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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훈련법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그리고 인간의 능력으로 측량할 수 없이 없이 오묘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셔서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인내로 그 백성을 훈련시키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샬롬! 오늘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훈련시키시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를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품고 훈련을 시키시는 방법과 그 능력과 그 효력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신 다면 결코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서 사람을 교육을 시키고 성장을 시키려고 하는 노력을 끊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말씀으로 양육되고 하나님의 법과 뜻에 순종해서 살도록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와 그리고 교인들을 훈련시키고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은퇴하신 목사님들이 별로 효력도 없고 자녀를 낳지 않고 그리고 결혼도 회피해서 입학할 학생이 없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귀한 물질을 선교와 전도로 쓰지 않고 학교를 세우는데 낭비를 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성경 말씀으로 잘 교육을 시키면 한국의 훌륭한 여건을 갖춘 일반 학교에서 세상의 학문을 배우면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게 될 것인데 교회도 가정도 제쳐놓고 어린 자녀들을 먼 곳에까지 가서 홀로 생활하게 하면서 교육을 시키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교인의 소중한 헌금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는지 정말 깊이 생각을 해 보셔야 합니다.
학교를 하나 세우는 데는 100억을 가지고 어림도 없습니다. 이 돈이면 선교사를 100명을 5-10년을 도울 수 있는 돈입니다. 교회 재정이 성도의 헌금으로 이루어지고 성도의 헌금은 제한이 있고 이 돈을 학교를 세우는데 쓰면 틀림없이 교회가 하고 싶은 일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물질을 인재를 양성한다고 잘못 사용하면 초대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을 보듯이 큰 벌이 기다리고 있고 목사님께서 일생을 헌신하시며 쌓아놓은 공적을 살아생전에 다 깎아먹는 것입니다. 학교를 세우고 공부를 하는 곳에는 전쟁이 있습니다. 좋은 대학을 위해서는 더 큰 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 대학원 8년 고시공부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정말로 주변을 배려하고 아끼면서 공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모두가 경쟁 상대이고 내가 상대방보다 못 배우면 지게 되고 지면 내 미래가 참으로 어렵게 될 것이다 생각을 하면서 죽도록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시에 도전자가 상당히 많아서 정신 차리고 공부하지 않으면 되지 않음을 모두가 잘 압니다. 대학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이와 못지않게 공부를 하는데 보통 유치원부터 공부가 시작되고 초등학교 3-4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서울의 경우도 그렇겠지만 경기도와 서울 부근에 있는 부모는 강남으로 자녀와 함께 공부를 하려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강남이 집값이 비싼 것입니다. 공부를 하는 곳엔 전쟁이 있고 이 전쟁 속에서 우정이 싹트기는 매우 어렵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성을 교육하는 것도 어렵게 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를 성경으로 잘 가르치게 해야 되고 인성교육도 잘 시키게 해야 되고 교회도 역시 가정과 같이 어린 학생들을 사랑으로 성경 말씀과 신자의 도리를 잘 가르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가정도 무시하고 새로운 교육기관을 설립해서 기독 인재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교회나 가정의 역할을 무시하고 또 희망이 없다고 판단을 할 때나 할 수 있는 결정인데 교회나 가정을 포기하면 이 세상은 1% 희망이 없는 죽음의 곳이 될 것입니다. 절대로 죽어도 이것은 포기를 할 수가 없는 영역입니다. 도리어 교회와 가정을 세우는데 교회의 헌금이 사용이 된다면 이는 올바로 하나님의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하나님의 교육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께 사용된(하나님의 종으로서 헌신된) 거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시고 훈련을 시키셔서 사용하셨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교육으로 훈련을 시켜서 하나님께 바쳐서 사용하세요 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목과 인간의 안목은 틀리고, 하나님의 교육 방법과 사람의 교육 방법도 틀립니다. 한 가지 예로서 이를 증명할 수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쓰시고자 하는 종의 일생을 한 치도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니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을 다 아시면서 그의 종을 준비시키시고 훈련을 시키시는데 그분의 그 전능성에다 하나 더 붙여서 그분의 자신의 종에 대한 사랑은 세상의 그 누구 그 무엇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에 대한 훈련은 너무나 다양한 하나님의 속성으로 하시는데 우선 사랑과 전능성만 예를 들었습니다. 이런 분과 대항해서 내가 인재를 하나 키워보겠다 그것도 목사가 그것도 하나님의 돈으로 해 보겠다. 참으로 어리석고 또 어리석고 또 벌받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받아먹어야 할 것은 그렇게 멋지고 훌륭한 선생님이시며 트레이너 이신 하나님께서 훈련시키는 대상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께서 직접 우리를 훈련을 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무슨 목사 무슨 목사 하나 그들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의 양을 돌보시는 분들이십니다. 