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노스님께서 하신 법문 중에 유체이탈을 하여 영가를 천도하셨다는 말씀이 있고 좌선 중에 몸 밖으로 나와 보니 몸 밖에서 보는 것과 몸 안에서 보는 세계가 반대로 보인다고 하시더군요. 옛 고승전에도 몸을 벗고 나옴이 자유롭습니다. 좌선 중에 몸 밖으로 나와 유체이탈을 하는 것과 영가를 보는 것은 무슨 삼매인지 궁금합니다.
답변입니다.
신비한 얘기, 상식을 초월한 얘기, 입증할 수 없는 얘기를 할 때는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질문에서 언급하신 노스님께서는 실제로 그런 체험을 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분이 그런 체험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유체이탈에 대해서는 불교 바깥에서도 많이 얘기합니다. 수술을 하기 위해서 전신마취에 들어간 동안 자신의 몸에서 나와서 자기 몸을 수술하는 장면을 지켜봤다는 경험담이 실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습니다. 2, 30년 전에 모 스님은 자신이 죽어서 영안실까지 갔는데, 몸 밖으로 나와 그 모습을 보았고, 다시 몸에 들어가서 살아났다는 말씀을 하여 큰 관심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체이탈의 체험담은 한 개인의 주장일 뿐이고, 단 한번도 객관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습니다. 객관적 입증을 위해서는 실험 설계를 하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 '준 라보'라는 필리핀의 심령치료사가 살아 있는 사람의 뱃속에 손을 칼처럼 넣어서 암덩어리를 꺼낸 후, 다시 쓰다듬어서 상처나 통증 없이 감쪽같이 치료하는 시술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필리핀에 가서 시술을 받았는데, 모 언론사에서 취재하면서 집요하게 조사한 결과 돼지 내장을 손에 숨기고 벌이는 속임수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손을 펴서 배를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재빨리 엄지 이외의 네 손가락 관절을 굽히면, 손가락이 배로 들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손가락 주변은 피가 흥건하고요. 돼지피가 밴 스폰지를 숨기고 시늉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도 준 라보와 같은 방식으로 신도들이 보는 앞에서 뱃속에서 암덩어리를 꺼내는 장면을 연출한 목사님들 많았는데(모 대형교회의 유명한 목사님도 그랬답니다.), 어째서 일부 목사님들이 그런 일을 벌이는지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종교인 중에는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간혹 질이 아주 좋지 못한 분도 계십니다. 종교인이 거짓을 진짜인 것처럼 얘기할 경우에, 그 종교에 믿음을 갖는 순진한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너무나 쉽게 갈취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준 라보는 그런 속임수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인도의 사이바바라는 종교지도자가 허공에서 로렉스 시계나 장미꽃을 만들어내는 신통력을 보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신도가 되었는데, 이 역시 옷소매 속에 시계나 꽃을 숨기고 벌이는 사기극으로 판명났습니다.
자니 카슨 쇼에서 크게 망신을 당한 이스라엘의 유리겔러의 경우도 속임수에 능한 마술사일 뿐입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로 계셨던 호진스님께서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 존자님과 대담하신 적이 있는데, 달라이라마 존자님께 "스님께서는 신통력이나 기적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으셨답니다. 그랬더니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남이 목격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고 답변하셨답니다. 즉, 당신이 신통이나 기적을 목격한 적이 있다는 답을 하지 않으셨답니다.
뇌과학에서는 측두엽 상부 후방(각회, 각이랑, angular gyrus)를 전기적으로 자극하면 유체이탈의 느낌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림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종교에서 신비한 일이 벌어지면, 일단 의심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특정한 개인의 신비체험일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신비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율장 가운데 설일체유부율에 아래와 같은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어느 날, 사리불이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허공에서 벌레들을 보았는데, 물가의 모래알과 같고 그릇에 가득한 좁쌀알과 같이 무변하고 무량하였다. 이를 보고 음식을 중단하여 2, 3일이 지났을 때 부처님께서 식사를 하라고 명을 내리셨다. 무릇, 육안에 보이거나 녹수낭(漉水囊)에 걸리는 크기의 벌레가 든 물을 금지하는 것일 뿐이지 천안에 보이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一時舍利弗 以淨天眼見空中蟲 如水邊沙如器中粟 無邊無量見已斷食 經二三日 佛敕令食 凡制有蟲水 齊肉眼所見漉水囊所得耳 不制天眼見也
- 살바다비니비바사(薩婆多毘尼毘婆沙)
사리불이 천안으로 보니까 허공 가득 벌레들이 보이는데, 밥을 먹을 경우 그런 벌레들을 죽이는 살생업을 짓게 되기에, 굶기 시작했고, 2, 3일 후에 부처님께서 이를 아시고, 식사를 하라고 명을 내리셨다는 일화입니다. 여기서 사리불이 천안(天眼)으로 보았다는 '물가의 모래알과 같고 그릇에 가득한 좁쌀알과 같은 무수한 벌레'는 박테리아와 같은 세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질문에서 영가를 본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정안(淨眼, 청정한 눈)을 갖춘 자에게 중음신이 보인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통도사 극락암에 계셨던 경봉 스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정신과의사의 어머님이 친구분과 함께 경봉스님을 찾아 뵈었는데, 처음 만난 자리인데도, 그 친구분에게 다짜고짜 "니는 사람좀 그만 죽이래이"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친구분은 산부인과의사라서 낙태수술을 많이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이 기겁을 했답니다. 경봉 스님께서 무언가 보셨을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불교 수행을 할 경우, 신통력이 생길 수도 있고, 신비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불전에서는 신통력의 종류로 6가지를 듭니다.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누진통의 여섯입니다. 그런데 앞의 다섯 가지는 외도들도 성취하는 것이고, 마지막의 누진통만이 불교 고유의 것이라고 합니다. 앞의 5가지 신통이 없어도 누진통만 있으면 아라한입니다. 누진통(漏盡通)이란 보든 번뇌[漏]가 소진된[盡] 신통력입니다. 즉, 탐욕, 분노, 교만, 우치가 모두 사라진 경지입니다. 따라서 유체이탈 등의 신비한 일들을 누군가 체험했다고 할 때, 그냥 흘려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불교수행의 목표에서 먼 얘기일 뿐만 아니라, 현혹의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첫댓글 네 답변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