “북한을 중국에 주지 말고 남한에 주어라” 그렇게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또 “북한이 1907년 평양 장대현에 대부흥을 경험 했던 부흥의 진원지가 아니냐?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내려와 얼마나 교회를 일으키고 큰 부흥을 일으킨지 내가 알고 있느니라 북한 사람들아 이제는 공산 독재에서 해방 될 지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보내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내셔서 위경에서 건지시고, 나라를 통일하시고, 우리가 또 다시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 세계 선교를 하는 선교대국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올해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과 북한에게 좋은 말씀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셋째는, 에스겔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에스겔은 어려운 시대에 자기 아내를 잃었습니다. 심지어는 인분으로 떡을 해서 먹으라고 합니다. “하나님 그걸 어떻게 먹습니까?” 다른 재료로 바꿔 달라고 합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것은 고약하겠다해서 쇠똥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어렸을 때에 길가다가 개똥 밟는 것 보다는 쇠똥 밟는 것이 정결하고 깨끗합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강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을 공부하면서 여러분 모두에게 강하게 하시는 은혜, 말씀을 보내셔서 위경에서 건지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