내가 신앙이 자라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천하의 바울 사도께서 이에 대해서 정확하고 겸손하게 나는 심었고 아볼로 물을 주었고 자라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린도 전서 3장 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성장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전도에 대해서 강의도 하고 있지만 전도를 해 보면 틀림없이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수만이 되고 수십만이 되고 그 큰 교회의 목사가 이름이 나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심을 성경을 읽어 보시면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다른 말로 모든 성도가 하나님과 함께 교회의 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잘났다고 나서야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없습니다. 혹이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큰일을 했다고 해도 바울같이 베드로같이 때가 되면(은퇴) 모세같이 조용히 사라지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셔서 모든 일을 아시면서 그리고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를 하시고 교육을 시키시고 훈련을 시키십니다. 자신의 자녀를 키워보신 분은 자녀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사랑을 잘 이해합니다. 특히 자녀의 일생을 생각하며 교육을 시킬 때 교육을 시키고 그리고 결혼을 시키고 그리고 그 자녀들이 낳은 손자 손녀를 돌보며 죽을 때까지 사랑합니다. 그런데 부모의 이런 사랑은 한 가지 부족한데 앞날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자식에서 내일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으면 절대로 자녀를 잡고 그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능력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사고도 당하고 불행도 당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믿는 사람이 다 훌륭하게 자라지 못하고 부모의 근심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훈련을 등한시 한 것이 아니라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교육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시키지 못한 부모의 잘못이 크고 그리고 부모가 아무리 권해도 듣지 않는 자녀의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인 모든 부모는 신명기 6장에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칠 것을 그 부모에게 명령하고 있는데 이 명령을 지금 신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목자나 자녀의 부모에게 그대로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릴 때 성경을 부모가 가르치지 않고 교회에서 학생들과 성도들을 잘못 가르쳐서 세상에서 성도나 자녀가 올바로 살지 않을 때 그 책임을 틀림없이 목사나 부모가 져야 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을 아니하고 돈 버는데 다른 일에 열중을 한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자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과 이스라엘 민족을 훈련을 시킨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위대하신 인물은 일생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학식이 많고 가문이 좋고 머리가 좋고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재목으로 그 가정에서 잘 교육을 시킨 인물은 별로 없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모든 면에서 부족한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오래오래 참으시면서 사랑으로 양육을 하신 것입니다. 큰 교회의 성장에는 이렇게 하나님께 잘 훈련받고 또 하나님을 잘 잘 섬긴 수많은 성도들의 땀과 눈물과 기도와 헌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인 목사를 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나설 이유도 1%도 없는 것입니다. 조용히 때가 되면 잘 물러나면 뒤탈도 없고 그동안에 혹여 아름답지 못했던 일도 묻어질 수가 있는 것이고 갈 때 가지 못하고 욕심으로 이것저것 다 잡으려다 결국 모든 것 털리고 잘못된 것들도 들통이 나고 또 일생을 일심으로 쌓아놓은 상급도 다 까먹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 아브라함, 욥은 모두가 불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40년의 광야의 삶을 통해서 훈련을 받았으며 아브라함도 때로는 실패를 하면서 믿음을 지키어 갔고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의인이었지만 어려움이 닥치자 자신의 의로움만 강변하고 버티다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서 자신을 굽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40년의 광야의 삶을 통해서 늘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말씀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비로소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훈련을 시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배우는 학생은 늘 가르쳐주시는 선생의 가르침에 민감해야 되고 우리가 배울 말씀과 믿음의 도는 학교에서만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전에서 경험을 또 하면서 배운 것으로 살고 또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실에서 가르쳐주는 선생만으로 너무나 부족한 것입니다. 이 교육을 잘 따라서 해야 제대로 하나님께 교육과 훈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잘 배우고 세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실천하면서 또 배우지 않으면 장롱면허와 같아지게 될 수도 있고 이 실전에서 잘 배워야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믿음의 용사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사람이 감히 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하나님의 교육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고 이렇게 성도를 사랑하시고 훈련시키신 성도와 이들이 모인 교회에 대해서 일반 성도와 같이 이름 없이 조용히 지내지 않는 것은 참 위험한 일입니다.
신약에 오면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있었는데 약 7명 정도는 어부였습니다. 제 선친이 이들보다 2000년 후의 어부셨는데 글을 알지 못하셨고 세상에 대해서도 소식도 잘 듣지 못했고 작은 동네의 어촌에서 배로 고기만 잡으시고 또 바다에 나가실 수 없을 때에는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늘 쉬는 날이 없이 참으로 부지런하셨고 그리고 저의 형제를 사랑하셨습니다. 지금의 아버지와 같이 자녀와 가까이 지내며 대화도 하고 안기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저에게 말도 잘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가 제 아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저를 훨씬 더 사랑하셨음을 잘 압니다. 제 선친을 통해서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이 얼마나 지적이 측면에서 부족하고 또 세상에 대해서도 모르시는 분들이셨음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장도 지금과 같이 좋은 양복이 아니고 이발도 지금과 같이 잘 하지 못한 그런 분들을 예수님께서 그분들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나사렛에서 사시면서 공생애를 준비를 하시고 때가 되어서 이들을 직접 찾아가셔서 부르시고 3년 동안 같이 생활을 하면서 천국에 대해서 가르쳐주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성경의 말씀(구약)을 가르쳐주시고 그리고 병자를 고치시고 이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들도 예수님과 같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잘 훈련을 시킨 제자들에게 자신은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인류 구원의 사역을 행하신 후 부활하신 후에 반드시 성령을 기다려서 성령을 받고서 능력을 받아서 증인의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교육과 훈련을 하나님 이신 예수님께 친히 받고 이번에는 성령님의 선물을 받아서 능력을 받고 능력 있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똑같이 살면 틀림없는 능력 있는 크리스천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즐겁게 하고 또 이렇게 살아서 천국에서 상급도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이 우리도 살고 목사도 모든 성도가 이렇게 살도록 가르치면 아무 문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제자를 가르치신 것과 같이 제자를 가르치고 살게 하는 것이 목사의 의무이고 또 교회의 의무이며 모든 세상의 희망이 되는 길로서 다른 방법은 모든 것이 이 방법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적인 교육입니다. 목사가 은퇴를 하고 학교를 세우는 것도 결국은 인간적인 교육을 하자는 것입니다. 너무나 큰 믿음의 후퇴요 상급을 소진하고 교회의 헌물을 헛된 곳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계시니 바울의 표현같이(로마서 10장에 이 내용이 있음) 예수님을 천국에서 모셔올 수도 없지만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 즉 성경이 있기에 이 성경을 잘 배우면 되고 반드시 성경을 잘 배우고 또 반드시 성경의 가르침대로 과거에 어떻게 살았던 모든 것 다 배설물로 버리고 회개해서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죄 사 함이 옵니다. 그리고 나서 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성령을 기다리면 됩니다. 때가 되면 틀림없이 성령께서 오셔서 능력을 주시면서 인도를 틀림없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살도록 목사가 반드시 해야 됩니다. 성령 받고 능력 받고 목회를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잘해서 교회가 크게 부흥이 되었는데 이런 원리를 잊고 자신에게 능력 주신 성령을 잊고 성도가 성령을 받아서 능력을 가지게 되는 일에 소홀하고 또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자신이 한 것으로 착각이 들어가면 그 목사는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지 않은 목사나 선생이 혹은 교수가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다양하게 가르치지만 진작 이렇게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을 하지 못함은 자신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성경의 말씀대로 자신과 성도를 사랑하셔서 성령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받아야만 합니다.
인간의 머리로 아무리 성경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또 읽어도 아는 데는 너무나 한계가 많습니다. 성령 받은 성경을 잘 모르는 성도들이 이런 목사님들께 설교를 듣고 살고 있습니다.
저도 신학을 하고 목사로 목회도 못하고 살고 있지만 성령을 받았음에도 저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저에게 성령을 받은 것이라 이야기도 해 주지 않아서 이를 아는 데만 성령을 받고 난 후 약 15년이 걸렸습니다.(제 전도자에게 보여주신 이신칭의 간증에서 밝힘)
저는 이름 없는 목사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훈련을 잘 시켜주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훈련을 받고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신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를 가진 후에 어떤 대기업에 입사를 해서 교육과 훈련을 약 2개월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교육은 가르치고 시험 치고 떨어뜨리고 가르치고 시험 치고 떨어뜨리는 방식이었는데 대기업이라 교육여건과 강사도 훌륭하고 또 저와 함께 교육을 받은 교육생도 대부분 사회에서 요직에 있던 분들이었는데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어김없이 탈락이 기다리고 있던 교육이었습니다. 이를 제가 받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훈련과 교육에 비추어 보니 모든 면에서 비교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만 그렇겠습니까?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녀로 사랑하셔서 그렇게 일생을 통해서 복을 주시며 교육을 시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저와 여러분을 한순간도 놓지 않으시고 밤과 낮으로 사랑하시며 영적인 성장을 너무나 간절히 바라시고 또 교육과 훈련을 시키십니다. 문제는 그분의 교육장이 교회 예배 당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삶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예수님께서 늘 계시면서 우리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우리가 그분을 따라서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부자는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주님을 따라오실 바라시고 직장인은 직장에서 승진과 고 소득만 바라보고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길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이렇게 삶에서 모든 분야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면서 받아야 하는 교육과 훈련이 또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목사에게 배우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가르침이요 재미난 가르침이요 정확한 가르침이 됩니다. 그것은 만유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이 교육을 모든 성도 목사가 받아야 합니다.
제가 전도를 하다 보면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전도하시는 분이 체험을 하면서 느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그리고 인도하심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모이고 경험이 되어서 온전히 주님의 인도를 받는 크리스천이 됩니다. 저도 아직도 너무나 성경 말씀도 부족하고 인도를 받는 것도 부족하고 육신의 정욕을 죽이면서 믿음대로 사는 것도 부족합니다.
저는 처음에 전도가 잘 되자 다른 교회에서 간증을 하시는 분들과 같이 유명한 간증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도 자료를 가지고 목사님들을 찾아다니며 간증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어떤 교회에서 간증을 했더니 반응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목사님 약 70명이 제 간증을 들으시고 한 분이 즉시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와서 간증을 해 달라고 했는데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전도가 아니라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전하는 일에 많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또 전도를 계속하면서 신학도 마치고 목사가 되었는데 이런 경험을 통해서 성경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기쁘고 또 좋아서 전하는 분들을 만나면 신학을 하도록 권했습니다. 신학은 꼭 목사가 되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성경을 이해하는데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히 부끄러운 고백이나 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는 산과 같아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모두들 마시멜로 이야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대학에서 어린아이를 여러 명을 데려다 사탕을 주면서 먹지 않고 몇 분을 견디면 사탕을 상으로 몇 개를 더 준다고 하고 어린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어린이는 사탕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서 곧 사탕을 먹었고 어떤 어린이는 약속된 시간을 먹지 않고 잘 견디어서 사탕을 더 상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구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 어린이들이 어떻게 성장을 하나 살펴보았는데 사탕을 먹을 욕구를 참고서 기다린 어린이들이 바로 참지 못하고 먹은 어린이보다 더 좋은 학교에 가고 결혼도 잘 하고 사회적으로도 잘 되었다는 연구로 이어졌고 우리에게 보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이와 똑같은 훈련을 기이한 방법으로 시키셨습니다. 제가 고시를 하고 곧 1차 시험에 합격을 해서 2차 준비를 어떤 도시의 재실에서 문중의 허락을 받고 하게 되었습니다. 정리를 잘 해 놓지 않은 기와로 지은 재실은 넓었고 백 년이 넘게 자란 나무도 있고 작은 사당도 있는 재실이었는데 방들에는 고서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 놓으면 진도가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고 어머니께서도 은행에 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공부를 해서 세차장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속히 1차가 붙어서 2차에 붙고픈 욕구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그리고 1차 공부와 2차 공부가 과목이 같을 것도 있는데 평소에 하루 종일 책을 보면 약 300페이지는 쉽게 읽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30페이지도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하루에 나가지 않는 진도를 나가려고 끙끙대며 10시간이 넘게 버티며 책을 읽어내려고 싸웠습니다. 고시에 1차가 붙어서 2차 시험만 붙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이 되기에 너무나 책을 읽어내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아무리 해도 진도는 나가지가 않았습니다. 너무나 이상했지만 경제적인 여건상 다른 곳에서 공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그렇게 싸움을 하다가 결국에는 그때 제가 하나님을 믿은 지 약 1-2년쯤 되었는데 은혜도 크게 받은 사람이 화분 하나를 들고 사당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너무나 참기가 어려워서 그렇게라도 하면 진도가 잘 나갈 것이라 생각을 한 것입니다. 우상에 의지해서 우상에게 재물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진도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상한 싸움을 하면서 1년을 다 보냈습니다. 하루는 공부를 하다가 재실의 마당에 서 있는데 환상이 보였습니다. 하늘에서 마치 금싸라기 같이 사랑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데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있지 않고 서로 떨어져서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서로 가까이가 아니고 떨어져서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가 1988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그런 제가 본 환상을 김태우 가수께서 사랑비라는 많은 분들이 아는 노래의 가사에서 정확히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때가 제가 그 재실에서 그런 환상을 볼 때가 1988년이었습니다.
그렇게 고지가 바로 저긴데 가지는 못하고 참고 또 참고하다가 결국 시험에서 낙방을 하였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배낭을 메고 그 참았던 화를 풀기 위해서 1년을 산속을 난을 캔다고 미친 듯이 헤매고 다니다 병을 얻어서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습니다. 그때 너무나 큰 복을 보면서 가지려 해도 가지려 해도 갖지 못하게 저를 꼭 잡고 있었던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큰 축복이 제 앞에 놓였다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먼저 살피고 아무리 좋고 아무리 제게 유익이 있을 것 같아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참습니다. 참으로 어렵고 화나고 결국 고시에 다음 해에 낙방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상도 하나님도 잘 구분 못하는 나약해 빠진 초보 신자를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꼭 붙잡아 주시고 여기까지 한량없으신 사랑과 인내로 인도하셔서 지난날을 생각하면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나 참기에 어려운 큰 고통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너무나 크신 하나님의 은총이십니다.
저는 아직도 배우고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분별력을 키우고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고 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아브라함, 모세, 욥, 그리고 신약의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든 믿는 이는 가장 큰 축복을 이미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바울 사도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었듯이 우리 모두도 하나님을 믿다 보면 부족한 부분들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형제 사랑으로 서로의 부족을 채우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고 또 너무나 우리가 큰 축복을 받았기에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고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귀한 선물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지만 이 귀한 선물을 가져가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어렵고 힘든 현실을 견딜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오늘도 복되고 즐거운 주님과 동행하는 세상에서의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빕니다. 승리하세요. 사랑합니다.